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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의 5개월 : 어느 아픈 대학생의 칩거 수기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등록일 [ 2020년05월14일 11시29분 ]

집 모양의 그림 위에 사람 이미지가 갇혀 있다. 사진 픽사베이


- 종강, 감기

 

낮은 면역력으로 환절기마다 꼭 감기에 걸리는 나는 학기 중에도 감기로 고생했다. 나의 지난 12월은 아파서 쉬거나, 아프지만 꾸역꾸역 나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겨우 나아진 몸은 1월이 되자마자 징조가 나쁘더니 두 번째 주에 다시 감기에 걸렸다. 가을에서 겨울로 가던 때에도 걸리더니, 감기는 그새 또 변형되었는지 종강 직후 추운 겨울에 나를 또 찾아왔다. 옷을 다섯 겹 입고 목도리까지 해도 소용이 없었다.


바쁜 학기를 보내느라 여러 만남을 미뤄두었기에, 이번 방학에는 사람을 많이 만나며 지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종강을 맞았다. 하지만 감기 때문에 나는 새로 잡은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 일주일쯤 뒤, 감기가 나아서 약속을 다시 잡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였다.

 

- 겨울, 칩거

 

그렇게 1월 중순부터 나는 칩거 생활을 시작했다. 불가피한 회의나 몇 일정을 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만 지냈다. 12월에는 아파도 학교에 가거나 일을 해야 했기에, 코로나19 발생 후 처음에는 집에서 쉴 정당한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 좋기도 했다(사람들은 ‘몸 상태’ 혹은 ‘컨디션’이라는 모호한 말을 정당하다고 여기지 않는 일이 많다). 나는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휴식을 취했다. 드디어 나의 몸에 자유가 주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몸이 좋든 안 좋든 집에 있어야 했고, 나가고 싶든 아니든 집에 있어야 했다.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도 나갈 수 없었고,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가는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었다. 자유가 아니라, 사실상 자가격리에 가까웠다. 면역억제제로 인해 면역력이 낮은 사람에게 감염병은 외부와의 모든 연결을 끊어 버렸다. 한국의 보건당국에서는 제대로 공지하지 않았으나, 여러 해외 정보에 따르면 나처럼 아자치오프린(Azathioprine)을 복용하는 사람은 위험군에 속했다.


내가 집에서 무엇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저 매일 책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키보드를 두들겼다. 게임을 하고 싶었지만 판데믹 상황에 PC방에 갈 배짱은 없었다. 이 기회에 영화나 많이 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만 있다 보니 한 번에 1시간 넘게 집중하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나는 길이가 짧은 드라마나 유튜브 영상만 보며 지냈다. 때로는 몸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이 사 먹는 음식보다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비록 답답했지만, 나는 내 몸에 맞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적어도 무리해야 하는 일들은 사라졌으니까.

 

- 봄, 식물

 

꽃이 피는 작은 나무부터 향이 가득한 허브까지, 지난가을부터 집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살고 있다. 학교 수업 보고서를 두 편이나 식물에 관해 쓸 만큼 나는 식물에 푹 빠져 있었다. 조금씩 뻗어 나오는 초록색 잎들을 보고 있으면 그 생명력에 나도 힘을 얻었고, 거의 움직이지 않는 정태적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안정감이 들었다. 나에게는 그런 느린 시간, 가만히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몸의 속도를 거슬러서 성과를 내라고 요구하는 세상에 반하여 조용히, 가만히 쉴 수 있는 일상이 필요했다. 나는 이런 시간을 ‘식물의 시간’이라고 이름 붙였다. 조용히, 천천히, 꾸준히 자라나는 시간. 아파도 쉴 수 없었던 학기에 내 일상을 지탱해 준 건 식물에 물을 주는 시간이었다.


작년 11월 말, 나는 어느 온라인 식물매장에서 싼값에 담쟁이를 샀다. 계절이 계절이라 이파리는 없었다. 물을 꼬박꼬박 주어도 반응이 없던 녀석이 봄이 되자 푸른 잎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파리는 순식간에 커지고, 가지는 길어졌다. 타고 올라갈 벽이 없어도 담쟁이가 손바닥만 한 이파리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신기하고 좋았다. 이파리의 색이 진해지고, 크기가 커지고, 중력에 따라 아래로 처지는 모습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식물에 대한 나의 감정은 복잡해졌다.

 

- 개강, 무력

 

사실상 12월 중순부터 나는 최대한 집에서 쉬려고 노력했고, 1월부터는 강제로 집에 있어야 했다. 개강 후에는 모든 학사일정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바이러스 확산이 소강상태에 접어든다고 생각하고 운동을 시작하려 했지만, 등록한 바로 다음 날에 집 근처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곧 거대한 규모의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나는 그새 다시 잡았던 약속들을 하나씩 취소해야 했다.


나는 점점 누워 있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몸이 안 좋아서 쉴 때는 항상 누워 있는데,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대체로 누워 지냈다. 이제는 매일 집에만 있으니 그게 관성이 되었다. 움직이지 않았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속한 단체에서 사업을 벌이지도 않았다. 무언가 해야만 했던 시기에는 식물을 동경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식물 같은 나 자신이 싫었다. 식물처럼 가만히 있지만, 식물만큼 성장하지는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성과를 위해 자기 몸을 혹사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나의 몸을 아끼는 데에는 여전히 미숙하다.


원래도 무력함은 나를 자주 찾아왔다.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이기도 했고, 원하는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비난한 탓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우울증도 신체 내 염증과 면역 체계의 영향을 받은 염증성 질환이라는 가설도 꽤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내 무력함도 면역억제제나 나의 심리 때문만이 아니라, 자가면역질환이자 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무력하게 멈춰 있는 나는 때로 천천히, 꾸준히 성장하는 푸른 식물들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그림자가 내린 방의 반쯤 닫힌 창문 앞, 끄트머리가 뾰족한데 전반적으로 둥그런 이파리들 너머로 창밖이 보인다. 밝은 낮, 창밖의 나무와 벽돌, 길은 방충망 때문에 흐릿하다. 사진 안희제

 

- 일상, 진단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방역이라는 일상에서 나는 매 순간 진단받는 기분이다. 2014년 7월, 의사의 “크론병입니다”라는 말의 의미는 ‘금지’였다. 관리를 제대로 못 하면 암에 걸릴 수 있다, 장을 잘라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 매운 음식도 안 된다, 과격한 운동을 하면 안 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 ……. 오직 생존을 위한 관리만이 삶의 목표가 된 것 같았고, 이는 진단에 앞서 의사 입에서 나온 “불치병입니다”라는 문장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의미는 사실상 같지만, ‘난치질환’과 ‘불치병’이 주는 느낌은 아주 다르다. 전자가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병이라면, 후자는 시한부 선고에 가깝다. 의사의 말들은 나에게 ‘진단’을 제약이자 금지로 각인했다.


바이러스 때문에 나갈 수 없고, 만날 수 없고,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감각은 내 일상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마스크도 없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 벚꽃을 보러 백만 넘는 이들이 여의도에 몰린 모습, 밤의 유흥가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모습을 화면 너머로 볼 때마다, 나는 누가 잘못했는지 알면서도 내 몸을 탓하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를 바랄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목소리들이 떠오르는 듯했다. 그 목소리들은 매 순간 나를 진단하는 것 같았다. 판데믹 안에서 진단은 만성화됐다.

 

“넌 밖에 나갈 수 없어. 집 근처에서 확진자 여럿 나왔잖아.”
“넌 버스도 타면 안 돼. 대중교통은 위험해.”
“밖에서는 밥도 먹으면 안 돼. 마스크를 쓸 수 없어서 감염될 수 있어.”
“회의는 무슨, 아프면 쉬어야지. 좁은 데서 말하다가 감염되면 어쩌려고?”

 

목소리는 때로 의사의 모습으로, 때로 건강한 사람의 모습으로, 때로 아프기 전의 내 모습으로 나타나서 한 마디를 덧붙이곤 했다.

 

“그리고 그건 다 너의 몸 때문이야.”

 

- 고립 너머

 

SNS를 열심히 해도, 가끔 친구들에게 전화가 오고 집에 가족이 있어도,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일상은 분명한 고립이었다. 원격으로 회의를 진행해 보자고 제안해도 실제로 진행된 일은 없었고, 외부 일정들도 대부분 대면 진행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도 오프라인으로만 행사를 진행하는 건강한 사람들은 감염병도 두렵지 않은 것인지 신기해하다 보면, 사망자의 98% 이상은 아픈 사람들이라는 통계가 떠오른다. 그렇지, 목숨 걱정은 단지 아픈 사람인 나의 몫이었다.


나는 창밖의 행인과 고양이와 나무를 구경하거나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모바일 게임의 노예로 살았다. 5개월의 고립이 가져온 일상이었다. 가끔 평화롭지만 대체로 아득하다. 이 막연한 고립 속에서 나는 사회적 활동들이 나를 지탱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쁠 때는 그저 피하고 싶었던, 아파서 빠져야 했고 취소되어도 아쉬움보다 안도감이 컸던 일정들이 사실은 나를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당장 내 몸이 편한 것보다 함께 다른 세상을 꿈꾸고,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일들이 나를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지금처럼 오로지 내 안전에만 골몰해야 하는 상황은 나의 몸뿐 아니라 사고의 범위도 내 방으로 한정하는 것 같다.


생존을 위한 격리나 칩거가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건 결코 자유가 아니었다. 몇 년도 아닌 5개월, 원래 살던 집에서조차 이런 고립은 자유가 아니었다. 휴식이 자유가 되려면, 휴식은 사회적 활동들 사이에서 가능한 선택지여야 한다. 나조차도 아프면 일할 수 없고, 사람들과 만날 수 없다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왔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이 나를 고립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와닿은 적은 없었다. 이런 고립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는 ‘난치의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번 사태가 건강한 몸이나 곧 낫는 몸이 아닌 ‘낫지 않는 몸’이 사회 안에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만남과 일의 방식을 모두가 함께 고민할 기회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이미 많은 기회를 놓쳤다. 이번마저 놓칠 수는 없다). 코로나19 참사 안에서 우리는 많은 문제를 마주했다. 장애인거주시설, 공공의료 부족, 정신장애인 폐쇄병동과 요양원, 콜센터나 택배사 등의 살인적인 노동 환경, 아픈 사람들의 감염에 대한 대비의 부족, … 이런 사회문제들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일상 자체를 새로운 몸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모두가 감염병을 관통하고 생존하여 삶을 지속하려면, 단지 비대면/원격 기술의 도입만이 아니라, 세상의 전제가 되는 몸을 아픈 몸으로 바꾸어 시간과 공간과 노동을 모두 다시 상상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를 위한 포스트 코로나의 ‘뉴 노말’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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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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