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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가 ‘임신한 여성’이 아닌 ‘임신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
[에브리바디 플레져랩] 대안적인 언어를 찾아서
[이슈페이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등록일 [ 2020년09월04일 18시47분 ]

* 에브리바디 플레져랩은 위험에 대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즐거움에 대해 알아가는 성교육을 만드는 셰어의 활동입니다.


어느 시기부터 ‘소중이’라는 말이 일상적인 대화, 관련 상품 홍보, 예능의 소재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졌다. ‘소중이’가 여성의 외부성기를 지칭했던 것인지 확실치 않지만, 지금은 특정 젠더와 연결시켜 사용되지만은 않는 듯하다. 알다시피 언어는 우리의 사고를 규정한다. 성기를 표현하는 언어가 이미 있음에도 굳이 ‘소중이’라고 할 때에는 그것이 소중한 것이라는 의미를 넘어 수치심이든 금기이든 유머 코드이든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것이라는 암묵적인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 ‘소중이’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신체 부위와는 달리 성기를 직접 언급하길 꺼리는 상황은 진료실 안에서도 이어진다. 필요에 따라 의료인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성기의 정확한 명칭을 이야기해야 할 때도 ‘거기’, ‘아래’ 또는 그냥 ‘성기’라고 뭉뚱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성, 특히 성기와 관련한 금기와 성차별이 얽힌 오래된 역사를 넘어서기 위해서 언어에 내포된 젠더 문제를 짚는 것과는 다른 맥락으로 이 글에서는 젠더와 성기를 표현하는 언어가 연관되어 사용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 보려 한다. 다시 말해 ‘여성은 음순, 질, 자궁, 난소를 가진 사람이고 남성은 음경, 정관, 정소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혹은 그 역 또한 사실이라는 전제 말이다. 결론부터 짚자면 이 전제는 틀렸다. 여성과 남성을 염색체, 호르몬, 성기들의 그 어떤 조합으로도 깔끔하게 나누려는 노력이 번번이 실패한다는 것이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1] 그렇다면 오랫동안 젠더가 성기에 의해 구분된다고 간주하여온 상황에서 성기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까.

 

알록달록한 글자 타일로 NONBINARY라는 글자가 만들어져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젠더와 성기는 다른 범주이므로 특정 젠더를 지칭하지 않고도 자궁, 난소, 질, 정소, 음경과 같은 용어는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질이 있는 사람’, ‘난소, 자궁이 있는 사람’, ‘음경이 있는 사람’, ‘음경, 정소가 있는 사람’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 젠더에 상관없이 어떤 성기를 가진 사람 모두를 포함하는 말이 된다. 마찬가지로 염색체나 호르몬도 특정 젠더와 연결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XX염색체를 가진 사람’, ‘XY염색체를 가진 사람’이 ‘여성’, ‘남성’과 같은 의미가 아니며,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은 ‘여성호르몬’, ‘남성호르몬’으로 대체되는 말이 아닌 것이다. 젠더를 지칭하지 않은 상태에서 월경은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난소가 있는 사람은 뇌하수체와 난소에서 나오는 호르몬과 자궁의 상호작용에 의해 주기적인 배란과 월경을 경험할 수 있다.’

 

젠더를 지시하지 않은 이런 언어 사용은 간단한 설명을 일부러 복잡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근거에 기반하는 설명이다. 이처럼 젠더가 아닌 생리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성·재생산 건강 교육이나 의료 환경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사춘기 동안 전형적인 이차성징을 겪는다는 이분법적 젠더 고정관념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교육을 한다면 무수히 다양한 몸의 변화 가능성을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다.[2] 또한 의료 환경에서는 다양한 성적 특질을 가지거나 스스로 여성이나 남성으로 이분화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를 모두 존중함으로써 정당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3]

 

한편 젠더와 성기를 표현하는 언어의 연상작용 때문에 자신의 성기를 해부학적 명칭 그대로 부르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 여성이나 남성으로 이분화하지 않는 논바이너리젠더,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지칭하고자 하는 신체 부위를 표현할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영어사용권 국가의 예를 들면 트랜스 남성은 ‘질vagina’ 대신 ‘front hole’, ‘internal genital’, ‘genital canal’을 선호하거나 트랜스 여성은 ‘음경penis’ 대신 ‘strapless’, ‘girl dick’과 같은 표현을 쓴다. 트랜스 남성이 수유를 하는 경우에는 ‘breastfeeding’ 대신 ‘chestfeeding’이라고도 한다. 사용 횟수가 빈번한 몇몇 용어들은 그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가 함께 설명된 트랜스젠더 성 건강 가이드와 같은 공식 자료에서도 사용된다.[4]

 

이 용어들은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진료실 내에서도 통용될 수 있다. 어떤 신체 부위를 지칭하는지 서로 이해 가능하다면, 환자가 부르고 싶은 용어를 의료인이 함께 사용하면서 충분히 의사소통할 수 있다. 젠더포괄적인 의료(gender inclusive health care)의 시작은 환자가 선호하는 용어들을 의료인이 같은 신체 부위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부터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먼저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신체 부위(질, 음경 등 성기)에 어떤 용어를 사용하기를 원하나요?”[5] 젠더에 대한 판단을 거두고 이렇게 미리 질문했을 때에 환자 역시 의사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더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대화는 젠더에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자신의 성기 명칭을 말하고 싶지 않은 누구라도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신체나 경험에 대한 것을 표현할 때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된다면 마땅히 존중받을 만하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언어는 공적으로 통용되는 언어와는 별개로 구분되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사용될 수 있다.

 

알록달록한 글자 타일로 TRANSGENDER라는 글자가 만들어져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나아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언어를 찾으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약물 유산에 대한 가이드라인에서 ‘women’을 포함한 다양한 젠더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임신 가능성을 고려하여 ‘individuals’을 사용하였다.[6] 이것은 상징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2018년 아일랜드의 임신중지 관련법 제정 과정에서는 ‘임신한 여성pregnant women’ 대신에 젠더 중립적이면서 의미상 더 정확한 ‘임신한 사람pregnant person’을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7] ‘임신한 여성’이라는 용어는 법적으로 남성이면서 임신할 수 있는 트랜스남성 및 논바이너리 젠더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권리를 불확실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의료적인 차별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임신할 수 있는 사람을 ‘여성’이라고만 전제했을 때 이 법률은 ‘모든 임신한 사람들’에 대한 임신중지의 권리를 보호할 수 없게 된다.

 

섹스와 젠더 범주에 대한 인식은 언어와 함께 변화해 왔으며 변화한다. 우리가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언어를 위해서 일시에 사용하던 언어를 버리고 새롭게 창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활용할 수도 있고 폐기할 수도 있으며, 다른 적절한 언어를 만들 수도 있고 동시에 여러 언어들이 혼재할 수도 있다. 단지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 유연하고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설사 그럴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성기나 그와 관련된 생리적 현상을 어떤 젠더에 이미 함의된 것으로 간주하는 언어 습관이 누군가를 삭제하거나 소외시키거나 심지어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여성’이나 ‘남성’으로 전제한 말들이 모든 상황에서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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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물학에 기반하여 이 전제를 반박한 글로는 윤정원, <섹스도 젠더도 스펙트럼이다>, 2020년 2월 이슈페이퍼 http://srhr.kr/2020/865/
[2] 젠더 포괄적인 성·재생산 건강 교육의 원칙의 예로는 Principles of Gender-Inclusive Puberty and Health Education https://gender-spectrum.cdn.prismic.io/gender-spectrum%2F9ab3b6f1-314f-4e09-89d8-d5d8adc6511a_genderspectrum_2019_report_web_final.pdf
[3] 의료 서비스 기관에서 발간한 젠더포괄적인 언어 가이드라인의 예는 Inclusive Language Guide: Respecting people of intersex, trans and gender diverse experinece, National LGBTI Health Alliance, Austrailia(https://quac.org.au/wp-content/uploads/2017/09/Inclusive-Language-Guide-on-Intersex-Trans-and-Gender-Diversity_2013.pdf)
Gender Inclusive language : Clinical settings with new clients, TRANS CARE BC(http://www.phsa.ca/transcarebc/Documents/HealthProf/Gender_Inclusive_Language_Clinical.pdf)
[4] Safer Sex for Trans Bodies, Whitman-Walker health, HRC foundation. http://assets2.hrc.org/files/assets/resources/Trans_Safer_Sex_Guide_FINAL.pdf
[5] https://fenwayhealth.org/wp-content/uploads/Taking-a-Sexual-Health-History-Cavanaugh-1.pdf
[6] Medical management of abortion, WHO, 2018.
[7] https://lawyers4choice.files.wordpress.com/2018/08/position-paper-1.pdf

 

* 비마이너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이슈페이퍼와 기사 제휴를 통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셰어 홈페이지 http://srh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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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훈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기획운영위원 share.srhr@gmail.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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