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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신화는 불안을 판다’, 나도 알긴 아는데…
[연재] 질병과 함께 춤을
등록일 [ 2020년09월16일 15시57분 ]

- 당연한 마음

 

“한 번 아프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어.”

 

왜 그렇게 건강에 신경 쓰냐고 묻자, 엄마는 “당연한 걸 왜 묻냐”고 질문 자체를 어이없어했다. 그러면서 “아프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자식들에게 짐 안 되려면 건강해야 한다”고도 했다. 엄마는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로 통증만 없을 뿐이지 수술 전과 같지 않다고 했다. 옆으로 누울 수 없어서 똑바로 누운 자세만 가능하다. 할 수 있는 운동이나 동작에도 제한이 많다. 기억하기에 내가 어릴 적부터 엄마가 운동을 하지 않은 시기는 없었다. 허리가 아프기 전에 엄마는 볼링, 수영, 에어로빅, 헬스 등을 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엄마의 말은 서글펐다. 

 

엄마가 내 질문을 어이없어 한 이유는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실 내 질문은 건강하려는 이유가 아니라 건강식품을 찾고, 건강 프로그램을 보고, 때마다 유행하는 슈퍼푸드를 찾는 것에 관해서였다. 나는 유행하는 옷을 사듯 건강 트렌드를 쫓는 게 의아하지만, 엄마에게 건강식품은 건강을 챙기는 당연한 행위다.

 

가끔 친정에 가면 처음 보는 건강식품과 즙이 늘어나 있다. 종합비타민, 오메가3, 루테인, 석류즙 옆에 있는 콜라겐 상자를 들어 보며, ‘콜라겐은 족발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건강식품으로도 나오는구나. 요즘은 이게 유행인가?’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지난겨울까지 엄마의 슈퍼푸드는 서리태콩이었다. 요즘은 귀리다. 시댁에 가도 마찬가지다. 시어머니는 주로 즙이나 음료 쪽이다. ‘저 많은 즙을 언제 다 먹나?’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다 먹을 수 있다’고 단언했다. 몇 년 전에 어머니는 나에게 올리고당에 계핏가루를 섞어 준 적이 있다. 건강 프로그램에서 본 것인지, 어머니 세대에 유행하는 음식인지 모르겠으나, 몸에 좋은 거라고 했다. 그러나 계피를 싫어하는 나는, 통째로 한 병이나 되는 올리고당을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했다. 

 

평소에 TV를 보지 않다가 가끔 엄마 집에서 TV 채널을 돌리다 나는 놀라곤 한다. 홈쇼핑 채널이 매우 많아졌고, 그 채널들을 몇 번만 훑어도 요즘 무엇이 유행인지 알 수 있다. 한동안 홈쇼핑에서 크릴 오일을 파는 걸 자주 봤다. 어쩌다 한 번씩 보는 나조차도 크릴 오일이 얼마나 핫한지 알 수 있었다. 대형마트에서도 진열대에 쌓아 놓은 크릴 오일을 봤다. 그러다 크릴을 마구 잡아들이는 탓에 남극의 생태계가 위협받는다는 기사를 봤다. 엄마 집에 혹시 크릴 오일 건강식품이 있나 확인했다. 다행히 없었다.

 

엄마 세대에서 건강식품이나 건강하게 먹는 법, 운동법 등 건강 관련 정보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다. 엄마 집에 갈 때마다 TV에선 건강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올 상반기에 화제였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내가 엄마를 보며 느꼈던 것과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의사인 아들이 엄마에게 잘 먹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자, 엄마가 잘 먹고 있다면서 바구니에 가득 찬 건강기능식품들을 향해 손짓한다. 그러자 아들은 “엄마, 저거 다 먹으면 약물중독이야!”라고 외친다. 

 

엄마가 건강식품을 좇을 때, 나는 운동 트렌드와 운동용품에 현혹돼 있었다. ⓒ다리아

 

- 사실 나도 탄탄한 근육을 갖고 싶다

 

사실 나는 엄마를 의아해할 입장이 못 된다. 건강식품을 찾지 않는 대신, 나에게는 운동에 대한 강박과 죄책감이 있다. 몇 차례 수술과 입원을 겪은 뒤 ‘평소에 몸을 관리해야 한다’가 삶의 규율처럼 되었다. 코로나19로 요가 수업에 갈 수 없게 되자 홈 트레이닝을 하려고 운동 유튜브를 찾아보곤 하는데, 영상을 볼수록 탄탄한 근육을 원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진다. 운동법을 익힌다는 핑계로 헬스와 필라테스에 능숙한 이들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며 감탄하곤 한다. 나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은 팔굽혀펴기는커녕 버티지도 못하지만, 매일매일 몇 달 연습하면 팔굽혀펴기의 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러나 팔굽혀펴기 연습은 5일 정도 이어졌다. 지금은 달리기에 흥미가 생겨 밤마다 뛰쳐나가지만, 이것도 며칠을 더 갈지 모르겠다. 그사이 집에는 짐볼, 마사지 밴드, 폼 롤러 등 운동용품이 늘어나고 있다. 나와 남편은 유튜브로 접할 뿐, TV로 건강 정보 프로그램을 보는 엄마와 다를 바 없다.

 

‘질병과 함께 춤을’ 워크숍에 참여한 뒤에 질병과 건강에 관한 다른 관점을 알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건강관리에 집착하고 있는 나를 본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아프면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고 개인을 탓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믿음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런 믿음이 아픈 사람에게 어떤 폭력을 가하는지 알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이나 나 자신에게는 더욱더 이런 믿음을 강요하기도 한다.

 

허리가 아픈 남편은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씻고 밥을 먹은 뒤부터 거실 바닥에 눕는다. 집에 있을 때 그는 그 자세를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워낙 노동 강도가 센 제조업에서 일하는 남편이 집에서만큼은 편히 쉬길 바라기에 그저 두고 보지만 가끔 답답한 마음이 튀어나오곤 한다. “어디 한의원이 좋다더라, 운동해서 근육을 길러라, 좀 걸어라, 계속 이렇게 살 거냐”고 잔소리를 퍼붓는 나. 급기야 집에만 오면 드러눕기만 한 너를 위해, 마치 내가 희생이라도 했다는 뉘앙스를 풍기기까지 한다. 그런 내 말에 남편은 상처받았다. 남편에게는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그는 어떤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하기까지 나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내 기준으로는 매우 느리지만, 남편은 자신의 통증을 관리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있었다. 남편은 재활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따라 하다 허리 통증이 와서 잠시 쉬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가 한동안 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나아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쏟아부었다.

 

- 집밥 대신 영양제

 

건강을 향한 강요는 나 자신에게 더욱 가혹하다. 영상에 나오는 이들처럼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싶다고 열망만 할 뿐, 의지가 약하고 게으르고 참을성이 없다고 자신을 자주 비난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몸은 쉬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는데도, 무리해서 운동할 때도 있다. 일주일에 3번 이상 땀 흘려 운동하지 않으면 잘못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엄마가 건강식품을 쫓을 때, 나는 운동 트렌드와 운동용품에 현혹돼 있었다. 그러나 건강을 위해 건강식품을 먹는 것이 필수는 아니다. 운동하기 위해 운동용품이 꼭 필요하지도 않다. 이미 익히 알고 있듯이, 건강하기 위해선 신선한 야채와 잡곡밥 위주의 건강한 밥상에,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충분히 휴식하면 된다. 문제는 누구나 아는 이것들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월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출근 2주 만에 컨디션이 바닥을 쳤다. 피로에 찌들고 있는 날 보던 동료가 비타민 영양제를 줬다. 비타민제를 먹으면 소변이 형광색이 되는 걸 처음 알았다. 한 달 뒤에는 내 돈을 주고 이 비타민제를 샀다. 출퇴근에 왕복 4시간.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씻고 집안일 몇 가지를 하면 훌쩍 12시. 운동과 충분한 휴식이 들어올 구석이 없다. 다음 날 아침에 비타민제를 먹고 출근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피곤함에 절어서 이 비타민제에 의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매끼 자연에서 온 건강한 밥상을 마주하고, 매일 30분씩 땀 흘려 운동하고, 몸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쉬는 게 가능한가? 장 건강을 위해서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을 먹는 게 좋다는 걸 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산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유산균 한 봉지를 뜯어서 입안에 터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 바쁘고 몸을 돌볼 여력이 없는 일상에서 그나마 쉽게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건강식품 챙겨 먹기다.

 

- 머리는 알지만 여전히 건강 신화에 사로잡힌 내 마음

 

건강에 대한 관심과 불안은 마케팅으로 활용이 되고,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매년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2018년 건강기능식품 매출액은 2014년보다 54.6%나 증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8년 건강기능식품 매출액은 2조 5천억 원 상당이고,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생산량은 매년 평균 13.2%씩 늘었다. (건강기능식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인정을 받은 제품으로 건강보조식품과는 구분된다. 건강보조식품은 ‘보조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법에서 정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은 아니다. ‘건강식품’은 건강에 좋다고 인식되는 제품을 통칭하는 말이다. 참고 : 식품통계로 알아보는 건강기능식품 이야기)

 

2018년 건강기능식품 매출액은 2014년보다 54.6%나 증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기능식품을 찾는 사람들이 매년 이렇게나 늘고 있다는 건 그만큼 효과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건강기능식품을 먹어도 건강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여전하다는 의미일까? 한 번 아프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엄마의 불안은 건강식품을 먹으면서 해소되었을까? 어쩌면 건강식품을 먹으면서 우리가 얻는 건 건강이 아니라 내 몸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위안일지도 모른다. 운동하지는 못해도 운동용품을 사면서 잠깐의 뿌듯함과 안도감이 생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건강과 질병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불안해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불안의 실체를 알면 덜 불안하다. 아픈 몸이 되면 어떤 삶을 살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통증, 지금과는 다른 일상, 돈 걱정,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 그러나 여전히 막연하다. 어떤 질병을 겪을지 어떤 통증이 올지 어떻게 알겠는가. 불안을 더는 다른 방법은 건강과 질병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건강과 질병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관점은 사람들을 건강관리에 집착하게 한다. 건강한 몸의 기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아프지 않은, 건강한 몸은 거의 없다. 질병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아픈 몸도 절망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불안을 덜 수 있지 않을까.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건강 신화에 사로잡힌 나는, 오늘도 집밥은 못 먹었지만, 유산균을 챙겨 먹었다. 피곤해서 운동은 못 했지만, 짐볼 위에 몇 분간 앉아 있었다.

 

글쓴이 소개


다리아 _ 다른몸들(준)의 질병서클 “질병과 함께 춤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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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아 beminor@beminor.com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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