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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이 찢어졌을 때, 안전하게 진찰 받을 수 있다면?
[이슈페이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④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을 온전한 나의 권리를 위해
등록일 [ 2020년07월27일 19시33분 ]

[기획의 글]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관련법의 개정 시한으로 제시했던 2020년 12월 31일이 이제 6개월 남았습니다. 2012년 당시의 결정과는 다르게 2019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이 보여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면 국가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해 온 ‘낙태죄’의 역사가 바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침해이며, 따라서 국가가 사회경제적, 의료적 보장을 통해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여전히 개정 입법에 관한 논의는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수준에서 다시 “어디까지를 허용하고, 어디서부터 처벌할지”의 차원으로만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수준의 논의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작할 때가 되었습니다. 한 때는 ‘가족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이제는 다시 ‘저출산 위기 대응’이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목적에 따라 인구를 관리하고 개인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침해해 온 시대를 이제 끝내야 합니다.

 

그래서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는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을 마련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차별이나 폭력, 낙인과 강요 없이 자신의 몸과 건강, 성관계, 파트너십과 가족구성,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에 관한 결정권을 보장받고,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언어, 장애, 국적 등에 관계없이 이에 필요한 자원과 교육,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으며, 일터와 교육기관, 여러 시설 등에서 또한 이러한 권리들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의 여러 기관들이 이를 적극적이고 실질적으로 실행하도록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 책임을 다하도록 하기 위해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을 제안합니다.

 

7월 중순, 이 법안의 첫 공개를 앞두고 이번 이슈페이퍼에서는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의 필요성과 의미, 이 법이 변화시킬 우리의 삶에 대해 소개하는 글 네 편을 싣습니다. 곧 공개될 법안에 여러분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①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 제안에 부쳐
② ‘성·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안)’의 제안을 기대하며
③ 임신중단 규제에 있어서 기한방식의 논리적 한계
④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을 온전한 나의 권리를 위해

 

성인이 되고 나니 갑자기 연애를 권해 받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운 건 임신의 고통과 낙태 시술의 잔혹함, 그리고 콘돔을 통한 피임법이 전부였다. 협상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활동하던 단체 불꽃페미액션에서 만난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우리는 다양한 섹스, 건강한 피임법 등을 주제로 ‘언니들의 성교육’(이후에 ‘페미들의 성교육’으로 바뀐다)을 기획했다. 대학의 여학생 협의회가 공동 주관하는 강연이었으므로, 해당 학교의 강의실을 대여했다.

 

그런데 강연 시작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강의실 대여 취소 통보를 받았다. 불꽃페미액션이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며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라는 점을 들어 학부모가 민원을 넣은 탓이었다. 강의실을 대여한 학교는 가톨릭 학교였다.

 

학부모다운 발상이었다. 학교에서 온갖 음란한 짓거리가 펼쳐지는 데 하나도 모르면서 낙태죄 폐지를 운운하다니! 학생회 활동을 학부모의 목소리를 빌려 막은 학교도 알만했다.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옆에 위치한 기독교 학교 강의실을 새로 빌려 섹스 이야기를 해댔다.

 

포장지에 싸인 콘돔 두 개. 사진 언스플래시

 

불안함과 협상하기

 

여자들끼리의 섹스 이야기는 음담패설보다는 고백과 참회로 이어졌다. 우리는 불안함과 후회를 나눴다. 어떤 체위를 시도해봤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디를 만지면 기분이 좋은지보다는 남자 파트너에게 요구받은 것과 이에 대한 대처가 먼저 튀어나왔다. 섹스는 쾌락보다는 불안함과 협상하는 과정이었다. 남자들은 콘돔 없이 섹스를 하고 싶어했으며 여자들은 생리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몸은 관계 안에 존재한다. 나는 내 몸으로 남자 파트너와 협상했다. “뭐하면 뭐 해줄게”하는 식이었다. 그와 나의 쾌락은 같이 만난다기보다는 양 끝에서 거래의 대상으로 저울에 올랐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몸을 잘 알았고, 몸을 만지고 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콘돔이 찢어진 날 내 몸은 혼자 관계에서 떨어져 나왔다. 성인이 되고 2년 정도가 지났을 때 나는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해주는 서울 시내 병원 다섯 군데 정도를 알았고 얼굴만 아는 동기부터 친한 친구까지 잊을만하면 연락을 받았다.

 

여전히 나는 술을 마시고 모르는 사람과 춤추러 다닌다. 어느샌가 불안함과 쾌락은 아주 가까워져서, 종종 불안한 게 쾌락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낯설고 새로운 게 좋았고, 유지되지 않는 관계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내 몸이 보호의 대상이 되는 건 요원해 보인다. 임신 생각은 없으면서 헤프고, 출산 계획은 없어도 종종 성병을 걱정하는 몸이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내 몸의 권리는 ‘안돼요, 싫어요.’라고 외치지 않아도 존재할까?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

 

주민센터에서 산모 수첩을 받고 역사에서 열쇠고리를 받아 임산부 보호석에 앉는 것에 더해 집 근처에서 파트너와 함께 성병 검사를 받는 상상을 해본다. 콘돔이 찢어졌을 때 급하게 인터넷 검색으로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을 곳을 찾기보다는 근처 보건소로 가 진찰받고 별도의 성병 검사를 받는 상상을 한다. 응급실 수납처 앞에서 허겁지겁 약을 먹는 게 아니라 깨끗하게 정돈된 진료실에서 상세한 설명을 듣고 내 몸에 맞는 약을 건네받는다.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러 갈 땐 남자 파트너를 찾는 질책보다 내 미래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고 추가 서비스를 위한 센터를 연계 받는다.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 기본법’은 여기서 출발한다. 피해를 평가하고 상황의 불가피함을 재단하던 척도는 사라지고 나의 권리가 온전히 존재한다. 나의 상황은 구체적으로 상상되며 나의 걱정과 불안은 국가가 제공해야 할 안전망 안에 들어간다. 사회적 차별과 낙인 대신 내 몸이 권리로 실재한다.

 

사실상 ‘모성’으로 좁혀졌던 여성의 몸이 성적권리와 재생산권리의 장으로 온전히 존재한다. ‘아이를 낳을 권리’에서 ‘아이를 언제/어떻게 낳을 권리’로, 또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로 확장된다. 피임용구 및 피임약제의 올바른 사용법은 국가가 설명해야 할 대상이 되며 나는 필요에 따라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임신, 병력, 장애여부 및 성 정체성과 무관하게 생활 속에서 보건 의료가 행해진다. 의료인은 눈높이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고 지식 전달을 넘어 상담인의 경험을 경청한다. 성교육은 포괄적으로 진행되며 그 안에서 성별정체성, 성적 지향의 다양함이 보장된다. 한국어의 사용 수준도 면밀히 설정된다.

 

나는 불안함을 애써 쾌락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상대와 나의 쾌락을 저울질해 하나만 선택하지 않는다. 섹스는 불안하고 위험한 행위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 형성의 한 방법이 된다. 임신의 고통, 낙태 수술의 잔혹함과 콘돔을 사용한 피임법 대신 섹스에 이르기까지의 의사소통 과정과 그 이후의 관계 변화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진지하게 임신과 출산을 고려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완경하고도 여전히 달마다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으며 보험 적용을 받는다. 자궁에 대해 임신 기능 외에 다른 설명을 듣는다. 성교육을 기획해 학교에서 쫓겨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학교가 성교육을 기획하고 평가지를 돌린다.

 

나의 몸이 함부로 재단되지 않고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를 상상한다. 불안과 협상하지 않아도 되는, 타협할 수 없는 온전한 나의 권리를 위하여.

 

* 비마이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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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주 페미니스트 활동가 share.srhr@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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