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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 기준, 죽음의 제도
등록일 [ 2011년07월19일 21시42분 ]

“구걸하더라도 치사해서 수급권을 못 받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무총리에게 26만 원을 반납하러 갑니다. …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여성 최옥란 열사가 기초생활수급비 반납 투쟁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 개정을 위한 명동성당 농성에 들어가며 했던 말이다. 사실상 유언이 되어버린 열사의 말은 IMF 외환위기에 대응해 만들어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문제점과 당시 정부의 생산적 복지의 허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열사의 죽음 이후 8년이 지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11년이 된 지금, 달라진 게 없는 현실에서 가난한 이들의 기본생활보장의 요구와 투쟁 과제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돌아보아야 한다.

 

2000년부터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진일보한 공공부조 정책으로 평가받았다. 먼저 수급 당사자를 ‘생활보호대상’이라 칭했던 것에서 ‘수급권자’로 명명하여 권리성을 부여했다. 연령, 성별, 노동 유무에 관계없이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이면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소득보장제도의 획기적 전환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또한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 등 7개의 현금·현물 급여를 보장함으로써 빈곤층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으로 기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불러왔다.

 

그러나 낮은 최저생계비 책정을 통한 1차 진입 장벽이 있으며, 부양의무자 기준을 통한 2차 진입 장벽이 놓여 있고, 수급자가 된 이후에는 수급의 조건으로 자활노동을 강요하는 조건부수급조항을 두고, 노동능력을 자의적으로 판정하는 근로능력평가 기준을 도입하는 한편, 빡빡한 금융자산조회 등을 통한 수급자 걸러내기가 이루어짐으로써 법 제정 취지에 어긋난 제도 운영이 이어져 왔다.

 

복지 수준이 열악한 한국사회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가난한 이들의 최후의 보루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도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에 사각지대 인구가 410만 명에 달하고, 이는 약 157만 명 전체 수급자의 2.5배가 넘는 상황이다. 또한 사각지대 인구 중 103만 명이 바로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하기에 실패한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함께 전면적인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촉구 기자회견.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부양의무자 기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한 국민을 국가와 사회가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러나 ‘생계를 달리하는 1촌 이내의 혈족과 그 배우자’를 부양의무자로 규정하고,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이 일정 수준이 넘으면 부양능력이 있다고 간주해 수급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소득과 재산이 모두 최저생계비보다 낮아 수급기준에 해당하는 데도 부양의무자 규제 때문에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소득이 전혀 없는 노인이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따로 사는 자녀가구가 평균 가구 소득의 3분의 2에 못 미치는 정도의 낮은 소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기준선보다 소득이 조금 더 높으면 정기적으로 부양비를 받고 있다고 간주해 ‘간주부양비’를 매겨 복지 급여가 삭감되어버리거나 아예 수급 자격이 박탈될 수 있다. ‘부양의무자 가구’의 소득과 자산조사 자체를 거부하면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수급자가 될 수 없다. 서울의 한 평 쪽방에서 91세 할아버지가 70세에 가까운 딸 셋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수급 신청조차 하지 못한 채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노인들은 가난하다. 공적연금제도가 부실하고, 공공부조 수급도 조건이 까다로워 많은 노인들이 절망적인 빈곤 속에서 노구를 이끌고 폐지 수집 등의 일자리로 연명한다. 그나마 이런 일도 하지 못하는 경우는 생계대책이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OECD 평균 65세 이상 노령인구 빈곤율은 평균 13.3%인데 반해 한국은 45.1%에 달한다.「( 연금편람」OECD, 2009) 서울시가 2008년 65세 이상 노인5,000여 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24.1%가 소득이 없다고 했고, 29.4%는 월 50만 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소득 70%까지의 노인인구를 포괄한다는 기초노령연금은 고작 9만 원 수준에 불과해 용돈연금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노인인구의 상당수는 기초생활 수급 등 공적 지원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기초법의 부양의무자기준은 여전히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 돌리며 비현실적인 잣대로 수많은 노인을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하고 있다.

 

장애인들은 또 어떠한가? 중증장애인의 경우 장애인연금이 최대 15만 원까지 지급되지만, 이것으로는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비용 충당도 어렵다. 대다수 중증장애인이 현재의 노동시장에서 소득활동을 하기 어려워 소득이 전무한 실정이다.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자립생활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제반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기초법 부양의무자 기준은 장애인들을 절망의 빈곤으로 내모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 어린 시절 생활시설에 버려지다시피한 장애인이 수십 년 세월을 견디다 이제는 사회로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다.

 

중증장애인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소득보장의 유일한 수단은 기초생활 수급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김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은 작용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부모가 죽기를 기다려야 하고, 자녀가 더욱 가난해지기를 바라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해 10월 장애인 아이를 둔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지만, 그 피땀 흘린 자그마한 소득 때문에 아이가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복지 수급을 받지 못하자 이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이 나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없어져 아들이 정부에서 혜택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일자리를 못 구해 힘들다”라는 것이 유서에 담긴 내용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적용 기준이 가혹하다는 문제도 심각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가난한 이들의 자존감을 헤치고 빈곤으로 말미암아 취약해진 가족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는 절망적인 제도라는 점이다.

 

▲장애인운동활동가들이 보건복지부 진수희 장관을 찾아다니며 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여전히 복지부는 이 사안에 적극적이지 않다. 

 

땜빵식 처방으로 일관하는 정부


TV에 보도된 ‘공중화장실 삼남매’ 사건을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복지사각지대 전국 일제조사’를 시행했다. 복지제도의 허점과 지역복지 연계망의 취약함이 수많은 안타까운 사연들을 낳고 있기에 이러한 조사와 구제조치는 시급하다. 그러나 그 결과들이 일시적인 복지지원에 그치고 있다는 점과 오히려 한 달간의 조사 기간 동안 기존 복지 수급자에 대한 강화된 조사로 급여가 삭감되거나 자격조건이 박탈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는 이미 드러난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회피한 채 일시적인 생색내기 행정에 머물고 있다.

 

기초법 사각지대 해결 없는 ‘복지’와 ‘친서민’은 있을 수 없다. 10년이 넘도록 방치돼 온,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폐지 줍는 노인들, 시설에 갇혀 인간다운 삶을 꿈꿀 기회조차 못 얻는 장애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너도나도 ‘복지’ 타령 중인 한국사회에서 기초법은 복지 포퓰리즘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막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며, 복지의 기본일 뿐이다. 가난한 이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기초법 부양의무자 기준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빈곤의 책임은 이제 더는 개인과 가족에게만 떠맡길 수 없다.


이제 죽음과 야만의 제도를 폐지하자


2009년 기초생활 수급권자의 권리 확대를 위해 구성되었던 기초생활권리찾기행동과 2010년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민중생활보장위원회의 활동 성과를 바탕으로 전면적인 법 개정 운동을 위해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을 구성했다. 빈곤사회연대를 비롯한 반빈곤운동단체와 장애인운동단체, 복지운동단체, 진보정당, 민주노총 등이 함께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이자 여성이자 노점상이자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명동성당 농성에 나섰던 최옥란 열사의 죽음 이후 10년간 반빈곤운동의 주요 의제로서 기초법 개정운동과 수급권자 권리운동이 이어져 오고 진전해 왔다.

 

그러나 주체 형성과 사회 의제화는 쉽지 않았다. 기초생활 관련 제도가 가진 여러 독소조항으로 말미암은 높은 진입 장벽 때문에 장애인, 노인 및 소위 ‘취약계층’ 일부만이 제도 내에 진입할 수 있도록 했고, 여타의 복지제도 및 다른 계층과의 차단막이 형성되어 있다. 이 때문에 기초법을 빈곤층 일부의 문제로 치부하도록 하며 ‘국민’ 모두의 권리와는 무관한 문제로 여기게 했다. 그러는 동안 진입 장벽을 힘겹게 넘어 제도 내로 들어온 수급자들은 소득활동을 할 수도 없고, 차별과 멸시 속에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쥐꼬리만 한 수급비로 연명하며 빈곤의 감옥에 갇혀 지내왔다.

 

90세 할아버지를 가난하게 살다가 죽도록 만들고, 복지 수급이 절실한 아이를 위해 부모가 목숨을 끊도록 만드는 이 야만적인 제도를 그대로 방치하며 ‘복지’ 운운하는 것은 기만이다.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위한 싸움을 기초법 개정 투쟁으로 모아내야 한다. 넘쳐나는 복지 담론 홍수 속에서 복지의 기본을 이야기해야 한다. 절망적인 빈곤에 놓인 이들이 권리의 주체로 나서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세계 경제위기 아래에서 노동자 민중의 고혈을 쥐어짜는 지배세력의 야만은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제반의 권리 해체 상황에 맞선 방어 투쟁 역시 중요해지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평등과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기초법은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전면 개정으로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이야기하자. 올해 국회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나아가 ‘국민’의 ‘기초생활보장’을 위해 제도를 전면적으로 바꾸기 위한 행동에 나서자.

 

*이 글은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7·8월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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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륜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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