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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기저질환자의 죽음’이 은폐하는 현실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등록일 [ 2020년03월31일 16시58분 ]

젖은 듯한 하얀 종이 위에 여러 색이 어두운 느낌으로 섞여 있는 짙은 손바닥 자국이 4개 찍혀 있다. 나비의 날개처럼 양 손바닥을 펼친 모습이다. 사진제공 안희제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 확진자 중 사망자 발생을 매일 확인하며 그들이 기저질환을 갖고 있었는지 기록했다. 완치자 중에서도 기저질환자의 수를 셌다. 코로나-19 사망자 중 약 98%는 기저질환자다. 수천 명의 완치자 중 기저질환자의 수는 따로 통계도 찾을 수 없었으며, 그 특수한 사례를 열심히 찾아 헤맨 결과 3명의 생존자를 발견했을 뿐이다. 첫 사망자가 나온 2월 27일부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30일까지, 매일 평균 4~5명의 기저질환자가 죽었다. 그래서 나는 작금의 사태를 ‘코로나-19 참사’라고 부른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사망자 통계 중 기저질환 부분. 기저질환에는 순환기계 질환, 내분비계 및 대사성 질환, 정신질환, 호흡기계 질환, 비뇨·생식기계 질환, 악성신생물(암), 신경계 질환 등, 소화기계 질환, 혈액 및 조혈계 질환이 있으며, 순환기계 질환에는 심근경생, 뇌경색, 부정맥, 고혈압 등, 내분비계 및 대사성 질환에는 당뇨병, 갑산성기능저하증 등, 정신질환에는 치매, 조현병 등, 호흡기계 질환에는 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폐렴 등이 해당한다고 적혀 있다.
 

사망자 중 사실상 전원이 기저질환자임에도, 질병관리본부에 기저질환에 관하여 따로 안내하는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기저질환자는 치명률이 높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사망자 통계 중 하나의 변수로 기저질환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죽기 쉬우니 조심하라는 뜻일까. 기저질환의 목록은 나와 있지만, 각 기저질환이 코로나-19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각 질병이 어떤 원리로 환자를 취약하게 만드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저질환에는 정신질환과 소화기계 질환도 포함되어 있는데, 정신질환이 곧 면역력 약화나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신질환자들의 면역력 저하는 반인권적 폐쇄병동 때문이다. 소화기계 질환도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단어부터 돌아보자. 도대체 ‘기저질환’은 무슨 의미인가? 기저질환은 지병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지병은 낫지 않는 병, 난치병, 만성질환이다. 그런데 모든 만성질환이 몸을 바이러스에 취약해지게 하거나 면역반응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즉, 어떤 질병이 ‘코로나-19의 기저질환’이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둘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는 있어야 한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바이러스에 취약해지는 질병이라거나, 과도한 면역반응을 일으키므로 코로나-19의 합병증이 발생하기 쉬운 질병이라거나. 그러나 지금 ‘기저질환’은 이러한 문제의식 없이 코로나-19 감염 이전에 갖고 있던 모든 질병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한편으로 이는 ‘기저질환’이라는 표현 자체에 내재한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를 개인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관리·자기경영 시대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핵심은 건강이다. 건강관리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며, 따라서 질병에 걸리는 일, 아픈 일은 개인의 잘못이 된다. 우리는 자기관리에 실패한 게으르고 나약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건강’에 집착한다. 잠시라도 건강하지 않으면,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지금의 국가는 국민이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건강해야 노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낫지 않는 병을 가진 사람은 영영 아픈 사람, 나을 수 없으니 죽을 사람으로 여긴다. 이처럼 건강만이 지고의 가치인 ‘건강 중심주의’ 사회에서 환자는 낫거나, 죽어야 한다. 기저질환자를 방치한 것은 기저질환으로 분류된 질병들이 난치 질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음이나 감염의 원인을 기저질환, 즉 질병으로 축소하는 것은 명백히 건강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보건당국은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각별히 조심”하라고 하고, 언론에서는 “기저질환이 없다면” “평소에 건강하다면”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참사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누군가가 진단명 하나 때문에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여겨지는 장면이었다. 아픈 채로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나는 아마 앞으로도 건강하지 않을 것이다. 난치병 환자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이 고민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많은 죽음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영어 표현을 보면, 기저질환은 ‘underlying condition’이다. 여기서 ‘condition’이 난치 만성질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난치라는 경험은 의료적 관점의 ‘질환’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을 포함하기에 ‘질환(disease)’이 아닌 ‘상태(condition)’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즉, ‘기저질환’이 아닌 ‘기저상태’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CDC(질병통제예방센터)의 코로나-19 관련 안내에는 특정 질병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면역력이 약화된 사람들과 임신부에 대한 안내가 포함되어 있다.

 

어느 환우는 정신질환이 기저질환에 포함됨으로써, 기저질환자는 어차피 죽는다는 잘못된 전제를 활용하여 정신장애인 폐쇄병동의 구조적 문제도 은폐하는 이중의 효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나 또한 이에 동의한다. 기저질환을 기저상태로 바꾸어 부름으로써 우리는 감염과 몸 사이의 관계, 나아가 필요한 지원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아픈 사람들이 어차피 죽을 사람이 아닌,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임을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과학적이고, 참사를 개인화하며, 구조를 감추는 ‘기저질환’이라는 단어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총선이 다가와서인지는 몰라도, 코로나-19 참사와 방역의 논의는 너무도 자주 공과(功過, 공로와 과오) 판단으로 수렴된다. 한국의 방역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기사를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방역 능력을 의심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방역은 어떤 토대 위에 있는가? 의료 인프라의 부족과 감염병 대책의 부재, 위험군에 어떠한 공식적 안내도 없는 세상은 무엇을 지켰는가? 매일 ‘기저질환자’가 죽는다. 의료진과 공무원들은 감염되고 지쳐 간다. 건물을 지을 때 방진 설계를 해야 하는 것처럼, 의료 인프라의 구성도 가장 힘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권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는다. ‘K-방역’에 대한 감탄과 비난 사이에서 ‘어차피 죽을 사람’들은 그렇게 방치되고 있다.

 

오직 건강만을 수호하는 세상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아픈 사람이 늘어나고, 바이러스가 더 자주 발생할 세상은 건강이 아닌 난치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낫지 않는 아픈 사람들이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만 모두가 생존할 수 있다. 우리는 건강한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제물이 아니다. 우리는 치료되지 않는다. 건강의 대안은 난치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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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dheejeh@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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