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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Sex(인조이 섹스), 성적 권리를 향유한다는 것
[기획연재] 장애, 성을 밝히고 재생산에 올라타다
[공동기획] 비마이너 X 장애여성공감 X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등록일 [ 2020년08월27일 19시30분 ]

한 사람이 매트에 엎드려 있다. 그는 초록색 윗도리만 입고 있으며, 한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만지며 자위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성적 권리도 인권이다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한 글이나 말은 대부분 섹스를 할 수 있는지, 못하는 경우엔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머물러있다. 이런 질문과 답은 대부분 중증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성의 경험에 기반해있다.(이제까지 ‘장애인의 성’은 ‘장애남성의 섹스’ 이야기였다, 김상희) 중증장애를 가진 남성은 성적 권리에 대한 요구자로서 발언을 하는데, 대부분은 성을 향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피해’나 ‘차별’로 구성하고, ‘차별 피해’를 호소하는 형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언설 속에서 피해가 무엇으로부터 발생하는지, 차별을 예방하고 구제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을 향유할 권리’에 대한 요구가 ‘인권’운동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한다면 어떻게 될까? 성적 권리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향유할 방법을 논의하며, 국가가 접근성 확보를 위해서 어떠한 책임이 있는지를 지목하고, 사회적 변화를 추동함으로써 권리의 토대를 다지게 되는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이 인권‘운동’으로 실천될 때, 당사자의 피해 호소에 그치지 않고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논의의 장을 만들고, 성적 권리를 파괴하고 차별과 폭력을 만드는 권력을 지목하여,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게 될 것이다. 성적 권리가 노동권, 교육권, 주거권, 건강권 등 다른 인권의 목록과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를 강화하는지 인식하고 알려 나가는 활동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성적 권리도 인권일까? 이에 대해서 의구심이 드는 많은 이들에게 아래의 문단을 함께 읽어보자고 제안한다.

 

“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넓습니다. 개인의 행위와 정체성이자 사람 간의 관계이며, 문화와 규범, 법과 제도를 아우릅니다. 따라서 성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민주화하고, 성에 개입되는 차별과 폭력 문제를 다루고, 문제적인 법과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 제도를 만들고 문화운동을 하는 것이 필수적인 영역입니다. 만일 이러한 사회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을 때 차별받는 소수자들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경험합니다. 이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차별을 예방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며 관련된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입니다.


성적 권리로서 포괄할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로부터 부당하게 침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사생활 권리의 일부가 되어야 하고, 성적 권리를 자유롭고 실질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신체와 표현의 자유가 기초되어야 합니다. 결혼 여부, 임신 여부, 파트너 선택의 결정권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또한, 성적 정체성과 성행동 여부와 방식에 대한 그 어떤 강압도 없어야 하며 모든 개인이 자신이 만족스럽고 안전하고 즐거운 방식으로 성생활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교육받을 권리, 정보접근권, 의료접근권을 비롯한 건강권, 나아가 노동권, 주거권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성, 셰어[SHARE])

 

성적 권리를 언어로 정리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문제제기와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했지만, 이렇게 정리된 언어가 한 사람의 삶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또 수많은 실패와 거듭된 도전이 필요하다. 특히나 사회적으로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 장애인의 삶에 이러한 언어가 스며들어 ‘향유’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성을 향유한다는 말의 문제점과 중요성

 

먼저 성적 권리를 ‘향유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는 영어의 Enjoy(인조이)를 번역한 것으로 권리를 ‘누린다’는 굉장히 낯선 느낌을 준다. 권리를 투쟁을 통해  겨우 얻어내고 지키느라 힘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누린다’는 느낌은 뭘까. 특히나 성적 권리를…. 이 낯선 느낌을 현실감 있게 가져오기 위해서는 ‘권리를 소유함으로써 누린다’고 여기는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권리 개념을 이해하게 되면 ‘능력이나 자격에 따라서 권리를 얻어내거나 누린다’고 오해할 우려가 크다. 현실적으로는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HIV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누리기는커녕 접근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적 권리를 이야기할 때 ‘성을 향유한다’고 표현하는 문제점과 중요성을 짚고자 한다. 첫 번째 문제는, ‘향유한다’는 말이 가지고 있는 가벼운 느낌으로 인해서 성적 권리는 생존권이나 노동권처럼 중요하지 않고 부가적인 ‘선물’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성적 권리가 박탈되거나 차별받는 양상은 생존권, 건강권 등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생계나 사회적 신분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내가 원하는 상대와 원하는 방식으로 성관계를 맺기 어렵고 강요나 폭력, 낙인에 취약해지기 쉬우며, 이러한 경험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이러한 상황이 누적되면 사회적인 삶이나 사람 간의 관계가 파괴되는 조건에 놓일 수 있다.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이 부정되는 가족, 직장, 학교 안에서 쫓겨나는 사람은 소수자이며, 이러한 경험은 소수자의 삶뿐만 아니라 같은 집단에 속한 많은 사람에게도 악영향을 준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성을 향유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정되거나, 그러한 도전을 했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기가 쉽고, 이러한 차별 피해를 호소하거나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비장애인에 비해 몇 배나 어렵다. 이러한 차별이 역사적으로 누적되면 차별적인 ‘구조’가 된다. 이것이 왜 자유와 평등의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두 번째 문제는 앞서 지적했듯이 ‘향유한다’라는 말을 우리가 권리를 ‘소유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계급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나 문화적으로 권력 있는 남성들은 성적 실천이 활발할수록 능력이 많다는 것을 상징하게 되고, 자칫 처할 수 있는 성병이나 원치 않는 임신 등 건강상의 위험에 대처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된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성적 경험은 위계적 관계에서 상대방의 호의를 통해서 시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거나, 계속해서 수동적으로 머무르게 되는 한계가 생긴다. 장애를 가진 여성, 나이 든 여성이 성폭력 사건을 고소했을 때 ‘너와 성관계를 해주니 고마운 줄 알아라’라고 2차 피해를 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약자들이 상대방으로부터 잠잘 곳이나 생계비를 제공 받았으니 성관계에 응함으로써 보답해야 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러한 문제에 도전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당연하게도, ‘인권은 존엄성에 기반해서 모두에게’ 주어져야 함을 전제로, 어떤 사람의 특성이나 조건에 따라 권리가 제한받거나 박탈되는 상황을 바꿔야만 한다. 권리는 소유하거나 일방적으로 받는 선물이 아니라 이미 주어져 있다. 이것을 가로막는 불평등과 차별에 맞서 싸운다는 원칙이 성적 권리 앞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은 휠체어에 앉아서, 상대방은 바닥에 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키스를 하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은 옷을 벗은 상태로, 상대방이 그의 성기를 애무하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어떤 자세와 순서로 해야 한다는 정답 같은 건 없어요. 서로가 좋아하는 방식을 같이 찾아봐야겠죠.”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장애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재 『장애여성공감 성을 밝히다』(2009) 삽화. ⓒ장애여성공감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적 권리를 ‘향유한다’고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 성적 권리는 차별과 강요, 폭력과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뿐만 아니라 성적 즐거움을 추구하고 얻을 권리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향유한다는 말은 바로 그 즐거움의 존재를 떠올리게 해준다. 한국사회에서는 국가의 책임이 성적 폭력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다. 성적 즐거움과 건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보제공이나 교육은 공식적으로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차별받는 집단의 속성으로 인해 즐거움을 얻을 통로가 가로막힌 이들을 위한 접근성 제공 노력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청소년도, 노인도, 발달장애인도, 정신장애인도, 신체장애인도, 성소수자도, HIV감염인도 성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주체임을 부정당한다. 신뢰와 호혜에 기반한 관계 안에서 상호적인 즐거움이 될 때 성적 권리는 꽃핀다.

 

성적 권리가 인권으로 제대로 인식되고, 그 권리 안에 성적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포함된다면, 우리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더 넓은 상상을 할 수 있고, 사회와 국가의 책임에 대해 더 많이, 더 구체적인 요구를 할 수 있다. 그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변화할 것이다.
 
실패와 위험의 존엄성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내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과 퀴어커뮤니티의 약물과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연구모임POP가 함께 만들었던 행사 중에 ‘실패한 섹스, 위험한 섹스, 좋은 섹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위험한 섹스와 실패한 섹스를 만드는 요인은 상호 간에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사회적으로 작용하는 낙인으로 인해서 정보나 도움을 구하기 어렵고, 소수자가 처한 차별적 상황으로 인해 대처 방법을 박탈하는 권력이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한 ‘내가 HIV 감염인이라서 상대방의 부당한 요구를 감수해야 한다’라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을 위험에 내몰 수도 있다는 것,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병원이 없어서 적절할 때 치료받지 못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성적으로 활발하다는 이유로 언제나 성적 가해자로 상정되는 낙인 또한 위험하고 실패한 섹스로 내모는 조건이며, 이들의 성적 권리만 통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만드는 규범이나 법·제도 또한 제대로 분석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장애인 자립생활 이념에서는 실패와 위험의 존엄성이 중요하게 언급된다. 이 부분이 인정될 때 당사자나 사회가 덜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실패와 위험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것을 실행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보호의 대상으로 남겨지지 않을 수 있다. 이 원칙을 자립생활운동을 넘어서 성적 권리를 확보해나가는 운동에도 적용하여 위험에 대처할 역량을 기르고, 도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피해와 손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나가자고 제안하고 싶다. 침묵하고 참기에는 나의 생존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고, 존엄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포기할 수 없는 권리이며, 차별받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박탈되어왔던 권리이기 때문이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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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정 장애여성공감 연구정책팀 활동가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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