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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급 빈곤층 89만 명, 알바생 수진 씨 이야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공모전 수상작
등록일 [ 2020년06월04일 16시22분 ]

누구에게나 가족이 따뜻한 공간은 아닙니다. 빈곤층에게 가족은 때로 부담이 되기도 하며,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위한 수기공모전 ‘가족, 짐이 아닌 동반자로’를 진행했습니다. 공모전 수상작 중 세 편을 당사자와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수진 씨, 요즘 많이 힘들지? 할머니는 좀 괜찮으셔?”


“할머니는 강한 분이니까 꼭 일어나실 거예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하는 수진 씨는 나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올해 스물다섯 살 된 아르바이트생이다. 아르바이트생으로는 보기 드물게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해 꽤나 믿음직스러운 구석이 있는 친구다. 몇 달째 함께 일하면서 나와는 언니 동생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다.


매번 점심식사를 같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살아온 얘기들을 나누게 됐는데, 자세히 들어 보니 수진 씨의 사정이 꽤 딱했다.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가 쓰러져서 입원한 후로는 대학을 휴학하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간신히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15시간 이상을 일하는 강행군이었다. 이야기를 전해 듣기 전까진 구김살 하나 없는 평소 모습에 그렇게 형편이 어렵고 힘든 상황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털모자를 쓴 사람의 뒷모습. 사진 언스플래시


부모님을 모두 여윈 수진 씨에게는 연락이 닿지 않는 작은아버지가 한 분 계시다고 들었다. 젊은 시절 집을 나간 후로는 연락이 닿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할머니나 수진 씨에게 가족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호적상 가족인 작은아버지가 재산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할머니와 수진 씨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 얼굴도 모르고 왕래도 하지 않는 작은아버지의 존재 때문이다.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딱한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수진 씨가 딱해 보였다. 


개인적으로 알아보니 부양의무자 기준은 가난을 구제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제도였다. 소득과 재산이 있는 1촌의 직계혈족과 배우자가 있으면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될 수 없다. 연락도 닿지 않는, 부모를 부양할 의사가 전혀 없는 부양의무자 때문에 가난하지만 기초생활보장을 받지 못한 비수급 빈곤층이 지난해 기준 89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수진 씨 가족도 그중 하나다. 


하루는 수진 씨가 내 앞에 서서 무슨 말인가 꺼내려다가 몇 차례 입술만 달싹거리고 만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나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머뭇거리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한다. 할머니 수술비로 돈이 많이 들어가서 당장 월세며 차비, 식비 등 생활비가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주변에 아는 친척도 없고 돈을 빌릴 데도 없다고 했다.


수진 씨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바닥을 향해 낮게 내리깐 눈망울은 울음을 애써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술비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돈 100만 원을 빌려달라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 얼마나 망설이고 고민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수진 씨가 행여 상처라도 받을까 봐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진 씨, 걱정 마. 내가 빌려줄게. 여윳돈이 많으면 좀 더 도와주고 싶은데 나도 요즘 사정이 어려워서 100만 원 정도밖엔 없네. 그런데 정말 100만 원이면 되는 거야? 병원비 많이 모자라?”


“너무 고맙습니다. 수술비는 모아 놓은 돈으로 어떻게 간신히 마련했는데, 당장 생활비가 없어서요. 월세도 이미 두 달이나 밀렸거든요. 제가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꼭 갚을게요.”


수진 씨는 끝내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런 수진 씨가 더 안쓰럽고 측은해 보였다. 나는 수진 씨가 최대한 민망하지 않게 다독이면서 200만 원 정도를 빌려주었다. 


본래대로라면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이 국가로부터 적절한 지원과 대우를 받았을 텐데 수진 씨의 눈물이 안타까웠다. 어쨌든 내 말을 들은 수진 씨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치 절망이 희망으로 바뀐 듯한 표정이었다.


앞으로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어서 수진 씨와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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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진(가명)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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