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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신체’에 맞춰진 의료 기기, 거부당하는 ‘다른 몸’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5월13일 14시02분 ]

- 나의 병명은 ‘원인 모를 사지무력’ 

 

나는 아기 때부터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한의원, 재활치료, 민간요법 등을 접하게 됐다. 첫돌이 지나도 걸음을 걷지 못했다. 엄마는 좀 늦으려니 하며 내 걸음마를 기다렸다.

 

기다림의 날은 가고 나는 벽을 붙잡고 일어서긴 했으나 서 있는 다리는 불안정했다. 벽을 붙잡고 선 다리는 힘없이 후들거렸고 자세는 한쪽으로 기울어 절뚝이며 몇 걸음 걷고 풀썩 주저앉았다. 날이 가도 걸음걸이나 자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두 돌이 되기 전 병원에 가게 됐다.

 

내 백일사진. 사진제공 은주
 

동네병원은 ‘아이에게 이상이 없다’고 했다. 좀 더 큰 병원을 가니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이나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을 듣게 됐다. 한의원에 가니 ‘허약해서 그런 거 같다’며 침술과 한약을 처방해줬다. 침을 본 어린아이는 자지러지는 울음으로 통증과 무서움을 표현하며 거부했지만 강제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허약함이 나아서 걸을 수 있을 거라고 했을 테니까. 아이가 먹을 약은 몸이 약한 이들에게 처방하곤 하는 용이었다. 세 첩을 먹으면 나을 거라고 했다는데 별 차도가 없어 결국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의자에 앉은 자세로 무릎을 톡톡 치면 다리가 들리게 되는데 반응이 없었다. 무릎반사가 없는 것이다. 정밀검사에 들어가게 됐다. 의사는 엄마에게 임신 중에 뭘 먹었는지 묻고, 가족력을 물었다. 엄마는 별다른 게 없다고 했고 유전자 검사를 해도 나오는 게 없었다. ‘원인 모를 사지무력’이란 의사의 말을 듣고 나오는 게 전부였다.

 

또 다른 병원을 계속 찾아다녔다. 같은 검사를 또 받고 같은 말을 또 듣고. 다른 큰 병원에 가서 새로운 검사를 받았다. 마취를 하지 않고 등을 구부려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바늘을 허리 부위의 척추뼈 사이로 찌르는 척수검사였다.

 

검사를 받는 동안 나는 병원이 떠나갈 만큼 크게 울었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을 거 같다. 바늘이 들어가는 고통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이 무서운 검사는 어릴 때라 내 기억에 남아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척수검사를 해도 걷지 못하는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또 다른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같은 말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병원 곳곳에서 처방해주는 양약은 한약과 마찬가지로 별 차도가 없었다. 틈틈이 용하다는 한의원과 절을 다니며 침도 맞고 한약을 달여 먹어도 뭐 하나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7살이 돼서 병원행은 멈춰졌다. 그때까지 전국의 병원에 다녔지만 ‘원인 모를 사지무력’이란 병명 아닌 병명을 듣는 게 다였다.

 

- 내가 사이다를 못 먹는 이유

 

7살까지 양약, 한약, 민간요법 등을 몰아서 접했다. 먹었던 약 중 기억에 남는 게 몇 가지 있는데 양약은 발포약이다. 5백 원 동전만 한 크기에 주황색과 연두색 두 가지였다. 물에 담그면 기포가 생기며 녹여 먹는 약인데 맛은 사이다와 비슷했으나 역했다. 컵에 물을 붓고 약을 담그는 순간 발포되며 녹는 소리에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거부감이 드는 약이었다. 먹기 싫었다. 하지만 안 먹으면 혼나기에 억지로 마시다가 토하기도 한, 힘들게 먹었던 약이다. 그래서 난 그 발포약과 비슷한 사이다를 먹지 못한다. 지금은 덜하지만 물 컵에 담긴 사이다를 보거나 냄새만 맡아도 발포약이 생각나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이다.

 

한약도 마찬가지다. 한약을 집에서 달여 마시던 시절이라 마당에 놓인 한지 덮인 약탕기를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겐 한약 냄새도 역했고 맛도 너무 써서 한 사발을 마시는 게 고역이었다. 헛구역질하며 울며 마셔야 했던 한약은 색깔만으로도 두려움을 줄 정도였다. 매번 혼나며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사이다와 같은 이유로 쌍화차도 마시지 못하고 한약은 여전히 거부하게 돼 한의원엔 진료를 받으러 가지 않는다.

 

생미역을 삶아서 다리를 찜질하면 낫는다는 민간요법으로 나는 몇 년을 저녁식사 후 뜨거운 미역에 다리가 감겼다. 팔팔 끓여진 생미역은 비린내가 강해서 비위가 상할 정도였다.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고약한 뜨거운 미역은 비닐에 싸이고 수건에 싸여 내 다리에 감겼고 이불에 덮여 식을 때까지 찜질을 해야 했다. 냄새와 데일 거 같은 열기로 고통스러웠다. 꽁꽁 싸매진 미역은 쉬이 식지 않았다. 다리가 익어가는 고통이 점점 덜해지면 미역은 식어서 나를 풀어줬다. 벌겋게 익은 다리는 내일의 미역찜질을 두려워하게 할 뿐 나아지는 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받았던 각종 진료와 치료는 ‘원인불명 사지무력’을 낫게 하지 못했다.

 

- 30년 만에 알게 된 병명… 미래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초등학생 시절 몸이 길어지는 성장과 함께 장애도 서서히 진행됐다. 양팔을 올리거나 나란히 하면 왼팔이 슬금슬금 어깨 아래로 내려가 오른팔로 붙잡아야 같은 높이에서 버틸 수 있었다. 다리를 뻗으면 무릎이 다 펴지지 않았고 척추는 휘어 등이 굽어진 게 눈에 띌 정도였다.

 

몸의 힘이 떨어지고 뼈는 구축(拘縮, 근육이나 힘줄이 수축되어 운동이 제한되는 상태)이 오고 있었지만 병원을 찾지 않았다. 어차피 ‘원인불명’이라 병원에 가나 마나여서 그랬을 테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점점 구축되고 휘어지며 가늘어졌다.

 

스무 살 무렵 팔을 어깨 위로 올리는 건 불가능해졌다. 다리는 ㄱ자로 구축됐고 척추는 휘면서 상체가 오른쪽으로 돌아가 등은 D자가 되었다. 몸은 점점 변해 가는데 왜 그런지를 모르니 답답했고 불안했다. 하지만 병원을 가봐야 명쾌한 답을 들을 수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해버렸다.

 

30대 초,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에게 장애를 설명하니 근육병일 거 같다고 전문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소견서를 써줬다. 어쩌면 병명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단 생각에 마지막으로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입원해서 피검사를 비롯한 기본검사와 유전자 검사, 근전도 검사, 근육 조직검사 등을 받았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이번에도 원인불명이 나오면 생돈 날리는 건데 무모한 짓하고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에 불안했다.

 

담당 의사를 비롯한 여러 의사들이 오더니 결과가 나왔다고 알려줬다. 병명은 ‘척수성 근위축증’이었다. 근육병 중의 하나고 희귀난치성질환이라 산정특례가 적용되어 진료비 혜택을 볼 수 있는 질병이었다.

 

병명을 알게 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앞으로 나타날 병의 증세를 알게 되고,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난 몸의 변화가 와도, 증세가 심해지더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후 장애는 해가 갈수록 진행돼 몸의 움직임은 스스로 할 수 없어지는 게 늘어갔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 ‘정상 신체’에 맞춰진 의료 기기, 거부당하는 ‘다른 몸들’

 

39살이던 12월, 나는 감기에 걸린 줄 알았다. 몸살 기운처럼 온몸이 아팠다. 약국에서 약을 사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증세는 계속됐고 혈당이 자주 떨어지곤 했다. 몸살과 다른 통증이 불쑥불쑥 찾아왔다. 견디다 못해 119에 연락해 활동지원사와 구급차를 타고 집에서 가까운 국립대병원 응급실에 갔다. 대기번호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 채혈을 했다. 또 한참을 기다려 간수치가 너무 높게 나왔다는 결과를 듣게 됐다.

 

의사는 정밀검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정기적으로 다니던 병원이 있는지 물어봤다. 이곳에선 진료기록도 없고 환자도 많아 대기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 감안하고 진료를 받을지, 다니던 병원으로 옮길지 판단하라고 했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으로 가는 걸 선택했다.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면 진료기록이 있어 내 몸에 대한 설명을 줄일 수 있는 곳이 편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정기검진으로 입원했을 때 엄마가 기념으로 찍어줬다. 사진제공 은주

 

하룻밤 새 두 병원의 응급실을 가게 되는 예상치 못한 이동으로 활동지원사도 나도 녹초가 되었다. 도착한 응급실에서 또다시 채혈을 하고 CT를 찍으러 검사실에 들어갔다. 검사실에 누워 기다리는데 ‘환자는 자세가 나오지 않아 CT를 찍을 수가 없다’고 했다.

 

눌린 캔처럼 휜 척추는 등의 외관뿐만 아니라 몸속의 뼈와 장기도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게 했음을 알았다. 척추와 갈비뼈, 골반 뼈는 일직선이 아니라 휘어지고 눌려 영상으로 봐선 구분키 어려울 정도로 서로 겹쳐져 있었다. CT뿐만 아니라 MRI도 찍을 수 없어 영상의학으로 하는 검사는 받을 수 없었다.

 

다시 응급실 침대로 돌아와 CT를 찍을 수 없었다는 얘길 하고 병실이 배정되길 기다렸다. 검사를 못 받고 나온 나는 난제가 된 거 같았다. 의사와 간호사는 다른 검사방법을 찾기 어려워 난감해했다. 새벽부터 별다른 검사 없이 기다린 끝에 밤이 돼서야 일단 병실을 배정받았다.

 

의사는 간수치가 계속 올라가니 복강경 수술이나 개복 수술을 해보자고 했다. 수술에 필요한 마취를 하려면 폐활량 검사가 필요했다. 그마저 결과가 좋지 않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검사를 통한 결과가 없었기에 환자가 보이는 증상으로 병을 추측해서 치료를 시작했던 거 같다.

 

이제 할 수 있는 치료방법은 몇 가지 항생제를 써보며 간수치가 떨어지는 항생제를 찾는 거라고 했다. 맞는 항생제를 찾았으나 구토와 설사가 심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항생제 알레르기 반응이었다. 증상이 완화되는 처방을 요구했지만 항생제 반응으로 인한 증상엔 약이 없다고 해 견딜 수밖에 없었다. 계속되는 구토로 음식은커녕 물조차 마시기 힘들었다. 맥없이 자다가도 일어나 토하고 설사하길 반복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치료받고 나아서 퇴원을 했다. 울렁거림은 몇 달간 지속됐고 몸이 회복하는 시간은 1년 정도 걸렸다. 나는 무슨 병으로 아팠고 치료받았는지도 모른 채 퇴원했다. 몇 년 후 진료기록지 서류를 보고서야 담관염 또는 담낭염이란 질환이었음을 알게 됐다.

 

의료기기는 ‘정상’이라 말하는 몸에 맞춰진 검사기구라 나처럼 몸이 많이 틀어지고 휘고 구축된 사람들에겐 소용없는 진단기기일 때가 있다. 골다공증 검사도 같은 이유로 골반이나 척추 촬영이 불가능해 손목만 촬영했다. 손목으로 보이는 골다공증 지수는 높았다. 하지만 골반이나 척추 촬영으로 처방받은 게 아니라서 비급여로 처방받게 됐다. 의사는 난감해했다. 골다공증은 같은 약이라도 수치가 아닌 촬영 부위에 따라 수가가 매겨져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질병에 맞는 적절한 의료치료는 몸의 형태와 상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상’이라 말하는 몸이 아닌 ‘다른 몸’은 어떻게 검사해서 진료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의료검사기를 통해 진단을 받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나의 경험은 다수의 경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소개
은주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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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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