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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서 화장실도 못 가요” 임대주택 사는 중증장애인의 호소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겐 턱없이 작은 평수, 화장실 접근 불가능 
SH, 장애인 평형변경 규정 없다고 발뺌… 규정 있어도 독거 장애인에겐 ‘무용지물’
등록일 [ 2020년09월03일 14시57분 ]

재개발 임대주택에 거주 중인 홍 아무개 씨가 화장실에 들어가지 못해 침대에서 검정색 비닐을 받치고 머리를 감고 있다. 사진제공 홍 아무개 씨

 

“제집에서 화장실을 못 갈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중증 사지마비장애인 홍 아무개 씨(가명, 만 35세)는 화장실 생각에 매일 밤 울고 있다. 지난 두 달 동안 자신의 집에서조차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 씨는 어렸을 적부터 가족과 함께 살았지만 ‘올드보이’처럼 10년 넘게 방에서만 지냈다. 그러다가 2017년 홀로 살아보겠다고 집을 나왔다. 체험홈을 거쳐 LH 전세임대를 통해 오피스텔로 이사했지만, 어느 날 집주인으로부터 재계약 때는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홍 씨는 사방팔방으로 거주할 곳을 찾아 헤매며 온갖 주거약자용 공공·국민 임대주택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게다가 주거급여 수급자여서 보통의 월셋집은 꿈도 못 꿨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홍 씨는 ‘재개발 임대주택’에 당첨됐다. ‘재개발 임대주택’이란 서울주택도시공사(아래 SH)가 재개발로 인해 철거민이 된 세입자에게 임대주택을 우선 공급하고, 남은 공가를 저소득계층의 주거안정을 위해 공급하는 임대주택 사업이다. 차상위계층인 홍 씨는 철거민에게 공급하고 남은 세대에 당첨된 케이스다. 그동안 살던 집 계약은 이미 끝났지만, 간신히 계약을 연장해가면서 결과만을 기다리던 터라, 당첨 소식에 매우 기뻤다. 입주 날까지는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아 급박한 상황에 계약금을 내고 서둘러 이사를 준비했다.

 

홍 씨는 평소 활동지원사가 24시간 필요하고,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어 사전에 동선을 파악해야 했다. 이를 위해 중증 사지마비 장애인인 홍 씨를 대신해 가족과 지인들이 입주 전 집을 보러 갔다. 이들은 휠체어를 들고 입주할 집에 찾아가 화장실을 점검하며 홍 씨와 화상통화를 했다. 변기가 화장실 문 앞을 막고 있어 진입이 쉽지는 않았지만, 휠체어를 이리저리 틀어 넣어보니 진입할 수 있어 보였다. 또한 작은 크기의 휠체어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던 터라 화장실 진입이 가능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아파트의 시설과장에게 미리 변기나 세면대의 위치를 바꾸는 구조변경에 대해 문의도 해보았다. 그러나 입주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배관으로 인해 구조변경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한 휠체어 접근을 위해 화장실에 미닫이문과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는지 묻자, SH는 이에 대한 비용은 본인이 부담해야 하며, 모두 원상복구 해야 한다고 답했다. 

 

홍 씨가 살고 있는 집 화장실에 휠체어를 진입하기 위해 시도했지만 좌변기와 벽에 걸려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 SH, “화장실 쓰고 싶으면 주거약자 임대주택으로 가라”  

 

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던 홍 씨는 지난 6월 3일, 그 집에 입주했다. 하지만 전용면적 33제곱미터(약 10평)의 집의 화장실은 너무나도 비좁았다. 성인 장애인 남성 기준 가장 작은 크기의 휠체어로도 진입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들어갈 수 없었다. 가까스로 휠체어 양 옆의 폭을 줄여 진입해도 활동지원사가 화장실에서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이 와중에 심한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홍 씨는 좁은 화장실에서 움직이다가 다치기도 했다. 결국 홍 씨는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채 화장실 문턱에서 비닐로 넘치는 물을 막아가며 씻고 있으며 용변 또한 방에서 해결하며 지내고 있다. 게다가 좁은 집에서 화장실과 방을 오가며 힘든 업무를 하던 활동지원사까지 어깨를 다치게 되어 일을 그만두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홍 씨가 SH에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상황을 여러 차례 전달하자, SH는 같은 평형대의 재개발 임대주택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집 또한 화장실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또한, SH는 임대주택 공고를 기다렸다가 지원해보라고 했지만, 현재 SH의 임대주택 공급 계획은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 연기됐다. 결국 홍 씨가 평형변경을 요청하자, SH 측 직원은 홍 씨에게 “장애인이라고 해서 평형변경을 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라고 못 박았다. 이어 ”화장실을 못 가는 걸 알면서도 직접 이 집을 선택한 것 아니냐.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으면 주거 약자용 임대주택에 들어가라”는 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SH는 재개발 임대주택의 경우 원래 철거민을 대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을 위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재개발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철거민 혹은 저소득층 세입자 중에서도 장애인이 있을 수 있다. SH 본사의 한 직원은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재개발 임대주택에 입주한 장애인이 평형을 변경할 수 있는 규정이 있냐는 질문에 “그런 규정은 없으며, 편의시설이 필요한 장애인은 재개발 임대주택이 아닌 주거약자용 임대주택으로 지원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SH의 ‘임대규정시행내규’ 중 갈무리. 내규 제3조에 ‘휠체어 사용장애인 또는 중증장애인세대가 평형변경으로 이동을 원하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으며, 휠체어 사용 장애인세대는 세대원수에 1인을 합산하여 평형배정한다고 예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평형배정(변경) 기준’에는 세대원수 1인과 2인 기준 평형이 같아서 독거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인 규정이다.
 

- SH, 장애인 평형변경 규정 있는데도 없다고 해… 독거 장애인에겐 무용지물 

 

그러나 이와 같은 설명과 달리, SH는 비공개문서인 ‘임대규정시행내규’에 장애인 세입자의 평형변경에 대한 나름의 규정을 마련해두었다. 해당 내규에 따르면, 임대주택 세입자가 더 넓은 평형으로 변경하려면 결혼 및 출산으로 인해 세대원 수가 입주 시보다 증가해야 한다. 다만, 휠체어 사용 장애인 또는 중증장애인은 세대원수에 1인을 합산해 평형 변경이 가능하도록 예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규정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현 기준에서는 1인과 2인의 평형이 동일해서 독거 장애인의 경우, 세대원의 수가 2인으로 늘어나도 평형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휠체어 사용 중증장애인 홍 씨는 현재 전용면적 33제곱미터 크기의 집에 홀로 살고 있지만, 2인까지 평형 기준이 동일하기 때문에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갈 수 없다. 즉, SH는 홍 씨에게 장애인 세입자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는 것처럼 안내했을 뿐 아니라, SH의 내규 또한 독거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국민임대주택의 경우 중증장애인이 혼자 거주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휠체어 및 편의도구들을 사용하고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등 더 큰 공간이 필요한 상황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넓은 평형을 공급한다.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 [별표4]에 따르면 국민임대주택 입주 시 단독세대주에게는 전용면적 40제곱미터(약 12평) 이하의 주택을 공급하지만, 중증장애인에게는 단독세대주이더라도 50제곱미터(약 15평) 미만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재개발 사업 추진하면서 주거약자는 뒷전인 서울시와 SH 

 

한편 홍 씨가 양천구 제4선거구 시의원이자 서울시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위원장인 김희걸 서울시 의원에게 이메일로 어려움을 전하자, 최근 김 의원이 직접 SH에 연락을 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의원은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재개발 임대주택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면서 “그러다보니 홍 씨가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 같아, SH에 현장을 직접 보고 방안을 찾아보라고 했다”라며 앞으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을 알아보겠다고 밝혔다. 

 

SH 측은 김 의원의 연락을 받고 지난 1일에서야 뒤늦게 홍 씨의 집에 찾아가 화장실을 점검했다. 집을 방문한 SH 공공주택부 직원은 비마이너와의 전화 통화에서 “현재 세입자가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건 확인했다. 그래서 수리를 통해 화장실 문을 넓히는 걸 제안했지만 세입자가 안 된다고 했다”라며 평형변경에 대해서는 “내규상 불가능하다. 일반인(비장애인)은 안 해주고 장애인만 옮겨준다고 하면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나아가 앞으로의 대책을 묻자 “추후 주거약자용 임대주택 공급계획이 나오면 안내 정도는 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SH의 입장을 홍 씨에게 전하자 홍 씨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홍 씨는 “당시 SH직원에게 화장실에 직접 휠체어를 넣어보라고 하자, 그가 ‘안 봐도 알 것 같다, 화장실 문을 수리해도 공간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는데 인제 와서 전혀 다른 말을 한다”라며 당혹스러워했다.  

 

서울시에도 홍 씨의 사례를 문의하자 “해당 아파트는 서울시가 아닌 SH(리츠)가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SH가 정식으로 서울시에 검토를 요청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현재 서울시는 재개발 사업을 시행하면서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아래 조례)에 재개발 임대주택에 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조례에 장애인 세입자를 비롯한 주거약자에 대한 지원 근거는 없다. 서울시는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하고 노후한 건축물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재개발로 인해 임대주택으로 이주해야 하는 철거민이나 저소득 서울시민의 주거 환경은 뒷전으로 두고 있다.  

 

김선미 성북주거복지센터 센터장은 이와 같은 재개발 임대주택 문제는 서울시와 SH의 잘못된 주거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김 센터장은 “최근 서울시와 SH가 주거지원서비스를 열심히 하겠다고 하지만, 정작 이들이 내세우는 청신호(청년·신혼부부·호(戶)) 프로젝트만 보아도 서울시 행복주택은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쏠려 있으며, 장애인과 노인 등 주거약자를 위한 공급은 저조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집은 돌고 돌아 결국 재개발 임대주택이지만, 주거약자에게는 접근성이 안 좋아 결국 어려움을 겪게 된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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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연 기자 gayeon@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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