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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 기억이 정말 틀렸더라도
[칼럼]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등록일 [ 2020년06월06일 19시02분 ]

기억과 거짓말, 그리고 경험의 관계를 고민할 때 나는 나의 할머니를 떠올린다. 그는 때로 다른 이들 앞에서 아들이나 손자가 서울대에 갈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고 말하고, 사 온 김치가 너무 맛있으면 자신이 그 김치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둘 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들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할머니를 이해하고 싶었던 나는 왜 하필 그 상황에서 그런 거짓말을, 그런 목소리와 표정으로 하셨는지 고민해야 했다.

 

할머니에게 ‘서울대 안 간 아들과 손자’, ‘직접 만든 맛있는 김치’는 어떤 의미였을까. 할머니의 서울대와 김치를 이해하려 할 때 나에게 필요했던 건 다름 아닌 한국 근현대사였다. 나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태어나서 한국전쟁을 거쳐 지금까지 생존하신 할머니의 삶을 상상해야 했다. 내가 아는 사실은 많지 않았다. 그는 은수저 하나 때문에 다른 집에 팔려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왔고, 국민학교만 겨우 다닐 수 있었고, 해방과 한국전쟁 후에는 남편과 세 아들과 함께 살아남아야 했다.

 

할머니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그가 정신병원에 한동안 입원해서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날은 큰 전환점이었다. 그날, 할머니의 거짓말을 부정해서는 할머니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때부터 중요한 건 진위보다 할머니의 감정과 욕망이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대학과 김치가 아마도 어머니와 아내라는 역할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그만두어야 했고, 많은 식구가 먹고 살 만큼 돈을 벌어야 했던 1933년생 나의 할머니에게 삶의 가치 중 큰 부분은 ‘아들들을 잘 먹여 잘 키우기’에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할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내 역사의 일부라고 배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 그리고 독재 정권 시절의 대한민국이라는 관념은 할머니의 삶으로 구체화되었다.

 

할머니를 이해하는 과정의 중심에는 손상이 있었다. 정신적 손상은 누군가를 불신해도 된다는 근거로 사용되곤 하기에, 과하게 강조되거나 아예 부정된다. 둘 다 부족했다. 나에게는 손상과 할머니가 관계를 맺어 온 역사가 중요했다. 역사와 함께 할머니의 기억과 경험을 구성해 낸 할머니의 손상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나는 할머니를 손상으로 환원할 수도, 손상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지난 5월 25일 기자회견을 하는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씨. 사진 뉴스민

 

여성인권운동가 이용수 씨의 기자회견 이후, 누군가는 노화를 강조하며 그의 기억을 불신했고,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다며 이러한 태도가 2차 피해를 일으킨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의도가 다를지언정, 기억이 왜곡되지 않았다는 단언과 왜곡되었다는 비난은 둘 다 기억에 겹겹이 포개어진 당사자의 감정과 손상이라는 현실을 외면한다. 진실 공방으로 논의가 수렴되는 상황에서 손상은 부차화되고, 일부 언론들은 오보 및 왜곡이 섞인 폭로와 “단독” 기사들을 내보낸다. 논쟁은 서로를 존중할 때만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일 수 있는데, 이 논쟁 안에서는 누구도 존중받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다른 활로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용수 씨의 정신적 손상이 의료적으로 밝혀지거나, 사료(史料)로 증언이 반박된다면, 그때도 사람들은 이용수 씨의 편에서 지금처럼 강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지지의 근거가 당사자의 기억뿐이라면, 당사자의 말이 틀렸을 때 그를 지지할 이유는 사라진다. 지금처럼 편이 갈려 혼잡한 논쟁이 오가는 상황에서, 사태는 지지 철회 정도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그의 기억과 경험, 활동에 대한 포괄적인 부정과 개인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논쟁을 거들었던 언론과 시민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논쟁이 이 사회의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지려면, 우리는 진실 공방과 공동체적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책임자의 처벌을 넘어서, 피해자의 회복과 공동체의 재조직, 우리를 둘러싼 역사와 맥락의 이해를 위해서는 모두의 성찰이 필요하다.

 

여기서 난 손상의 인식론을 제안한다. 손상의 인식론은 손상을 중심으로 쟁점을 다시 해석한다. 손상을 부정하지 않고 개인의 정체성과 이야기에 통합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의 역사와 나의 삶이 깊이 관계 맺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노화 등으로 인한 정신적 손상으로 이용수 씨의 기억이 왜곡되었다고 전제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왜곡될 수 있는 그의 기억이 왜 하필 지금과 같은 형태로 왜곡되었는지, 자신의 기억과 생각을 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꺼내게 되었는지 고민해야 한다. 덮어놓고 믿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억 왜곡에 영향을 주고, 지금과 같은 논쟁의 배경이 되는 역사와 맥락을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진실 공방이 유일한 논쟁이 되면, 우리는 발화자의 수많은 모습을 삭제하고, 그의 이야기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이해한다. 하지만 이용수 씨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면서, 동료들과 친구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이고,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경험은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 위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민 사회의 수많은 논쟁과 함께 구성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 모두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두 수사관이나 법관이 될 필요는 없다. 사법이 아닌 공동체의 관점에서,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의 토대가 된 역사와 사회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나의 위치를 성찰하자. 당사자가 정신적 손상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손상의 인식론은 그저 듣고 판단하는 대신, 그의 역사와 나의 역사를 연결하며 이야기를 함께 써나가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의심과 수사가 답이라는 말만큼, 경청과 믿음이 답이라는 말에도 반대한다. 많은 문제는 그저 듣고 믿었기 때문에 생겼다. 우리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써나가야 한다. 곁에 있는 이의 손상을 직면하자. 정말 있을지 모를 노화의 영향과 기억의 왜곡이라는 손상을 부정하지 말자. 누군가의 기억에 대한 의문이나 판단이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고 성찰하고자 하는 마음을 압도하게 두지 말자. 우리는 수사관이나 법관보다는 인류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 사람의 이야기와 기억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설령 그 기억이 정말 틀렸더라도.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크론병과 통증을 정체성으로 수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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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제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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