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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았다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3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20년04월10일 11시30분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차단시키고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가 차단된 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지고,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으로 각인되어 조금의 일탈도 용서치 않는 삭막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의 유족대기실이 따로 만들어졌고, 일반인들의 화장이 끝난 후인 오후 4시 이후에야 화장 시간이 허용되고, 지정된 화로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화장로 앞이 아닌 컨테이너 가건물 안에 설치된 CCTV로 화장 상황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참혹한 시간은 끝날 줄 모르고, 서울시 공영장례는 3월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장례일정이 잡혔고, 70명의 무연고 사망자의 마지막을 배웅했습니다.

 

20년 간 가족으로 지냈지만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무연고장례에 참석한 지인들이 서울시립승화원 유택동산에서 유골함 위에 꽃을 뿌리고 있다. 사진 나눔과나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3월 중순 무연고 사망자 ㄱ 님의 장례식에 많은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지자체에서 보내준 고인의 제적등본에는 연고자가 없었지만 ㄱ 님의 마지막 날엔 20년 넘게 함께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생전에 아들, 며느리에게 ㄱ 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살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어머니의 뜻에 따라 아들과 며느리는 ㄱ 님이 살고 있던 지방에 자주 왕래하며 생일과 명절 등을 챙기다 3개월 전 몸이 편찮아진 ㄱ 님을 서울로 모셔와 함께 살았습니다. 며느리는 ㄱ 님과 시장도 목욕탕도 함께 다녔고, 서로를 어머니로 며느리로 부르며 각별한 정을 나누던 중 지난 3월 중순 ㄱ 님은 요양센터에서 놀다 오신 다음 날 상태가 안 좋아져 응급실로 옮겨졌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ㄱ 님에게 연고자가 없었기에 가족들은 동주민센터에 장례에 관한 문의를 했고, 담당자는 긍정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여느 장례처럼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고, 상조회사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법적인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가 중단되었습니다. 가족들은 항의를 했지만 빈소를 나서야 했습니다. 장례비는 1천만 원가량이 나왔고, 가족들은 상조회사와 장례식장에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법적으로 연고자가 없으면 사망진단서를 발급할 수 없다는 사실뿐 아니라 장례에 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장례식장과 상조회사가 어떻게 무연고자의 빈소를 차리게 되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동주민센터의 담당자 역시 “(장례를) 할 수도 있다”라고 했지 “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은 없다며 말을 바꾸었습니다.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가족들은 청와대에 청원을 할지를 고민했다며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ㄱ 님의 유골함에 손을 얹은 가족들은 마지막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슬픔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3월 중 또 한 번의 안타까운 장례

 

무연고 사망자 ㄴ 님에겐 오랜 세월을 함께한 사실혼 관계의 부인이 있었고, 서류상의 가족이 아니었기에 장례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담당 지자체에 찾아가 장례일정을 물었고, 응대하던 직원의 말대로 무연고 공영장례 일정이 잡히기를 기다렸습니다.

 

ㄴ 님이 무연고자로 확정되고 공영장례 일정대로 장례가 진행되었고, 서울시립승화원에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최소한의 인원이 참석한 쓸쓸한 분위기로 고인을 배웅해야 했습니다. 장례가 끝나고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당일 장례를 치른 ㄴ 님의 사실혼 관계의 부인은 지자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장례가 언제 치러지는지 물었고, 이미 장례가 끝났다는 사실을 들은 아내는 망연자실했습니다.

 

사실은 이러했습니다. 장례 당일에도 여느 날처럼 남편의 장례일정을 문의한 아내는 그동안 자신을 응대했던 직원이 무연고장례 업무를 맡고 있던 담당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담당자는 ㄴ 님의 장례업무를 마무리한 후부터 코로나19 관계로 외부에 파견근무를 하느라 아내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랜 세월 정을 나누었던 남편의 마지막을 배웅하려 했던 아내의 절실한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장례 모두 법적인 연고자가 아니었기에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 못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고려인 이주노동자의 무연고장례에 참석해 유골함을 받아든 대사관 직원. 사진 나눔과나눔
 

무연고사망자가 된 고려인

 

3월 중순 서울의 한 지자체로부터 받은 무연고 사망자 장례의전 의뢰 공문에는 읽기 어려운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Ty… P…’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는 사망자의 국적은 카자흐스탄이었고, 본국에 거주하는 어머니가 장례를 치를 상황이 아니었기에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나눔과나눔은 대사관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 방식의 장례문화를 찾아보는 등 고민이 있었지만 날짜는 지났고, 장례 당일 대사관으로부터 긴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고인의 이름은 ‘소이… 표…’이며 고려인이라는 사실과 함께 대사관 직원이 장례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고인은 30대 후반의 체격이 건장한 남자로 한국에서 철강산업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사인은 간부전으로 아마도 한국에서 홀로 지내며 스스로 몸이 잘 챙기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대사관 직원은 생전의 고인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습니다.

 

장례 내내 직원은 장례과정을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이유를 묻자 고인의 어머니가 많이 슬퍼하여 아들의 마지막을 꼭 찍어달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대사관 직원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비행기가 3월 말에 있다.”라며 팬데믹 상황에서 언제 항공길이 다시 열릴지 모르기 때문에 유골함을 가져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의전업체와 나눔과나눔에서 받은 무연고 장례의전 의뢰 공문에는 이 사항이 적혀 있지 않아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확인절차를 거쳐 대사관 측은 공문으로 장례 당일 유골함을 받아 본국으로 가져갈 것을 지자체와 합의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고, 고인의 유골함은 대사관 직원이 가져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장례 영상을 실시간으로 접한 고인의 어머니는 많이 슬퍼하셨지만, 한국에서 공영장례로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감당할 만큼의 마지막 인사

 

무연고 사망자 ㄷ 님은 1944년생으로 서울시의 한 옥탑방에 사시다 지난 2월 중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습니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습니다. 직장동료들은 ㄷ 님이 아무런 연락 없이 하루를 결근하고 다음 날이 되어서도 출근하지 않자 이상한 생각이 들어 ㄷ 님의 집을 찾았습니다. 밖에서 옥탑방 안을 들여다보니 ㄷ 님이 쓰러져 있었고, 신고를 했지만 이미 사망한 후였습니다.

 

10년 가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친구들은 ㄷ 님이 무연고로 장례가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나 아무도 없다고 성의 없이 치러질지도 몰라 휴가를 내어 함께 참석했습니다. 공영장례에 대해 알지 못했고, ㄷ 님의 여동생을 장례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여동생은 오빠의 사망소식을 듣고 오랜 단절과 경제적 형편 때문에 시신인수를 포기했지만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먼 길을 올라왔습니다.

 

친구들은 ㄷ 님이 한겨울에도 반팔을 입을 정도로 건강한 사람이었다며 갑작스러운 죽음에 울분을 터트리고, 안타까운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곁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동생은 말을 아꼈지만, 오빠의 친구들이 장례 내내 보여주던 모습에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화장이 끝나고 산골이 진행되었습니다. 여동생과 친구들은 ㄷ 님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장례 과정이 모두 끝났지만 친구들은 한동안 유택동산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친구를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장례절차가 모두 끝나고 빈소를 정리하던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ㄷ 님의 전처였습니다. 전처는 혹시라도 ㄷ 님의 가족들과 마주치게 될까 먼발치에서 장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한때 사랑하고 정을 나누었던 남편이 사망 후 무연고자가 되어 장례를 치른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아무도 오지 않을 것만 같아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옮겨졌다는 전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떠나간 유택동산 앞에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나라도 와야겠다 싶었어요.” 떨리던 목소리가 아련히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에 참석한 사람들, 생전의 관계는 각각 달랐지만 그를 떠나보내는 마음들은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함께 그 시간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생전의 그를 생각하며 각자의 거리에서 감당할 만큼의 마지막 인사를 보낸 듯합니다.

 

무연고장례에 참석한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로까지 운구되고 있다. 사진 나눔과나눔
 

기억 속에서 지웠던 엄마의 이야기를 듣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시신을 인수하라는 지자체의 통보가 왔어요.” 20대 중반의 아들은 어렵게 입을 떼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12살에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존재, 15년이 지나는 동안 ‘엄마’라는 이름은 기억 속 어딘가에 굳이 불러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사망소식은 아들에게 ‘엄마’라는 존재의 소환이었습니다. 50대 초반에 사망한 ㄹ 님의 무연고장례에는 ㄹ 님을 돌보던 사회복지사들과 아들이 참석했습니다. 아들이 사회복지사에게 물었습니다. “엄마는 어떤 분이셨어요?”

 

ㄹ 님은 일본 국적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았습니다. 결혼 후 시댁과의 갈등이 심해 15년 전 이혼 후 아들과 딸은 만나지 못했고, 일본으로 함께 건너갔던 막내아이는 친정부모에게 맡겨두고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혼 후 ㄹ 님은 알코올중독으로 힘겨운 생활을 했고, 한 복지단체의 돌봄을 받으며 재활에 힘쓰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적극적인 분이셨고 뒤끝이 없으셨어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 최근에 공부를 시작했고, 수급비를 모아 일본에 있는 부모님께 보내기도 했어요.”

 

듣고 있던 아들은 아버지 역시 이혼 후 정신적 충격으로 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휴대폰을 꺼내어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수화를 배워 공연도 하셨어요.” 영상 속에는 지난해 12월 송년회에서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에 맞춰 수화를 하는 ㄹ 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많이 늙으셨네요.” 영상을 보던 아들의 첫마디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30대였던 엄마의 모습과는 다른 낯선 얼굴을 보며 아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무연고장례로 다시 소환된 엄마와의 ‘만남’, 영상 속에서 들리는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라는 가사는 마치 아들에게 전하는 엄마의 마지막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화장이 끝나고 아들과 사회복지사들은 유택동산에 ㄹ 님의 유골을 뿌렸습니다. 사회복지사들은 생전의 인연이 기억나는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와 동생에게는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신이 받은 충격을 아버지와 동생에게 전할 용기가 없었던 걸까요. 듣고 있던 나눔과나눔의 활동가는 아들에게 먼 훗날 유택동산으로 와 아버지와 동생에게 엄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건넸습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님을 아들 역시 세월이 지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영상 속 엄마의 이야기를 남아 있는 이들에게도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들 마음의 상처들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서울시립승화원에 핀 목련. 사진 나눔과나눔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 3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김창용, 고경숙, 강용식, 김영순, 고광준, 엄기석, 현용기, 서상봉, 박경미, 김정심, 송선희, 서대수, 유병국, 손복식, 최승부, 조광형, 정해육, 조명섭, 임종빈, 김수영, 박소정, 지부남, 김희철, 유수평, 김복초, 김정록, 마영수, 김남수, 김삼차, 이계령, 윤일주, 최영길, 윤동길, 이근택

 

- 3월 무연고 사망자

 

강현미, 황석성, 박인용, 이대국, 김선천, 최태경, 이용웅, 김형석, 박대성, 배남진, 장철표, 이종수, 명금자, 김훈도, 이경숙, 이도희, 황경하, 이경애, 김석주, 이용섭, 유용, 윤노희, 박창수, 이길복, 피희수, 심용석, 김운, 최상덕, 김형선, Tyo Petr, 이종일, 조병균, 곽금화, 유정형, 김영길, 김상교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칠십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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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구 활동가 nanum@goodnanum.or.kr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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