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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시설에서 나온 상훈 씨의 자립생활 준비기
시설 나온 지 2주 만의 변화, ‘미래는 불안하지만 후회하지 않아’
민간에서 떠안은 탈시설 정책, 정부의 책임 있는 역할 필요
등록일 [ 2020년07월07일 16시38분 ]

[편집자 주] 중증발달장애인 이상훈 씨는 지난 5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나왔다. 자신의 의지라기보다는 상황에 떠밀린 탈시설이었다. 불안한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생활이 시작됐다. 그러나 시설에서 나온 지 2주 만에 그의 상태는 놀라울 만큼 좋아졌다. 그의 부모는 “현재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마이너는 상훈 씨의 행적을 통해 두 번에 걸쳐 ①장애인거주시설의 문화적 갑질 ②중증발달장애인의 탈시설 과제를 살펴본다.

 

1부 : 코로나19·탈시설 정책 핑계 삼아 퇴소 종용… ‘시설 갑질’ 어떻게 막나
2부 : 9년 만에 시설에서 나온 상훈 씨의 자립생활 준비기

 

지난 5월 18일, 상훈 씨와 어머니가 손을 잡고 ㄱ 거주시설에서 나오고 있다. 상훈 씨는 이날 9년 만에 시설에서 나왔다. 사진 허현덕

 

이상훈(남, 29세, 가명) 씨는 지난 5월 18일 대전의 ㄱ 장애인거주시설(아래 ㄱ 시설)에서 9년 만에 나왔다.

 

ㄱ 시설에 들어갈 당시 상훈 씨는 키 158.7cm에 몸무게는 37kg 정도였으나, 지난해부터는 부쩍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다. 37kg 안팎이던 몸무게는 지난해 5월에는 35.8kg으로 줄었고, 올해 2월에는 34.3kg까지 떨어졌다. 10여 개월간 몸무게가 늘지 않다가 현재는 37~8kg 정도로 다시 회복됐다. ㄱ 시설에서 어머니에게 제공한 병원 건강기록부에는 29kg까지 떨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계속 야위어가자 시설 측에 식사 지원을 여러 번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설은 상훈 씨가 병원을 자주 찾는 것, 자폐성향을 보이는 것을 지적하며 부모에게 시설에서 나갈 것을 수시로 권유했다. 그럴 때마다 부모는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해 시설에서 나올 엄두를 내지 못 했지만, 결국 나왔다.

 

- 시설에서 나온 지 2주 만에 달라진 상훈 씨

 

상훈 씨는 5월 20일부터 서울 소재 긴급복지지원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나오자마자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고,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머물고 있는 쉼터 근처에 어머니가 살고 있어 시설에서 나온 이후 하루에 한 번씩 만나서 밥도 먹고 산책도 했으나, 지난 5월 29일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아래 코로나19)가 다시 번지기 시작해 현재는 잘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안에 상훈 씨는 많이 변했다고 상훈 씨의 어머니는 말했다.

 

“시설에서 상훈이가 무릎을 땅에 대고 빙빙 돈다고, 자폐성향이 있다고 했는데 나와서는 그런 적이 없어요. 나온 지 며칠 안 됐는데 이제는 허리를 전혀 굽히지 않아요. 땅만 쳐다보는 성향은 있지만, 허리가 꼿꼿해졌어요. 시설에서 나온 후 가장 큰 변화죠. 그리고 이제는 산에 가서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배드민턴 치는 걸 20분씩 보기도 해요. 시설에 있을 때는 상훈이가 반응도 적고 무기력했는데, 감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없어서였나 싶더라고요.”

 

상훈 씨가 공원에 산책을 나와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ㄱ 시설에서 나올 당시보다 허리가 꼿꼿해졌다. 사진 어머니 제공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발간한 장애인학대 신고의무자 교육자료에 따르면 정서적 학대에서 주요하게 살펴봐야 할 징후로 △특정한 장소나 사람에 대한 회피, 거부, 지나친 긴장 △수면장애, 우울증, 무기력, 자살충동 △과도하게 순응적인 태도, 낮은 자존감 △갑작스러운 행동의 변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상훈 씨는 특정한 장소에 대한 회피를 의미하는 행동을 보였고, 심한 수면장애가 있었다.

 

상훈 씨는 ㄱ 시설에 오기 전에 고양시의 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내기도 했다.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늦게까지 일해야 해서 그를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해당 시설은 장애아동의 부모가 운영하던 곳으로 현재는 인가를 받았지만, 당시에는 미신고시설이었다. 시설에서는 인권침해 정황이 많았다. 상훈 씨의 어머니는 당시 그 시설에서 다른 거주 장애인을 끈으로 묶어두기도 했었다고 떠올렸다. 그런데 그 일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상훈 씨가 특수학교를 다닐 때부터 부당행위, 갑질을 당했던 탓에 그러려니 했다는 것이다.

 

“아마 나 같은 어머니들이 많을 거예요. 일을 해야 하니, 시설에 아이를 보내고 자주 찾아가지도 못 하고. 아이가 마르고, 잠을 잘 못 자는 걸 모르고, 그리고 설령 알더라도 시설에 잘 요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데려가라고 하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요.”

 

- 불확실한 점이 더 많은 상훈 씨의 자립 계획… ‘예전에는 꿈도 못 꿀 일’

 

시설에서 나왔지만, 자립생활을 준비하는 상훈 씨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첫 번째 난관은 활동지원 시간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다. 상훈 씨는 도전행동을 보이지 않지만, 24시간 생활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복지부에서 최대로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은 하루 최대 16.16시간이다. 그러나 이 시간을 받을 수 있는 ‘종합조사 1구간’에 해당하는 장애인은 전국에 단 한 명도 없는 만큼, 상훈 씨 또한 최대 시간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현재 활동지원 종합조사에서 발달장애인은 충분한 서비스 시간을 받기 힘들다. 지난해 7월부터 도입된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에 따르면 시간 삭감에 따른 산정특례 적용자 2,473명 중 17.41%(907명)가 지적장애인이었다. 특히 산정특례 구간 내가 아닌 구간 외인 30~150시간 이상 떨어진 하락자 1,207명 중에서 지적장애인은 427명으로 35.4%에 달했다.

 

이러한 복지부 활동지원 시간에 따라 서울시 추가지원 여부도 결정된다. 서울시 추가지원은 와상 또는 사지마비 장애인 중 종합조사 기능제한 점수(X1)가 300점 이상(성인)이거나 거주시설 퇴소 장애인인 경우 받을 수 있다. 서울시 시설 퇴소 장애인이라면 기능제한 점수가 200점 이상일 경우 2년간 월 120시간을 추가로 받을 수 있고, 탈시설자립정착금 1,3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서울시 관할 43개 거주시설에서 퇴소했을 경우에만 해당돼, 대전시 시설에서 나온 상훈 씨는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자립생활 주거지 선택지가 조금은 다양해졌다. 현재 상훈 씨는 서울시 지원주택에 입주를 신청했다. 지원주택은 거주공간에 생활지원 서비스를 결합한 지역사회 장애인주거지원 모델이다. 선정된다면 9월경 입주할 수 있다. 충현복지관 체험홈 입주도 고려하고 있다. 충현복지관은 발달장애인 지원주택 통합서비스(전 자가형 지원주택)를 운영하고 있는데, 주거코디네이터가 거주지 계약부터 생활 전반에 대한 계획을 짜고 주거코치가 파견돼 생활지원을 돕는 형태다. 충현복지관 체험홈에서 일정기간 자립생활 준비를 하고, 자립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계획일 뿐 불확실한 점이 더 많다. 상훈 씨의 탈시설-자립생활 계획을 세운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현재 쉼터에서 얼마나 머물 수 있을지, 어디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하게 될지도 확실하지 않다. 자립생활의 관건인 기초생활수급자 선정도 상훈 씨가 독거로 분류되지 못해 선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며 “주거지가 확정되고, 활동지원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더라도 여전히 낮 활동에 대한 지원 대책이 없다. 코로나19 상황과는 별개로 지역사회에서 중증발달장애인의 낮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곳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기준 서울 지역의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시설은 121곳이다. 전국 724곳 중 16%가 서울지역에 있지만, 발달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매우 부족하다.

 

불확실한 미래지만 그럼에도 상훈 씨 어머니는 시설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훈이를 9년 동안 시설에 내버려뒀다는 게 제일 미안해요. 나오니까 이렇게 밝아진 걸 보니 더 그래요. 발달장애인 자립지원 시스템 정말 필요해요. 상훈이 동창들은 지역사회에서 갈 곳이 없으니,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 자립생활은 아마 생각도 안 할 거예요. 저처럼 몰라서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거고요. 그래서 상훈이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상훈이처럼 24시간 생활지원이 필요한 사람들도 자립생활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야 (지원 정책이) 더 잘 마련될 거 같아요.”

 

5월 18일 상훈 씨와 어머니가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손을 잡고 있다. 사진 허현덕
 

- 탈시설TF, 지난해 4월로 스톱… 장애계 “정부, 탈시설 로드맵 발표해야”

 

현재 탈시설-자립생활은 인권침해가 발생한 문제시설을 중심으로 거주인의 탈시설-자립생활 대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탈시설 정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탈시설 운동단체가 존재하는 지역 중심으로 제도가 자리 잡혀 지역별 불균형이 심하다. 현재 지자체 차원에서 장애인 탈시설-자립생활 계획을 발표한 곳은 서울시, 부산시, 전주시, 대구시, 광주시, 경기도 등 6곳이나 이마저도 선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상훈 씨의 어머니가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면 시설의 부당한 요구를 참으며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상훈 씨처럼 부모의 주도로 개인적 영역에서 탈시설-자립생활이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여기에는 발바닥행동이라는 탈시설운동 단체의 조력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김필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현재로서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운동단체 등 민간시설에서 개인의 지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계속 상황이 누적된다면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자체가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라며 “탈시설-자립생활이 문재인대통령의 공약이고, 정부가 끌고 나갈 의지가 분명하다면 현재 민간단체가 맡고 있는 책임과 서비스 연계를 공공에서 주도적으로 맡아야 한다. 이를 기준으로 민간단체에서는 개별적이고 세부적인 지원에 힘쓰는 게 지속적이고 건강하게 정책을 끌고 나갈 수 있는 길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찾아가는동주민센터, 장애인권익옹호기관, 사회서비스원, 장애인종합복지관 등 기존 기관의 역할과 지역사회에서의 장애인운동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제시했다. 그는 “이미 지역사회에는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있음에도 탈시설-자립생활의 의미와 역할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를 요구하고 알려주는 것이 장애인운동단체가 해야 할 일”이라며 “서울과 대구에서 그나마 자립생활 정책이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이 일일이 요구하고 제시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차원의 탈시설로드맵 제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2017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광화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위한 농성장에 찾아와 장애계와 ‘탈시설민관협의체’ 구성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2018년 2월부터 탈시설민관협의체가 진행되었으나 2019년 4월 이후 잠정 중단됐다. 논의된 계획과 예산도 정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장애계는 지난 6월 18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탈시설 로드맵 수립과 예산 반영을 정부에 촉구했다. 복지부는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올해 안에 탈시설로드맵 발표를 계획하고 있다. 시·도별로 탈시설지원팀을 두어 시설장애인의 욕구, 개인별 맞춤형 자립교육, 체계적인 서비스 제공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며 “전국에 적용 가능한 탈시설로드맵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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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덕 기자 hyundeok@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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