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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푸코도 흡족해할 푸코에 관한 책
『‘장판’에서 푸코 읽기』, 박정수, 오월의봄
[연재] 노들장애학궁리소 ‘마이너의 서재’
등록일 [ 2020년09월07일 19시00분 ]

노들장애학궁리소는 장애인운동단체의 진지인 ‘대항로’에 있으며, 장애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하는 곳이다. ‘궁리’를 통해 장애를 규정하는 근거에 대해 바닥까지 따져 묻고, 장애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억압하는 온갖 삶의 형식을 부수어나갈 운동의 지혜와 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강좌, 세미나, 차담회 형태로 해 오던 궁리 외 또 다른 방식을 궁리하다가 연구자들이 매달 돌아가며 장애와 관련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로 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정상성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도 담으려 한다.

 

지난 8월 중순, 국회에서는 의원 연구모임인 ‘약자의 눈’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이 함께 주관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전국 확대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성격상 여러 정부 부처와 지자체 관계자들이 토론자로 초정되었다. 지난 7월부터 이 사업을 처음 실시한 서울시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비록 면피성 발언일지라도) 어느 정도 긍정적 반응을 보인 반면, 고용노동부 산하 한 전문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유독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사전에 작성된 토론문이 자료집에 실린 이도 그가 유일했는데, 비판의 요지는 “사업의 효과성과 노동의 성과를 계측할 합리적 기준이 없다”는 것. 더불어 이 공공일자리의 직무 중 하나인 문화예술 활동의 경우 비장애인과 경쟁해 전문 예술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제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토론회를 페이스북 라이브로 시청하면서, 나는 얼마 전 출간된 한 권의 책을 떠올렸다.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인 박정수의 신간 『‘장판’에서 푸코 읽기』(오월의봄, 2020)를 말이다. 푸코는 스스로를 철학자가 아니라 고고학자이자 지질학자라고 말했지만 철학적으로 중요한 개념을 여럿 만들어 냈다. 그중 하나가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선험적이고 무의식적인 인식틀을 의미하는 ‘에피스테메’(épistémè)다. 그는 근대 인간학을 지배하는 에피스테메가 언어(언어학), 생명(생물학), 그리고 바로 노동(정치경제학)에 대한 실증과학적 지식이 응집되면서 출현했다고 말한다.1) 앞서 언급된 연구원은 장애와 노동에 대한 앎을 그날 토론자들 중 가장 많이 축적하고 있는 소위 전문가였다. 그리고 그 앎은 푸코의 지질학적 개념틀을 응용하자면 ‘자본세’(資本世, Capitalocene)의 에피스테메에 입각해 있는 것이었다.

 

반면 자본세의 에피스테메에서 ‘일할 수 없는 몸’(the disable-bodied)에 불과한 이들이 노동을 권리로 주장할 때, 이는 필연적으로 그 에피스테메에 기반한 노동 개념을 탈구축하고 새롭게 재구축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지금의 중증장애인 노동권 투쟁은 거리에서 몸으로 수행하는 물리적 투쟁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인식론적·에피스테메적 투쟁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 이들은 그렇게 배제되어 있었기에, 즉 공통된(common) 삶의 경험과 지반을 갖지 않기에, 기존의 통념/상식(common notion/common sense)과는 다른 전복적 인식틀을 형성할 잠재력을 갖는다. ‘장판’(장애인운동판) 활동가는 말한다. “합리적 기준이라는 것은 이제까지 비장애인 중심, 시장 내에 있었던 사람들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지 우리의 기준이 아니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장애의 교차로에서 푸코를 만나다』, 박정수 지음, 오월의봄.

토론회를 다 보고 나서 이미 두 차례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미셸 푸코. 한국 사회에서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독서를 해온 이들 중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특히 장애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는 이들 중 그의 저서를 한 권이라도 들춰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연구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들, 즉 ‘(비)정상성’, ‘광기’, ‘수용소’, ‘생명권력’, ‘통치성’ 같은 개념들이 장애 문제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외국의 장애학 과정 커리큘럼에서도 그의 저서 몇 권은 거의 필수 교재로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의 텍스트 전반을 꾸준히 읽어 왔고, 그래서 푸코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느끼는 ‘장판’ 활동가들은 또 얼마나 될까? 짐작건대 이에 해당하는 이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사정은 기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현대 프랑스 사상가들의 작업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의 텍스트들도 결코 호락호락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과 조건에서 『‘장판’에서 푸코 읽기』의 발간은 여러모로 반갑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푸코가 살아 있고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면 그 역시 무척이나 흡족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목차에서 잘 드러나듯 푸코의 이론과 여러 저서들, 즉 『말과 사물』(1장), 『광기의 역사』와 『정신의학의 권력』(2장), 『비정상인들』과 『감시와 처벌』(3장), 『생명관리정치의 탄생』(4장), 『성의 역사』와 『진실의 용기: 자기와 타자의 통치』(5, 6장)를 구체적인 장애 사안―장애등급제와 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 사법 입원과 치료 감호, 장애인 시설과 특수학교, 산전 검사와 신(新)우생학, 성년후견인제도, 자립생활과 탈시설 등―과 연결 지어 유려하고 흥미로우며 알기 쉽게 풀어나간다. 이를 통해 그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심해에서만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해파리처럼, 운동하는 삶 속에서만 특유의 광기 어린 신비를 발하는 푸코의 담론을 만날 수” 있도록 해준다.2) 그런데 이 책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측면에서도 ‘푸코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푸코는 1975년 『감시와 처벌』 출간 후 이루어진 로제 폴 드루아(Roger-Pol Droit)와의 대담에서 “나에게 글 쓰는 일이 재미있는 경우는 수단이나 전략, 정찰 등의 명분으로 오로지 투쟁의 현실과 결합되는 경우에 한해서”이며, “내 책이 메스나 폭약, 아니면 지뢰를 파묻는 갱도 같은 것이 되어서 조명탄의 불꽃처럼 한 번 사용된 후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3) 그리고 자신의 저작이 “생산자의 소유를 벗어나 누구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들고 다니면서 쓸 수 있는 연장통”이 되길 바랐다.4) 책의 곳곳에서도 언급되어 있고, 디디에 에리봉이 집필한 푸코의 전기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 2012)를 읽으면 더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푸코는 결코 책상물림의 지식인이 아니었다. 자신이 천착했던 섹슈얼리티, 광기, 감옥 등에 대한 담론을 무기로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거리로 나섰던 열정적 실천가이기도 했다. 『‘장판’에서 푸코 읽기』의 저자 박정수도 일차적으로 연구자이지만 동시에 활동가를 지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활동가적 지향과 태도가 있었기에, 그러나 또한 오랫동안 푸코와 인문학 연구를 해온 내공이 바탕이 되었기에, 이처럼 멋지고 스마트한 새로운 ‘연장통’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지금까지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다. 2018년 상반기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책과 동명의 타이틀을 단 강좌가 진행되었을 때 강의 원고로 한 번,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기 전 초고로 한 번, 그리고 추천사에 가까운 이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한 번. 그러나 아마도 나는 이 책을 내 책상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들춰보며 수시로 써먹게 될 것 같다. 원래 연장통이라는 건 그렇게 쓰이는 법이므로. 나뿐만 아니라 장애인운동을 비롯한 소수자운동을 하는 다른 활동가들에게도 이 새로운 연장통이 그처럼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                         *                         *

 

1) 박정수, 『장판에서 푸코 읽기』, 30쪽.
2) 박정수, 『장판에서 푸코 읽기』, 17쪽.
3) Michel Foucault & Roger-Pol Droit, “je suis un artificier”, Michel Foucault: entretiens, Odile Jacob, 2004, p. 105.
4) Michel Foucault, “Prisons et asiles dans le mécanisme du pouvoir”, Dits et ecrits 2, 1974, p.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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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goongree420@daum.net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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