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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주홍글씨 새겨 유성기업에서 쫓아내나
“사복경찰 집단 구타, 부당 인사”…위기의 최희찬 씨
등록일 [ 2013년10월16일 11시43분 ]
최근 몇 년 사이, 그의 운명은 지나치게 가혹했다. 2011년 ‘밤에 잠자고 낮에 일하자’고 투쟁하다 “사복경찰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치료받지 못한 채 구속되어 감옥에서 진통제로 버텼고, 후유증으로 정부로부터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우울증 걸린 아내와 40년 동안 지병을 안고 살아가는 모친을 두고 감옥에 가야 했다. 매달 100만 원가량의 병원 치료비를 감당하는 일보다 출소 한 달 뒤 모친의 장례를 치러야 했던 현실에 억장이 무너졌다. 그리고 회사는 ‘출근 정지’라며 한동안 그를 복직시키지 않았다. 

하지지체장애(좌측 전방십자인대 파열)로 절룩거리거나 뒤로 돌아가는 왼쪽 다리에 적응되지 않아 깜짝깜짝 놀라도, 새삼스러운 일이라 치부하며 버텼다. 우울증이 완화되는 아내와 제 할 일을 다 하는 두 아이를 보는 일, 노조 활동의 원칙을 다잡아가는 동료들과 함께 활동하는 일은 그에게 큰 힘이었다. 

하지만 그가 요즘 ‘두렵다’고 했다. 그는 어렵게 현장에 복직하고 나서 7월 1일 왼쪽 약지 손가락 골절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아 요양 중으로, 10월 28일 현장 복귀를 앞두고 있다. 벌써 몇 번째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유성기업 충북 영동공장 노동자 최희찬(43세) 씨는 이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유성기업 충북 영동공장 노동자 최희찬 씨. ⓒ미디어충청

“장애 판정 이전 상태로 몸을 되돌려 와라”
3차례 산업재해, ‘사복경찰 집단 구타로 장애 6등급 판정’

“하지지체장애 판정으로 다리가 아파 가장 힘든 주물공정에서 일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관리자 권 모 이사는 ‘최초 입사할 때와 지금 현장에서 근무 중인 다리 상태가 다르면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고시키겠다는 거냐고 묻자 그는 ‘그건 아니지만 최초의 계약조건에 맞지 않은 몸이기 때문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해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가 라고 묻자 그는 ‘장애가 아닌 장애 이전 상태로 되돌려서 와라’고 했다. 사측은 유성기업 사태를 나의 책임으로 몰아갔고, 일방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최희찬 씨는 인터뷰 내내 회사 관리자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기자에게 전하기 위해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었다. 2011년 유성기업 사태 이후 6개월간 구속됐다가 2012년 8월 6일 복귀 의사를 밝힌 최 씨에게 사측은 8월 17일 ‘자택대기’하라고 했다. 2013년 2월 복귀 예정이었는데, ‘구속’을 사유로 다시 3개월간 ‘출근정지’시켰다. 기약 모를 시간을 견뎌낸 그는 올해 5월 2일 현장에 복귀했다. 유성기업 사태로 1년 3개월, 사측이 복귀를 미루면서 8개월, 모두 2년 1개월가량 근무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측은 5월 2일 최 씨를 복귀시키면서 원래 일하던 생산부(자동차부품 실린더 라이님의 맨 마지막 작업인 호닝공정)가 아닌 주조부(자동차부품 캠샤프트 주물공정)로 배치했다. 주조부는 하지지체장애 판정을 받은 최 씨가 일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사측은 ‘장애 판정 이전 상태로 몸을 되돌려 오라’며 최 씨를 강압적으로 배치했다. 회사는 인사이동 시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는 단체협약도 어겼다. 

7월 1일 결국 사고가 났다. 힘든 공정이다 보니 최 씨는 다리에 보조기까지 차고 근무했다. 주물공정은 20킬로그램에 달하는 무거운 쇳덩이를 하루에 700여 차례 들어다 놨다 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한다. 파스 붙이고, 물리치료 받으며 다리 통증을 견뎌내던 그는 결국 쇳덩이를 놓쳐 왼쪽 약지 손가락이 부러졌다.

“예전에 일했던 호닝공정은 1킬로그램도 채 되지 않는 쇳덩이를 가공하는 곳이었다. 나는 계단을 올라가기 어렵고, 다리가 많이 흔들리며 빅빅 돌아간다. 어두운 곳을 걸을 때 장애물을 감지해야 하는데,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다리가 반대로 꺾인다. 과학적인 기계 측정 등을 통해 장애 판정을 받았다. 주물공정 배치를 재고해달라고 해도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회사는 주조부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합의하지 않고 이들을 일방적으로 생산부로 배치했다. 동료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다. 주조부에서 인원을 빼 오고, 생산부에 있던 나를 굳이 빼서 주조부에 배치하는 것은 모순이다.”

더욱이 최 씨가 근무하는 공정은 주조부에서도 혼자 떨어져 일하는 곳이다. 회사와 마을의 경계인 강 옆에 따로 일하는 곳이 있다. 동료를 만나려면 20여 분 걸어가야 한다. 최 씨가 복귀하기 이전, 이곳에선 아무도 근무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복귀하니까 기계가 돌아갔고, 내가 산업재해로 쉬니까 기계도 쉬고 있다. 혼자 근무하다 중대 사고라도 나면 찍소리 못하고 사망할 수 있다. 강성 조합원이나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인사이동하고, 말 잘 들으면 제자리로 보내주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나에게 알아서 자진 퇴사하라고 압박하고, 그렇지 않으면 해고한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대전 ㅅ병원 담당의 소견에 따르면 그는 걷기도 힘든 상태다. 무릎 자체를 쓰지 못할 확률이 높아 55세 안에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2년 이상 근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그는 수술을 미루고 있다. 

▲대전 ㅅ병원 소견서. 이후 그는 정부로부터 장애 6급 판정을 받았다. ⓒ미디어충청

갈비뼈 6번 7번 골절, 발목인대-무릎전방십자인대 파열, 장단지 근육파열
“고통스러운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고 두렵다”

최 씨는 2001년, 2002년에도 연이어 산업재해를 당했다. 근무 중 어깨 연골이 터져 병원서 10주 진단으로 산재 판정을 받았다. 근무 중 미끄러져 건물 2층 높이의 기계에서 떨어지면서 허리뼈 횡돌기가 부러져 6개월간 병원에 입원, 또 산재 판정을 받았다. 고마력에서 일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소견에 따라 최 씨는 호닝공정으로 이동해 계속 일해 왔다. 

그런데 2011년 주간연속2교대제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격렬해지면서 최 씨는 일손을 놓고 투쟁에 나섰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파업 돌입 찬반투표 가결로 주간조 2시간 부분파업만 돌입했는데, 사측이 바로 용역경비를 동원해 직장폐쇄를 하고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내몰았다. 같은 해 5월 18일 단행한 직장폐쇄는 불법 논란 중이며, 사측이 손잡은 ‘노조파괴 컨설팅’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은 불법 행위를 인정받아 심종두 전 대표의 노무사 자격이 취소됐다. 유시영 유성기업 대표이사는 ‘노조파괴’ 부당노동행위로 검찰 수사 중이다. 

3개월가량 공장 밖으로 쫓겨나 비닐하우스 농성을 이어가던 와중, 6월 22일 충남지역 노동계와 경찰-용역경비가 물리력을 동원해 크게 대치했다. 이날 동료들인 줄 알고 주차장 쪽으로 갔던 최 씨는 사복경찰 17~18명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병원 진단 결과 갈비뼈 6번 7번 골절, 발목인대와 무릎전방십자인대 파열, 장딴지 근육파열 등이었다. 구속심사 결과 기각되어 서울 녹색병원에 입원해 있던 최 씨는 경찰 측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6월 30일 다리에 깁스를 한 채 구속됐다. 당시 충남도경은 이례적으로 127명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노동자 검거에 나섰다. 

“사복경찰들은 나의 왼쪽 발목을 잡아서 꺾었고, 발로 무자비하게 밟고, ‘소리 지르면 부러뜨린다’고 협박하면서 집단 구타했다. 전혀 움직일 수 없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감옥에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 자다가 깨고, 아파서 가끔 소리도 질렀다. 치료를 못 받고, 진통제만 줬다.”

최 씨는 사복경찰들을 고소하려고 했지만 집단 구타를 당할 당시 혼자였기 때문에 증거가 부족했다. 다방면으로 노력해 사복경찰들의 집단 구타에 대한 증언들은 많았지만, 사진, 녹취 등 명백한 증거가 없었다. 최 씨를 도와주려던 변호인들도 한탄스러워했다. 검찰과 경찰이 당일 집단 구타 관련 사진들을 내놓지 않았다고 최 씨는 주장했다. 

“경찰은 당연히 집단 구타 사진을 주지 않았고, 검찰에 요청해도 주지 않았다. 내가 구타당하는 사진들이 많이 있었다. 조서 작성할 때 그 사진들 있는 거 다 봤다. 하지만 검찰이 흑백으로 된 제일 안 나온 사진 한 장만 주더라. 사진 증거자료 더 달라고 하니까 검사가 허락한 것만 준다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경찰과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포기하게 됐다.”

이런 과정으로 장애 6급 판정을 받은 최 씨는 사측의 부당인사에 대해 밖으로 호소해봤지만 들어주는 곳이 없었다. 장애인협회에 문의하니 “우리가 관계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고 했고, 노동청에 문의하니 “회사의 인사권이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 소모품처럼 버려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이대로 회사 그만둬야 하는 지… 20년간 근무하며 어느 누구보다 건강했고, 열심히 일했고, 유성기업 다니며 처자식 먹여 살리면서 아주 가끔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계속 산재 당하고, 자본과 정권의 경찰폭력에 다치고 나서 폐기물처럼,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 같다. 짐승 같다. 장애 이전 상태로 몸을 되돌려 오라고 말한 관리자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민다. 개인적으로 장난치다 다친 것도 아닌데 혼자만의 잘못으로 치부해 굉장히 속상하다. 전혀 배려가 없다.”

그는 최근 자전거를 탄 일이 있다. 하지만 통증이 심해져 탈 수 없었다. 달리기, 등산, 축구, 합기도, 헬스 등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다. 개인적인 즐거움마저 빼앗긴 그는 10월 28일 복귀를 앞두고 해고의 위협에서 서성이고 있다. 

“지속적으로 찾아가 면담 요청하고, 부당한 인사이동이라고 말하니까 사측은 ‘면담요청’을 ‘항의’로 받아들였다. 출근하면 바로 징계한다고 했다. 출근하면 다시 주물공정으로 가야 한다. 또 보조기 차고 일하고, 고통스러우면 파스 붙이고, 더 고통스러우면 물리치료 받고. 이 반복된 고통스러운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 굉장히 걱정스럽고 두렵다.” (기사제휴 = 미디어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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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은 미디어충청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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