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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기준 상향과 함께 사라진 청소년의 ‘동의 능력’
‘N번방’ 이후 급히 개정… “미성년자=무력한 존재로 규정” 우려
청소년과 장애인에게는 묻지 않는 동의 능력… 동의역량 실천할 기회 주어져야
등록일 [ 2020년06월08일 15시15분 ]

한국성폭력상담소가 4일, ‘16세 미만의 동의: 가해자 처벌과 역량 보장 사이에서’라는 주제로 온라인 이슈대응 집담회를 열었다. 사진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
 

지난 5월 19일, 형법 상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기준이 만 13세에서 만 16세로 상향됐다. 그동안 형법 제305조에 근거해 만 13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 또는 추행한 자는 상대방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해왔다. 그런데 올해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착취 및 성착취물 제작·배포가 드러나자, 법무부와 국회에서는 신속하게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만 16세로 높였으며, 5월 19일부터 법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의제강간 연령을 높여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우선, 과연 만 16세 미만의 사람들은 동의 능력이 없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의제강간 연령 기준과 유사하게 장애인에게 동의능력을 묻지 않고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증명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래 성폭력처벌법) 제6조를 참고할 수 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을 엄중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과연 정말로 장애인의 ‘동의 능력’을 제외했을 때 성범죄 가해자는 엄중 처벌됐을까? 가해자 처벌을 넘어 이 사안에서 고민해보아야 할 또 다른 지점은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과 고민을 가지고 한국성폭력상담소는 4일, ‘16세 미만의 동의: 가해자 처벌과 역량 보장 사이에서’라는 주제로 이슈 대응 집담회를 열었다.

 

가해자의 행위·국가 통제가 아닌 ‘피해자 동의’를 기준으로 성폭력 문제 고민해야

 

먼저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활동가는 현재 한국의 법체계가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 아닌, 가해자 행위를 중심으로 폭행 또는 협박, 성기 삽입 여부로 성폭력을 판가름해왔다고 설명한다.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 행위나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의 경우에도 역시 피해자의 자기 의지보다는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인지 등을 그 기준으로 두고 있다. 이처럼 지금의 법은 피해당사자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성폭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행위와 국가가 통제하고자 하는 규범과 도덕을 기준으로 다룬다.

 

따라서 ‘동의’를 기준으로 성폭력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피해자를 누군가의 보호와 통제 속에 있는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자율권을 지닌 한 개인으로 인정해야 한다. 두 번째로 가해자의 행위를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피해자의 맥락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세 번째로 음란한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 대 개인’의 구도가 아닌, 개인에게 행해진 폭력의 맥락과 사회적 조건을 문제로 삼는 ‘국가-가해자-피해자’의 구도로 보아야 한다. 네 번째로 폭력의 개념을 ‘폭행이나 협박’이 아닌 개인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다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호받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기보다는 ‘누구나 성적 권리를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동의의 원칙’을 담은 슬라이드. 위에서부터 ‘동의는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존중, 소통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Yes or No만 문제 삼지 않는다’, ‘동의의 맥락과 조건이 중요하다’, ‘개인의 자율권과 관련된 모든 행위가 동의의 대상이다’, ‘동의는 매번 확인되어야 한다’, ‘동의는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라고 적혀있다. 슬라이드 제작 나영. 사진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
 

그러나 청소년은 동의 역량 실천해볼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즉, 성폭력을 존엄한 개인의 권리침해 문제로 바라봤을 때, 단순히 나이나 장애를 근거로 동의 역량이 없다고 판단하고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그보다는 사전에 우리 사회가 당사자의 동의를 보장할 수 있는 요건들을 충분히 마련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사건 당시의 행위만이 동의의 대상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서로 간의 동의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동의는 매번 확인되어야 하고 언제든 철회될 수 있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나영 활동가는 동의에 대한 논의에서 삭제되는 맥락을 강조하면서 청소년과 장애인을 꼽았다. 이들은 집, 시설,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 되며, 성적 주체이기보다는 성적 대상으로 간주하여 동의 능력조차 없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나영 활동가는 의제강간 연령 상향에 대해 모두가 제대로 된 판단능력을 갖추고 있기도 하고 어떨 땐 아니기도 한데, 청소년이라고 무조건 동의 역량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청소년은 동의 역량을 실천해볼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기에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조건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나영 활동가는 최근 18세 청소년에게 참정권을 보장한 것과 같이 청소년의 권리가 더욱 확대되고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의 판단 능력에 대해 나이를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조건들을 늘려가면서 동의 역량의 쟁점을 돌파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청소년에게 안전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공간을 지원해야 한다. 집, 쉼터 등 ‘성인들이 보호해주는 쉼터’라는 전제를 넘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원을 만들어주고, 이를 통해 다른 폭력적인 관계로 가지 않게끔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사회적 편견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능력 등을 가질 수 있는 포괄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 

 

민들레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성폭력상담소

 

‘장애로 인한 항거 불능’ 증명해야 하는 성폭력처벌법… 장애인을 무력한 존재로 만들어

 

민들레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평등권과 마찬가지로 성적권리는 모두가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특히 성적 실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신체장애인이나 성적 욕망을 조절할 수 없다고 낙인찍힌 발달장애인은 쉽게 부정되고 통제받는 대상이 된다.

 

성폭력처벌법 제6조 제4항은 폭행, 협박이 없어도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한 항거 불능 상태가 입증되면 상대방을 처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마치 피해자가 장애인인 경우, 쉽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피해자는 두 가지 쟁점을 규명해야 한다. 먼저 피해자는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또는 항거 곤란 상태’임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때 전형적인 무력한 피해자 상을 강요받는다. 또한 ‘가해자가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 또는 항거 곤란 상태를 이용하였음’을 검사가 입증해야 하지만, 가해자가 ‘장애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거나 ‘서로 합의된 성관계’임을 일관되게 주장하면 처벌이 어렵다. 결국, 이 법에 따라 장애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으려면 누구나 장애인이라고 인지할 만큼 장애를 인정받아야 하며, 이로 인해 어떠한 저항 능력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민들레 활동가는 장애인이 성폭력에 노출되는 이유는 단순히 장애인의 장애 자체가 아닌, 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보호받아야만 하는 낮은 사회적 위치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 외에도 장애인은 일상적으로 차별과 통제를 경험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폭력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저항을 해도 실패한 경험이 많아 저항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나 자원에 대한 정보접근성이 제한되어 정보 및 교육이 부재하고, 제한적인 사회관계 등으로 인해 인적·물적 자원이 없거나, 가해자가 가족인 경우에도 피해를 호소하기 힘들다.

 

‘미성년자=동의 여부 결정 못 하는 무력한 존재’로 규정, 연령에 의한 위계 강화 우려도

 

그렇다면 미성년자에 대한 의제강간 연령이 16세 미만으로 상향된 것에 대한 함의는 무엇일까?

 

먼저 민 활동가는 이번에 개정된 법률이 실제로 안전을 명목으로 타인의 성적 권리를 제한하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법률에서 미성년자는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기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나이로 인한 위계가 강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 활동가는 “특히 N번방 사건을 통해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을 일부 가해자의 악랄함이나 피해자의 무능함, 미성숙함으로 돌리는 태도가 너무 우려스럽다”면서 “막상 N번방과 같은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여론에 밀려 졸속으로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간 여러 인권단체가 논의한 의제들은 무시한 채 정부와 사법부, 국회는 비난과 책임에서 회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나아가 민 활동가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처벌법이 실제로 피해자가 어떠한 위치가 되기를 강요하고 있고, 가해자에게 어떻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지 반면교사로 삼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 활동가는 “만일 강간죄의 구성 요건에 ‘동의’가 포함되더라도, 피해자의 ‘동의 능력’에 집중하여 가해자와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권력 구조와 ‘피해자의 위치성으로 인한 동의할 수밖에 없는 조건’까지 고려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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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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