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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역사 깎아내고 홀로 남을 자본의 ‘세운’이여
[칼럼]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 청계천②
등록일 [ 2020년09월11일 19시06분 ]

물줄기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청계천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중가요 ‘청계천8가’(천지인)에서 청계천은 “산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가”를 일깨우는 공간이다. 나고 드는 사람들, 그들이 청계천을 만든다.

 

청계천을 따라 청계천 8가부터 1가로 물길을 거슬러 오면, ‘뉴타운’ 단지와 세면용품점들을 지나 다시 오밀한 곱창 골목이 청계천을 중앙시장으로 잇는다. 예전 같은 활기는 아니라지만 황학동 벼룩시장과 주방집기를 다루는 성동공고 인근 중앙상가를 돌다 보면 금방이라도 그럴싸한 음식점이라든지 카페 하나를 뚝딱 차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패션 일번지 동대문은 일상에 가까운 소비재를 파는 만큼 더 환상적이다. 매일 새벽 열리는 도매시장에는 전국 상인들이 모여 대낮 같은 활기를 띄운다. 평화시장을 비롯한 전통 있는 도매시장은 나에게는 플랑카드를 만들기 위한 값싼 ‘다후다’ 천을 떼러 오는 곳이지만 아무리 고급스러운 옷을 만드는 사람이라도 드나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곳이다. 여전히 재단한 천을 재봉집으로, 재봉한 옷을 단춧집으로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분주히 오가는 이곳에는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산화한 봉제노동자 전태일 열사의 동상이 서 있다.

 

모자나 신발, 의류 부속품을 파는 가게 등 옷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나 빵과 포장에 관한 모든 것이 있는 방산시장을 지나고 나면 품목이 묵직해진다.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시계, 오디오부터 조명, 공구에 이르는 오밀조밀한 골목이 청계천 3가까지 이어진다.

 

빈곤사회연대는 매월 ‘세’번째 ‘수’요일에 강제퇴거를 반대하는 세수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 5월에는 청계천·을지로에서 세수문화제를 했다. 세운정비촉진지구 3-2구역 골목에서 상인들이 “세입자 대책 없는 재개발 결사반대”라고 적힌 현수막과 깃발을 들고 서 있다. ⓒ빈곤사회연대

 

홀로 남을 ‘다시 세운’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에 나오는 전구가게 ‘오무사’는 “얼핏 지나가면서 우연히 볼 수 있는 곳이 아니고 그런 가게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갈 수 있는 가게”다. 오무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내려 노점과 조명가게, 계단 아래 박스를 대고 사는 홈리스, 순대드럼통을 지나야 한다. 함께 길을 걷듯 이어지는 설명은 전구로 빽빽한 곳, 여기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전구를 가진 바로 그 오무사에 당도하도록 이끈다.

 

세운상가를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백의 그림자』는 그곳을 떠올리지 않고 읽기 어렵다. 오무사에 도달하기 위한 골목 구석구석에 대한 설명은 간판이나 동호수가 있다 해도 찾기 어려운 복잡한 골목, 그 생태계가 갖고 있는 필연에 대해 말하는 것일지 모른다. 오래된 것이란 이유 없는 부분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다.

 

1967년에 만들어진 세운상가는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개발되며 컴퓨터, 전자업종이 대거 이전해 활기가 덜해졌다지만, 여전히 ‘여기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청계천 3가 정글의 일부다.

 

“반경 500m 내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거든요. 정밀가공부터 도장, 프레스까지 대한민국 A급이 여기 다 모여있지요.” (을지로 삼성시보리 박춘삼)
- 「'재생' 사라진 을지로의 비명, 30년차 장인들이 쫓겨난다」, 박지윤 등, 한국일보

 

서울시는 2006년 청계천 세운상가 일대 43만 8천 평방제곱미터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지역 상인들의 반대에 부딪히던 사업계획은 2013년 전면철거가 아닌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으로 변경됐다. 서울시는 세운상가에 청년 제작자들을 유치하고 세운상가를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청계천-을지로의 개발사업을 막겠다고 상인들과 약속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주에 대해서) 누가 말만 걸어도 그냥 좀… 잠도 못 잘 것 같고… 다들 그럴 거예요. 떠나신 분들도 마찬가지고. 이주를 한 사람들도 거기서 정착을 하기가 너무 힘들대요. 경기가 워낙 안 좋잖아요. 워낙 안 좋으니까 살아남기가 힘든 거고, 가신 분들도 마찬가지고. 나 같은 사람들 소멸되어가니까…” (미광칠 노영란)
- 「청계천 아틀라스 : 메이커 시티」, 리슨투더시티

 

청계천을 움직이는 톱니바퀴가 하나하나 빠져나간다. 30년 장인의 기술이 사라지는 것도, 그를 에워싼 공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쉽지만, 이렇게 듬성해진 청계천이 더 이상 청계천일 수 없다는 점은 돌이킬 방법조차 없다. 가게와 골목이 사라질 때마다 이 사회를 살아온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축적한 문화를 우리는 잃어버리는 셈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블록의 끝자락 관수교 앞에는 ‘힐스테이트 세운’이 들어설 예정이다. 힐스테이트 세운이 들어서는 3구역 외에도 1부터 6-4구역까지 나누어진 개발 구획은 청계천의 구불거리는 골목을 모두 지우고 반듯하게 그려져 있다. 청계천-을지로의 보존을 고민하는 활동가와 상인들은 오늘도 골목의 역사를 기록하며 저항하고 있다.


〇 참고 자료
- 다시세운프로젝트 sewoon.org
- 「청계천 아틀라스 : 메이커 시티」(51분), 리슨투더시티, 2019
- 『백의 그림자』, 황정은, 민음사, 2010
- 「'재생' 사라진 을지로의 비명, 30년차 장인들이 쫓겨난다」, 박지윤·전윤재·서현희, 한국일보, 2020년 8월 27일

 

〇 도움주신 분
- 은선(리슨투더시티 활동가)

 

김윤영의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도시에서 자랐다. 가난한 이들을 쉽게 쫓아내고, 머문 자리마저 빠르게 지우는 도시에 애증이 있다. 서울 곳곳에 스며든/지워진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난한 이들이 빼앗긴 공간과 권리에 대해 돌아보는 ‘다크투어 칼럼’을 한 달에 한 번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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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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