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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고 지워지고… 홈리스의 삶은 ‘재생’할 수 없나요
[칼럼]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 서울역 ②
등록일 [ 2020년07월03일 15시07분 ]

서울역 대합실을 지나 서울역 동편 출구로 나오면 남대문 경찰서와 서울스퀘어, 높은 빌딩들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서울역 광장 앞 버스 환승센터에는 7개의 정류소가 있다. 그중 5개 버스 정류소엔 90개 노선의 버스가 정차한다. 높다란 빌딩이 에워싼 서울역은 무척 수직적으로 보이지만 서울과 수도권 곳곳으로 향하며 확장하는 수평의 통로이기도 하다.

 

서울역을 등지고 왼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고가도로가 보인다. 차가 달리던 고가도로에서 사람들이 걷는 공중정원으로 쓸모를 달리한 서울로7017이 있다. 옛 서울역의 뒤에 있는 롯데마트는 여행자들이 먹거리와 기념품을 쇼핑하는 마지막 방문지로도 유명하다. 방문자와 관광객을 환영하는 조망물에서 벗어나 시선을 내리면 다른 풍경이 있다. 서울역 광장 곳곳을 채운 노숙인과 지원기관이 서울역과 함께 있다.

 

서소문공원의 청동상 ‘노숙자 예수’. 사진 김윤영

 

서소문역사공원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 텐트촌

 

서소문공원은 서울역의 북쪽에 있다. 광장에서 옛 서울역을 지나면 왼편으로 철길이 이어진다. 요즘 같은 여름이면 철길 담벼락은 담쟁이와 아이비, 인동덩굴이 가득하다. 철길의 끝에서 염천교를 건너면 서소문공원이 나타난다. 서소문공원은 조선 시대 ‘서소문 밖 네거리 처형지’로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와 사회개혁 세력들, 그리고 수많은 천주교인이 박해로 처형된 곳이다. 1973년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고,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많은 노숙인의 거처가 되기도 하였다.

 

대규모 실업과 파산을 거치며 집을 잃고 거리에 나오게 된 이들은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지에 밀집하고, 도심 곳곳에 둥지를 틀었다. 하루를 거리에 산대도 잠자리를 선택할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24시간 개방되고 수도를 이용할 수 있던 서소문공원에는 자연스레 노숙인의 텐트촌이 생겼다. 이 텐트촌에서 생활하며 다큐멘터리 영화 ‘IMF한국, 1년의 기록 : 실직노숙자’를 만든 고(故) 박종필 감독은 IMF로 인한 대량의 실업 상황에서도 일용직 노동자, 더 가난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IMF 이후 실직 문제에 대한 지원체계는 불평등한 현실에 기반하지 않았다. IMF실업자 가운데서도 대기업 직원은 고용보험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기존 급여의 70~80%의 실업수당을 받았다. 고용보험이 없는 이들에게는 저임금 공공근로 사업이나 저임금 노동시장의 기술을 배우는 직업교육이 제공됐다. 세 번째는 거리를 배회하는 ‘IMF노숙자’로 이들 중에서도 IMF 이전부터 장기노숙을 해온 사람은 IMF 이후 실직한 사람들과 달리 지원 대책이 없었다(『복지의 배신』, 송제숙, 이후, 2016, 111쪽). 더 좋은 일자리를 갖고 있던 이들에게 더 나은 실업 대책을 제공한 것은 현실의 불평등을 더 공고한 것으로 만들었다. 노숙인과 도시빈민을 부랑아로 낙인찍고 격리해온 도시 빈민의 역사와 ‘생산적 복지’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이 이에 공조했다.

 

이제 서소문공원엔 텐트촌도, 노숙인이 사용할 수 있는 수도시설도 없다. 서소문공원은 2019년 서소문역사공원이 되었고, 천주교인들의 박해를 기억하는 기념탑과 역사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이 박물관에도 이곳을 거처 삼았던 노숙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공원 한쪽 구석에 티모쉬 쉬말츠의 작품 ‘노숙자 예수’ 청동상이 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은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는 성경(마태복음 25장 45절)의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지만, 살아 숨 쉬는 ‘작은 자’들은 이 깨끗하게 관리된 공원에서 자리를 잃었다.

 

서울로7017, 사람길에서 제외된 사람들

 

서울로7017의 이름은 1970년에 만들어진 고가도로가 2017년 사람 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밀 안전진단에서 수명이 다하여 붕괴 위험이 있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철거하는 대신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도시 재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길이 ‘모든 사람’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는 서울로 개장을 앞두고 ‘서울로7017 이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조례 13조에는 서울로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음주, 흡연, 눕는 행위 등’을 포함시켰다. 다른 공원 이용 방침이나 조례에서 잘 찾아볼 수 없는 ‘눕는 행위’ 금지에 대한 명시는 서울역 인근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여기에서 지칭한 ‘눕는 행위’의 행위자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진다는 것은 이후 서울시가 개최한 서울로7017 개장행사를 통해 명확해졌다. 서울로에 해먹과 빈백, 접이식 침대를 설치하고 직장인을 위한 ‘낮잠의 여유’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참고 서울로7017, 점심·퇴근길 직장인 프로그램 아세요?)

 

서울로7017 기점 공원에 있는 고가도로로 만든 평상. “음주, 흡연, 눕는 행위는 불가하오니 이용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사진 김윤영

 

이후 ‘눕는 행위’에 대한 금지조항은 조례 제정과정에서 홈리스인권단체들의 항의 끝에 삭제되었다. 하지만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은 유지되었다. 이 조항은 씻을 곳이 없어 냄새와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이들을 공원 밖으로 언제든 밀어낼 근거가 된다. 노숙인은 시민 중 하나가 아니라 시민의 통행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시민의 외부가 되었다.

 

서울로7017의 기점 청파로 인근에는 널따란 평상이 놓여있다. 여기 평상은 서울로7017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고가도로의 상판 중 일부를 떼어 만든 것이다. 이 평상은 ‘재생’을 상징한다는 친절한 설명이 있지만, 여기에도 ‘눕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당부가 단단히 담겨있다. ‘철거가 아닌 재생으로, 찻길이 아닌 사람길로’라지만 서울로가 건설되고 운영되는 과정엔 어떻게 노숙인을 배제할지를 골몰한 흔적만 발견된다. 도시 재생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어쩌면 고작 콘크리트 상판으로 만든 평상 정도에 불과한 것 아닌가.

 

서울역 서부와 옛 서울역을 잇던 구름다리(인도 육교)는 2013년 철거되었다. 구름다리는 신역사가 만들어진 뒤 철도 이용객들에게 잊혀갔지만 노숙인들에게는 타인의 시선이 자주 닿지 않는 피난처이자 거처였다. 보수 일간지와 언론은 구름다리를 놓고 ‘노숙자 술판’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일탈하는 존재로서의 노숙상태만을 강조하며 철거를 촉구했지만 노숙인 인권단체 ‘홈리스행동’은 구름다리 철거에 부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간했다.

 

홈리스들의 생활 터전의 상실은 단지 물리적 공간의 박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육교라는 공간에 아로새겨진 노숙 첫날 밤의 기억, 맨 처음 무료급식을 먹었던 기억, 난생처음 죽은 사람을 봤던 기억,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30대 노숙 동료의 발끝을 잡았지만 그대로 미끄러졌던 기억, 거리홈리스들이 쓴 “인내”, “은혜와 사랑” 따위의 낙서... 이런 노숙의 기록과 기억이 사라진 것 또한 엄청난 상실이다. 우리 사회의 과오와 연대의 상실을 직면할 수 있는 증거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_ 서울역 구름다리 철거, 다리는 철거해도 홈리스는 철거될 수 없다, 홈리스행동 (2013.11.06)

 

매년 동짓날 서울역 광장에서는 거리와 쪽방 등지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기리는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홈리스들은 추모제에서 한 해 동안 떠난 동료들의 이름을 찾는다. 가족이 없거나 가족들의 거절로 ‘무연고’ 처리된 이들의 죽음은 빠르게 화장되고 소멸한다. 이들의 죽음처럼 산 자리도 소멸한다. 쫓아내고 남은 흔적은 말끔히 지워진다. 소유한 사람들만의 도시, 살아남은 사람들만의 재생은 탈락한 사람들의 지워진 역사와 깊은 심연을 딛고 오늘도 자란다.

 

서울로7017 기점 공원에 있는 고가도로로 만든 평상. 사진 김윤영


◯ 참고자료
- IMF한국, 그 1년의 기록 : 실직노숙자, 1999년, 박종필(다큐인)
- 제작기 ‘그들 속에서 바라본 노숙자24시’, 피디저널, 박종필, 1999.05.06.

 

김윤영의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도시에서 자랐다. 가난한 이들을 쉽게 쫓아내고, 머문 자리마저 빠르게 지우는 도시에 애증이 있다. 서울 곳곳에 스며든/지워진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난한 이들이 빼앗긴 공간과 권리에 대해 돌아보는 ‘다크투어 칼럼’을 한 달에 한 번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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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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