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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부양의무제 딱 걸렸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예순이 넘는 아버지에게 부양비를 구걸해야 할까?
등록일 [ 2011년06월23일 02시28분 ]

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초법)상 수급자다. 8년 전(2003년)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을 하다가 시설생활에 염증을 느껴 시설을 탈출했다. 그 후 서울의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에 들어가 자립생활을 시작했고 그때 수급권을 만들었다. 그리고 1년 뒤 결혼했고 지금껏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20일) 사무실에 출근해 일하고 있는데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매우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날 기초생활수급 생계비가 나왔는데 30만 원이 덜 나왔다는 것이다. 주민센터에 알아보니 아버지가 일한 대가에 대한 소득이 잡혀서 그 소득 중 부양의무비로 책정된 30만 원이 깎여서 나온 것이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수급액을 깎아버렸다. 이런 젠장~ 

 

결국 기초법 의무부양자 기준 조건에 딱 걸린 것이다. 설마 설마 했던 우려가 내 현실이 돼버렸다. 사실 내가 수급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나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아버지가 당시 빚에 쫓겨 숨어 살다시피 하셨고, 그 덕분에 행불 처리되어 중증장애인인 나는 어렵지 않게 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막상 나의 가정이 '부양의무자 기준'에 당하고 나니 참 어이없고 황당했다. 기초법은 우리같이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중증장애인들과 질병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는 빈곤층을 위해 국가가 그들의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말 그대로 최소한의 소득이다. 이 안에는 주거비와 생계비가 각각 나오는데 우리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전부 1인 기준으로 30만 원 안팎이다. 만약 그가 장애인이라면 장애인연금 18만 원(서울 독거 기준)이 추가된다.

 

우리 가정은 2인 가족에 해당하는 금액을 수급액으로 받는다.¹ 주거비 14만 원, 생계비 58만 원, 각자 장애인연금(이것도 부부라는 이유로 치사하게 2만 원씩 깎아서 준다.) 등을 합하면 한 달에 104만 원 정도의 수급액을 받아왔다. 이 돈으로 우리는 한 달을 버텨야 한다. 아내는 이날 패닉상태에 빠졌고 나도 너무 화가 나서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우리 부부에게 30만 원은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월세만 35만 원이 나간다. 대출금도 갚아야 한다. 전화요금과 각종 공과금을 차례대로 내고 나면 약 20만 원이 남는다. 그런데 먹고살 식비가 없다. 꼼짝없이 한 달 동안 손가락 빨게 생겼다. 다음날 한달음에 동대문구청 기초법 관련 주민생활지원 담당을 만났다.

 

담당자는 지난번 보건복지부에서 기초법 수급 관련해서 전국적으로 일제조사를 했고 부양의무자들의 소득을 좀 더 세밀하게 조사했다며, 이 과정에서 내가 사는 청량리에서만 100가구가 수급권에서 탈락했거나 감액되었다고 말한다. 제도상 어쩔 수 없는 조치였고 자신들로서는 최대한 구제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 경우는 전날 동생과 통화했고 아버지가 퇴사증명서를 보내준다면 바로 원상 복구해 다음 달부터 적용해 주겠단다.

 

 

▲지난 5월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요구하며 1박 2일 농성을 하던 참가자들이 복지부 청사 앞에 걸어놓은 만장. 

 

하지만 왠지 찜찜했다. 근본적 원인은 기초법상 암적 존재인 부양의무제도에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국가가 빈곤의 책임을 온전하게 지지 않고 수급자의 가족에게 책임 지우려고 하고 있다. 빈곤에 처한 당사자의 가족이 아무리 부자라 해도 나 몰라라 돌아서 버리면 그뿐이다. 이는 수급액만으로 겨우 생활하는 빈곤의 당사자에게 부양의무가 있는 부모나 자식에게 찾아가 손 벌리란 얘기다.

 

우리가 얼마나 더 비참해져야 하는가? 이렇게 부양의무제는 빈곤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들을 더욱 비굴하고 비참하게 만든다. 많은 장애인들이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자립생활을 선택하려 하지만 이 부양의무제도 때문에 다시 발목이 묶이는 상황이다. 또 부양의무제도는 빈곤한 사람들을 거르는 역할, 즉 기초법 수급자로 들어가는 문을 바늘구멍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미 가족에게 버려져 빈곤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역할이 기초법 제도인데 부양의무제도는 기초법의 본래의 취지를 무력화시킨다. 부양의무제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최근 통계로도 103만 명이다. 또한 부양의무제 등 이런 이유로 빈곤의 사각지대에 놓여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의 수가 4백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그 어떤 국가기관도 그냥 강 건너 불구경만 하려 한다.

 

기초법상의 부양의무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간신히 빚을 청산하고 일자리를 구한 아버지에게 내 수급액이 깎인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그만두시라고 이야기하는 불효를 왜 저질러야 할까? 아니면 마흔이 넘은 나이에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에게 부양비를 구걸해야 할까? 이놈의 부양의무제도가 사람을 참 치사하고 더럽게 만들고 있다.

 

¹ 박정혁 씨 부부는 두 사람 모두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입니다.

 

박정혁의 달팽이의 기어달리기

 

달팽이는 매우 느린 동물 중 하나다. 그런 달팽이가 어디론가 기어가는 중이다. 자기 자신은 있는 힘껏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자신이 빠르다고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달팽이는 너무 느리다. 너무나 느려서 가고 있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다른 이들이 푸념을 늘어놓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간다. 그의 걸음걸이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하지만 묵묵히 기어 달린다. 꽃이 피면 꽃향기 맡으며, 바람이 불면 바람과 대화하며, 비가 내리면 비와 함께 묵묵하게 한 방향으로만 기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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