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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장애인 투표보조 2인 동반’ 선거권 침해 아니다… 기각 결정
장애인 투표보조 시 가족 아닌 경우 반드시 2인 동반 담은 공직선거법 조항 ‘합헌’
중증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단독 투표보조 원했지만 선관위 저지로 투표 못해
등록일 [ 2020년05월27일 19시25분 ]

헌법재판소는 27일,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에 대해 투표보조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2인을 동반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같은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은 안국동 헌재 앞에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공직선거법 헌법소원 심판청구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이가연
 

헌법재판소(아래 헌재)가 장애인의 투표보조 시 가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2인을 동반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장애인의 선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며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기각하자 장애계가 분노했다. 

 

헌재는 27일, 재판관 6:3의 의견으로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에 대해 투표보조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2인을 동반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아래 심판대상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한편, 반대의견을 낸 3명의 재판관(이선애·이석태·문형배)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청구인 정명호 씨는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중증뇌병변장애인(과거 장애등급 1급)으로, 일상생활 시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 정 씨는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 투표를 위해 인천 계양구 계산3동 제4투표소에서 활동지원사 1인만을 동반하여 기표소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인천시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는 심판대상조항을 근거로 활동지원사만 동행하는 기표소 출입을 제지했고, 결국 정 씨는 투표하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정 씨가 자신의 투표권 행사에 대해 활동지원사 이외의 사람에게 공개하는 것을 명확하게 거부했음에도 선관위로부터 제지를 받은 것이다.

 

이에 정 씨는 선관위가 제지한 행위 및 심판대상조항이 자신의 선거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2017년 8월 5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2017헌마867). 

 

헌법소원 청구인 정명호 씨가 기각 결정 선고를 듣고 난 뒤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다수의견 “투표보조인 1인은 공정성 해칠 수 있고, 현 제도보다 나은 방법 찾기 어려워“

 

그러나 정 씨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지 약 3년이 지난 오늘, 헌재는 정 씨가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선거권을 침해당하지 않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또한, 헌재는 선관위가 제지한 행위에 대한 청구는 기본권 침해가 종료되었다는 이유로 각하했으며, 선거권 이외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평등권 침해 여부에 대해서는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에 대해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들은 장애인거주시설의 관계자들이나 보조인들로부터 영향을 받기 쉬워 중증장애인의 선거권 행사를 대리투표로 악용하는 선거범죄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투표보조인 1인만을 동반하면서 투표보조 요건과 절차를 엄격히 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그러더라도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고 오히려 투표보조 제도의 활용을 더 어렵게 만들어 중증장애인들이 선거권 행사를 포기하게 될 수 있다”라며 대안이 생기더라도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헌재는 투표보조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기표행위를 할 수 있도록 선거용 보조기구를 마련하는 일이 쉽지 않다고 보았다. 헌재는 “중증장애인들의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따라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선거용 보조기구를 모두 마련하기는 쉽지 않고, 새로운 보조기구를 도입하는 데에는 종합적인 고려가 필요하며, 이를 도입하더라도 여전히 보조인이 필요할 수 있다”라며 지금의 투표보조 방식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판단했다.

 

나아가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에서 투표의 비밀이 유지되도록 투표보조인의 상호 견제가 가능한 최소 인원인 2명을 정하고 있으며, 선관위가 2인을 동반하지 않을 시 투표사무원 중 투표보조인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고, 공직선거법상의 처벌규정을 통해 투표보조인이 비밀유지의무를 준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며 심판대상조항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헌재는 위와 같은 사항을 종합해볼 때 심판대상조항이 과잉금지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며 정 씨의 선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대의견 “선거권은 정치적 자기결정권… 공정성 위해 비밀선거의 중요성 간과”

 

그러나 3명의 재판관은 위와 같은 다수 의견에 반대하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들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정 씨의 주장에 동의하며 다수의견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은 “투표를 통한 정치적 의사표현은 가장 내밀한 영역에 해당한다”면서 “선거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투표보조인의 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하고, 2인의 투표보조인에게 투표의 내용을 공개해 선거권 행사를 위축시킨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투표사무원 중 추가로 투표보조인을 선정하는 것은 선거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뢰관계가 형성된 적 없는 낯선 제3자에 대해서까지 자신의 내밀한 정치적 의사를 공개하도록 하며, 비밀유지의무 위반 시 처벌하는 규정이 있더라도 선거의 자유가 위축되는 것 자체는 막지 못한다”라면서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는데 치우친 나머지 비밀선거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어 선거권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스스로 기표행위를 할 수 있는 선거도구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다수의견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들은 “단번에 모든 장애인을 만족시키기 어렵더라도 장애 유형과 정보에 맞게 신체에 장애가 있는 선거인이 스스로 기표할 수 있는 선거용 보조기구나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는 기표방법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청구인의 법률 대리를 맡은 김재왕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장애계 “헌법,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있어… 참정권 쟁취 위해 더욱 투쟁할 것”

 

27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은 안국동 헌재 앞에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공직선거법 헌법소원 심판청구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을 앞두고 청구가 기각되자, 결정을 기다리던 주최 측과 참가자들은 일제히 탄성을 내뱉었다.

 

사건의 변호를 맡은 김재왕 희망을만드는법(아래 희망법) 변호사는 청구가 기각된 뒤 어두운 얼굴로 헌법재판소를 나왔다. 김 변호사는 “대리인으로서 마음이 무척 무겁고 정 씨에게 죄송스럽다”라며 “우리의 투쟁은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더 열심히 투쟁할 것이다. 그래야 국민들과 재판관들의 생각도 바뀌고 공직선거법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청구인 정명호 씨 또한 “3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저지를 당하는 취급을 받자 분통이 터져 위헌소송을 제기했다”면서 “장애인도 국민의 한 사람이다. 이번 일이 선거 과정을 바꿔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헌재의 결정에 분노했다. 문 대표는 “활동지원사는 중증장애인이 스스로 판단과 결정을 내리면 대신 지원한다. 투표 또한 마찬가지인데 공직선거법은 가족이 아닌 경우 반드시 2인을 동반하도록 하면서 여전히 가족을 장애인의 보호자로 인식한다”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문 대표는 헌재의 판단에 대해 “헌법은 살아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7,80년대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의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재판관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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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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