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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최초의 구치소 이야기①
등록일 [ 2012년08월30일 22시36분 ]

▲중증장애인활동가 8명이 지난 8월 7일 서울고등법원에 자진노역 신청에 앞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중증장애인 8인 구치소 가다

 

내가 20대 후반쯤에 나온 책 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_1998년)’이란 책이 있었다. 이 책은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다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된 신영복 교수가 감옥 안에서 가족과 친척들에게 쓴 편지를 1988년 특별가석방 된 뒤 엮은 책인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꾸준히 팔리는 책)다. 이 책을 누군가로부터 선물 받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도 오래 되어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생각에 내 평생 감옥 체험은 없을 줄 알았다.

 

그 당시 난 시설에 있었고 그곳이 내겐 이미 감옥이었으며 당시 생각에 그곳을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다. 설사 시설을 나갈 수 있다고 해도 나 같이 순진한 평화주의자(당시엔 그랬음-_-;)가 죄를 지을 일도 없고 죄를 짓고 싶어도 장애가 중하니 물리적으로도 절대 불가능할 거라는 다소 허황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5년 뒤, 그 당시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어느 순간 나는 1.5평도 안 돼 보이는 좁은 공간에서 파란 수의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그것도 벌금 60만원 때문에…

 

나는 다른 중증장애인 7명과 함께 자발적 노역을 선택했다. 나에게 내려진 벌금은 두 가지다. 하나는 2006년 프레스센터 앞에서 시설비리와 관련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따라잡기 일환으로 참여한 시위와 2010년 12월 세계장애인의날 국가인권위원회 점거농성 건이다. 각각 30만원의 벌금이 선고됐다. 자발적 노역을 택한 다른 중증장애인들 또한 비슷한 처지다.

 

벌금 맞은 활동가들 구치소 노역 결의

 

2012년 8월 7일 오후 2시 서울지방검찰청 앞, 폭염이 내리쬐는 가운데 8명의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이 벌금 내역과 하고 싶은 말이 적힌 팻말을 휠체어 앞에 세우고 자진 노역 결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요 장애언론들과 몇몇 언론사에서 온 기자들이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린다. 나는 무더운 날씨 탓에 지칠대로 지쳐 기자회견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기자회견은 다행히 20분 만에 끝났다.

 

회견은 끝났지만 몇 분간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검찰청 직원들이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한 사람씩 신분조회를 하면서 입장시켰기 때문이다. 검찰청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결의자 8명과 활동보조를 위해 들어간 사람들 모두 합쳐서 15명 안팍이었다. 검찰청 로비는 꽤나 깨끗해 보였고 약간은 더웠다. 우리는 로비 중앙에 있는 손님용 의자를 중심으로 모여 얘기를 나누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다.

 

▲ 자진노역을 결의한 8명의 중증장애인 중 한 사람인 박정혁 활동가.

우리의 몸은 우리의 다리인 휠체어와 분리될 수 없다

 

늦은 4시를 조금 넘겨 검찰청 직원 한 명이 우리 일행에게 오더니 구치소까지 호송할 차량을 준비해 놨으니 따라오란다. 우리는 사전에 휠체어는 장애인의 몸과 같기 때문에 차를 타고 움직일 때도 같이 이동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직원을 따라 가니 지하주차장으로 통하는 문이 나왔고 문이 열리면서 보이는 것은 그냥 평범한 중형 봉고차다. 이들은 우리가 사전에 요구했던 말을 싸그리 무시하고 우리를 휠체어에서 분리해 짐짝처럼 봉고차에 실을 생각이었다.

 

순간, 최 동지 손으로 뒷목을 잡는 특유의 몸짓을 취하며 우리를 안내한 직원에게 강력히 항의한다.

“우리 더러 저 차를 타란 말입니까?”

그 직원은 무덤덤한 말투로 “지금 차가 이거 밖에 없으니 일단 이 차를 타고 가시면 휠체어는 트럭으로 싣고 따라갈 겁니다”라고 답한다.

최 동지는 뒷목을 잡고 쓰러질 듯 한 표정으로 “이것보세요! 이 휠체어는 내 다리나 마찬가지예요. 절대로 분리되어서 탈 수 없어요. 휠체어 탄 장애인에게 이런 식으로 이동시키는 건 엄연한 인권유린이에요.”라고 소리친다.

 

최 동지의 강력한 항의에 직원이 잠시 움찔한다. 함께 따라 나온 직원들의 지원사격이 시작되고 우리 측 활동보조로 따라온 아수라백작님이 헐크로 돌변하기 시작한다. 쌍방 간에 말싸움이 급기야 험악한 지경까지 이르자 우리는 우리의 몸과 휠체어가 분리될 수 없노라며, 승차를 거부하고 다시 검찰청 로비로 원위치했다.

 

그 뒤 당황한 검찰청 직원들은 백방으로 장애인의 몸과 휠체어를 한 차에 태우고 이동할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사실은 서울지방경찰청에 저상버스 호송차가 있다. 그 시각까지 검찰청 직원들은 그 버스의 존재조차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직원이 우리에게 콜벤(장애인 콜택시를 그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을 섭외할 수 없냐고 묻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부를 순 있지만 기관 같은 곳에서 동원은 못한다.

 

손 있는 사람이 먹여라!

 

지루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저녁 6시가 다 되었다. 영등포IL센터 소장 이 동지가 철갑 휠체어를 몰고 직원에게 저녁식사를 요구한다. 비장애인들 같으면 벌써 구치소에 도착해 저녁을 먹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아직 장애인이동권이 완벽하지 않은 관계로 장장 4시간이 넘도록 장애인 수감 예정자들은 검찰청 로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검찰청에서 우리들에게 저녁을 제공해야 한다.

 

이 동지의 요구를 들은 직원,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오더니 수감 예정자들에게만 된장찌개를 시켜주겠단다. 우리는 또 다시 강하게 반발했다. 왜 지들 맘대로 선택권을 제한하는가? 식사를 제공하려면 활동보조인들의 식사도 시키라고… 반발을 들은 직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온다. 우리에게 뭘 먹을 건지 말하라고, 하지만 활동보조인들의 식사는 제공할 수 없단다. 우리는 검찰청에서 활보들의 식사를 제공할 수 없다면 6시가 넘었으니 전부 퇴근시키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었고 활동보조인들은 전부 퇴근했다.

 

음식이 왔고 나는 소변이 마려워져 한 직원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그 검찰청 직원은 별말 없이 순순히 활동보조에 응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그 사이 저녁 상이 차려져 있었다. 검찰청 직원들, 열심히 음식에 덮인 랩을 벗기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밥상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 앉아 밥 먹을 준비를 갖추었다. 우리는 직원들에게 식사보조를 요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검찰청 직원 중 직급이 높아 보이는 한 사람이 우리를 향해 “손 있는 사람이 먹여줘요!” 하며 식사보조를 거부한 것이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리의 식사보조를 준비하던 나머지 직원들, 마치 해방이라도 된 듯 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손 있는 사람이 먹여요!’라고 외쳤던 직원 뒤로 붙는다. 혼자서 밥을 못 먹는 나와 몇몇은 졸지에 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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