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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총체적 기관’이 만드는 세계
『수용소』, 어빙 고프먼, 심보선 옮김
[연재] 노들장애학궁리소 ‘마이너의 서재’
등록일 [ 2020년04월03일 16시13분 ]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장애인운동단체의 진지인 ‘대항로’에 있으며, 장애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궁리’를 통해 장애를 규정하는 근거에 대해 바닥까지 따져 묻고, 장애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온갖 삶의 형식을 부수어나갈 운동의 지혜와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강좌, 세미나, 차담회 형태로 해 오던 궁리 외 또 다른 방식을 궁리하다가 연구자들이 매달 돌아가며 장애와 관련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상성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

 

어빙 고프먼의 책 『수용소』는 1954년~57년 건강임상국립연구센터와 1955년~56년 워싱턴 D.C에 위치한 성 엘리자베스 병원에서의 참여관찰을 바탕으로 쓰였다. 고프먼은 책에서 수용소라는 말보다 ‘총체적 기관’이란 개념을 사용한다. 총체적 기관이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수의 개인이 상당 기간 동안 바깥 사회와 단절된 채 거주하고 일을 하는 장소”를 말한다. 교도소, 정신병원, 그 밖의 격리거주시설이 포함된다. 고프먼이 기관 명칭을 각각 부르지 않고 총체적 기관이라고 묶어서 부르려 한 것에는 이들에게서 공통점을 모아 보이려는 의도가 담겼다.

 

고프먼은 총체적 기관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생활의 모든 측면, 즉 잠자고, 활동하고, 일하는 모든 것들이 동일한 장소 안에서 행해진다. 둘째, 시설 내의 구성원들이 모두 동일한 처우를 받고 같은 일을 함께해야 한다. 셋째, 일상 활동의 모든 국면이 계획에 따라 명시적 규칙과 관리자 집단에 의해 규율된다. 넷째, 요구되는 행위들은 결국 그 기관의 공식적 목표들을 수행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총체적 기관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바깥과 안, 안과 바깥을 가르는 성격에 있다. 그것은 여기와 거기를, 정상과 비정상을,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공간이다. 고프먼은 총체적 기관을 볼 때 그곳에 교정 이외의 것이, 거주 이외의 것이, 치료 이외의 것이 붙는 것에 주목했다. 그것은 총체적 기관 자체가 만들어내는 한 자아에 대한 소외와 사회적 격리와 추방에 관한 물음이었다.

 

『수용소』, 어빙 고프먼, 심보선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8.
 

- 자아를 박탈하는 총체적 기관

 

1장에서 고프먼은 사람들이 기관에 입소할 때 그들의 자아가 모욕받는 과정들을 기록한다. 신입 거주자를 운영상 다스릴 수 있는 사물로 규격화하는 과정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수색, 수감번호 할당, 강제 이발, 소유물을 압류하고 동일한 물건들로 재배급, 외모 유지에 필요한 물품 압수가 그렇다. 그 밖에 강제적 존대, 반말 사용, 표식 달기, 개인정보 수집·기록, 소유물 목록화, 집단 취침, 개방 화장실, 강제적 상호접촉, 편지 검열, 구타 충격요법 등 신체의 온전함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 노출함으로써 자아 박탈과 모욕이 일어난다. 이러한 자아 모욕은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다수의 사람의 일상을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로 정당화된다. 그 정당화의 근거에는 위생, 생활에 대한 책임(강제 급식 등), 보안 등이 포함된다.

 

총체적 기관에서 개인 활동에 대한 시간적 분할은 직원의 규제와 판단에 예속되며 거주자의 생활은 항상 제재당한다. 세부 규정 하나하나는 개인이 욕구와 목표들 사이에 효율적으로 균형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며, 그럼으로써 그의 행위 과정 전체가 제재 아래 놓이도록 한다. 행위의 자율성 자체가 침해당하는 것이다. 성인으로서의 집행 능력과 상징들을 보유할 수 없을 때 거주자들은 시민적 자아가 박탈되었음을 느낀다.

 

“그가 시설에 들어오자마자 사회적 질서가 제공했던 지지력은 박탈당한다. 그는 사회적 역할을 박탈당하게 된다.” (28쪽)  

 

입소자들을 기관 운영에 맞게 규격화하는 일들이나 생활에 대한 제재는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다. 특히 생활에 대한 제재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사는 사람들을 옥죄어 온 주된 요인 중 하나이다. 다음은 탈시설 자립생활 당사자들의 수기 중 몇 가지를 옮겨 적은 것이다. (『나 자립했다』, 서울시시설장애인자립생활지원네트워크, 2012 참고.)

 

“시설에 있으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못 먹고, 외출하는 것도 사전에 이야기를 해야만 나갈 수 있어요. 그런 게 너무 불편했어요. 시설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이야기지만 그곳은 자유가 없어요.”

 

“암튼 고등학교까지 다녔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는 건 다행이지.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힘들어지기 시작했어. 일상의 만족이란 것은 없었고 뭐든지 허락받아야 하고 안 되는 거 투성이고 함께 사는 거주인들과도 자꾸 마찰이 생기고.”

 

“9시만 되면 무조건 자야 하는 거. 가끔 늦게 자고 싶을 때도 있고, 밤늦게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도 있잖아. 그런데 9시만 되면 시설관리 때문에 불 끄고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이런 게 숨 막혀.”

 

탈시설 장애인 당사자들의 말들을 전해 듣다 보면 자신의 생활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간절함을 알 수 있다. 총체적 기관은 개인들의 생활을 총체적 관리 아래 두고, 권력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은 규율과 허가에 점점 익숙한 존재가 되어간다. 이때 한 개인은 점점 수동적인 삶을,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 총체적 기관이 낳은 세계

 

2장에서 고프먼은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정신장애인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일단 정신장애인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자신의 판단이나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자기에게 익숙한 자기 긍정, 만족거리, 보호 방책들을 박탈당한다. 자유로운 움직임 제약, 공동생활, 사람들 전체를 계층으로 나누는 포괄적 권위 아래 놓인다. 그러면서도 환자는 병동 안에 수용된 후 그가 직면하는 규제와 박탈이 전통이나 경제와 같은 맹목적 힘 때문이 아니라 치료를 위해 의도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를 위해 필요한 조치로 여겨야 한다.”(182쪽)  

 

때론 환자가 병원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삶을 실패한 삶으로 규정하거나 자기 자신을 부정해야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환자가 자신의 명석함에 대해 말할 때 다른 환자는 그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렇게 똑똑하면 여기에는 어쩌다 오셨나?” 이처럼 공간이 가져다주는 부정적 인식은 자기 부정뿐 아니라 타인 부정으로도 이어져 병동 내에 다른 환자들 간에 연대를 가로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장을 읽으며 문득 장애인 거주시설 조사를 나갔을 때 만난 거주자분들의 반응이 떠올랐다. 내가 “시설에서 나가고 싶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어떤 분들은 자기 신체의 한 부분을 가리켜 “여기가 이런데”라고 답했다. 나는 그 반응이 다름 아닌 시설이 키워낸 공포심의 일종이라고 보았다. (물론 상황마다 다르고 지역사회의 준비가 큰 영향을 주지만) 시설 밖에서 그보다 더한 장애를 가진 장애인들도 마찬가지 장애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만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데 부적합한 사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독 거주시설의 장애인들에게서 나는 그 자신의 장애가 자신에게 ‘불가능의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한 말들을 많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탈시설 장애인은 글쓰기 시간에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시설에서 살아갈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은 시설에서 살아야 한다’라고 생각한다고 여겼어. 그런데 내가 시설에서 나오고 활동보조인하고 함께 지내면서 생각이 달라졌어. 이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활동을 하면서 지내냐’고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이제 점점 사람들이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구나’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고 느껴.” 자기 긍정과 타인 긍정은 함께-삶의 노력 속에서 온다고 믿는다. 자기 부정, 함께-삶의 불가능성을 키우는 공간은 다름 아닌 ‘총체적 기관’이다.
  

사진 : 픽사베이

- 총체적 기관으로서의 정신병원

 

4장에서는 서비스 모델이 의료모델과 정신병원에 적용되었을 때의 경우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 장을 ‘총체적 기관은 다름과 차이에 대한 앎이 아니라 통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라고 읽었다.

 

고프먼은 먼저 서비스업에 대해 말한다. 서비스업에서 고객은 자기 결정권을 지닌 존재이다. 고객이 서비스를 받을지 안 받을지에 대한 판단은 그에게 달려있다. 고객에 대한 적절한 존중이 필요하다. 한편 고객이 소유한 대상물은 의례적 관점이 아니라 기술적 관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대상물이 맡겨지면 물건으로 다루어져 기술적 수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객과 소유물은 분리되는 동시에 적절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 서비스 모델의 성공은 둘 사이의 적절한 분리와 취급에 달려있다.(377쪽) 이러한 서비스 모델을 의료 분야로 가져오면 문제가 발생한다. 고객의 신체란 서비스 제공자에게 관리를 맡기고 다른 일을 보러 갈 수 있는 종류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 서비스 모델은 그 해결책으로 고객의 신체에 비인격 치료를 시행한다. 즉, 서비스 제공자는 예의를 갖춰 환자를 맞이한다. 그리고 난 후에는 환자를 마치 사회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누군가 놓고 간 소유물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고프먼은 치료의 대상자가 통치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고프먼은 정신병원의 규율, 품행을 의학적 용어로 재해석하여 그들의 생활에 옳고 그름을 제시할 수 있는 의사들의 권한, 그들을 치료의 대상으로 두길 바라는 사회적인 합의, 보호자를 대동하여 의사가 공동으로 당사자를 문제시하는 상황들이 의료적 치료 이상의 통치와 피통치 관계를 맺게 하는 원인들이라고 말한다. 

 

“입소한 이후 수용 기관들은 재소자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정의하며 이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재소자가 무엇을 가질 수 있고 무엇을 박탈당할지에 대한 운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공식적으로 정신과 의사가 된다. 정신과 의사는 공무원이나 군인이 그런 것처럼 단일한 관료적 규칙에 따라 자신의 권리를 수행할 필요도 없다. 정신의학적 설명만 주어진다면,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일과를, 조직하는 생활 질서의 거의 전부를 자신의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 (409쪽)    

 

정신병의 치료에 있어 총체적 기관(정신병원)은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나 공감 없이 당사자들을 단순히 통제관할의 요소로 만들기 좋은 환경이다. 총체적 기관으로의 격리는 다름이나 차이에 관한 이해를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더욱 쉽게 낙인을 만들기도 하고 당사자에게는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한다.

 

현재 정신장애에 접근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핀란드의 오픈 다이얼로그는 정신장애인의 집에서 당사자와 가족, 의사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탈리아에서는 정신병원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센터를 중심으로 정신장애인의 치료를 돕고 있다. 모두 격리 치료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을 격리하는 병원 치료가 증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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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규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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