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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당파성을 포기하지 않는 횡단의 정치
『장애학의 도전』, 김도현, 오월의봄
등록일 [ 2020년04월27일 15시58분 ]

책 『장애학의 도전』. 사진 옥천 소금쟁이 책방
 

특수교육과 진학을 고민하던 학창 시절부터 중견 교사에 이른 지금까지, 장애와 관련된 고민은 늘 내 안에 뒤죽박죽 엉켜있었다. 경험이 쌓이고 앎이 깊어지면 나아질까 했지만 상황은 오히려 반대로 흘러, 요즘 나는 장애와 관련된 고민과 감정을 처리하는 능력, 이 문제로 소통하고 논쟁하는 능력이 매우 빈약함을 절감하고 있다. 이것이 『장애학의 도전』에 손을 댄 이유였는데, 읽다 보니 저자의 고민이 나의 경험과 얽혀있는 부분이 많아 더욱 공들여 읽게 되었고, 다 읽고 나니 이 책이 제시하는 지향과 대안이 정의를 고민하는 내 삶에 위로가 되었다. 그건 아마 『장애학의 도전』이 말하는 ‘성찰성에 기초한 대화법’이 뻣뻣해진 나의 인식과 마음을 자극하고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최근의 고민부터 끄집어내자면, 나는 장애 이해 교육과 교직원 연수를 할 때마다 얼마간의 혼란을 느끼곤 했다. 메시지가 왜곡되어 전달되거나 차별적인 통념에 미세한 균열조차 내지 못한 것 같은 자괴감,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원인과 대안을 찾지 못하는 답답함. 이런 상황들이 혼란의 이유였는데, 『장애학의 도전』을 통해 내가 지닌 관점과 태도의 문제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인식의 차이에 관한 근본적 성찰이 부재했음을 깨닫고 나니, ‘너는 왜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토록 고집스럽냐’던 지인의 지적이 이해되었다. 장애에 관한 독백적 접근을 대화적 접근으로 바꾸어 내기 위해 나는 역사와 사회, 인간에 대한 성찰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 책이 이 지난한 과정을 안내하고 함께 되짚어 주었으니, 나에게 『장애학의 도전』은 인류와 역사를 논하는 철학서이자 역사서이기도 했다.

 

저자는 ‘손상이 장애가 되는 과정’을 역사와 사회의 변화 과정 속에서 다각적으로 설명한다. 생물학적 생명을 뜻하는 ‘조에’(zoē)와 정치‧사회적 존재로서의 생명을 뜻하는 ‘비오스’(bios)라는 용어의 기원을 보면, ‘권리로부터 추방된 생명’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고 체제와 시대의 변화에 유리하게 그 존재 가치가 결정되어 왔다.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우생학적 논리 역시 인종주의 및 경제 논리에 결합된 (사회적) 다윈주의 등을 거쳐 정립된 논리임을 살펴보았을 때, 그 역사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그리고 인류의 삶 전반을 얼마나 빈틈없이 휘둘러 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중증장애인에 대해 ‘그런 사람들은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진지하게 건넸던 아버지에게, 당신이 무엇이기에 누군가가 살아갈 가치가 있고 없음을 판단하는 것이냐며 분개했던 지난날이 스쳐 간다. 우생학은 긴 역사를 통해 이어져 온 인식의 산물이고, 인식은 시대와 무의식을 지배하는 역사적 산물이므로, 우생학은 우리가 사는 시대와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특수교사인 나 역시 시대와 무의식을 지배하는 차별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고백한다.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는 인간’ 또는 ‘도구적 인간’으로 규정하는 사고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간들이 있었으며, 장애학생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그들의 주체성에 대한 나의 인식은 여전히 수시로 왜곡되기 때문이다. 『장애학의 도전』은 이성과 언어능력이라는 인간적 가치와 특징을 기준으로 생명의 위계를 설정하는 인간중심주의 및 인격체중심주의를 차별과 위계를 정당화하는 논리라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들을 해체하기 위해 ‘존속하려는 경향을 갖는 모든 사물들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스피노자의 논리와 ‘공생발생을 통한 진화로 생명의 본질을 규정’하는 마굴리스의 논리를 제시한다. 나는 학문의 영역 또한 계급성과 당파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뒷받침해 줄 근거를 찾아 고군분투했을 저자의 고뇌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인간 존엄성의 근거를 인간의 본질에서 찾고자 한다면, 적어도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임을, 즉 “인간 존엄성의 기반은 개별 인간 내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개체[개인]들을 가로지르고 초과하는 사회적 관계 안에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저자의 입장에서 논리와 힘을 얻었다.

 

이러한 성찰은 ‘인간은 왜 존엄한가?’라는 우리의 질문을 전복시킨다. 오히려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를 물을 때 장애 문제는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장애 문제는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해석이 명쾌하게 다가온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메시지는 『장애학의 도전』이 건네는 핵심 통찰 중 하나다. 그리하여 저자는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어떻게 주체성을 획득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제안한다. 비오스의 영역에서 추방된 벌거벗은 생명, 권리로부터 추방되고 배제된 존재가 정치적 생명/삶으로서의 존재론적 의미를 획득하는 방법에 관해서 말이다.

 

『장애학의 도전』 표지, 김도현 지음, 오월의봄
 

『장애학의 도전』은 저항권을 발동시켜 정치적 생명을 얻는 과정을 통해 전체주의적 생명권력에 맞서고, 지적 능력에 의한 분할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투쟁이 지닌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장애인의 저항은 실질적인 권리 쟁취를 넘어 이 사회에 동등한 존재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정치적 행위이자 주체화의 과정이라는 말에 의미가 부여된다. 저자는 정의에 관한 성찰에서도 ‘정의의 내용과 방법은 관련 당사자들이 동등한 자격을 갖고 참여한 민주적 토론을 거치는 경우에만 정당하다’는 결론을 도출해냄으로써,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적 관계와 조건에서 주체성 획득이 지니는 의의를 명확하게 설명해 낸다. 발달장애를 지닌 학생을 대하면서, 혹은 가정에서 어린 자녀를 양육하면서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을 현실 상황에서 구체화하고 실현하기가 어려웠는데, 자기결정권의 핵심 가치는 ‘상호작용을 통한 참여’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준다.

 

하지만 『장애학의 도전』은 ‘자립’ 혹은 ‘자기결정권’ 같은 개념에 대하여,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리고 개체에 대한 이해, 인간과 실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연립’(聯立)이라는 새로운 가치와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는 개체란 이미 하나의 집합체이며 그 개체는 실존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항상 외부의 개체들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 모든 개체를 가로지르는 무한한 연관 관계가 각 개체의 실존 및 활동의 조건이 된다는 점(관개체성), 즉 실존하는 모든 개체들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나는 이것이 고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의 조건에서 더욱 적실성을 지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소통과 협력, 집단 지성의 가치를 주창하며 상호관계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모순적이게도 장애인에게는 ‘스스로’라는 가치를 강요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온다. 인간은 누구나 연립하여 살아가는 존재임을 되새기니, 특수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현장에서도 개체를 넘어 관계에 집중하고 통찰해야 할 중요성을 느낀다.

 

『장애학의 도전』은 보편성의 정치와 정체성의 정치가 지닌 한계를 비판하며 ‘횡단의 정치’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공통의 주제나 문제 앞에서 대화적 방법을 통해 함께 모인 주체들의 이익과 열망을 아우를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아내는 정치이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로지르는 공동의 실천과 연대를 핵심으로 한다. 어떤 위치에 있는 주체도 ‘부분적이고 상황적인’ 경험과 앎을 지니며 그러한 경험-앎에 일정한 공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글귀들이, 편파적이고 당파적인 입장을 강조하던 이 책의 첫 페이지와 교차된다. 당파적인 입장의 견지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 주체들과의 연대가 대립하는 일은 아니지만, 경험적으로 그것이 매우 힘든 과정임을 알기에, 당파성으로 시작하여 횡단의 정치로 마무리되기까지 저자의 고민과 고뇌를 가늠해볼 수 있었다. 투쟁 속에서 주체화로 이어지는 저항의 가치를 실현함과 동시에, 그것이 독백이나 선언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어떠한 관점과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시간의 흔적이 바로 『장애학의 도전』이 아닐까. 자기중심을 부정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정체성을 지닌 주체들과 교류하고 공감하려는 노력, 그것이 바로 상호의존의 거대한 그물망 속에서 우리가 연립하며 살아가는 자세일 것이다.

 

김선영 _ 대학 시절 『장애학의 도전』의 저자인 김도현과 함께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제암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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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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