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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배우는 연극, 저항을 사유하다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참여기
등록일 [ 2020년07월02일 18시07분 ]

연극 워크숍에서 서로의 기쁨, 슬픔, 분노를 매만진다. 사진 다리아

 

J씨, 당신의 눈에 어린 원망의 눈빛이 아직도 잊히질 않습니다. 깊은 우물 밑에 홀로 갇혀 햇빛 비치는 세상의 풍경을 동경하는 눈빛이 그럴까요. 당신의 목소리는 우물을 가득 채운 우물물로 인해 들리지 않고요. 그렇게 까마득한 곳에 당신은 고립되어 혼자만의 세계에 유폐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J씨,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 오롯이 당신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나요? 당신은 한때 스스럼없이 웃었고, 스스럼없이 분노했으며, 스스럼없이 사랑하고, 스스럼없이 꿈을 향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부정당했습니다.


저는 약을 먹는 몸을 알고 있습니다. 한때 저는 다섯 마디를 하려면 세 마디의 말을 하고 두 마디의 말이 잊히는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 용량이 많아서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던 때였습니다. 그때 제 주위에 사람들은 제가 하는 말을 들었으나 아무도 그 말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꿈이 있었으나 그런 몸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실패했고 좌절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가족들이 그런 몸에 대해 비난하기보다는 내버려 두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몸, 그런 몸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의미를 사회에 나와 알게 되었습니다.


잠이 쏟아져 간단한 문서 작성을 할 수도 없고, 강박 때문에 몸을 움직여 물건을 정리할 수도 없고, 설거지조차 물소리가 말을 거는 환청으로 들려 할 수 없는 그런 몸들…… 그런 몸들은 쓸모없는 몸으로 버려지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쓰레기로 분류되어 시설에 수용되거나 아니라면 가족에게조차 부담만 주는 존재로 여겨져 무시당하고 침묵당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자유롭던 날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왜 병원에 갇히고 약을 먹어야 사는 존재가 되어 버렸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이리 무능할까요?


저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열심히 종교생활을 했습니다. 종교에서는 ‘참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용서가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억압에 대해 ‘대항하라’고 말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는 말합니다. 정신장애는 뇌의 특수한 질환이고 당뇨와 같은 질환인데 일반인들이 편견을 가지고 있고 그 편견을 해소한다면 우리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정신장애인이 처한 구조적인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약의 효능을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만 그것이 억압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저는 사회에 나와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말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약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끈기 있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지지해주고 기다려 준 사람들을 만난 이후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신장애인은 사고의 흐름을 둔화시키는 약 때문에 제대로 된 자기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정신장애의 특수한 환청과 망상, 강박 등은 그런 정신장애인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의사들은 늘 정신장애인이 제대로 사고하고 있는지 검열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개는 정신장애인보다는 그 주변인들의 말을 더 신뢰합니다. 어디에서도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는 들리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정신장애인의 특수한 현실을 사는 사람이었고 자기 낙인 때문에 명백히 부당한 상황에 처하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칭찬하라’, ‘용서하라’, ‘사랑하라’ 고 가르치는 종교는 그것을 더욱 강화해 ‘나 하나 침묵하면 되는 일’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연극 워크숍에서는 잠시 걷는 순간에도 발에 감정이 실린다. 사진 다리아

 

저는 요즘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공연 준비를 위한 워크숍이 소중한 것은 강요된 사랑과 평화의 말이 아니라, 제 자신에게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꼭 고운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평화의 목소리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 분노에 차 있고 슬픔의 저 깊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소리라도 그것이 진실하다면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철학자는 진실은 진리와 통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연극이 기반하고 있는 ‘플레이 백 시어터’는 바로 그러한 진실한 목소리를 이끌어내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는 이 연극을 준비하며 저의 현실을 처음부터 다시 사고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정신장애인의 삶을 쉽게 재단하고 상품화하려는 사람들에 맞설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처와 어려움 속에서도 부당함에 저항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한 걸음 내딛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한 부조리한 현실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출발선에 저를 데려다준 이 진귀한 경험에 당신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환청과 망상이 과연 우리의 목소리를 빼앗고 침묵시켜야 할 만큼 위험한 것인지 되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용하고 있는 약물이 그렇게나 우리 삶에 필수적인 것인지, 우리가 우리의 환청과 망상을 안고 사회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초대하는 이 자리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게 새로운 용기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 준 이 자리에 J씨, 당신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함께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자고 손을 내밉시다. 우리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할 수 있어도 우리가 함께 모인다면 우리의 억울함과 분노는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쓰일 수 있습니다. 이제야 저는 사랑이 정의를 동반한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J씨, 더 이상 혼자만 아파하지 마세요. 당신은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경험을 긍정하고 그것이 헛된 것이라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 안에 숨어 있는 힘을 발견하세요. 그리고 제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서로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당신이 세상 속 하나이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우물 저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새가 울고 꽃이 피고 아이들이 웃는 세상의 일부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 희망의 꽃씨를 틔우고 비바람에 지친 새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려준 이 만남에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고마움을 담아 이 편지를 띄웁니다. 부디, J씨, 당신의 손에 이 편지가 닿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웹자보

▷ 질병을 둘러싼 차별, 낙인, 혐오 속에서 살아가는 아픈 몸들의 목소리로 만든 시민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연극 예매하기. 온라인 공연으로도 관람 가능합니다. https://www.socialfunch.org/dontbesorry

 

글쓴이 소개
목우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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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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