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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장례도 변화시킨 코로나19
[나눔과 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2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20년03월16일 16시08분 ]

코로나19 관련 공지문이 붙은 서울시립승화원. 사진 나눔과나눔
 

1년 중 가장 짧은 달인 2월엔 막바지에 이른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계절인 봄에 대한 설렘과 희망을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사람들의 뇌리엔 졸업식과 꽃다발, 밸런타인데이 등의 이미지가 흔히 떠오르고, 눈이 녹은 후 움트는 가지가 연상되기도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20년 2월은 참으로 안타깝고 힘든 달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 격리’ 등의 검색어는 하루도 빠짐없이 포털 사이트를 장악했고, ‘마스크 파동’과 함께 ‘사회적 격리’는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우울함의 상징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회가 불안했던 2월 한 달 동안 무연고 사망자 장례엔 여러 변화가 생겼습니다. 우선 나눔과나눔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예방차원에서 무연고 장례에 자원봉사자 모집을 중단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은 방역시스템을 강화해 모든 출입문은 통제하고, 접수실 바로 옆 출입문에는 열 감지 카메라까지 동원했습니다. 국가의 중요시설인 만큼 만일의 상황에 만반의 대비를 철저히 하는 모습입니다.

 

가장 따뜻한 겨울을 지내며 유난히 눈과 비가 잦았던 2월 한 달 동안 안타깝게도 하루도 빠짐없이 무연고 장례가 있었습니다. 이는 나눔과나눔이 2015년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지원한 이래 처음 있는 현상으로,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의전업체가 새로 바뀌어 장례업무 진행방식이 이전 업체와 달라진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무엇보다도 무연고 사망자의 발생 수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개인정보 보호가 사람을 죽였어요”

 

지난 2월 말 장례식에 참석한 한 여성이 작정한 듯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일순간 주위의 분위기가 심각해졌고, 여성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에 맺힌 이야기를 꺼내놓았습니다.

 

1월 말 뇌출혈로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 ㄴ 님은 1949년생으로 복잡한 가족사로 인해 형제자매가 있었지만 어머니가 달라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여성분의 어머니와는 4촌 자매간이었습니다. ㄴ 님은 임대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유일하게 연락이 되는 5촌 조카에게 의지해 살았습니다.

 

“살아 계실 때 고추장, 된장이 떨어지면 보내 달라고 저를 귀찮게 했어요. 다른 혈육이 없으니 저한테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하신 거죠.”

 

그러던 지난 1월 말 어느 아침에 ㄴ 님으로부터 “머리가 아프고 구역질이 심하다”며 자신을 병원에 입원 좀 시켜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걱정이 된 조카는 일단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되니 근처 병원에 먼저 가 계시도록 당부하고, 서둘러 병원에 도착해보니 ㄴ 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급하게 임대아파트로 갔지만 정확한 주소를 몰라 관리사무소로 가서 집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고, 급박한 상황을 설명하며 사정이야기를 한 끝에 관리사무소로부터 “ㄴ 님의 현관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조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병원으로 이동을 하다 느낌이 안 좋아 경찰에 신고를 했고, 출동한 경찰이 문을 뜯고 들어가 방안에 쓰러져 있는 ㄴ 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진 지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ㄴ 님은 병원으로 갈 수 있었지만 골든타임은 이미 놓친 상황이었고, 끝내 일주일 만에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5촌 조카는 법률상의 연고자가 아니라 장례도 치르지 못했고, 배다른 형제자매가 시신인수를 거부하고서야 ㄴ 님은 무연고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외롭게, 불쌍하게 살다 돌아가셨어요. 장례도 못 치르나 했는데, 그나마 공영장례로 보내드릴 수 있어 감사하네요.” 제때 치료도 못 하고 이모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조카는 장례 내내 마음을 억누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참석한 유족. 사진 나눔과나눔

그를 향한 시선, 미묘한 온도 차

 

2월 중순 ㄷ 님의 무연고 장례에는 여러 명의 참석자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어딘가 모를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ㄷ 님은 지난해 말 서울시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 사망 당시 83세였고, 폐암 1기로 수술만 하면 1주일 만에 퇴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28일간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습니다.

 

수술 동의를 한 사람은 ㄷ 님과 사실혼 관계의 여성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병원 측은 연고자를 찾아 의식이 없고 위독한 상황이 되어 사망 직전 고인의 시신인수를 준비할 것을 통보했습니다. 40년간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소식을 돌아가시기 직전에 전해 들은 아들은 기가 막혔습니다.

 

ㄷ 님은 젊었을 때 직업군인으로 생활을 하다 여자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문제는 끊이지 않았고,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반항심을 표출하기에 이르렀을 때 ㄷ 님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40년이 흘렀고, 사망 직전 연락을 받고 병원비와 함께 시신인수 통보를 받은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시신인수를 거부했습니다.

 

아들과 함께 장례에 참석한 두 딸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장례라도 오는 게 그래도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참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법적인 가족인 자녀들 뒤로 ㄷ 님과 마지막 삶을 함께했던 사실혼 관계의 여성분과 생전에 친하게 지낸 친구분이 장례에 참석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토로하는 자녀들과는 달리 두 분은 장례 내내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던 ㄷ 님은 사실혼 관계의 여성분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자신을 무연고로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생을 함께했던 아내와 친구에게 ㄷ 님은 소중한 사람이었고, 헤어짐은 너무나 큰 아픔이었습니다. 화장이 끝나고 위패를 든 아들과 유골함을 든 딸의 뒤를 따라가는 이들의 손엔 국화꽃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산골(분골을 뿌림)을 진행하는 동안 그들은 아픈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단절이 오래되어 애증의 마음을 털어낸 자녀들과 삶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이들 사이엔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벽이 서 있는 듯했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 법적 가족과 오열하는 삶의 동반자들의 상반된 모습이 잊히지 않는 장례였습니다.


떠나는 이가 남긴 감사인사

 

2월 중순 장례를 치른 무연고 사망자 ㄹ 님의 마지막 주소는 동주민센터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황이었고, 생존했던 마지막 6개월 동안은 서울의 한 모텔을 드문드문 이용했습니다. ㄹ 님의 사망일은 2019년 12월 24일이었습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가 있어야 할 크리스마스이브에 누군가는 세상을 떠날 결심을 하고 서울의 한 모텔에서 스스로 숨줄을 놓았습니다. 사망 장소에서는 두 장의 유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모텔 주인에게 전하는 내용이 적혔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지내온 시간이 6개월이 다가옵니다. 마지막으로 숙박비와 어렵다 하니 금전도 차용해 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중략) 사모님, 너무 죄송합니다. 영업에 큰 지장을 주게 되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유서에는 지인에게 전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입은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이렇게 먼저 갑니다. (중략) 마지막으로 형님 얼굴 보니 좋았습니다.” ㄹ 님은 그날 유서에 적힌 지인과 마지막 식사를 했습니다.

 

60대 초반 스스로 생을 정리한 한 무연고 사망자가 남긴 유서엔 생전에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이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그 은혜에 부응하지 못하고 다른 선택을 하는 미안함이 적혔습니다.

 

유서에 언급했던 지인에게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안내를 했지만 끝내 ㄹ 님의 장례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고인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전해졌는지 알 수 없기에 장례 내내 안타까움이 더했습니다.

 

결연장례 어르신과 생전에 함께한 나눔과 나눔 활동가들. 사진 나눔과나눔
 

결연장례 어르신 결국 무연고 사망자로

 

나눔과나눔은 지난 2014년 서울시 종로구에 홀로 사시는 10여 분들과 결연장례협약을 맺었습니다. 돌아가시면 장례를 치러드리기로 약속하고 1년에 5회 이상 방문하여 인사를 나누며 돈독한 관계를 이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웃으며 나누는 대화도 짧았지만 해가 갈수록 친밀도가 높아져 방문 예정일을 알려드리면 전날 아침부터 “언제 오냐?”는 전화가 올 정도였습니다. 한 여성 어르신은 예정된 방문시간이 끝날 즈음에는 “이렇게 가버리면 또 언제 보냐?”며 아쉬움에 이별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나눔과나눔은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의 건강상태가 항상 걱정이었고, 작년에는 방문한 지 얼마 안 지난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두 달이 지나서야 방문연락을 드리던 차에 알게 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다행히 단절되었다가 최근 다시 관계를 회복한 따님이 어르신의 장례를 치러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한시름 놓았지만, 나눔과나눔이 연고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망소식조차 못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항상 불안요소였습니다.

 

그러던 지난 2월 중순 서울시의 한 지자체로부터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전 요청 공문을 받았고, 나눔과나눔은 두 눈을 의심했습니다. 사망자의 이름이 익숙했고, 확인 결과 결연장례 대상 어르신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에겐 아들이 있었지만 오랜 단절로 인해 관계 회복을 하지 못하고 시신인수를 거부하여 무연고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장례를 약속했던 나눔과나눔은 무연고자가 된 어르신의 소식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면서 알게 된 사실은 더욱더 아팠습니다. 어르신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며느리는 1월 말 돌아가시기 전 공영장례상담을 맡고 있는 나눔과나눔에 전화로 장례상담을 받았지만 병원비를 해결하지 못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공영장례를 통해 장례를 치르기 힘든 분들의 마지막을 제도적으로 마련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제도를 통해 무연고자를 양산하는 데 일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아직 생존해 계신 결연장례 어르신의 장례를 나눔과나눔이 실질적으로 치르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무연고가 아닌 가족과 지인이 함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생전에 여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주시며 뿌듯해하셨던 어르신의 미소가 생각이 납니다. 언제 오냐며 하루에도 몇 차례나 전화로 귀찮게 하셨던 독촉이 생각나 장례가 끝난 이후에도 그립고 안타까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요즘입니다.

 

눈 내린 서울시립승화원. 사진 나눔과나눔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 2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박형수, 김태용, 윤봉이, 이상설, 주화용, 최춘하, 이정복, 이평일, 서석목, 박준호, 김영무, 홍정표, 유윤범, 이성국, 이진모, 한영도, 김덕희, 김예호, 남건혁, 염종복, 김동섭, 김병선, 안재현, 김광필, 김창성, 박옥자

 
- 2월 무연고 사망자

 

박영옥, 안형주, 한동희, 남영식, 강성우, 박훈, 김철중, 박인수, 신승원, 황영옥, 유순식, 이재환, 김성우, 안성원, 김언용, 이영호, 이강수, 김정희, 김기환, 이규호, 지상현, 김득수, 이순철, 염태두, 양군열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쉰한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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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활동가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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