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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고 쫓겨나고… 서울역 떨꺼둥이의 반란
[칼럼]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 서울역 ①
등록일 [ 2020년05월26일 15시19분 ]

서울역은 서울의 첫인상이다. 21세기에 기차역을 도시의 관문이라 부르는 것은 다소 어색할 수 있겠지만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연결되는 공항철도 역시 서울역을 기점으로 한다. 서울역은 여전히 이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곳이다.

 

서울역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만남과 헤어짐, 애환을 담은 공간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모여 앉은 손주들에게 할머니가 들려주던 전쟁과 피난길 이야기의 종착지는 언제나 서울역이었다. “전쟁이 끝나면 헤어진 가족들이 모두 만날 때까지 토요일 12시 서울역 시계탑 앞에서 모이자”던 할머니의 가르침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기약 없는 이별의 재회는 서울역 앞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1925년 완공된 경성역의 모습. 사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https://museum.seoul.go.kr)

 

서울역의 첫 모습은 1900년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선 간이역사다. 염천교 아래 논에 가설된 간이역은 당시 용산역에 비해 규모가 무척 작았으나, 경성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경성역 건설로 이어졌다. 1925년 완공된 경성역은 만주방면의 국제열차가 오가는 철도 교통의 중추지가 되었다. 광복 이후 1947년에 ‘서울역’으로 개명한 이곳은 1957년에 서부역을 신설하는 등 규모를 확장해갔다. 서울올림픽에 맞춰 1988년에는 민자역사가 되고, 현재 우리가 이용하는 거대한 유리빌딩 서울역은 2004년 4월 1일 KTX 운행이 개통되며 새롭게 생긴 민자역사다. 옛 서울역사는 86년의 운행을 마치고 2011년 ‘문화역서울 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시설이 되었다.

 

이런 변화는 서울역 주변과 서울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 서울역 인근에는 인력사무소, 여인숙과 셋방 등 급한 일자리와 잠자리를 찾는 이들이 찾을만한 공간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차곡차곡 재개발을 거듭한 끝에 이제 쪽방은 동자동과 중림동, 남대문로5가동 일부 지역에만 남아 있다. KTX가 개통되고, 새로운 유리건물 아래 대합실이 마련되며 노숙인에 대한 강제퇴거 역시 강화되었다. 서울역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서울역 노숙인이 아닐까? 하지만 노숙인은 서울역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거리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서울역은 동료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그나마 안전한 곳이자, 지원기관이 인근에 있는 공간인 동시에 노숙인을 내몰고 실의에 빠뜨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2011년 한국철도공사의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에 저항하며 서울역사 내를 점거하고 있는 활동가와 홈리스들. 철도공사 직원이 다가와 퇴거 요청을 하고 있다. ⓒ김윤영

 

역전 떨꺼둥이의 죽음과 반란

 

2004년 7월 10일과 11일 사이,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27세 문아무개 씨가 철도공안(현 철도특별사법경찰대)의 단속과정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실물 보관소’에서 시신이 발견된 그의 사인은 압박에 의한 질식사. 철도공안에 의한 타살이었다. 8월 1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가 발표된 뒤 노숙인인권단체는 대책모임을 구성하고, 8월 25일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은 50일간 이어졌다. 철도청에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였지만 별다른 답변은 없었다.

 

그리고 2005년 1월, 서울역에서 또다시 이아무개(당시 만38세), 김아무개(당시 만40세) 씨의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노숙인들 사이에서는 이 씨가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1월 22일 사망 당일에 공익요원들이 폐지나 짐을 싣는 손수레로 죽어가는 사람을 이송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서울역에 몰려든 인근 노숙인 100여 명은 집기를 매표소로 던지며 두 시간가량 경찰과 대치하는 등 격렬히 항의하였고, 그로 인해 노숙인 6명은 폭력 등의 혐의로 연행되기도 했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원의 조사로 이들의 사망 원인은 간경화, 폐결핵으로 밝혀졌으나, 이 사건으로 공권력에 의한 지속적인 퇴거 위협, 폭언이나 강압 행위를 받아 온 노숙 당사자들의 분노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후 1월 28일,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는 ‘서울지하철 노숙자 대책 마련’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역 노숙자 시위 사태가 발생하는 등 역사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며 아래와 같은 대책을 발표했다.
 

◯역사 감시 활동 및 순회 점검 강화
역간부 및 공익근무요원 역사 순회 점검 1일 20회 이상 실시
당직자 순회 점검 강화
노숙자 발견 시 유관기관(구청, 경찰 등)에 즉시 조치요청
 
◯상습 노숙지역 물청소 실시
방뇨로 인한 악취 해소 및 물청소로 인한 노숙 사건차단 효과
 
◯관계기관(서울시, 구청 등)의 지속적인 단속 요청
◯서울시의 단속 강화 및 강제추방 등 행정조치 필요
역사 밖으로 강제추방 조치 가능토록 법적 처벌 근거 필요(인권문제 해소)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보호시설 강제수용 방안 필요
노숙자 문제는 공사 차원의 단속보다 정부 차원의 노숙자 자립 프로그램 추진 등 적극적인 지원으로 근본문제 해결이 바람직하다 사료됨


대책을 통해 볼 수 있듯 지하철공사에 노숙인은 퇴거의 대상이자 강제수용, 계도의 대상이다. 의자 사이에 놓인 손잡이, 기둥 아래에 달린 문어발 같은 받침대, 광장과 역 곳곳에서 시시때때로 이뤄지는 물청소는 시설이용자와 청결을 위한 것이기에 앞서 노숙인을 퇴거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용이 불편하도록 고안된 시설로 채워진 공간, 강제퇴거는 이렇게 고요한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강화되는 강제퇴거, 서울역에서 쫓겨나는 시민들

 

이후 강제퇴거는 더 본격적으로 되었다. 특히 2011년 7월 발표된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이 많은 비판을 받자 철도공사는 ‘야간 노숙행위 금지조치’로 표현을 순화했다. 열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 서울역 벽을 타고 잠자리를 폈던 이들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민원 때문에 퇴거를 한다지만 사실 이용객이 없는 야간 시간에 쫓겨나는 것이라 앞뒤가 맞지 않았다. 거리생활에 따른 여러 가지 위협으로부터 그나마 안전한 공간인 서울역에서 쫓겨나면 노인, 여성, 청소년 등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홈리스행동을 비롯한 단체들은 8월 1일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하고, 강제퇴거 조치에 항의했다. 하지만 8월 22일로 예정된 퇴거방침에는 변동이 없었다.

 

2011년 한국철도공사의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에 저항하며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서울역 내부에서 모임을 하고 있는 모습. ⓒ김윤영

2011년 한국철도공사의 노숙인 강제퇴거 방침에 저항하며 홈리스행동 등 활동가들과 홈리스들이 서울역과 자신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을 그렸다. ⓒ김윤영
 

강제퇴거 시행을 앞둔 8월 21일 ‘서울역 노숙인과 함께 하는 1박 2일 문화제’가 열렸다. 발언과 공연, 8월 1일부터 진행한 투쟁 경과를 공유한 뒤 문화제 참가자 50여 명은 서울역으로 향했다. 열차가 끊긴 새벽 1시 반이 되자 서울역 부역장 등 철도공안과 코레일 직원들은 퇴거를 요청했다. 참가자들은 서울역에 머물면서 서울역에서 사람들이 쫓겨나는 것에 항의하고, 공간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겠다며 퇴거 요청에 불응했다. 퇴거를 요청하는 직원들과 부딪히지 않고 그저 머무르기를 원했으나 지속적인 불법 채증, 경고 방송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불 꺼진 서울역 안에서 퇴거 요청을 반복하는 직원들의 경고 방송 너머 한 활동가가 뜻밖의 노래를 시작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뒤이어 모든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물과 악을 섞은 합창이 이어졌다. 하룻밤의 점거자들은 서울역 문이 다시 열리는 오전 4시 30분, 점거를 해제하고 광장으로 나왔다.

 

‘노숙인 인권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2011)에 따르면 응답자 중 31.5%는 서울역의 야간노숙금지조치 이후 퇴거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야간노숙금지조치는 열차를 운행하지 않는 야간시간뿐만 아니라 주간시간에도 행색이 남루하거나 오래 앉아 있는 경우 역사 밖으로 내쫓는 강제퇴거를 강화했다. 이는 노숙인의 심리에도 충격을 가했다. 억울함, 막막함, 두려움, 걱정이 대다수 거리노숙인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노숙을 하더라도 지붕 있는 곳에서 자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니 불안하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왜 못 들어가게 하냐’는 호소는 공공장소에서의 축출이라는 경험이 가져오는 불안과 무기력, 심리·사회적 외상을 방증한다.

 

서울역은 여전히 야간시간이 되면 문을 닫는다. 까만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경비용역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가방을 베고 누운 사람들을 깨워 쫓아낸다. 누적된 강제퇴거 경험 때문에 서울역에 아예 들어오지 않는 노숙인도 적지 않다. 대다수의 노숙인은 서울역에 머무르더라도 가급적 눈에 띄지 않는 공간에 있으려고 하지만 이마저도 발각되면 사라진다. 오늘도 서울역은 노숙인의 머물 자리를 지속적으로 구조조정한다. 출입금지 안전띠나 화단, 책상이나 의자 교체는 당신이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메시지로 활용된다. 이런 변화는 너무나 세밀해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지만, 그 공간을 이용했던 이들에게는 쫓겨난다는 감각을 반복해서 안긴다. 서울역을 이용하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공간의 역동은 살 곳 없는 시민들만을 표적 삼아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의 서울역 모습. 서울역 의자가 ‘접근금지’라고 적힌 테이프로 감겨 있으며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하여 의자사용을 중지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김윤영
 

◯ 참고자료
- 『노숙인 인권 실태조사 : 서울역의 야간 노숙행위 금지 조치가 노숙인 인권에 미치는 영향』, 국가인권위원회, 2011년
- “공안에 맞아 죽었다” 노숙인 100여명 경찰과 격렬 대치, 김도균기자, 민중의소리, 2005.1.23.
- "난동이라고? 당연한 인간적 저항이었다" - 노숙자 인권단체 기자회견..."서울시 강제보호 방침은 반인권적", 장윤선기자, 오마이뉴스, 2005.2.2.
- 서울역 노숙자 2명 사망...노숙자-경찰 충돌, SBS뉴스, 2005.1.23.
- 문화역 서울284 홈페이지
 

김윤영의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도시에서 자랐다. 가난한 이들을 쉽게 쫓아내고, 머문 자리마저 빠르게 지우는 도시에 애증이 있다. 서울 곳곳에 스며든/지워진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난한 이들이 빼앗긴 공간과 권리에 대해 돌아보는 ‘다크투어 칼럼’을 한 달에 한 번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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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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