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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묻지 않는 ‘장애여성의 섹스’를 말하다
[기획연재]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공동기획] 비마이너 X 장애여성공감 X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등록일 [ 2020년08월24일 21시24분 ]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자위에서나 섹스에서나 중요한 것은”이라는 문구 아래 두 커플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 왼쪽에 있는 커플의 한 사람의 피부는 하얗고 다른 사람은 갈색으로, 목에 입을 맞추고 있다. 오른쪽 커플은 옷을 벗은 채 누워 있다. 누운 사람 하체에는 이불이 덮여 있으며, 그 위에 등을 보이고 사람은 그의 가슴을 만지고 있다. 그의 한쪽 다리는 의수다. 제공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이 섹스를 한다고?

 

장애가 있는 내 몸은 일상에서 많은 ‘보조’가 필요하다. 그래서 보조를 하는 사람에게 내 몸을 보이거나 만지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도와주면 더 편할 것 같아서...”라는 말로 상대가 내 몸을 마음대로 옮기거나 움직이더라도 보조를 받는 입장에서 ‘좋은 의도’인 그 마음이 왜 불편한지 말하기 어려웠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불편한’ 내 감정이 드러나지 않을까 걱정했고 당신의 의도를 부정하거나 무안한 일로 전달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몸을 보이는 일에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는데 그때 가장 보조받기 편한 몸이 된 것 같았다.

 

그런 나에게 섹스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섹스’에 대해 말해본 적이 없었다. 섹스라는 말 자체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누군가 내 경험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사실 여전히 섹스를 말하는 건 쉽지 않고 내 경험을 ‘판단’할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계속 말해야 하는 건 장애여성이 이 사회에서, 일상에서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시도와 실패들을 말하고 있는 나의 활동과 삶이 분리되지 않기 위해서다. 장애여성이 평등하게 관계 맺기 어려운 조건에서 관계를 주도하고, 맞춰나간다는 건 무척 고단한 일이지만 정체되어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대놓고’ 섹스를 말해야 한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섹스에 대해 즐거웠던 경험보다 파트너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맞춰주거나 관계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불편한 경험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내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파트너가 장애가 있는 몸을 어떻게 평가할지, 섹스 이전과 이후의 필요한 보조를 어떻게 요청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관계가 여전히 ‘섹시하게’ 느껴질지, 관계에 대한 부담감, 긴장, 초조, 복잡…등을 느끼지만 그 상황을 이런 감정으로 다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장애여성인 나 또한 만족스러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파트너와 갈등하고 협상하는 과정들이 매 순간 필요하지만 보조받는 입장에서 불편한 감정을 ‘미안한, 고마운’ 마음으로 덮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보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관계를 원만하게 가져야 했던 경우가 있었다. 내가 맺는 관계에서 이는 필수적인 조건들이기에 파트너의 표정과 시선, 말들에 나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우고 ‘보조받는’ 위치에서 더 많은 긴장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변 반응도 만만치 않다. 장애여성과 연애하는 사람은 존재만으로 ‘온갖 부담을 감수한, 착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하면 ‘장애여성인 네가 그깟 자존심은 버려야 하지 않냐’고 말한다. 관계회복을 바라는 좋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파트너는 장애여성인 너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조건이니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미 사회적으로도 조건적으로도 평등하지 않은 관계에서 ‘그깟 자존심’은 너무나 중요하다. 파트너의 역할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파트너가 많은 것을 감당하고 있다’는 그 전제가 파트너와 협상할 타이밍을 놓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더는 회피할 수 없다. 회피는 관계를 유지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건 이 관계를 맺기 위해 나도 많은 것들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장애여성의 섹스를 말할 때 이성애, 비장애, 남성 중심의 섹스 방식에 장애여성의 몸을 꾸겨 넣고 장애여성도 섹스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상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호기심은 필요 없다. 그 협소한 기준이 전부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계에 더 치열하고 욕망하는 장애여성의 섹스는 이런 거라고, 더 많이 이야기되기를 바란다.

 

‘로맨틱한’ 관계가 중요해
 

장애여성들은 시설에서 살거나 시설 밖에서 살더라도 내 공간을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 자위나 섹스 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필요한데 널리고 널린 숙박시설 중에서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은 손에 꼽는다. 휠체어와 같은 보장구를 사용하는 장애여성에게는 건물의 접근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전에 접근성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물론 미리 알아보고 가더라도 엘리베이터의 폭이 너무 좁아서 들어갈 수 없거나 방 앞에 높은 턱이 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장애인화장실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설령 접근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편의시설이 안 되어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파트너에게 보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전동휠체어에서 침대로 이동하려면 파트너가 휠체어 발판을 뒤로 젖힌 뒤 신발을 벗고, ‘하나, 둘, 셋’을 동시에 맞춰 몸을 옮겨야 하는데 침대 높이가 너무 높거나 낮을 경우 더 많은 보조가 필요하다. 사실은 내 몸을 번쩍 안아서 옮기는 것이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는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굳이’ 내가 움직이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파트너가 안아 들 때는 보이지 않는 모습들, 이를테면 침대에 다리를 걸쳐야 하거나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이동하는 등 보조가 필요한 내 몸을 더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몸을 드러내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장애인의 몸이 부정적으로 이야기되는 사회에서 내 몸을 제대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짧고, 휘어 있고, 굳어 있는’ 내 몸을 똑바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고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나름의 ‘마인드컨트롤’도 필요했다. 이 부담을 감수하고 ‘굳이’ 몸을 보여주는 이유는 몸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관계를 맺기 어렵기 때문이다. 몸이 보여 지고, 보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파트너가 내 몸의 속도를 맞춰줄 수 있는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겪는 이 관계가 여전히 로맨틱하게 느껴지는지, 보조에 대한 당위적인 설명이 아닌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가 관계에서 가장 중요했다. 반면, 보조가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다 해줄게, 내가 해주는 게 더 편하겠다’며 답답해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파트너와는 섹스하기 어려우며 더 이상의 관계 또한 지속하기 어렵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성적인 즐거움이 나쁜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자유로운 성적 상상과 행동으로 내 몸의 느낌을 즐기는 거랍니다”라는 글귀 아래 두 커플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 한 커플은 서로의 성기를 애무하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유방이 있으며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음핵을 만지고 있고, 다른 사람은 섹스토이를 활용해 사랑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커플 중 한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 있으며, 상대방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상대방의 가슴을 애무하고 있다. 제공 장애여성공감

‘실패’를 같이 겪는 몸

 

관계의 초반에 가장 고민했던 것은 ‘씻는’ 문제였다. 위생적으로 중요하지만, 보조를 요청하기 어려운 마음과 싫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예를 들어 후다닥 씻고 옷을 입고 있는 파트너와 달리 화장실에 들어가서 씻고 나오기까지 필요한 보조를 설명하고, 보조를 받는 모든 과정에서 옷을 입고 있지 않은 내가 불편해서 그냥 집에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보조를 받는 입장에서 미안한 감정 말고 다른 감정들을 솔직하게 말하기 어려웠는데 파트너가 이런 감정을 알아채고 보조가 필요하지는 않은지 다시 물었음에도 괜찮다는 말로 그 순간을 모면했다. 사실은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파트너에게 보조받는 것을 최소화하는 것이 관계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익숙해지는 몸’이 된다는 것은 시간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고민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상황이 지나갔다고 해서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관계는 조금씩 제한되었다.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다/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방적이었고 아주 큰 착각이었다. 그건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가장 나중으로 미뤄두고 싶은 보조는 화장실 보조였다. 변기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고 냄새도 걱정됐다. 활동지원사가 있더라도 파트너에게 보조를 요청할 수 있는 상황과 아닌 상황은 너무 다르게 느껴졌다. 관계의 선이 있다면 그 부담을 내려놓아야 선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안함을 잠시 저 멀리 던져버리려고 노력했다. 나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감정이기 때문에 당시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안함은 끝이 없다. 중요한 건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상대의 반응은 어떨지 고민하면서 머릿속으로는 몇 번의 시뮬레이션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파트너가 당황하지는 않을까’,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포기한 적도 많았다. 말을 하더라도 실패는 뭐, 수없이 많았다. 단 한 번의 기회로 나의 의도를 잘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관계를 맞춰나가는 것은 그만큼 힘든 일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실패’라고 섣불리 판단해서 그다음 시도를 주춤하지 않는 것이다. 애써 용기를 낸 것이 헛수고가 아니며 관계에서 내 몫은 크지만 또 그건 내 몫만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관계에서 이 과정을 함께 감당할 수 있을 때 서로에게 익숙한 몸이 될 수 있다. 나도 내 감정을 명확하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할 수 있었던 것은 ‘보조가 그만큼 중요한 문제인데, 왜 나에게 요청하지 않는지’ 질문하는 파트너의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고민에는 속도가 붙어서 어느 날에는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들, 예를 들어 내가 옷을 입지 않거나 변기에 앉아있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기도 했고, 화장실 바닥을 기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미리 청소해두는 모습을 보았을 때 파트너에게 내 몸이 익숙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관계가 단순히 고맙거나 힘든 일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닌, 나와 파트너의 몫으로 ‘관계가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여성의 망한 섹스를 말하자
 
많은 이들은 장애여성의 섹스가 ‘제한적’일 거라고 말한다. 섹스하는 방식을 상상할 수 없어서? 아니면 장애여성은 ‘섹스하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몸과 섹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피임이나 성에 대한 의학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방법과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체위를 알아야 내 몸에 맞게 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시도가 필요한 동시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를 수동적인 위치에 계속 놓아두면 섹스가 단조롭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장애여성인 내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관계의 역동들로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섹스가 가능하다고 전제할 때 내 몸에 맞는 방식들을 상상하고 시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내 욕망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좋을까? 이건 어때, 같이 해보자!”라고 서로 제안하는 것부터 “좋다, 잘한다, 안될 거라고 생각해도 해봐야 안다!” 등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실패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 자책하거나 실망하거나 진지해지지 않고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런 관계를 지향한다면 내 몸이 어디를 만질 때 좋고 싫은지, 어떤 체위에서 통증이 생기거나 불편함이 있는지, 이 말을 들을 때 감정이 어떤지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이야기를 하고 파트너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됨으로써 신뢰가 생기고 신뢰는 곧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장애여성의 섹스를 말할 때 ‘관계’에서 파트너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파트너의 역량만으로 이야기되는 것을 경계한다. 장애여성이 주도권을 가지기 어려운 조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치열함은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문제임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이 치열함은 언제든 이 관계를 ‘내’가 정리할 수 있다는 마음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여성이 관계 맺을 기회나 조건이 너무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함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맺는 이 관계가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합리화하거나 일방적으로 맞춰 주는 관계여선 안 된다. 이러한 나의 태도는 파트너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주변인, 활동지원사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주기에 관계 단절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막연하게만 생각되는 그 일이 관계를 바꾸는 시작일 수 있다. 그러려면 장애여성이 관계와 보조를 받는 몸에 대해, 내 욕망에 대해, 망한 섹스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성(性)이 사치로 치부되거나 사소한 것으로 무시되지 않아야 한다. 장애여성들의 치열한 관계에 대해 더 많은 목소리가 드러나길 바라며, 욕망과 현실 그 어디쯤에 있는 도발적인 시도와 실패의 경험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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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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