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08월14일fri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기고ㆍ칼럼 > 칼럼 > 홍성훈의한번물구나무서보겠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당신의 일상은 몇 번째 구간에 속합니까?
[칼럼] 홍성훈의 한번 물구나무서보겠습니다
등록일 [ 2020년07월21일 15시58분 ]

- 어느 날 집으로 날아든 한 통의 우편

 

영화<설국열차>(봉준호 감독, 2013)는 인재(人災)가 초래한 빙하기 이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세상에서 단 한 대만의 열차가 운행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설국열차’다. 혹한은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켰으나 끼리끼리 갈라치는 인간의 습(習)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습은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 사이에 계급을 만들어내고 질서를 창출한다. 열차 안 계급은 비교적 선명하다. 열차가 출발할 당시 어느 칸에 타고 있었는가에 따라 계급으로 굳어진 셈이다. 영화는 꼬리칸과 머리칸이라는 계급의 대립구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머리칸 사람들은 대재앙에 대비해 거금을 주고 열차에 미리 탑승했던 반면, 꼬리칸 사람들은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아비규환 속에서 차량에 올라탄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돈의 습 또한 재앙 전과 다를 바 없이 여전해서 무일푼으로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의 숨통을 조른다. 머리칸 사람들은 돈을 내고 열차에 탑승했다는 이유로 꼬리칸의 지배권을 행사한다ㅡ어떤 사회에서도 그래왔듯이 그들은 직접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지배계급에 합류하기를 원하는 중간계층에게 관리 권한을 위임한다ㅡ. 기차 안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식량과 인구수를 조절하고 수시로 불심검문하여 '반역'의 싹을 제거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감시와 빈번하게 권리를 침해당하는 꼬리칸 사람들에게 자기 스스로 영위해나갈 수 있는 일상이 주어지기란 극히 어렵다. 그저 머리칸 사람들의 ‘아량’과 운 따위에 목숨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꼬리칸 사람들은 혁명의 씨앗을 품은 반란을 시작한다. 과연 꼬리칸의 반란은 열차의 질서를 뒤흔드는 혁명이 될 수 있을까?

 

어두운 배경에 하얀색 불빛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쭉 뻗어 있다. 총 12개의 불빛이 가로로 뻗어 있으며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불빛은 조금씩 짧아진다. 사진 언스플래시


<설국열차>의 이야기가 느닷없이 떠오른 것은 어느 날 내가 받은 한 통의 우편 때문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현관문 사이로 우편물 하나가 위태롭게 끼어있었다. 나에게로 오는 우편은 대체로 세금을 내라는 따위의 내용이 많아서 나는 벌써부터 피곤한 채무자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우편봉투를 살펴보니 ‘ㅇㅇ구청 사회복지과’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글자를 읽자 나른했던 몸에 힘이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무슨 내용의 우편물인지 가늠해보았다. 국세청은 내 수중에 있는 돈을 ─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 가져가는 데 골몰하지만, ㅇㅇ구청 사회복지과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ㅇㅇ구청 사회복지과에서는 장애인연금에서부터 활동지원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나의 일상과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들을 취급했다. 짐을 풀자마자 곧바로 우편물을 확인했다. 한 장짜리 공문이었다. 공문의 첫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활동지원서비스 갱신 신청 안내’.


아무리 우편물을 읽어봐도 도대체 무엇을, 또 왜 갱신 신청을 해야하는지 근거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어마무시한 경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신청 기한이 지난 후에는 활동지원서비스 수급 자격이 박탈되오니 이 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문구와 제시된 신청 기한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백지가 되었다. 이미 일주일이나 지나버린 시점이었다. 우편물은 분명 일주일이 지난 그 날에야 도착한 게 확실했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으로 외출할 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집 밖으로 나가 근처에 있는 벤치에서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는 책을 읽다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도 그동안 우편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을뿐더러, 더군다나 매일 활동지원사 분들이 나의 집으로 출퇴근하는데 누구 하나 그걸 본 사람이 없었다. 결국 우편물은 신청 기한이 일주일이나 지난 뒤에나 도착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저렇게 무책임한 국가의 표정과 말을 품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있을 만한 시간이 없었다. 당장 노트북을 열어 구글 검색을 하고 블로그에서 굴러다니는 활동지원서비스 갱신 신청서 양식을 다운받아 부지런히 채워나갔다. 기본적인 신상정보와 주소 등을 쓰는 몇 개의 항목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부양의무자(나 같은 경우 부모님)에게서 얼마만큼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지 묻는 항목도 보였다. 나는 실제로 받는 것보다 살짝 적은 액수를 쓸까 몇 초간 망설였지만 있는 그대로 쓰기로 했다. 평소엔 세상을 삐딱하게 살겠노라고 떠들어대지만 막상 나에게 불리한 일이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유순해지는 게 실제 나의 모습이었다. 인쇄 버튼을 누르고 나의 개인정보로 칸이 채워진 신청서를 복사하는 프린터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나도 모르는 새 다물고 있었던 턱관절을 이완시켰고 팽팽했던 관자놀이가 풀어지면서 시야가 뿌예졌다. 뿌예진 시야로 프린터가 토해낸 신청서를 오래 바라보았다.


작성한 신청서를 들고 동네 주민센터를 찾은 것은 다음날이었다. 마침 새로운 거처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 신청서를 접수해야 하는 주민센터 역시 처음 방문하는 곳이었다. 긴장감이 배가되었다. ‘혹시나 신청 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주민센터 직원이 신청서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받아칠까?’하는 생각에 온갖 대응방식을 염두해두고 집을 나섰건만 너무 시시하게도(?) 직원은 신청서를 받아주었다. 딴지는 예상치 못한 데에서 걸려 왔다. 주민센터 직원은 중증장애인인 내가 워드 프로그램으로 신청서를 직접 작성하여 접수하려고 한다는 사실에 놀라는 듯 보였다. “진짜 본인이 작성한 거 맞아요?”를 연거푸 물었고 신청서를 접수하는 내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나는 피로가 밀려와 직원이 신청서를 얼른 접수해주기만을 바랐다. 전과 다름없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피로쯤은 얼마든지 견뎌낼 의사가 있었다.

 

- 일상을 유지하려면 무능력을 증명해 보여라.

 

시간은 흘렀고,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신경 써야 할 다른 일들이 산재했다. 누군가 나의 사주를 들여다보며 친절하게 풀어준 대로 올해 들어 여러 일이 몰려왔고 나는 겁도 없이 일들을 수락, 수락, 수락했다. 우선 나는 2월부터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어느 식품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물론 월급은 쥐꼬리만하고 일 년이 지난 후에는 나의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계약직일 뿐이지만, 그래도 매달 통장에 찍히는 일정한 숫자는 퍽 안정감을 주었다. 부모에게 생활비 전반을 의탁해야 하는 처지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쯤은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누군가와 맛있는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또한 두 군데에서 글쓰기 강사를 맡았다. 나는 간간이 같이 글 쓰는 동료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한 조언을 해주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주는 경험은 없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사람들 앞에서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열망을 남몰래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 열망을 숨긴다고 했지만 겉으로 티가 다 났는지 글쓰기 수업을 같이해보자는 사람들이 생겼고 나에게 ‘강사’라는 자리를 선뜻 내주었다. 망설임 없이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갔다. 무엇보다 내 경험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일만큼은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했다. 나는 이번 달부터 화, 금 이렇게 매주 혹은 격주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올 연말을 목표로 연극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작년에 연극 무대에 처음으로 선 나는 연극하는 맛에 들려 함께 작업했던 연출님과 또 다른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이렇듯 나는 대책 없이 일을 벌여놓았고 이미 한 해 중반을 넘어선 지금 내 방식대로 일을 해나가는 중이다.

 

이런 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제도는 활동지원제도이다. 지난 칼럼(▷기해의존선언서(己亥依存宣言書))에도 썼던 것처럼 나는 세 명의 활동지원사 분들과 하루 평균 열여섯 시간씩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 열여섯 시간 동안 나는 일을 하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연극 미팅을 하고, 밥을 먹고, 샤워를 하고, 화장실을 간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없으며 활동지원사 분들 또한 나를 케어해주고 받는 월급으로 각자의 일상을 꾸려나간다. 우리가 만든 일상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잦은 다툼, 쭈뼛쭈뼛하게 건네는 화해가 만들어낸 시간들이었다. 나는 나만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시크해질 수 있었다. 가족은 최소한 나를 돌보는 데 시간을 뺏기지 않았다. 나는 가족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는데 서로에 대해서 동등하게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울어진 관계의 추는 대략적으로나마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한창 일을 하고 있었던 오전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에게 전화를 거는 이는 대개 두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언어장애가 있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술에 취하면 아무에게나 전화를 돌리는 사람이거나. 별 신경 쓰지 않고 일에 집중하려던 찰나 우연히 핸드폰 화면에 눈길이 갔다. 화면엔 ‘국민연금관리공단’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고 그제야 나는 일손을 멈추고 활동지원사 분을 통해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활동지원서비스를 갱신 신청하셨는데 갱신을 하려면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간단한 요지의 내용이었다. 직원의 말을 듣는 동안 뭔가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현재 받고 있는 활동지원서비스를 계속 받기 위해 ─ 그것도 반강제적으로 ─ 갱신 신청을 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재심사를 하는 것은 서비스를 신청한 이용자에게 얼만큼의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필요한지 원점으로 돌아가 재검토하겠다는 뜻이었다. 대체 내가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직원은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로 언제 현장 방문 실사를 받을 수 있는지 묻기만 했다. 전에 받은 우편물에 담겨 있었던 심드렁한 언어와 무척 비슷한 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일정을 쪼개고 쪼개 약속을 잡았다. 일정이 확정되자 전화는 뚝 끊어졌다.

 

공단 직원이 오기로 한 날이 되었다. 그날 나는 무척 중요한 면접을 몇 시간 앞두고 있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면접을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면접을 진행할 수는 없어서 공간을 빌려둔 상태였고, 약속한 시간까지 도착해야 했다. 현장 실사를 굳이 실제 거주하는 곳에서 받아야 한다는 직원의 성화에 못 이겨 꼼짝없이 집에서 기다렸다. 나는 샤워를 하고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마침 점심때가 가까워지기도 했고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직원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의도가 가미된 연출이기도 했다. 식사는 자존감을 떨어뜨리지 않고도 내가 필요로 하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어떤 것인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스펙터클이었다. 밥술을 세 번 뜰 무렵 직원이 도착했다. 직원은 우리 앞에 차려진 밥상을 보고 조금 당황한 듯했다.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점심시간이어서요. 저희가 식사 마칠 때까지 좀 기다려주실 수 있죠?”라고 능청스럽게 말했고 직원은 “아 네네. 편하게 식사하세요”를 연발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밥알을 씹는 속도를 평소보다 1.5배가량 늦췄고, 흘리는 양도 조금 더 늘렸다. 그것에 비례하여 활동지원사 선생님의 손이 내 입가 주위에서 바쁘게 움직였고 바닥에 흘린 밥알을 훔치는 화장지의 양도 그만큼 쌓여갔다. 밥을 먹는 중간중간 슬쩍 뒤를 돌아보며 직원의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속으로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똑똑히 봐라. 이래도 활동지원 시간 깎을래?’ 이런 나의 속말이 들릴 리 없는 그는 방 안에 있는 얕은 매트리스 한 귀퉁이에서 몸을 쪼그리고는 오랫동안 뭔가를 적고 있었다. 아마 식사를 하면서 눈에 띄는 내 모습을 적었을 텐데 나는 직원이 그 순간만큼 빅토르 위고와 같은 작가정신을 발휘해주기를 바랐다. 빅토르 위고는 소설 속 등장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거대한 역사의 물결에서 해석해내는 작가였는데, 마찬가지로 직원 또한 나를 보면서 활동지원서비스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꼭 필요한 제도인지를 상기하게 되고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상부에 보고할 수 있기를 바랐다. 쓸데없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계속 밥을 먹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도 촉박했고, 워낙 위장이 예민한 탓에 누군가를 깊이 의식한 채로 밥을 먹으면 꼭 탈이 나기 일쑤였다. 결국 공깃밥 삼 분의 일도 비우지 못한 채 밥상을 물려야 했다. 나는 노트북을 켰고 직원이 내 옆으로 왔다. 직원은 그때까지 쓰고 있었던 마스크를 내리고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신변처리부터 시작해서 샤워하기, 옷 입기, 짐 싸기, 휠체어 타기 등등등 내가 할 수 있는 동작들을 물었고 나는 거의 모든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직원이 심사표가 들어 있는 파일을 자신 쪽으로 세우는 바람에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언뜻 보였던 심사표에는 ‘X’ 표시가 줄줄이 이어졌다. 의사소통 파트에는 ‘필담 가능, 인지 정상’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나는 나의 무능력을 나타내는 X표 행렬에 작게 안도했다. 내가 무능력하게 보인다는 것은 더 많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통해 얼마든지 나의 일상생활을 주체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이니까. 인생은 역설적인 순간의 연속이었다. 직원은 나에게 몇 가지를 더 물었다. 나는 대답만 하다 끝 무렵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서비스 시간이 깎여서 나온다면 몇 일 내로 항의해야 되나요?” ‘이의제기, 재고 요청’과 같은 점잖은 단어들이 얼마든지야 있었지만, 그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단어는 항의뿐이었다. 직원은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이고 “이의신청 기간은 결과를 통보받은 날부터 90일까지인데요. 선생님의 경우에는 아마 기존 시간대로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곧 자리를 떠났다. 나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나의 일상은 조용히, 계속되었다.

 

- 나의 일상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가?

 

갱신 신청 결과를 받은 건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번에는 등기로 왔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선생님께서 우편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와 빠르게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나의 유일한 관심은 활동지원 서비스 시간이 그대로 보존되는가, 깎이는가였다. 그러나 나는 갱신 신청 안내서처럼 이번에도 명확한 답변을 찾을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난무했다. 예를 들어 통지서에는 나의 활동지원등급이 1등급(다형)에서 9구간(다형)으로 변경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활동지원등급이 왜 그렇게 변경되었는지 나와 있지도 않았고, 9구간(다형)으로 변경되면 받을 수 있는 서비스 시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월 한도액이 명시되어 있지만 그건 지극히 행정적인 차원에서 서비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감조차 오지 않았다. 나는 통지서를 뚫어지게 쳐다만 보다가 활동지원사 분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 관리하는 센터에 문의해보았다. 센터 측 실무자도 활동지원등급이 변경된 이유를 알 수 없어 구청 공무원에게 문의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서서히 화가 났다. 도대체 활동지원서비스를 관리하는 실무자조차도 알지 못하는 결과 통지서를 어떤 근거와 설명도 없이 당사자에게 보내는 무책임한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활동지원급여 삭감을 알리는 통지서. ‘변경’에 체크표시가 되어 있으며, 활동지원등급이 1등급(다형)→9구간(다형)으로 변경되었다고 쓰여있다. 최종적으로 시간이 삭감되었는데 시간 삭감에 대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사진 홍성훈

 

얼마간의 침묵과 답답한 시간이 지났고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실무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활동지원등급이 어떻게 변경되었는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지만─그건 담당 공무원도 모른다는 소리다─ 한 가지는 확실하단다. 바로 활동지원 시간이 대폭 삭감된다는 것. 삭감된다는 시간을 듣고 나는 거의 까무러칠 뻔했다. 한 달에 151시간이 삭감된다고 했다. 한번 생각해보시라. 누군가 아무런 설명 없이 당신의 한 달에서 150시간을 뺏어가겠단다. 한 달은 대략 30일이니까 151을 30으로 나누면 하루 5시간이 증발되는 셈이다.

 

당신은 일상의 어느 부분을 포기하겠는가?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실무자에게 나는 괜히 짜증을 내며 당장이라도 이의신청하겠다고 말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나 센터 실무자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이 곧바로 깎이지 않는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변경에 따른 혼란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3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둔단다. 그래서 3년 동안은 기존에 제공되던 시간을 계속 받을 수 있되, 유예기간이 끝나고 또 한 번 재심사를 거친 뒤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때는 진짜 시간이 삭감된단다. 전화상으로 센터 실무자의 말을 듣고 있는 내내 시한부 선고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그날그날 충실하게 살아가는 나였지만, 3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듣자 머릿속이 아찔했다. 3년이 지났을 때 나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체기가 얹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도대체 왜 이 한국 사회는 장애인들에게 선명한 일상을 보장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말인가? 이런 고민을 하던 중 나에게 번뜩이는 깨달음을 준 사람이 있다. 바로 서철모 화성시장이다. 화성시는 지난 6월 16일, 공문 하나를 보냈다. 공문의 내용은 “활동지원을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형평성을 도모한다며 지원 대상자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운운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예산을 살펴보니 지원 대상은 대폭 확대할 계획이지만, 거기에 투입되는 돈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그러면 부족한 예산은 어디에서 확충할 것인지를 따져 물으니 기존에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최중증장애인의 시간(서 화성시장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까운 돈’)을 거둬들여 메꾸겠다고 한다. 당연히 장애인 활동가들은 화성시의 결정에 불복하여 화성시청을 찾았고 그들과 면담한 화성시장은 이런 ‘주옥같은’ 답변을 내놓았다고 한다.

 

“왜 가족이 있는데 국가가 장애인을 돌보냐.” (▷서철모 화성시장, “가족이 있는데 왜 국가가 장애인 돌보나” 망언)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한편으로는 나의 고민이 명쾌하게 풀렸다. 그러니까 인간답게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우리들의 일상은 어떤 체계적이고 근거 있는 기준에 따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말 한마디, 더 나아가서는 정책 결정자의 의뭉스러움으로도 뿌리째 흔들릴 수 있었다. 저들이 내세우는 기준은 애초부터 바람 한 줌이면 스러져버릴 따위의 것들이었다. 그리고 저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사회비용을 갉아먹는 기생충일 뿐이다. 이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산정하는 정부의 기준 말고 장애인 당사자, 가족, 장애인 운동 진영이 협의하여 만든 기준을 반영해야 한다. 어떤 서비스가 필요하고 왜 그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하는지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여러 주체들이 참여해야 한다. 둘째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밀실심사가 아니라 심사 과정과 결과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제공해야 한다. 몇 등급 혹은 몇 구간으로 지정되었다고 성의 없는 통지문만 달랑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활동지원 시간은 얼마이며, 그렇게 산정한 이유는 무엇인지 설명해야 한다. 정부는 그럴 의무가 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의 활동지원서비스 문제를 논할 때 제발 가족까지 싸잡아 거론하지 말았으면 한다. 코로나 시대를 겪어오면서 뼈저리게 느꼈지 않은가? 외부와의 교류가 끊겼을 때, 가족의 가장 약한 고리부터 폭력적인 관계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장애인이 가족과 동등한 관계를 맺게 되는 순간이 장애해방의 시작이지 않을까?’ 이런 주제넘은 생각도 든다.

 

<설국열차> 이야기로 글을 열었으니 <설국열차>로 닫는 게 맞겠다. 꼬리칸의 혁명을 이끈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수많은 죽음들을 딛고 설국열차의 창시자 윌포드(애드 해리스)를 대면하기 위해 문 하나를 앞에 두고 서게 된다. 그때까지 함께 위기를 겪으며 동행한 열차의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는 그의 앞을 막아선다. 당황한 커티스는 어서 문을 열어 윌포드를 죽이고 열차의 질서를 바로잡자고 말하는데, 남궁민수는 이런 취지의 대답을 한다. 내가 열고 싶은 문은 저 앞에 있는 문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문이라고. 앞문으로 가면 지배자를 죽이고 기차를 장악할 수 있지만, 저 옆문을 열고 가면 선로 위가 아닌 새로운 세상 속으로 갈 수 있다고 말이다.

 

화성시의 일방적인 통보 이후 중증장애인들은 16일부터 화성시청 2층 시장실에서 점거 농성을 시작했다. 그들은 시장실로 들어가는 문에 피켓을 붙였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신의 인식 및 인권상식의 무지함을 아무리 커버해도 훤히 다 보인다. 모르면 배워라.” 나는 그들의 말을 반복한다. 제발 그 입 좀 다물고 모르면 배워라.

올려 0 내려 0
홍성훈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장애인들, 활동지원 3년 ‘시한부 선고’ 받자 밧줄에 목매달아
화성시, 장애인 가정 방문해서 ‘5분마다 어떤 서비스 받는지’ 감시하겠다?
화성시장실 농성장에서 어느 활동가의 편지
화성시장실 앞 중증장애인들 “죽을 각오로 농성장 지킨다” 
서철모 화성시장, “가족이 있는데 왜 국가가 장애인 돌보나” 망언
‘활동지원 시 추가’ 삭감 감행한다는 화성시, 장애계 시장실 점거
화성시 활동지원 월 192시간→30시간 삭감에 “시장이 대책 마련하라” 촉구
월 192시간→30시간 삭감… ‘활동지원 24시간’, 화성시에서 사라지나
기해의존선언서(己亥依存宣言書)
화성시 올해 활동보조24시간 지원 등 합의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프린트하기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 욕설과 혐오를 담은 댓글, 광고 등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으니 댓글 작성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서평]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는 방법 (2020-02-19 14:0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