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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이 된 비상(非常)
[나눔과나눔] 무연사회, 죽음을 기억하다
4월 장례이야기
등록일 [ 2020년05월07일 11시07분 ]

80일 동안의 장례

 

2020년 1월 31일부터 4월 19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80일 동안 장례가 있었습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분 이상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이틀의 여유, 나눔과나눔은 한숨을 돌리며 길었던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시작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법적인 책임을 감수하더라도 장례를 치르게 해달라는 사실혼 관계의 아내, 공영장례 일정을 기다리다 장례를 치른 후 일정을 안내받았던 지인, 타국에서 떠난 아들의 장례를 생중계로 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그리고 한날한시에 안타까운 선택을 하셨던 70대 노부부까지, 80일 동안 나눔과나눔은 총 161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삶의 역사를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인들의 장례를 지원하며 만나게 된 지인과 조문객들도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서울시 공영장례 첫 ‘자연장(수목장)’ 사례와 구청에서 직접 ‘가족대신장례(법적 연고자가 아닌 이가 치르는 장례)’를 안내하기도 하는 행정기관의 변화도 있었습니다. 이렇듯 행정기관의 배려와 조금의 제도적인 개선만 이루어진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안타까운 죽음과 사연들을, 또 조금씩이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공영장례의 모습을 기억하고 기록해 봅니다.

 

한 홈리스 무연고자의 생전 사진을 보고 설명하고 있는 지인. 사진 나눔과나눔
 

IMF로 무너진 삶, 스스로 지켜낸 권리

 

4월 초 서울시립승화원 공영장례 전용빈소 안 한쪽 벽에 사진들이 두 줄로 걸렸습니다. 빈소를 찾은 지인들은 고인을 향한 한 마디를 카드에 적었고, 사진들을 보며 옛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습니다. 일반 장례와는 다르게 보통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에는 고인의 영정사진도 없이 위패만 제단에 모셔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참석자도 서울시 공영장례 의전업체와 나눔과나눔, 자원봉사자들이 다였고, 연고자나 지인들도 소수여서 장례식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조촐하게 치러지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착한 ○○아저씨 따뜻한 평안을 누리시길 기도할게요.”
“술 한잔하기로 했는데, 약속을 못 지켰네요.”

 

추모객들이 손수 적은 카드엔 생전에 고인과 나눴던 추억이 담겨 있었고,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고인의 모습에서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ㄱ 님은 1958년생으로 서울시 종로구의 한 쪽방에서 거주하다 지난 2020년 2월 중순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습니다. 연고자가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포기해 무연고자가 되었습니다. ㄱ 님은 1998년 한국 경제위기인 소위 IMF 때 사업이 무너지면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종각에서 노숙을 시작한 고인과 당시 함께 생활했던 지인은 “본인이 줄 돈은 모두 주고 결국 나앉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비록 빈털터리가 되어 노숙했지만 ㄱ 님은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고, 폐지를 줍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홈리스 단체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노숙인 실천단’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고, 홈리스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새로 시작한 쪽방 주민협동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벽에 걸린 사진들은 동료들과 농촌 봉사활동 중 음식을 만들며 술 한 잔 기울이는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ㄱ 님과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던 동료들은 ㄱ 님이 사망 후 무연고자로 확정되어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는 소식에 장례식 일정을 꼭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쪽방 주민들과 홈리스 당사자들, 그리고 홈리스 단체들의 배웅을 받으며 ㄱ 님은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동생의 아픔을 받아주지 못했던 오빠의 눈물

 

4월 말 두 분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한 분은 서울시의 한 노숙인 복지시설에 거주하다 사망했고, 그의 운구에는 시설에서 함께 지냈던 사회복지사 등 지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추모했습니다. 그리고 의전업체의 운구차량 안에서 두 번째 관이 나왔고, 화로로 이동하는 동안 한 남성분이 홀로 운구에 동행했습니다. 남성분은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묵묵히 절차에 따랐고, 안내하는 이들의 묻는 질문에 대답을 피했습니다.

장례가 있기 전 해당 지자체로부터 무연고 사망자 ㄴ 님의 장례에 지인이 참석한다는 통보를 받았는데 담당자는 고인과의 관계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공문에는 ‘연고자를 알 수 없다’는 기록이 있었기에 당연히 지인인 줄만 알고 있었던 남성은 다름 아닌 고인의 오빠였습니다.

 

아픈 가정사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떠난 동생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오빠. 사진 나눔과나눔
 

ㄴ 님의 오빠는 장례 내내 눈물을 훔치며 슬퍼했고, 묵묵히 곁을 지키고 있던 나눔과나눔 활동가에게 오빠는 드디어 무거운 입을 떼었습니다. ㄴ 님은 어릴 적 술에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견디다 못한 ㄴ 님은 결국 성인이 되기 전 집을 나갔고, 일본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날 ㄴ 님은 오빠에게 연락을 해 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애견숍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오빠는 노트북을 사 들고 갔고 설치를 도와주었습니다. 헤어졌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애틋함은 커졌고, 남매의 왕래는 조금씩 잦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겐 행복한 시간이 짧았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동생은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고, 어릴 적 아버지로 인한 좋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기 일쑤였습니다. 혼자 오랫동안 살면서 생긴 우울증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오빠는 그런 동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연락을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목소리를 전하기 힘들었던 오빠는 문자메시지로 “멀쩡할 때 연락하자”라고 보냈고, 동생은 자해의 흔적이 있는 사진을 보내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연락을 피한 오빠는 한동안 동생의 소식을 멀리했고, 지난 3월 중순 거주하던 곳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때 연락을 피하지 않았더라면….” 오빠는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아픈 가정사로 헤어져 살았던 남매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났지만 끝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위패 속 동생의 이름을 태우며 오빠는 살아있을 때 하지 못했던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살 만하니까 죽었다

 

4월 말 무연고 사망자 ㄷ 님의 장례. 제단 앞에 선 한 여성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참석한 사람들은 그 모습을 숙연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종교 자원봉사자들의 염불이 끝나도록 여성의 눈물을 마르지 않았고, 추모의식이 끝난 후 가슴에 맺힌 감정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착하고 온순한 사람이 술만 마시면 문제였어요.” 사실혼 관계로 6년을 함께 살았던 여성은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좋은 날도 많이 있었어요. 같이 노래방 가면 기분 좋아서 노래도 불러주고.” 여성은 휴대폰으로 ㄷ 님이 사랑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근데 술이 원수라 그게 그렇게 미워서 밖에 나간 사이에 문을 잠가버렸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사이가 벌어진 부부의 감정은 골이 깊어져 갔고, 남편은 술에 취해 “죽어 버리겠다”는 전화를 걸어오기 일쑤였습니다. 아내는 그런 전화가 오면 녹음을 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녹취를 들은 경찰은 “그냥 두라”며 단순한 부부싸움으로 넘겼습니다.

 

“그래도 마냥 밉지는 않아서 다시 화해하고 행복하게 살 줄 알았지.” 하지만 남편은 지난 1월 서울의 한 복지기관에서 끝내 안타까운 선택을 했고, 아내는 죄책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석 달을 넘게 기다렸어요.” 남편에겐 연고자로 자녀가 있었지만 시신 위임 여부를 묻는 지자체에 우편물에 답변을 미뤘습니다. 사망 후 안치된 기간은 3개월이 넘었습니다. 사실혼 관계의 아내는 장례를 기다려야 했고, 자신 때문에 남편이 사망했다는 죄책감과 공허함으로 집 밖을 나가지 않아 몸무게가 8kg이나 쪘습니다.

 

남편의 유골을 뿌리며 아내는 탄식했습니다. “내일모레 나도 여기 올 텐데, 왜 이렇게 빨리 갔어. 올해부터 수급자 되니까 이제 욕심 안 부리고 살 만할 텐데 바보같이……” 황망히 떠난 남편이 원망스러워 아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생의 마지막에 만나 알콩달콩 살고 싶었던 아내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동자동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유○○ 이사장의 추모식에 참석한 지인들. 사진 나눔과나눔
 

공동체가 함께한 무연고 장례

 

서울역에서 도로를 건너면 높은 건물들 사이 여인숙과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동자동쪽방촌은 주민들 스스로가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를 조직하여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과 반찬 나눔, 의료서비스 등의 지원을 모색하며 이웃들끼리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나눔과나눔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주민들 중 무연고자가 되어 돌아가시는 분이 있을 때 함께 장례를 치러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3월 중순 SNS에서 동자동사랑방의 유○○ 이사장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장례 등을 통해 뵈었던 이사장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사망소식은 황망하기만 했습니다. 연고자로 형제들이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하는 상황이라 장례가 언제 확정될지 알 수 없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랑방 활동가들은 형제분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난 4월 초 유 이사장의 장례일정이 확정되었고, 화장일에 앞서 동자동에서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모식에 조문을 왔고, 각자의 추억들을 가지고 유 이사장을 애도했습니다.

 

유 이사장은 생전에 아픈 주민들을 병원으로 모시고 병문안 가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 이사장이 입원 중일 때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병문안이 불가했습니다. 주민들은 추모식에서 그 사실을 언급하며 너무나 안타까워했습니다. 수년간 한 동네에서 의좋게 지냈던 분을 살아계실 때 마지막 인사조차 나누지 못한 것도 모자라 입관도 보지 못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생각할 때 쓸쓸함, 외로움, 처연함, 억울함 등의 감정들을 연상하곤 합니다. 가족들이 시신인수를 거부했거나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는 동정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에게도 관계가 있고, 마음 깊이 애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쉽게 생각해내지 못합니다. 단절된 가족이 아닌 마음을 나누며 생을 함께 살았던 지인들이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무연고로 보내야 하는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 이사장의 장례는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무연고자의 장례와 달랐습니다. 사시던 마을의 친구들과 지인,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추억을 떠올리고 공유하는 순간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추모식 다음 날 화장일에도 동자동의 이웃 서른 분이 함께했습니다. 모두가 애도하는 마음으로 고인에게 인사를 하고 술을 올렸습니다.

 

연고의 같은 말에는 인연(因緣)이 있습니다. 무연고자는 사회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한 제도가 규정한 것일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누구보다도 소중한 인연들을 맺어 온 이웃들, 공동체가 연고자가 되어 ‘가족 대신 장례’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착화되길 바랍니다.

 

서울시립승화원 서울시 공영장례 그리다 전용 빈소. 사진 나눔과나눔
 

*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 4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김차권, 강음모, 강송구, 이일수, 김남선, 박춘언, 박충민, 박종원, 지춘자, 안명호, 유영기, 김장순, 백인기, 김도희, 조대현, 정경득, 정재환, 이규팔, 강대윤, 박재율, 이혁선, 조기호, 신혜선, 김진호, 김삼득, 이경선, 박승범, 김상희, 이남식, 윤경자, 김용두, 노명준, 맹승섭, 방숙의, 김경운

 

- 4월 무연고 사망자

 

김병권, 김일학, 전봉훈, 강성옥, 길영, 이용기, 박희석, 김상길, 김태국, 최성학, 김은천, 김올레그, 이병학, 허삼길, 성승용, 주명희, 최우호, 이길성, 김성복, 이태호

 

나눔과나눔이 함께 마지막을 동행했던 쉰다섯 분의 이름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하게 불렸을 이름
나눔과나눔은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외롭게 삶을 마감하신 분들의 이름을
함께 기억해주세요.
“Re’member
나의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을 순간을 공감하는 것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함께 하는 것”
(문구출처 : 마리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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