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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는 새벽 밤의 하늘을 본다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5월06일 14시55분 ]

먹는 약이 많아질수록 약을 먹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오늘은 약을 안 먹고 잠을 청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하지만 약을 늦게 먹을수록 수면장애만 심해질 뿐이다. 약을 먹는 것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사진 박현진
 

소변이 마렵다. 무시하고 계속 자고 싶은 맘에 자려 애쓰지만 요의 때문에 계속 자기 어렵다. 힘겹게 눈을 살짝 떠보니 밖은 아직도 깜깜하다. ‘벌써 자다가 세 번째 깨는 건데 밖이 밝지 않았다니. 그럼 지금 두 시간 만에 깨는 거잖아?’ 절망스런 마음이 든다. 어기적대며 화장실에 간다. 그렇게 요의를 느꼈는데 한참 힘을 줘야 소변이 나온다. 다시 난방텐트 안으로 들어가 눕는다. 예전에는 3시간, 컨디션이 더 괜찮을 때는 4시간씩은 자고 깼는데 요샌 2시간 만에 깬다. 다행히 다시 금방 잠들었다. 하지만 방광은 나를 그냥 자게 내버려 두지 않을 모양이다.

 

요의를 느껴 다시 깬다. 시계를 보진 않았지만 1시간 만에 다시 깬 것 같다. 여전히 밖은 어둡다. 시계를 일부러 보지 않는다. 너무 짧은 시간 만에 깼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 내가 이렇게나 수면 질이 안 좋구나가 각성되면서 다시 잠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금방 다시 깬 걸 느끼는 상태는 요의의 느낌이다. 아까는 요의가 크게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미약한 느낌이다. 소변이 거의 방광에 차지 않았는데도 요의를 느끼는 증상. 의학계에서는 ‘과민성방광’이라고 부른다. 요의를 무시하고 자보려 애쓰지만 도통 잠이 안 온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화장실에 간다. 힘을 주는데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 애쓰다가 ‘내가 왜 이렇게 노력해야 하나’라는 맘으로 다시 방에 들어와 눕는다. 그러나 요의가 너무 뇌를 압박해 잠이 도통 오질 않는다. 다시 화장실로 간다. 변기에 앉아 있으면 서글프고 오만 생각이 든다. 한 10분 정도 내내 힘을 줬더니 소변이 아주 조금 흘러나왔다. 요의가 해결되고 나니 시원해졌다. 잠을 자려고 누웠으나 잠이 다 깨버렸다. 예전 같으면 너무 피곤해서 다시 금방 잠들었을 텐데, 자궁근종 호르몬 약 부작용 때문에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더웠다 추웠다 하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증상이 있다. 수면제를 잠자기 전에만 먹지 새벽에 먹은 적이 없었는데 새벽에 더 먹고 잠을 청한다. 못 자면 오늘 일정을 소화 못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 때문이다. 남들은 ‘잠을 못 자면 못 자나 보다’할 텐데, ‘오늘 못 자면 내일 자면 되지’할 텐데 나는 그게 안 된다. 매일 잠을 못 자기 때문에 잠에 집착하고 조금만 못 자도 하루 일정을 다 소화해 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이 크다. 질병인이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은 채 내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스트레스에서 시작된 배뇨장애, 또 다른 질병을 심화시키다

 

과민성방광 증세를 처음 느낀 건 고등학생 때였다. 고2 때부터 대학을 가야 한다는 압박을 심하게 느꼈다.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과 놀지 않고 책을 보기 시작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해지자 1시간마다 한 번씩 요의를 느꼈다. 화장실에 가면 소변이 나오지 않았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소변이 나올 리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가야 했다. 가지 않으면 요의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수업시간 중간에는 화장실을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화장실에 매시간 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갔는데 신경성이라는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좋아지지 않았다. 가끔 1년에 한 번 잠을 한 번도 안 깨고 자는 날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컨디션이 좋아서 ‘다른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는구나. 이런 컨디션으로 하루에 3~4개 일정을 다 소화하며 살 수 있구나’하고 부러웠다. 단순히 신경성이라고 보기엔 증세가 멈추질 않으니 병원을 찾아다니며 내 병이 뭔지를 알려 애썼다.

 

지금은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는 생소한 병명인 ‘과민성방광염’이란 진단이 내려졌다. 당시 강남에 있는 모병원에서는 전기자극치료 등을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받으면 효과는 있었지만 한 번 받는 치료비가 비급여라 3~4만 원이었는데 도저히 그 치료비를 댈 수가 없었다. 결국 치료는 포기하고 그냥 살기로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수면의 질이 말할 수 없이 떨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2003년 운전을 배우러 갔다가 강사와 동승한 차 안에서 성추행을 당한 것이다. 자다가 3번, 4번씩 깨기 시작했다. 깨서 계속 화장실에 가서 소변은 나오지 않는데 변기 위에 앉아있는 세월이 이어졌다. 누군가 머리에 전기충격기를 대는 듯 머리가 찌릿찌릿한 증상도 있었다. 정신과에 갔다. 상담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서 약 처방이 이뤄질 줄 알았는데 상담은 없었다. 약을 받아왔는데 너무 세서 종일 몽롱하고 잠만 쏟아졌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신경안정제약을 일주일에 한두 번 먹으면서 살았다. 내일 중요한 일이 있다든가, 잠을 심하게 못 잔다든가 하는 날들이 이어지면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먹으면서 삶을 이어왔다.

 

물론 중간중간 과민성방광 치료를 다시 시도해보기도 했다. 과민성방광약은 방광이 소변이 조금만 차도 움직이는 걸 막기 위해 방광의 움직임 자체를 차단하는데 나의 뇌에서는 너무나 요의를 느끼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요의를 강하게 느끼는데 방광 자체 움직임을 막아서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어 밤을 꼴딱 지새운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잠을 포기하고 밤을 새우는데 나중에 소변을 배출하지 못하니까 온몸에 열이 차면서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갔다. 응급실이라도 가봐야 하나 전전긍긍하다가 아침 6시에야 소변을 보게 되었다. 소변을 보니 열이 내려갔고 그 이후 무서워서 과민성방광약은 되도록 먹지 않았다.

 

수면장애가 불러온 일상의 균열, 삶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다
 
수면장애는 건망증을 유발했다. 지갑을 공중전화 박스 위에 올려놓고 잊어버리기를 수십 차례. 너무 자주 잊어버리니 나중에는 내가 가방 안에 물건을 넣고도 불안감에 몇 번이나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일상생활의 불편함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직장생활에서 찾아왔다. 상사가 지시한 내용을 잊어버려서 모욕적인 언사를 듣게 된 것이었다. 잊지 않으려고 메모를 하기 시작했지만 건망증은 수시로 찾아왔다. 그렇다고 나의 질병을 알리고 양해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에 더더욱 집착하기 시작했다. 토, 일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다. 설사 컨디션이 괜찮더라도 그다음 날 일에 지장을 줄까 봐 주말에는 집에만 있었다. 그리고 밤에 2번 이상 깨면 그다음 날 제대로 일을 해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건망증은 더 심해졌다. 나는 나의 질병에 압도당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게 매번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 ‘아 네 제가 잠을 잘 못 자서요’라고 얘기하면 어김없이 낮에 햇빛을 보고 운동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몸이 피곤하지 않아서 잠이 안 오는 것이라 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넘겨야 할지 아직도 허둥지둥댄다. 몸을 쓰지 않고 편해서 불면증이 온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인식. 죽도록 피곤한 날에도 잠이 안 오고 간신히 잠들어도 자주 깨는 이 증상에 대해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
 
그렇게 지내다가 염증이 2년 전부터 심해져 심각하게 잠을 못 자는 나날이 다시 시작됐다. 현재 자궁선근증이라는 자궁질환을 갖고 있다. 10년 전 수술했고 재발했다. 의사는 다시 수술하자고 했지만 또다시 재발할 것이 두려워 수술은 미뤘다. 대신 혹이 커지지 않게 몸 안에 호르몬 기구를 삽입하기로 하였다. 6개월 동안 부정출혈 등의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 했다. 6개월 내내 생리대를 해야 하는 것도 물론 힘들었지만 그보다는 염증이 멈추지 않는 게 제일 힘들었다. 생각해 보니 몇 년 전 귀를 뚫었을 때 염증이 너무 심해서 귀걸이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 몸 안에 고체물질이 들어가 있으니 염증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의사선생님을 찾아가서 괴로움을 호소했으나 이왕 힘들게 몸 안에 호르몬 기구를 넣었고 6개월이 고비니 조금만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그 6개월 동안 나는 밤마다 1시간에 한 번씩 깨야 했다. 계속 가려웠고 염증반응 때문에 통증이 지속됐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덧 출퇴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통증과 체력저하로 출퇴근 2시간을 포함한 하루 10시간 노동, 거기에 야근까지 더해지는 한국의 노동현실을 버텨낼 수 없었다. 장애인 재택근무를 간신히 구했다. 현재는 재택근무 4시간여로 일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간신히 끝마치고 나면 낮에 다시 꼭 잠을 자야 했다. 밤에는 통 못 자기 때문이었다. 매일 매일 멍하니 살았다.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가 없었고 어떠한 생각도 할 수 없이 연명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통증과 염증 때문에 멍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친구들에게 일상을 공유하는 일은 더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쩌다 한두 번 아프다는 얘기를 할 수는 있지만 그걸 매번 얘기할 수 없었다. 듣는 사람들이 지겨워할 것 같았고 나를 멀리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말하는 나도 지겨웠다. 매번 아프다고 말하고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근황을 물으면 “살아는 있어”라고 농담 식으로 얘기한다. 만성질환과 함께 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주변 사람들에게는 더 입을 닫고 살게 된다. 질병과 함께 하는 삶은 지독히 막막하고 앞이 안 보이기 때문에 이 어둠을 감추며 살고 싶은 것이다.

 

질병에 압도당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애써 괜찮은 척하다가도 혼자 있을 때는 감정기복이 심해진다. 어떤 날은 질병인으로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살다가도 어떤 날은 이런 몸 상태에 절망한다. 세상만사 우울하고 무엇보다 몹시 짜증이 난다. 지금도 이렇게 돈벌이도 못 하고 친구 만나는 것도 매번 미뤄야하는데 여기서 더 나이가 들면 어떻게 살아갈까.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것을 하고 있어?’라고 물었다. 선뜻 대답이 안 나왔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이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지금 우선 잘하는 것 하나는 병원 가기이다. 병원 가는 게 뭐가 그리 잘하는 일이냐 생각할 수 있는데 나는 병원에 가려면 병원비가 먼저 떠올랐고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돈 아낀다고 병원 가는 걸 꺼리지 않고 지금은 몸의 신호를 읽고 병원을 잘 찾아간다. 그런데 그 외에 몸 아픈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은 제대로 하지 않는다. 운동하기 싫은 게으름과 식탐 등으로 제대로 못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노력하기보단, 오랜 시간이 걸려 해결되기보단 단번에 누군가 내 병을 고쳐주길 바라는 맘이 커서라는 걸 깨달았다. 한 번에 모든 게 해결되길 바라는 것이다.

 

지역에 있는 친구네 집에 갔을 때 여유로운 나의 모습. 요즘은 통증 없이 일상생활을 누리기 위해 10분 체조를 틈틈이 하고 햇볕 쬐기도 시도한다. 사진 박현진

질병인이 노력해야 한다는 계몽식 표현이나 ‘네가 무능해서 아픈 거야’라는 식의 틀 가두기 얘기가 아니다. 내 몸에 대한 통제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병이 거짓말처럼 단순에 낫기만을 바랄 뿐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보기에는 무기력하고 귀찮았다. 몸에 대한 주체성을 의료인에게만 넘겨주고 살아왔다. 이번만은 괜찮겠지하면서 하며 매번 몸에 안 좋은 걸 먹어댔고 질병에 지배당하면서도 운동은 건너뛰었다. 친구의 질문은 내 생활의 주체성을 반문하게 만들었다. 나는 우선 간식으로 탄수화물을 줄이려 노력하고 특히 길거리에서 사 먹는 떡볶이를 끊었다. 운동은 자꾸 안 하게 돼서 유튜브를 보면서 15분씩 운동한다. 1시간 운동해야지라고 맘먹으면 1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고 아예 안 하게 되니까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15분으로 잡았다. 한 일주일 열심히 하다가 일주일은 또 하기 싫어서 안 하다가 오락가락하지만 운동을 하면 몸의 기운이 달라지는 걸 알게 됐고 삶의 기운을 환기시키려 노력 중이다.

 

얼마 전부터는 다시 염증이 시작돼서 잠을 도통 못 잤다가 항생제를 며칠 먹었더니 밤에 한 번만 깨는 날이 며칠 이어졌다. 정말 엄청 기뻤다. 잠을 깼는데 바깥 하늘이 약간 밝아있어서 와 잠을 한 5시간은 잤구나 싶었고 그 이상 깨지 않았다. 자다 한 번밖에 안 깼다고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염증이 재발했고 어젯밤에는 4번을 깼다. 횟수에 연연해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매우 절망스러웠다. 종일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쩌랴. 매일 새벽하늘을 몇 번 보느냐에 나의 희비는 이렇게 반복될 것이다. 희비는 반복되지만 거기에 압도되지 않고 나의 질병을 잘 달래면서 평생을 같이 잘 살아내고 싶다. 나는 매일 새벽 밤의 하늘을 본다.

 

글쓴이 소개
박현진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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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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