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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후,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졌다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4월22일 14시19분 ]

2012년 류머티즘 진단을 받고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내 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진단은 받았지만 정말로 류머티즘은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틴 적도 있었다. 내가 언젠가 지나가듯 한 그 말도 안 되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엄마의 발목을 잡았다. 엄마는 내 병의 완치를 위해 매일 아침 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아침에 버릇처럼 기지개를 켜다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친다는 것을, 발을 바닥에 디딜 때마다 뼈들이 으깨어지는 느낌이어서 발을 오므리고 걷는다는 것을, 문고리를 돌리는 일이 어려워져서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둔다는 것을, 변기 레버를 내릴 수 없는 아침은 변기 뚜껑을 열어두고 출근한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말도 안 되는 믿음은 포기한 지 오래라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내가 자살 시도를 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30킬로그램대까지 내려간 나의 체중을 복원시키기 위해 하루 종일 나를 식탁에 불러 앉혔다. 내가 또 자살 시도를 할까 봐 집에 있는 내내 나와 같은 방에서 잤다. 엄마에게 통증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자다 말고 일어나 손목을 부여잡고 신음을 죽이고 있는 나를 몇 번이나 발견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여러 차례 어째야 하는지를 내게 물었지만 나도 무엇을 어째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질병과 함께 춤을’ 모임에서 나의 몸의 말을 듣고 있는 사진. 나는 질병을 얻은 이후, 관계들에 지쳐있다. 사진 혜영

 

바닥에 앉거나 일어날 때 통증으로 쩔쩔매는 것을 부모님이 알아차릴까 봐 거실로 나가 있지 못했다. 발가락 통증으로 발가락을 오므리고 걷는 것을 보이지 않으려고 엄마가 잠들어 있거나 거실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 화장실에 갔다. 기억해보면, 나는 그때 가족들에게 내 통증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내가 나으리라 믿고 있는 엄마의 그 믿음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몸이 변하고, 감각이, 행동이 그리고 마침내 나의 시간과 공간이 변하고 있었음에도 나는 그것들을 엄마에게 온전히 말하지 못했다. 엄마는 스스로도 지탱하기가 버거운, 이렇게나 형편없는 나를 붙들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야윈 내 몸을 붙들고 자꾸 울었다. 삶에 있어 내가 전부이며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꼭 나을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우는 얼굴의 엄마에게 듣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의 자살 시도는 엄마에게 트라우마를 안겼다. 엄마는 매일같이 나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문자를 넣었고, 답을 깜빡 잊은 날엔 전화를 통해 엄마의 우는 목소리를 들었다.
 
비참해질 것 같아서 가족들뿐 아니라 통증과 질병에 대해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통증 때문에 현장에 갈 수 없노라는 나의 설명에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라고 그러던 한 선배의 말에도 금세 원망스러운 마음이 차오르곤 했다. 그때 나는 그 선배에게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줄 아느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처음 만난 이에게 질병을 털어놓았다가 몸 관리를 잘하지 그랬냐는 핀잔을 들었을 때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말을 삼켰다. 내가 걸레질을 할 수 없음을, 그리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어려움을, 바닥에 앉았다가 일어날 때 손목과 무릎의 통증 때문에 애를 먹는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나의 질병의 존재를 이야기해야 했을 때, 병명을 듣고서 소스라치던 사람들의 얼굴을 봤을 때, 혹은 연민으로 가득한 눈빛을 알아차렸을 때 나도 그들과 함께 놀랐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자 꼭 설명이 필요한 때에도 우물쭈물하게 되었다. 그런 순간마다 너무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통증을 한순간만이라도 느끼지 않고 살아봤으면 하는 바람과 그것이 불가능한 현실에 대한 자각, 류머티즘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달라졌던 애인의 눈빛과 태도, 그 관계 속에서 마치 짐짝이 되어버린 것 같았던 나의 몸, 그리고 병이 낫지 않으면 애인의 폭력이 나아지지 않을 것을 깨달았던 순간 느꼈던 절망을 낱낱이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대화는 그렇게 내게 ‘불가능’의 영역이 되어갔다.

 

몸과의 관계도 그랬다. 나는 몸을 원망하고 혐오하게 되었고 때때로 몸의 고통을 모른 척하거나 외면하면서 몸과 나를 분리시켰다. 몸의 어떤 신호에도 나는 그저 화를 내면서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급기야는 고통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없애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고 그것을 실행했다. 기억은 군데군데 지워졌지만, 나는 지금 살아있다. 나는 몸을 없애려고 했으면서, 몸에 어떠한 미안함도 느끼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살아남은 나는 몸과 오래 화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시간에서 자꾸만 멀어지고 있다. 나는 그 시간을 단지 잊는 것으로 멀어지고 싶지 않다. 나와 화해하고 나면, 그 시간이 그제야 정말 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몸은 질병뿐만 아니라, 질병으로 인해 일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정신적인 고통 때문에 점점 쇠약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고통을 없애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자살 시도를 했다. 사진 픽사베이

 

질병이 찾아오고 나서,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모두 조금씩 비틀렸다. 나는 그대로인데, 단지 내가 질병을 얻었다는 이유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질병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질병을 설명하는 데도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때로는 나의 설명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나도 지쳐갔다. 두려움은 대화를 지워버리고 나를 잘 감추는 방법을 배우게 했다. 나조차도 모른 척했다. 그럴수록 세계는 점차 좁아져 갔다. 현실을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질병이 없던 삶과도 확연히 달라진다. 질병이 오고 난 후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노력, 시간이 소요되었다. 질병이 오기 전의 나는 그런 종류의 일상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일상을 유지하는데 드는 에너지와 시간에 대한 이해가 질병이 없는 이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지금의 나도 질병 이전의 일상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나는 때때로 그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토로하는데, 그 이야기들이 얼마나 가 닿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역시 질병을 얻은 나를 설명하기 위해, 혹은 이해를 구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와 노력,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매 순간 느낀다. 내가 관계 속에서 쓰는 에너지들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숨통이 트일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 관계들을 기대하며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그런 관계들을 맺고 살아갈 수 있을까.

 

글쓴이 소개

혜정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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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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