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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향보다 국화향 맡고 있는 지영 씨…”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 고 지영 활동가 추모식 열려
남편 박정혁 활동가, “그녀는 내 스승이고 동반자였다”
등록일 [ 2013년04월18일 01시02분 ]

▲지난 16일 패혈증으로 숨진 고 지영 활동가의 추모식이 17일 늦은 4시 삼육서울병원 추모관 104호에서 열렸다. 고 지영 활동가의 남편이자 장애인문화공간 박정혁 활동가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지영, 그녀는 제 스승이고 동반자였습니다. 아내는 제 곁을 떠났지만 그녀의 정신은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녀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또, 만나겠죠. 그때 ‘야!’하며 그녀는 또 저를 편안하게 맞이해줄 거예요. 저도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제 마음에 있으니 그 시간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걱정합니다. 제가 나약해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에 의해 제가 많이 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와 행복했던 순간, 사랑했던 시간 함께 공유하며 인사 마칩니다. 잘 살게요.”


고(故) 지영 활동가(지체장애 1급, 44세)의 남편이자 장애인문화공간 박정혁 활동가의 추모인사가 이어지자 사람들은 끝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박 활동가 역시 발언 중간중간 흐느낌이 이어졌다.

 

지난 16일 패혈증으로 숨진 고 지영 활동가의 추모식이 17일 늦은 4시 삼육서울병원 추모관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백여 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

 

고인과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하며 고인이 숨지기 전까지 자리를 지킨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배미영 활동가도 추모사를 전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으나 터져 나오는 울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배 활동가는 “지영 언니가 2004년 서울 올라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골반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처음 만났다. 이렇게 인연이 될 거라 생각지 못했다.”라며 “주변에서 같이 다니면 ‘엄마와 딸이냐’고 해서 언니에게 엄마라 부르기도 하며 친하게 지냈다”라면서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배 활동가는 “너른마당을 만들 당시 서울에 장애인야학은 노들장애인야학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동쪽 끝에 있었다”라며 “정혁이 형이 성북지역에도 장애인야학이 하나 있었으면 한다는 말에 너른마당을 시작하게 됐으나 지영 언니가 없었다면 혼자 너른마당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인천사람연대 장시정 활동가
고인의 남편 박정혁 활동가는 지난 2006년 희망사회당 서울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당시 활동으로 인연을 맺게 된 인천사람연대 장시정 활동가도 고인의 넋을 추모하며 인사를 전했다.

 

장 활동가는 “정혁이 형이 사회당 후보로 나왔을 때 고인이 시장 거리를 다니며 당당히 선거 운동하던 모습이 기억난다”라며 “사무실에서 회의하고 있으면 항상 은쟁반에 따끈한 부침개를 담아왔다. 식을까 봐 부침개는 늘 호일로 덮여있었다.”라고 했다.

 

장 활동가는 “몇 달 전 노원에 아파트 구했다며 밥 한 끼 먹자는 말에 ‘네’라고 답했는데 어제 고인이 차려준 맛있는 밥을 먹고 말았다”라면서 “고인은 누구보다 본인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자립생활하는데 앞장서 살았다 생각한다. 그곳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최용기 공동대표는 시설에서 나온 뒤 활발히 펼쳤던 고인의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을 전하며 “장애인들이 올곧게 자립생활 할 수 있도록 투쟁하자. 김주영 활동가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한 명의 동지를 떠나보내게 되어 안타깝다”라고 전했다.

 

이어진 추모공연에는 고인이 살아생전 가장 좋아했다던 노동가수 이혜규 씨의 추모가가 이어졌다. 이 씨는 “차별 없는 세상에서 마음 놓고 살아가길 바란다”라며 고인에게 ‘벗이여, 해방이 온다’를 노래했다.

 

목욕동아리 해피버블 박은애 회장은 “고인을 만나 많은 것을 배웠다”라며 “내가 편하게 살았던 삶이 누군가의 희생과 투쟁을 통해 가능했음을 알았고,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알았다. 고인이 뿌린 마음속 씨앗을 잘 키우겠다.”라고 밝혔다.

 

은혜요양원에서 같이 생활했던 장애인문화예술극단 판 장희영 씨는 “언니의 죽음이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라며 “어디선가 달려와 언니가 껄껄 웃는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 언니의 환한 모습이 담긴 영정 사진을 보니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나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라며 울음을 삼켰다.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는 “새벽에 이 글을 쓰는데 너무 힘들었다. 실감이 안나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지영 씨의 깔깔대며 웃던 모습만 생각나 쓸 수가 없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박김 대표는 “자기 입장을 지키며 때로는 아주 까칠하고 툭툭거렸지만 가슴 속엔 깊은 애정을 담고 있던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라며 “임대아파트 되고 활동보조시간 조금 늘어 이제 살만해졌는데…… 허망함 때문에 주체할 수 없다”라며 심정을 밝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의 추모사도 이어졌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지영 동지 죽음 앞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또 깨달았다”라며 “그런데 너무 빨리 떠난다. 그게 너무 견딜 수 없는 아픔이다.”라고 울음을 누르며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중증장애인의 투쟁으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주거복지사업 등이 생기면서 많이 변했다”라며 “그러한 큰 그릇을 만들면 그 그릇을 채우는 사람,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사람이 바로 지영 동지였다”라고 밝혔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투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더 소중한 것은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돕는 것”이라며 “지영 동지의 뜻을 계속 함께 지켜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이 이별을 감당하기 어려울지라도 반드시 그 여백을 채워나가는 투쟁을 하여 후에 지영 동지에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라며 “지영 동지 생각하며 여백을 힘차게 채워 나가자”라고 결의했다. 

 

추모제 사회를 본 김정하 활동가 역시 “고인이 시설에서 나왔을 당시엔 자립생활에 대한 법과 제도도 없었다”라며 “복덕방 쫓아다니며 집구할 때 장애인이라고 집 안 준다고 할 때가 제일 서럽더라고 이야기했던 모습이 기억난다”라며 추억했다.

 

   
 

고인은 1968년 7월 13일 속초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 1987년까지 보육원에서 생활했다. 20세 이후에는 경북 구미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다 29세 되던 해 감기바이러스로 경추장애 진단을 받았다.

 

2004년까지 철원 은혜요양원에서 생활하다가 시설에서 나와 서울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탈시설 후 고인은 은혜요양원에서 겪었던 온갖 인권침해와 비리를 폭로하며 성람재단 비리 척결 투쟁에 힘을 실었다.

 

2005년에는 은혜요양원에서 함께 탈시설한 박정혁 활동가와 결혼했으며 2007년에는 서울 성북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을 창립했다. 고인은 너른마당 운영위원장이자 교사, 탈시설장애인 멘토 등으로 활동하며 지역 사회에서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돕고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통해 장애인문화운동도 함께했다. 
 
고인의 발인은 18일 오전 10시 이뤄진다.  

 

임대 아파트가 되어 너무 좋다고 한 번 놀러 오라고 몇 번이나 초대해 주었지만, 나는 무엇이 바빴는지 아직도, 가보지를 못했는데… 얼마 전부터 당산동 사무실에 오징어볶음을 해서 남편을 통해 보내겠다고 했지만 서로 일정이 안 맞아 몇 번인가 미루어졌었는데… 이렇게 빨리, 냉정하게 이승을 떠날 줄 알았더라면 우리 서로 미루지 않고 그녀의 초대에 응했을 것을… 이렇게 그녀를 다시 못 볼 줄 알았더라면 활동보조인에게 하나하나 정성을 담아 행복해하며 오징어볶음을 만들게 하고 우리가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고 알렸을 때, 지영 씨는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대표님 나 옛날에 잘 나가던 여자였어요. 안 믿기죠?”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삶을 하나씩 이야기했었다. 비장애인으로, 사업가로 활발한 사회생활을 했지만 장애인이 되면서 관계가 끊어져야 했던 아픔을 이야기했었다. 가슴에 상처를 묻고서 언제나 자기 입장을 지켜나가고 때로는 까칠하지만 깊은 애정을 담고 있던 모습이 나는 참 좋았다. 서로에게 무한 지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녀의 씩씩함과 당당함이 참 좋았다.

 

그런데 이제 지영 씨를 다시 볼 수가 없다. 죽음이란, 그녀 특유의 웃음도, 그녀의 시원시원하던 큰 목소리도 말도 들을 수가 없게 하고, 그녀에게 맛있는 것을 해달라고 조를 수도 없게 한다. 이제 어디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없다. 이제 임대아파트에서 활동보조지원 시간도 조금 늘어나서 살만해졌다고 그녀가 말했단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오다가 이제 살만하니까 이렇게 가버리는 이 허망함을 주체할 수가 없다.

 

집회현장에서 특히 시설 안에서 지영 씨는 비인권적인 사례를 고발하고 탈시설운동에 활동을 많이 했다. 그 일을 마치 소명처럼 하던 모습이 모습이 떠오른다. 그 소명이 이제는 우리에게 남겨졌다. 벚꽃향기보다 국화 향을 맞고 있는 지영은 이젠 훌훌 몸에서 자유로워졌으리라. 장애인의 차별도 가난도 없는 곳에서 편안하길 기도한다. 벌써 지영 씨 특유의 웃는 모습이 그립다.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 추모사

 

▲고인과 오랜 시간 함께 활동하며 고인이 숨지기 전까지 자리를 지킨 너른마당 배미영 활동가

▲은혜요양원에서 같이 생활했던 장애인문화예술극단 판 장희영 씨
▲노동가수 이혜규 씨의 추모공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고 지영 활동가의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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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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