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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자유’ 이유로 임신중지시술 거부한 의료진,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
[이슈페이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등록일 [ 2020년05월31일 17시07분 ]

위기 속에서도 보통 사람들의 영웅담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판데믹 속에서 전 세계 많은 보건의료인들의 헌신과 희생을 매일 목격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병들고 고통받고 죽어가는 전 지구적 위기와 싸우는 보건의료인의 헌신은 당연히 칭송받아야 하지만 이들도 기본권의 주체로서 건강권, 생명권, 노동권을 보장받으며 업무상 재해와 질병의 위험이 최소화된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편 보건의료인도 개인으로서 양심의 자유를 가집니다.

 

많은 국제 및 지역인권규범 그리고 각국 최고재판소에서 양심 혹은 신념에 기반하여 환자들이 원하는 임신중지, 불임, 보조생식 등 재생산 건강 의료 혹은 종말기 의료 관련 시술 등을 거부하는 의사, 피임약/사후피임약을 판매하지 않는 약사 등의 경우에 대하여 이 권리의 범위를 묻는 여러 소송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2020년 3월 12일의 유럽인권재판소 판례를 소개합니다.

 

유럽인권재판소.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유럽인권재판소: 그림마크 대 스웨덴 사건

 

이 사건 청구인인 엘리노어 그림마크씨는 2010년부터 스웨덴에서 간호사로 근무했습니다. 그림마크씨는 2012년 3학기 동안 조산사 훈련을 받기 위해 휴직을 신청했습니다. 수련 중이던 2013년 A 여성클리닉의 여름 임시직에 지원하면서 자신은 종교적 신념과 양심을 이유로 임신중지시술에 보조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 지원에는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B 여성클리닉에 지원하면서 역시 같은 신념을 밝혔고 클리닉은 임신중지에 대한 예외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거절의 뜻을 밝혔습니다. 한편 그림마크씨는 반차별 옴부즈만에 위 두 사건을 신고하였는데, 사건에 대한 언론 인터뷰가 세 번째 지원한 C 병원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C병원은 임신중지에 대한 입장을 재고할 수 있는 카운슬링을 제공하고자 하였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고 이곳에도 고용되지 못했습니다.

 

2014년 그림마크씨는 옴부즈만의 기각 이후 고용 거부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지방법원에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고 이어서 항소법원, 노동법원에서도 동일한 판단을 받았습니다. 그림마크씨는 본인의 고용 거부가 종교에 기반한 차별이라고 주장했으나 옴부즈만과 법원은 임신중지를 포함하여 업무에 필요한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은 중립적이고 정당화되며 필요적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이 요건이 종교의 자유와는 관련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그림마크씨는 이 사건을 유럽인권재판소에도 제기하였고 재판소는 비슷한 사건에서의 종전 결정과 일관적인 입장을 설시하였습니다. (유럽인권재판소(2020), Grimmark v. Sweden, App. No. 43726/17)


재판부는 유럽인권협약 제9조1)상 개인의 종교의 자유는 보호되지만 제9조 제2항2)의 제한에서 보듯 신념을 공적으로 표현하고 실천하는 행위는 법률에 규정되고, 공공의 안전, 공공질서, 보건, 또는 도덕, 또는 다른 사람의 권리 및 자유의 보호를 위하여 민주사회에 있어서 필요한 경우에 제한받을 수 있다고 주지했습니다.

 

재판부는 청구인이 겪은 제한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필요했고 비례적이라고 보며 종전 2011년 R.R. 대 Poland 사건의 입장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스웨덴은 전국적으로 임신중지 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전문적인 맥락에서 보건의료 전문가가 양심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그러한 서비스의 제공을 방해하지 않도록 국가가 보건의료체계를 조직해야 하는 적극적인 의무가 있다. 모든 조산사가 그 직무에 필요한 의무를 다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건은 균형적이고 정당화된다.”

 

양심의 자유


양심의 자유는 종교적, 철학적 또는 기타 신념에 근거하여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거나 자제할 권리로서 국제인권조약 및 국내 헌법에서 보호되는 중요한 인권입니다.

 

세계인권선언 제18조는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 또는 신념을 바꿀 자유, 단독 또는 타인과 공동하여 공적 또는 사적으로 포교, 행사, 예배 및 의식을 통하여 종교나 신념을 표명할 자유를 포함한다”고 하고 있으며 이를 구체화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규약) 제19조에서도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종교나 신념을 가지거나 받아들일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예배, 의식, 행사 및 선교에 의하여 그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권리가 그러하듯 이는 절대적인 권리는 아닙니다. 자유권규약 제19조는 제3항에서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는, 법률에 규정되고 공공의 안전, 질서, 공중보건, 도덕 또는 타인의 기본적 권리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받을 수 있다”고 하며 제한이 정당화되는 경우를 설시합니다.

 

UN조약기구를 비롯한 국제인권규범은 국가에 의료에서의 양심적 거부를 인정해야 할 국제인권법적 의무가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허용한 경우, 임신중지 서비스 접근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했습니다. 입법한 국가의 경우, 다른 제공자에 대한 엄격한 의뢰(referral) 의무를 부여하며, 긴급하거나 응급상황에서는 허용할 수 없으며, 양심의 자유는 자연인에게만 인정되므로 개인이 아닌 병원·기관 차원에서 이를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주지하며 규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편, 양심의 자유 하에서 논의되는 군사와 관련된 ‘양심적 거부’와 그 외 직업에서의 ‘양심에 기반한 거부’는 맥락과 양상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본권을 제한당하는 징집제에 대하여 개인의 양심에 기반한 선택을 요구하는 것과 공적 서비스나 정부로서의 의무를 제공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고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며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에 대한 대안적 제공자에게도 의뢰하지 않아 여성의 건강과 생명을 침해할 수 있는 상황을 허용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보이며, 이는 위의 국제인권규범의 입장 차이에서도 확인됩니다.

 

2018년 아일랜드의 임신중지금지 헌법조항 개정운동에 함께한 ‘선택을 위한 조산사들 Midwives for Choice’. 사진 facebook.com/midwives4choice

 

‘양심적 헌신’의 이야기


새삼 상기해봐야 할 점은 어떠한 의료시술도 이렇게 다양한 제3자들의 간섭과 방해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성은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기반하여 숙고하여 결정했을 것입니다. 양심 혹은 신념에 따른 의료행위 거부를 비롯한 행정적 절차적 접근의 장벽들은 오히려 헌법불합치 결정 이전보다 여성의 의료접근권과 건강권 및 생명권을 해칠 수 있습니다.

 

갈등과 충돌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이지만 사실 임신중지에 있어서 신념에 의한 의료제공 거부보다 오히려 신념에 의한 의료제공과 헌신(양심적 헌신 conscientious commitment)의 역사가 더 깁니다. 자신이 고용된 종교 기반 병원에서 환자를 거부하려 하고 국가에서 까다로운 행정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동안, 많은 의사들이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이 어려움을 뚫고 기꺼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자신이 아니면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가 없는 외딴곳에서 의료인으로서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 어려운 개업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세계산부인과연맹(FIGO)의 가이드라인은 말합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의 1차적인 양심적 의무는 그들이 치료를 책임지는 환자들을 치료하거나 혜택을 제공하고 해악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양심적 거부도 이 1차적인 의무에 부차적입니다.”

 

앞으로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은 ‘거부권’ 등 장벽을 높이는 일이 아니라, 여성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직업적 양심과 근거에 따른 의료를 행하는 보건의료진들이 지지받고 차별받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일 것입니다.

 

*                  *                  *

 

1) 제9조(사상․양심․종교의 자유) 1.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자기의 종교 또는 신념을 변경하는 자유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 또는 사적으로 예배, 선교, 행사와 의식에 의하여 그의 종교 또는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2) 자기의 종교 또는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는 법률에 규정되고, 공공의 안전, 공공질서, 보건, 또는 도덕, 또는 다른 사람의 권리 및 자유의 보호를 위하여 민주사회에 있어서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받을 수 있다.

 

○ 참고문헌

- Bernard M. Dickens, “The Right to Conscience”, Abortion Law in Transnational Perspective: Cases and Controversies
- Reproductive Rights Center, Law and Policy Guide: Conscientious Objection
- 세계산부인과연맹(FIGO), Ethical Issues in Obstetrics and Gynecology


* 비마이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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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희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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