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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일부가 된 통증, 그 시간을 살다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7월08일 14시59분 ]

총선을 앞두고 여기저기 시끌시끌하던 2월, 김해에서 군복무를 하던 동생에게 서울로 올라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동생을 보내놓고 울던 엄마의 목소리. 벌써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나 생각했다.

 

신도림에서 만난 동생은 까맣게 탄 채 깡말라 있었다. “고생 많았다” 그랬더니, “이제 다 지났으니 괜찮다” 했다. 철부지가 철이 다 들어있다. 배가 고프다는 동생을 이끌고 돈가스 가게로 들어갔다. 큼직한 돈가스가 나오자 코를 박고 먹던 까만 얼굴이 돈가스를 씹다 말고 이야기했다.

 

“누나. 그런데 내 이십 년간 배워왔던 것들이 그간 살아왔던 시간이 그곳에선 한순간에 쓸모없어지더라.”

“그래, 그래.”

 

그렇게 대답해 주면서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찡해 왔다. 안 그래도 또렷한 동생의 눈코입이 야윈 얼굴 위로 더 도드라져 보였다. 밥을 다 먹은 동생은 사실 나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다고 했다. 무슨 일인가 물으니 동생이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

 

“뭐라고?”

 

잘 안 들린다고, 다시 말해달라고 하자 동생은 얼굴을 내 얼굴 앞으로 바싹 붙이고 이야기했다.

 

“누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계획이냐고.”

“어떻게 살 계획이냐고?”

 

서른둘의 나는 ‘어떻게 살 셈인가’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받아놓고서 말을 잃었다.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답을 해야 하나,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답을 해야 하나, 우물거리는 내게 동생은 오빠처럼 내게 이야기했다.

 

“현실을 생각해야지.”

 

현실이라는 글자 두 개가 가슴 속에 가시처럼 콕, 콕 박혔다. 잔가시들은 말을 하려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정확히 알 수 없는 내부의 어딘가를 콕, 콕 찔러댔다. 현실. 동생의 말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몸도 아프면서. 그냥 집으로 내려와.”

 

동생은 말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진짜 현실을 끄집어 내 놓았다.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처방받는 약이 점점 늘었다. 마침내 스테로이드를 하루 일곱 알까지 먹게 되었고 얼굴이 부어올라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사진 픽사베이

 

- 통증의 시간

 

2011년 11월의 어느 아침, 나는 퉁퉁 부은 손가락들을 발견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디딘 손목이 아파 아악, 비명을 질렀다. 따뜻한 물에 담가보아도 손가락은 다 펴지지 않았다. 굽은 손으로 찾아간 병원에서는 류머티즘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었다. 류머티즘. 의사의 말이 무슨 선언처럼 사무쳤다. 지금껏 한쪽 무릎이 아프거나 오랜 감기에 시달렸던 것들은 류머티즘의 전 증상들이었다고, 의사는 말해주었다. 진통제와 감기약에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제, 류마티스 치료제 등이 더해졌다. 혹시 모르니까 위장약과 수면제도 함께 처방받았다. 의사는 면역억제제가 항암제의 일종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말해주었다. 항암제를 처음 먹었을 때, 나는 한동안 몸이 천근만근이 되었다. 의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나마 가장 부작용이 적은 약이라고 일러주었다. 또 다른 A약은 폐에 부담을 줄 수 있고, 또 다른 B약은 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약을 바꾸겠느냐 물었다. 나는 그냥 먹겠다 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나고서야 통증은 밤과 아침이 가장 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밤마다 손목을 부여잡고 신음하며 깨어났다.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없는 날들이 계속됐다. 밤의 끝자락에서 겨우 잠을 한 줌 부여잡게 되어도, 아침엔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깨어났다.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워지고, 잠에서 깰 때 기지개를 켜는 일이 끔찍해졌다. 기지개를 켤 때마다 온몸 관절의 마디마디가 다 부서져 내리는 것 같았다. 문고리를 돌리는 것이 어려워져서 집 안의 모든 문을 열어두었다. 변기 레버를 내릴 수 없는 아침은 변기 뚜껑을 덮어두고 퇴근 후에 한꺼번에 물을 내렸다.

 

통증이 시작되면서 나의 모든 것은 통증에 매몰되기 시작했다. 하루가 버겁고 미래가 불안해졌다. 나를 제자리에 주저앉혔다. 이상도 열정도 다 뒷전이 되어버린 나를,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서 있는 나를, 그 겨울 까만 얼굴의 동생이 현실 속으로 불쑥 불러놓았다.

 

통증은 몇 달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고 1년도 안 되어 나는 그만 기진맥진해졌다.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고, 통증은 불면으로 인한 고통마저도 지워버릴 정도로 몸 전체를 지배했다. 통증을 느끼지 않는 순간은 잠든 순간뿐이었다. 자고 싶은 욕구보다는 통증을 잊고 싶은 욕망이 잠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의사에게 울며 호소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의사는 스테로이드제를 추가로 처방하면서, 통증이 극심해지면 위험하니 병원 응급실로 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스테로이드제를 하루 일곱 알까지 처방받아 먹을 무렵엔 얼굴이 퉁퉁 부어올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느려졌고, 상대적으로 시간은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온몸의 관절 마디마디가 으스러지는 통증 속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고, 아침 약을 먹었다. 질병 초기에 아침은 밤새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진통제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효는 6시간에서 8시간까지 지속되는데, 약은 하루 두 번 먹을 수 있으므로 남은 4시간은 다음 약을 먹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통증을 인내하는 시간이었다. 약을 먹어도 통증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통증을 다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때마다 절망감은 깊어졌다. 이처럼 끔찍한 통증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통증과 절망은 나를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앉혔다. 사진 픽사베이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변기 물을 내리는 동안의 통증은 몸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었다. 통증은 내 몸의 모든 부분을 선명하게 인지하게 했다. 나의 몸에 그렇게 많은 부위와 면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많은 부분의 통증들을 다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때마다 절망감은 깊어졌다. 이처럼 끔찍한 통증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통증과 절망은 나를 점점 깊은 곳으로 가라앉혔다. 우울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같은 일상의 과정을 거치는 데에도 세 배, 네 배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를 설명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나는 점차 내 몸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시간의 속도가 달라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이해를 구하고 싶은데 그들이 나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통증은 새벽으로부터 오전까지의 시간들을 내게서 빼앗아갔다. 이 모든 생활에 익숙해지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몸이 흔들리는 버스에서 손잡이를 잡기 어려운 현실이, 발가락 통증으로 세상이 자꾸만 기우뚱거리는 현실이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왔다.

 

고통뿐이라 생각했던 질병이, 일상의 일부가 된 통증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질문에 답을 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삶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동생이 군대에 가서 느낀 것처럼 나 역시도 삼십 년간 익혀왔던 삶의 방식을 전부 폐기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 관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점점 짧아졌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 유지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소요될지라도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삶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속도로 바뀌어버렸지만 그 속도에 맞는 일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 네가 말한 현실을 직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나는 동생에게 말했다. 지금은 통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내 현실이자 일상이라고. 병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세상에 놓이게 될 나를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 내게 닥친 것은 생소한 세상이 아니라 조금씩 사라져가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시간과 남은 시간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의 자리를 찾고 있다. 서로의 속도에 맞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우리를 위해서.

 

글쓴이 소개
혜정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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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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