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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잿더미에서 타오른 욕망, 국일고시원 화재
[칼럼]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 청계천③
등록일 [ 2020년09월14일 19시47분 ]

2018년 11월 9일, 종로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사진 최한별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가난한 이웃의 죽음

 

관수교에서 조금 내려온 수표교 앞에는 2019년 개관한 ‘전태일 기념관’이 있다. 한 해 앞선 2018년 11월 9일, 전태일 기념관 맞은편 국일고시원에 화재가 났다. 7명의 사망자와 11명의 부상자를 비롯한 고시원 주민들은 기초생활수급자, 그리고 가난한 노동자들이었다.

 

고시원은 법규상 다중생활시설로 주택이 아니다. 이처럼 고시원을 비롯한 주택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가구의 수는 2005년 5만7066가구에서 2015년 39만3792가구로 급증했다. 수도권 집값이 비싸지는 사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집이 아닌 곳’으로 점점 내몰리고 있었다. 이 시설들은 ‘주택이 아니기에’ 부엌도, 화장실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 이러한 열악한 시설을 문제 삼아도 정부와 지자체는 완전히 시장에 맡겨져 있는 시설들을 ‘규제할 근거가 없다’는 대답만을 반복해왔다. 2018년 한국도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15만 가구 이상이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수도권 고시원 세입자들의 평균 월세는 33만 4천 원으로 이는 그들 임금의 30%에 달한다.

 

종로 국일고시원 건물. 3층이 새카맣게 전소되었다. 사진 김윤영

 

국일고시원은 건물의 2층과 3층, 그리고 옥탑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2층에는 방이 24개, 3층에는 29개가 있었다. 스프링클러도, 소화기도 없었고 화재경보음도 작동하지 않았다. 출입구가 있는 301호에서 불이 시작했기 때문에 피해는 더 커졌다. 3층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에어컨 배관 같은 것을 타고 내려온 사람들은 살았다. 창문 없는 방에 있던 사람들은 시커먼 연기 속에서 대피로를 찾기 어려웠다. 창문 있는 방은 한 달 32만 원, 창문 없는 방은 28만 원이었다. 4만 원 더 저렴한 방 거주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잠드는 가난의 대가는 안전과 생명이었다.

 

화재가 난 11월 9일 오후까지도 화재 현장 인근에는 메케한 그을음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그날 화재 현장을 바라보며 마음이 쿵쾅거렸다. 거리에서 만나는 노숙인에게 ‘긴급’ 지원이니 ‘임시’ 지원을 받아 우리가 겨우 마련하는 거처는 모두 고시원, 쪽방이었다. 어려운 복지제도를 통과해도 보증금 없이 닿을 수 있는 주소지는 그것뿐이었다. 위험한 방, 적당하지 않은 집. 그마저도 나이가 많거나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방을 내주지 않는 곳도 부지기수니 감지덕지 생각할 때조차 있었다.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일곱 사람과 화재를 당한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나 일용직노동, 혹은 병원을 오가며 생을 부지하는 종로와 영등포, 서울역의 장삼이사들이었다. 우리는 안전하지 않은 거처로 서로를 밀어 넣었다. 선택지가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떠밀려 살아왔다. 비참했다.

 

화재 후 49일이 되는 날인 2018년 12월 20일, 국일고시원 앞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49재가 열렸다. 이날 49재는 화재 생존자들의 제안과 의지로 열렸다. 고시원 생활이 그렇듯 매일 스치면서도 서로 이름도 인생도 모르고 살았지만, 옆 방 살던 사람들과 생사의 순간을 넘나든 뒤 이들을 제대로 추모조차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응어리졌다고 했다. 작은 분향소에 돌아가신 분들의 위패를 모시고 생존자들이 상주를 대신했다. 막 사온 국화조차 금방 얼어 파스라지는 추운 날이었다. 잠시 서 있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49재 참석을 위해 일당을 포기하고 달려온 이웃들은 얼음장 같은 하루를 함께 보냈다. 추모제가 열리던 저녁 시간 생존자 이아무개씨는 다음과 같은 조사를 적어 건네주었다.

 

우리의 소망(49재를 해주는 일)이
여러 단체들의 도움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대
가는 길이 비록 이즈러진
사악의 길일지라도
두 손을 소박하게 모아
후회없이 가소서

 

“부동산 정책 말고 주거권 정책이 필요합니다”, “쪽방, 고시원, 여인숙. 빈곤층 주거지 화재 참사 재발 방지를 촉구합니다”, “쪽방, 고시원, 여인숙... 반복되는 빈곤층 주거지 화재 참사의 재발 방지 촉구합니다”라는 손피켓 앞에 국화가 놓여 있다. 사진 김윤영

 

해결된 것은 없고, 책임은 아래로만

 

수많은 정치인들이 국일고시원과 같은 참사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제대로 변한 것은 없다. 피해자들에게 주거지를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LH와 SH가 제공하는 매입임대주택은 서울 변두리에 위치해 있고 6개월만 지낼 수 있었다. 건설일용직이었던 생존자들은 종로 일대를 떠날 수 없었다. 단촐하게 살아온 이들이니 6개월짜리 주택에 입주하기 위해 온갖 세간살이를 마련할 여유도 없어 대부분 포기했다. 서울시는 화재 4개월 만에 서둘러 「노후고시원 거주자 주거안정 종합대책」을 수립했다고 발표했지만 대책의 내용은 비어 있었다. ‘언론보도부터 하고 나중에 정책 수립하는 역순을 취했다’는 서울시의 설명에 실소조차 나오지 않았다. 국회 역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이 되어서야 고시원 주거환경을 담은 ‘다중생활시설 건축기준’에 ‘지방자치단체장이 최소실 면적, 창 설치 등의 기준을 정해 권장할 수 있다’는 소극적인 개정만을 진행했다.

 

고시원을 운영하던 구아무개 씨는 화재가 나기 전 2015년, 서울시가 지원하는 노후고시원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사업에 지원해 선정됐지만, 건물주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 건물을 공동소유한 하아무개 씨와 그의 오빠 한국백신 회장은 화재 직후 도의적인 책임을 질 것이라고 했지만 피해자와 유가족은 건물주로부터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최초 발화지점이었던 301호 세입자는 지병 악화로 2019년 2월 사망했고, 구 씨는 2020년 7월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청계천3가 ‘힐스테이트 세운’은 2023년 입주가 시작돼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의 포문을 연다. 8월에 진행된 청약 경쟁률은 평균 14대 1이었다. 모델하우스의 친절한 직원들은 50년간 상업지구였던 공간에 세워지는 첫 번째 주거공간이라는 희소성이, 낮은 공실률을 보장하고 투가가치를 높인다고 설명했다. 20평 남짓한 집의 분양 가격은 8억에서 9억 원. 그들은 단 10%의 계약금만 낸다면 40% 대출이 가능하고, 2022년 50%의 마지막 중도금을 낼 때쯤에는 이 건물의 전셋값이 이미 현재 분양가에 맞먹을 것이니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아직은 주변 일대가 ‘지저분’하지만 곧 정리돼 살기 좋아질 것이라고 이어지는 그의 말은 약간의 장사꾼 흥정이 담겼을지언정 어쩌면 틀린 구석이 없으리라.

 

우리들의 이름은
취약계층이었지
우리들의 이름은
사각지대였지
우리들의 이름은 한 번도 찾아지지 않았지
불타 죽거나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뛰어내리거나 목을 맸을 때
가끔 TV에 오르내리지
부디 이 풍요로운 대한민국에 영광이 있기를
_ 「부디 건투가 있기를 -종로 고시원 쪽방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송경동(2018)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며 산화한 전태일이 걷던 청계천에는 오늘도 그의 이웃들이 살고 사라진다. 국일고시원의 생존자들은 서울을 떠나버리거나 또 다른 고시원을 찾아 화마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수십 년 세월이 얽힌 골목길과 장인들은 쪼개진 개발구역 숫자만큼 야금야금 쫓겨난다. 청계천 정글을 해체하는 진범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 계약종료와 전기 차단, 손해배상과 고소·고발로 위협하는 건물주도 아니다. “전세 두 번만 돌리면 원금을 상환한다고 보시면 되”는 풍요, 우리 모두가 공유한 욕망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

 

‘힐스테이트 세운’ 모델하우스. 사진 김윤영


〇 참고 자료
종로 고시원 화재, ‘창문값’ 월 4만원이 삶과 죽음을 갈랐다, 임재우 외, 한겨레, 2018년 11월 9일
[국일고시원 화재 1년 ①] "우린 한달만에 잊혀"…보상 한푼도 못받은 유족들, 유경선·류석우, 뉴스1, 2019년 11월 9일

[국일고시원 화재 1년 ③] "일자리도 없는데"…공공임대주택 '그림의 떡', 류석우·유경선, 뉴스1, 2019년 11월 9일

[2018사건 그 후] ⑦종로 고시원 참사…허망하게 스러진 고된 삶, 김기훈, 연합뉴스, 2018년 12월 18일

[단독] 건물주 “화재 피해 배상하고 나가”…종로 고시원 또 날벼락, 허진무, 경향신문, 2018년 11월 28일
‘화재로 7명 사망’ 국일고시원 원장, 첫 재판서 혐의 인정, 박진수, KBS, 2020년 7월 23일

[기자회견문]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가 곧 안전한 주거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국일고시원 화재참사 49재에 부쳐,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 49재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 2018년 12월 27일

[추모성명] 국일고시원 화제참사 1년, 집이 없어 생긴 죽음 앞에 치유도 반성도 없었다, 2019홈리스주거팀 등, 2019년 11월 8일

「부디 건투가 있기를 -종로 고시원 쪽방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송경동, 2018


〇 도움주신 분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
‘힐스테이트 세운’ 모델하우스 직원 여러분

 

김윤영의 쫓겨나는 이들의 서울산책

 

빈곤사회연대에서 활동한다. 서울에서 태어나 여러 도시에서 자랐다. 가난한 이들을 쉽게 쫓아내고, 머문 자리마저 빠르게 지우는 도시에 애증이 있다. 서울 곳곳에 스며든/지워진 역사를 되돌아보고, 가난한 이들이 빼앗긴 공간과 권리에 대해 돌아보는 ‘다크투어 칼럼’을 한 달에 한 번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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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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