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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그리다 - 오른발
애물단지였던 내 오른발 기능 확인은 일생일대의 발견이었다
등록일 [ 2014년07월16일 04시34분 ]

어렸을 적, 지금으로서는 간단한(?) 질병이었던 황달로 말미암아 뇌의 일부분, 특히 운동 신경이 있다는 소뇌에 돌이킬 수 없는 병변(병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생체의 변화)이 생겨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얻었다. 뇌성마비의 특성 중의 하나가 양쪽 팔다리의 장애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인데 앞서 언급했듯이 내 오른팔과 왼팔은 강직의 정도도 다르고, 행동 범위도 다르다. 그에 반해 내 양다리는 나를 기어 다니게 해주는데 양쪽이 고르게(?) 기여하는 줄로만 알았다. 오른발이 그 일로 각성(?)하기 전까지는…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뭐 해 먹고 살지? 나름 멍청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머리를 쓰는 일을 해야 할 텐데… 글 쓰는 작가를 할까? 공부하는 학자가 될까? 그런 고민을 10살쯤부터 심각하게 한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지원해주기 위해 과학 만화 전집, 백과사전 전집, SF소설 전집, 한국 문학 전집 등을 무리해서라도 사주셨고. 스스로 한글을 깨우치고 책이 걸레가 되도록(많이 봐서 그런 것도 있지만 한 번만 봐도 그랬다. 책장은 혀로 넘겨서 침에 찌들기 일쑤였고, 읽을 동안 종이가 잘 넘어가지 않도록 턱으로, 볼, 이마 등으로 찍어눌러대니. 헤질 수밖에…) 읽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셨다고 지금도 가끔 말씀하신다.

 

그때 내가 특히 재미있어 했던 것은 단연코 과학이었다. 과학 만화에서, SF소설에서 난 우주 비행사였고, 발명가였으며, 과학자였다. 상상 속에서는 못할 것이 없는, 못 가볼 곳이 없는 그런 세계로 과학은 나를 인도했다.


그런 성향(?)으로 굳어져 가는 나에게 또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 있었는데 외삼촌을 따라

놀러 갔던 다방의 구석에 놓여 있던 갤러그 게임기였다. 삼촌과 친구들은 몇 점 내기네 뭐네 하면서 게임을 했지만 난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 가끔 어머니에게 졸라서 오락실을 가긴 했지만 어머니는 뻘쭘해했고 나는 다른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것을 보는 것밖에 못했기 때문에 그런 나들이는 몇 번 하지 않았다. 대신 그 당시 대우전자에서 만든 재믹스라는 가정용 게임기(원래 MSX라는 8비트 컴퓨터에서 게임 기능 외에 키보드, 저장장치 등을 뺀 기기)를  사 달라고 거의 2년가량 생떼를 쓴 기억이 있다. 그 2년간 어머니는 컴퓨터 잡지(거의 게임기 관련 내용이었고, 기초적인 프로그래밍도 배울 수 있었다.)를 사주셨다. 그게 내가 컴퓨터에 관심을 두게 된 시작이다.

 

▲서기현 씨가 컴퓨터를 하고 있는 모습. ⓒ서기현

 

잡지를 보면서 실제로 컴퓨터는 없었지만 나는 상상 속에서 프로그래밍도 했고, 게임도 했고 심지어 게임도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 중에서 몇 안 되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 모습이 부모님께서는 보기에 안쓰러우셨는지 (아니면 내 지속적인 생떼가 먹혔는지 ㅋ) 당시로써는 꽤 거금이었던 300만 원을 들여서 16비트 컴퓨터를 사주셨다.


그 시절은 도스(DOS) 세대라서 키보드로만 컴퓨터 조작이 가능했지만 윈도(window)로 서서히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에게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바로 마우스의 사용이었다. 키보드는 손을 못써도 입으로든 머리로든 막대기를 물거나 달아서 칠 수 있지만, 마우스는 온전히 손의 정교한 작업을 통해서만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초창기 버전의 윈도를 쓸 때에는 동생이나 어머니를 귀찮게 하며 마우스를 조작해 달라고 하거나, 심지어 볼 마우스를 뒤집어서 트랙볼마우스를 쓰듯 어렵게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몇 년 후에 윈도95가 설치된 컴퓨터를 구매하니 제어판에 휠체어 모양의 아이콘이 있었고, 그 이름은 '내게 필요한 옵션’이었다.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 '고정키','마우스키','고대비 화면' 등의 장애인 접근성 관련 기능이 모여 있는 것이었다. 지금 윈도 7 또는 8의 ‘접근성 센터’이다. 미국에서는 90년대부터 ADA(미국장애인법, 우리나라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범용 OS에는 장애인 접근성 기능이 꼭 들어가야 했다. 미국의 법 하나 때문에 한국의 장애인이 그나마 컴퓨터 접근성을 보장받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윈도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그중에서도 마우스키라는 기능은 내 컴퓨터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자판의 오른쪽에 있는 숫자키패드의 15개 키로 마우스 기능을 흉내 내는 것이었는데 이걸 발견하고는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마우스를 당장 떼고 숫자키패드를 이리저리 눌러가며 마우스 놀이(?)에 흠뻑 빠져서 신 나 했다.

 

실제 마우스보다는 느려서 답답했지만, 그래도 마우스 자체를 못쓰던 시절과 비교하면 정말 많이 변화한 것이었다. 윈도 프로그램 실행, 창 닫기, 이동하기 등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제한적이나마 간단한 게임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점이 있었으니… 오른손의 이용해 숫자키패드를 조작함에 있어서 엄청난 에너지 소모가 일어났다. 물론 입으로 숫자키패드를 누를 수도 있었지만 화면의 마우스 커서를 동시에 확인할 수 없어서 시간이 많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면서 오른손으로는 잔뜩 강직이 걸린 상태로 키를 누르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우스를 아예 못쓰는 것보다는 났다고 생각했지만 오른손(팔)의 컨디션에 따라 마우스키 조작의 속도는 들쑥날쑥했고, 한겨울에도 늘 오른손 때문에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자에 앉는 것이 불편했던 나는 평소에 낮은 책상을 써왔는데 컴퓨터도 그런 책상에 올려놓고 쓰고 있었다. 마우스키를 어렵지만 유용하게 쓰고 있었지만 일반 마우스도 장식으로(?) 달아 놓고 가끔 휠 버튼으로 스크롤(화면을 상하로 이동시키는)하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어느 순간 조금 과격하게 스크롤을 시키는 바람에 마우스는 방바닥으로 떨어졌고 손은 안 닿지만 오른발은 겨우 닿아서 끌어올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 난 혼자 투덜거리며 오른발을 뻗어 마우스를 내 쪽으로 끌어왔다. 당연하게도 화면의 마우스 커서도 따라 움직였다. 꽤 부드럽게.

 

▲서기현 씨가 오른발로 마우스를 사용하는 모습. ⓒ서기현

 

어라? 내 오른발이 이렇게 부드럽게 움직였던가? 마우스에 올린 발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았다. 어? 이거… 버튼만 누를 수 있으면? 엄지발가락을 마우스 왼쪽 버튼에 올려놓고 눌러보았다. 딸깍. 잘 눌러졌다.

 

그렇게 정말 우연하게 내 오른발로 마우스를 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건 콜럼버스의 달걀이었다. 내 다리는 그저 내 하체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가끔 무릎이 곪아 터져 며칠씩 병원 신세를 지게 하는 그런 애물단지였다. 

 

그랬던 내 오른발이 그날 이후 꽤 능숙하게 마우스를 쓸 수 있게 된 건 그야말로 내 일생일대의 '발견'이었다. 피나는 노력도 없었고, 치열한 고민도 없었다. 단지 우연히 내 몸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어 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뿐이다. 

 

그 이후 컴퓨터 작업에서 마우스에 대한 부담은 말끔히 사라졌으며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도 없어졌다. (아마 그때부터 똥배가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ㅠㅠ) 그렇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온라인 MMORPG 게임도 어느 정도는 맘껏 할 수 있었다. (실은 이게 가장 기뻤다. ㅋㅋ)


그렇게 자신의 능력을 각성한 내 오른발은 역할 하나를 더 부여받는다. 항상 몸 상태에 따라 경직이 좌지우지되던 왼손(팔)을 대신하여 전동휠체어의 운전을 맡게 된 것이다. 내 자랑을 조금 하자면 발로 처음 운전하던 날, 전동휠체어 개조 담당자는 "처음 운전하는 거 아니죠? 첫 운전에 이렇게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정말 처음이었는데… ㅋㅋㅋ

 

비밀 아닌 비밀을 털어놓으면 오른발이고 왼발이고 다 작은 편이다. 어머니는 걸어 다니지 않아서 작은 거라고 용불용설(?)을 주장하시며  안타까워하시지만, 결과적으로 내 발은 마우스를 쓰는데 적합하고 전동휠체어를 운전하는데 적당하다. 그 무엇이 더 필요할까? ㅋㅋㅋ

 

서기현의 주둥아리

뇌성마비로 인한 사지마비. 잘 기어다님. 의외로(?) 할 수 있는 것 많음. (활동보조 시간 깎일만큼은 아님. 봐주십쇼. *굽신굽신*)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은 주둥아리 덕에 가능. 지루하게 말하기. 젓가락 물고글쓰기. 개걸스럽게 먹기. 섹시하게 ... (응?) 7년동안 집안에서 거지꼴로 살다 IMF때 반강제 자립(자립생활 아님 ㅋ). IT업계의 비장애인들 틈바구니에서 개고생하다 장판에 들어와 굴러먹은 지 10여년. 현재 어느 자립생활센터에서 소장으로 놀고 먹으며.. 오로지 주둥아리 하나로 버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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