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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매뉴얼은 죽음을 멈추지 못한다
우리나라 첫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에 부쳐
등록일 [ 2020년06월25일 11시50분 ]

코로나19 사망자를 애도하는 얼굴 없는 영정사진 11개가 국가인권위원회 계단에 놓여있다. 그 앞에는 국화꽃 한 송이씩 놓여있다. 사진 박승원

 

너무 초라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앞 다투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그것도 모자라 기본소득이니 전국민 고용보험이니 하는 대논쟁이 시작되어 버린 시대, 천문학적인 예산을 연신 갱신하며 1차, 2차, 3차 역대급 추경을 이어가는 시대,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며 호들갑을 떠는 시대, 이 혼란과 역동의 시대에 이 땅의 장애인과 그 가족이 감염 발생 5개월이 지나서야 손에 쥐게 된 우리나라 첫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 말이다. (관련 기사 : 복지부, 장애인 감염병 대응 매뉴얼 첫 마련) 있는 자들은 확실함이 불확실해지는 것을 공포라고 여기겠지만, 없는 자들은 불확실함이 확실해지는 것이 더 두렵다. 이번 매뉴얼은 확실일까, 불확실일까.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이 매뉴얼은 죽음을 멈추지 못한다.

 

첫 번째 이유는 문제설정에 있다. 복지부는 감염병에 장애인이 취약한 이유를 ‘바로 그 장애인의 특성’에서 찾았다. 결국 감염에 불리한 원인이 자신의 장애에 있다는 말이다. 왜 수용시설의 장애인의 면역이 더 낮은지, 왜 장애인은 기저질환이 잘 확인되지 못하는지, 왜 그 많은 장애인이 자기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병원에 잘 가지 못하는지, 정부는 스스로가 말하는 그 장애인의 특성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관해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 많은 코로나19 관련 통계에서 장애인 간의 상관관계를 찾으려는 노력도 없다. 줄줄이 세상을 떠난 장애인들 앞에서 뒤늦게라도 매뉴얼을 만들었다는 성찰과 사과는 바라지도 않는다. 정부가 '장애인의 특성'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특히나 신중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책임성에 있다. 정부는 ① 감염병 정보 접근성 제고 ② 이동서비스 지원 ③ 감염예방 및 필수 의료지원 ④ 돌봄 공백 방지 ⑤ 장애인시설 서비스 운영, 5가지 영역으로 세부 고려사항과 사례를 제시하여 매뉴얼을 구성했다고 한다. 실제 매뉴얼은 20쪽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이제까지 나왔던 지침들을 수록해놓은 수준이다. 지금까지의 지침을 수록했다는 말은 이 매뉴얼이 나오기 전과 나온 후의 변화가 크게 없을 것이란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중앙정부가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하는 매뉴얼이라는 점이다. 이행은 각 기관과 지자체에서 여력에 맞게 하면 된다. 책임주체와 예산 수반에 대한 내용은 당연히 매뉴얼에 없다. 예를 들어, 장애인 확진환자 입원을 위한 지정병동, 생활지원 인력 운영이 표기되어 있지만 그것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얼마를 들여서 하면 되는지는 없다. 장애인과 그 가족, 활동지원사들에게까지 방역 물품을 제공하라고 되어 있지만 마찬가지로 누가, 얼마를 들여서 하는 것인지는 또 없다. 돌봄에 공백이 없도록 하라고 하지만 활동지원을 그래서 누가 얼마나 어떻게 확대하여 제공할 것인지는 없다. 보기 좋은 '방향성' 이외에는 어떤 세부적인 책임 규정도 매뉴얼에 없다. 향후 세부지침을 별도로 하달할 것인지,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 지역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장기화 대책이 없는데 있다. 정부가 이번에 내어놓은 매뉴얼은 1~2월에 나왔어야 할 내용들이다. 3월 중순을 지나면서 이미 코로나19는 장기화 국면으로 들어섰고 검진-격리-입원 등 의료적 대응의 수준을 넘어 생활 전반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6월 말인데, 5개월 전의 매뉴얼을 갖고 나온 것이다. 100%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시의성을 고려하여 추가적인 내용들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광주에서, 제주에서 장애인과 가족이 감염 이전에 이미 벼랑 끝으로 몰리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매뉴얼은 이 죽음을 막을 대책을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보편적이고 신속한 재정 지원과 사회서비스 지원을 위한 예산이 수반되는 대책이 빠르게 수립되길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미래가 없다. 코로나19 이후 장애인 정책을 어떻게 전환시켜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 특히, 사회복지시설과 정신병원 폐쇄병동의 문제가 그렇다. 한국이나 세계적으로나 코로나19 사망자 절반은 대략 시설과 병원에서 감염된 이들이다. 때문에 국제장애연맹(IDA)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질 시설화의 심화를 우려했고, 유엔의 공식 인권정책 지휘기구인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코로나19 시기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조치로 “장애인의 퇴소 및 퇴원 보장과 지역서비스 제공”, “시설폐쇄 및 탈시설화 전략 강화를 통한 더 나은 회복”을 권고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오늘 만난 시설 거주인은 재난지원금을 받고도 정부의 입소자 면회, 외출, 외박 금지 지침으로 시설 앞 슈퍼를 못 가고 있었다.

 

다행히 매뉴얼은 계속 보완될 것이라고 한다. 너무 늦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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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배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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