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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을지로를 보존하라
최인기의 두 개의 시선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화는 거짓말인가?
등록일 [ 2020년04월23일 16시48분 ]





세운 3-6구역의 입정동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광신공업사 이영건 씨는 요즘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1980년부터 일을 해왔는데 작업장 건너편은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느라 공사판이 벌어지고, 자신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산업생태계란 ‘자연의 생태계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자원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 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산업생태계가 오랜 시간을 거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청계천 을지로 주변이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비록 미로 같은 골목이지만 열심히 발품 팔아 부품을 수집해 조립하고 포장해서 유통까지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의 사대문 안에 자리 잡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주고받으며 꼭 필요한 상품을 소량으로 생산해 시장 반응을 살피기에 매우 적절하다고 한다.
  
‘청계천 을지로 보존연대’에 따르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도시 제조업의 공존 관계는 불황시기에도 생산성을 유지하기 적합한 구조로 여러 제조·유통 업종들이 유기적으로 시장을 이끌어왔기에 공장이나 점포가 폐업하면 ‘사슬의 고리가 끊기는 것’처럼 다른 업종도 타격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마치 ‘물고기가 살아가는데 물이 필요하듯이’ 생태계를 이루며 일자리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곳의 공간이 파괴되면, 도심권 제조업을 중심으로 전체 생산활동의 토대가 흔들리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서울시는 작년 1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 재검토 발표 이후 1년 2개월 만인 지난 3월 4일, 세운상가 일대 도심 산업 보전 및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개발과 정비에서 보전과 재생으로 전환하겠다는 발표였다. 대체부지를 만들기로 한 서울시의 결단을 상인들은 일단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상황은 또다시 바뀌었다. 지난 4월 21일 제6차 ‘도시재정비위원회’에서 세운 3-8, 10구역, 세운 5구역을 비롯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63개 구역의 일몰 기한을 2021년 3월 26일까지로 연장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4월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청계천 을지로 보존연대’와 상인들이 함께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영건 씨를 다시 만났다.

 

“이건 반대로 가는 거 아닙니까? 서울시는 일몰 대상 구역을 해제하고 산업생태계를 지키는 재생 정책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아 하루아침에 말을 뒤집고 상인들을 기만해도 되는 건지…….”
 


 

이 밖에도 이영건 씨는 대체부지 말만 떠돌 뿐 여전히 우리는 이주를 종용받고 있으며, 공장과 업체들은 떠나고 빈집들만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작년부터 서울시를 상대로 ‘청계천 을지로 산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협의기구(가칭)’를 통해 소통과 상생을 위해 노력하자는 주장은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란다.

 

봄치고는 제법 쌀쌀한 날씨다. 한국 사회에서 개발은 어떤 사람에게는 돈벌이 수단이었지만 대부분의 서민에게는 커다란 재앙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화가 거짓말이 되어버린 한국사회의 모습이 미세먼지처럼 우리 주변에 자욱하다면 지나친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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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기 takebest@nave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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