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06월04일thu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획연재 > 질병과 함께 춤을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나는 장애와 질병을 숨기고 싶었다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4월08일 15시59분 ]

“다리 병신~ 어이, 다리 병신!”

 

초등학교 때 남자아이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내가 걷는 모습을 흉내 낸다고 절룩거리며 걷기도 했다. 나는 따돌림당하는 아이였다. 아무도 나에게 와서 말을 걸지 않았고 나도 말을 걸 수 있는 아이가 없었다.

 

어느 날 산수 시간에 숙제 검사를 하는데 산수책이 없어졌다. 나는 손바닥을 맞았다. 산수책은 나를 항상 놀리던 남자 짝이 숨겼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은 책가방이 통째로 없어졌다. 나 혼자 힘으로는 찾을 수 없어 담임에게 얘기했다. 담임이 학교 뒷산에 버려져 있는 내 책가방을 발견했다. 반 남자아이들의 소행이었다. 슬픔 같은 것은 별로 느끼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유치원을 보내지 않았고 나의 사회생활 첫 경험은 학교였다. 가족 외에 다른 존재를 만나자마자 외면받고 사는 삶을 나는 그냥 인정해버렸던 듯싶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왔다. 내 장애 얘기가 나오자 엄마는 나에게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학년이 올라가 다른 담임선생님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장애가 소아마비가 다가 아니라 무엇인가 더 있다고 느꼈지만 그에 대해 더는 캐묻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말이 없었다. 그래도 2학년 때부터는 친구를 한 명 사귀어서 그나마 놀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그 친구가 4학년 때 갑자기 절교를 선언했다. 다른 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 친구랑 나랑 왜 동시에 놀 수는 없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런 이유를 물을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매일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울었다. 다시 같이 놀자고 매달렸다. 하지만 친구는 완고했다. 나는 놀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1년 뒤 절교를 선언했던 친구가 돌아오자 뛸 듯이 기뻐했다. 초등 6년은 그렇게 하나 있는 그 친구가 소중했던 시기였다.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진행한 연극 워크숍에서 발표하는 나의 모습. 나의 심정을 담은 종이에는 ‘내 질병을 사람들에게 밝힐 수 없어 창피하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밝은 척 연기하며 살았고 힘든 부분을 애써 숨기며 살아왔다. 사진 혜영

 

- 왕따의 그늘을 벗어나 과한 쾌활함으로 나를 포장하다

 

초등 6년이 지나고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보다 성격도 밝아지고 친구도 생겼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무의식적으로 내가 밝고 명랑해야 사람들이 장애인인 나에게 다가오기 쉬우리라 생각한 것 같다. 겉으로는 친구들과 매우 잘 지내고 명랑했으나 사실 속으로는 주눅 들고 전전긍긍한 상태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내 신발끈이 풀렸는데 친구들에게 그걸 기다리게 하는 것이 불편해서 신발끈이 풀려도 그냥 걸어가던 장면이었다. 다른 친구가 신발끈이 풀렸을 때 기다리는 건 너무 당연했으나 내가 남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란 어려웠다.

 

열등감도 여전했다. 친구를 우연히 만나 인사하고 지나가면 속으로 ‘쟤가 옆에 있는 애에게 내 다리 얘기를 하며 흉을 보겠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 자신을 비하했다. 낮의 명랑함은 그에 비례해 밤의 우울함으로 나타났다. 자살도 종종 생각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길래 선풍기를 틀고 자보려고 하다가 무서워서 끄고 자곤 했다. ‘더 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게 되네요’라며 밤에 울면서 유서를 몇 차례 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자 나는 더 이상 자살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몇몇 친한 친구를 사귀고 그들하고 친한 관계를 형성하는 또래 소녀들과 달리 한 반의 모든 친구와 다 친해졌다. 쉬는 시간엔 1분단에서 4분단까지 넘어 다니면서 낄낄댔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하다. 친구 중 한 명이 네가 너무 좋다고 편지를 보내왔는데 속으로 ‘나 같은 사람을 어찌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20대가 되었을 때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모임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내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와, 사람들이 내 말을 이렇게 경청하다니!’ 내가 하나의 인간으로 온전히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내 말을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경이롭다니. 나는 대체 어떤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때에 이어 사람들과 광범위하게 친해지려 노력했다.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유추해보면 나는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기 위해 소위 자기 비하 개그를 많이 시도했다. 그럼 사람들은 깔깔 웃었고 쉽게 나에게 허물없이 대했다. 모임에서 사람들이 나를 구박하는 분위기를 주도했고 나도 그걸 유머로 소비했다. 어느 지점부터는 사람들이 나를 그만 놀리거나 구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주변에 친구가 많은 사람이었고 낯선 사람과도 금세 친해지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나의 친화력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이제 한계가 느껴진다. 친구들이 나를 구박하거나 놀리는 형태로 관계가 이어지는 게 힘들다. 하지만 그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한다. 가끔 기분이 나쁠 때면 내가 예민한 거라고 치부해버린다. 얼마 전 상담을 갔을 때 상담선생님이 심리검사 결과 내가 사람들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나왔다고 얘기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내가 사람들과 얼마나 빨리 친해지는데!’라며 코웃음을 쳤다. 선생님은 소통의 어려움이라는 것은 낯을 가리는 것이 아닌 사람들과의 소통에 어떤 두려움을 느끼는 부분이라고 했다. 나는 뭔가 정곡을 찔린 기분이 들었다. 친구가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해도 그러지 말아 달라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내가 아픈 얘기를 계속하면 친구가 나를 싫어할까 봐 계속 숨기는 요즘의 나날들이 생각났다. 

 

- 장애를 숨기고 살았듯이 질병을 숨기고 살기 시작하다

 

“자기 치유를 위한 여행 신청하고 싶습니다.”
“네, 현재 신청 가능합니다.”
“근데… 잠은 어떻게 자나요? 제가 수면장애가 있어서 그러는데 다인실을 쓴다면 몇 명이 함께 자나요?”
“4명 정도가 함께 주무시게 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나는 수면장애가 있다. 잠들기 힘들어하거나 자면서 중간중간 자꾸 깨는 낮은 수면의 질을 가진 불면증이 있다. 문제는 낮은 수면의 질 때문인지 잠들려고 할 때 소리가 조금이라도 나면 잠을 못 자고 자는 중간에도 무슨 소리가 난다면 깨서 잠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심해져서 예전에는 친구와 같이 잘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옆에서 누가 뒤척거린다면 그 뒤척이는 소리에도 잠에서 깬다. ‘소리 과민증 혹은 청각과민증’. 언론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이 증상을 이렇게 불렀다.

 

“와,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네. 우리 집 여기서 가까운데 우리 집 가서 다 같이 자고 가.”
“그래, 현진아. 우리 쟤네 집 가서 좀더 놀고 자다 내일 가자.”
“아, 나 내일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나가봐야 해. 같이 자는 건 안 되겠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질병을 친구들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걸 창피해하고 숨기기 시작했다. 2년 전 잠깐 상담을 받았을 때 상담선생님은 소리에 과민한 것은 질병의 한 증상일 뿐이라고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나도 생각을 달리하여 이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다잡곤 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사실 그대로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친구들은 내가 불면증이 있고 소리에 취약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이렇게 심할지 예상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심함을 나는 일일이 친구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렵고 싫었다.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스스로 나를 검열하게 됐다. 남들이랑 지내기 힘든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낙인 짓게 되니 어떻게든 숨기고 싶었다. 한 예로 어느 공간을 다 같이 쓰게 될 때 친구들은 내가 불면증이 있고 소리에 민감하니 방을 혼자 쓰면 괜찮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방을 혼자 쓰더라도 내가 잠들 때 다 같이 잠들지 않고 옆 방에서 얘기를 한다든가, 내가 자는 방문 앞을 오가는 사람이 있으면 잠을 잘 수 없다는 사실까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그 정도’라는 걸 밝힐 수 없었다.

 

내가 자야 하니 너네는 그만 놀고 그만 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수면장애 외에 같이 잠들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애가 있었는데 그것은 ‘야간 빈뇨’였다. 잠들기 어렵다가 간신히 잠든 후에 자주 깨는 이유는 화장실을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양방에서는 과민성방광이라 명명했고 한방에서는 심장에 열이 차서 그 열을 내리기 위해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것이라 설명했다. 병의 원인이야 어찌 됐든 자다가 중간에 깨서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같이 자는 사람은 나처럼 소리에 민감하지 않다고 해도 나는 너무나 상대방이 신경 쓰였다.

 

몇몇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제 나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얘기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면을 숨기고 항상 밝은 척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의 질병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려고 한다. 사진 혜영

 

‘변기 물을 내리면 저 사람이 자다가 깰 텐데 괜찮을까?’를 걱정하느라 화장실 다녀와서도 바로 잠들지를 못했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얘기하기 좋아하는 나지만 ‘밤에 다 같이 놀자’라는 얘기가 나올 때면 나는 내 질병을 그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밤에 불안증을 크게 느껴 혼자 살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처럼 하우스메이트를 구해 살 수도 없었다. 한때는 옥탑방이 딸린 집을 구해서 잠을 분리해서 잔다면 이 불안증을 해소하고 누군가랑 같이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집은 거의 없었다. 있다고 해도 외부소음이 발생할 확률이 높은 집이 대부분이어서 포기했다.

 

누군가가 “불안해서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고? 너랑 같이 살면 숨 막힐 거 같아. 항상 조심해야 하잖아”라고 말했을 때 내가 24시간 모든 소리에 민감한 것은 아니라고, 내가 자는 시간에만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자는 시간을 맞춘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랑 같이 살기를 누구보다 소원하지만 나는 누군가랑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천형의 벌을 받았다고까지 여기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더 멀리하기 전에 나는 내 질병을 더더욱 숨기고 살게 되었다.


- 조금씩 나의 질병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장애로 인해 소위 왕따당하고 살던 시절이 무색할 만큼 나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 방법이 잘못됐든 아니든 나는 낯선 사람에게 항상 먼저 말을 걸고 나의 장애를 드러내고 나의 치부를 밝히면서 사람들이 내게 갖는 심리적 허들을 낮추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덕분에 나는 ‘편안한 사람’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정작 나는 친구들이 나를 구박해도 ‘더 이상 이제 그런 얘기는 듣기 싫다’고 말하지 못하며 특히 나의 질병을 매우 창피해하고 숨긴다.

 

내가 ‘밝은 장애인’이 되어야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고 생각했듯 내가 어디서나 잘 자고 건강해야 사람들이 날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를 모두가 좋아해 줘야 한다는 그 생각이 오히려 나의 삶을 좁히고 있다고 자각하면서도 나의 상태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친구가 날 구박하는 말을 하면 그런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표현하고, 내가 몸이 아파서 친구와의 약속을 깨야 하면 다른 핑계를 대지 말고 아프다고 솔직히 말하는 그런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내 감정과 내 몸에 좀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지금 조금씩 그 연습을 해보는 중이다. 친구들에게 하나둘씩 표현하고 있다. 내가 중심에 서야 친구들과의 관계도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글쓴이 소개
박현진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올려 0 내려 0
박현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내 난소를 위해 기도하지 마세요
‘하고 싶은 일’ 아닌 ‘할 수 있는 일’ 찾아 헤매는 삶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다는 것
‘정상 신체’에 맞춰진 의료 기기, 거부당하는 ‘다른 몸’
매일 나는 새벽 밤의 하늘을 본다
나와 어머니의 일상
질병 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졌다
‘노동 할 수 없는 몸’, 노동자라는 ‘성취 지위’를 갈망하다
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프린트하기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 욕설과 혐오를 담은 댓글, 광고 등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으니 댓글 작성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노동 할 수 없는 몸’, 노동자라는 ‘성취 지위’를 갈망하다 (2020-04-15 18:59:28)
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 (2020-04-01 15:40:00)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부모님과는 따로 사는데… 부모님 수입이 왜 내 수입...
누구에게나 가족이 따뜻한 공간은 아닙니다. 빈곤...

[서평] 아픈 사람들의 독서 코뮨주의 - 어...
‘양심의 자유’ 이유로 임신중지시술 ...
‘이혼한 남편’이 아이의 부양의무자…...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