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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유모차 이동권’을 위해 나서다
장애인·유모차 이동권 위해 거리에 나온 ‘초보엄마’ 이야기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좋은 세상 만들고 싶다”
등록일 [ 2014년11월12일 11시57분 ]

지난 9월 23일 광화문역에서 열린 '광화문역 엘리베이터 설치 촉구 기자회견'에는 장애인 뿐만 아니라 '노동당 육아모임' 소속 당원들도 유모차에 탄 아이와 함께 참여해 '유모차 이동권 보장'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 발언에 나섰던 홍주리 씨가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소회를 글로 보내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그 어떤 4월보다 잔인했던 2014년 4월. 나는 3.3kg의 건강한 사내이이를 낳았다. 무사히 아이를 낳고 안도하는 마음 한편에는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아이를 건강하게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주거문제부터 시작된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기 한 달 전에야 해가 잘 드는 작은 빌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전에 살던 집은 해가 잘 들지 않았는데도 보증금이나 월세가 비싼 편이었다. 단지 서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만삭 때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경기도 근교로 집을 보러 다니면서 신혼부부전세대출을 받아 겨우 월셋집에서 전셋집으로 넘어왔지만, 2년 뒤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하면 어쩌나? 아이를 데리고 2년마다 이사 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문제는 역시 돈이다. 내 아이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보다 풍요롭지 못한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요즘엔 어린이집에서부터 집의 평수와 차종으로 그룹이 나뉘어 진다는데, 그렇다면 내 아이는? 고개를 숙인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돈이 없다고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들 하는 만큼 해주지 못한다는 게 참 미안해진다.


미안한 것은 그뿐이 아니다. 각종 범죄와 안전사고, 환경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게 한 아이에게 무척 미안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부터 미세먼지, 심심찮게 크고 작은 사고가 터지는 핵발전소 때문에 불안했던 마음이 더 불안해진 건, 세월호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열흘 전에 깊은 바다로 가라앉은 그 많은 생명의 무게에 내 마음은 더욱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난 9월 23일, 광화문역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참가해 발언을 하고 있는 홍주리 씨.

 

이런저런 걱정 속에서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백일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아기띠를 매고 여기저기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두 달이 넘게 집안에만 갇혀있어 갑갑하기도 했고,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 만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그 즈음, 아이 아빠가 당원으로 활동하는 노동당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의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지쳐 가벼운 산후우울증을 앓던 내게 그야말로 산소호흡기 같은 소식이었다. 일단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세 가정이 만나기로 했다. 고백하건대, 소개팅 나갈 때보다 더 떨렸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반가웠다. 육아로 점철된 서로의 바쁜 일상을 나누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러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함께 했다.


첫 모임 후, 다음에는 세월호 농성장 지지 방문을 가기로 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목숨을 걸고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그곳은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다. 미약하게나마 힘이 되고 싶었다. 힘겹게 투쟁하는 이들에게 아기들의 방문이 남다른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농성장 방문을 위해 나는 아기띠, 다른 엄마는 유모차를 가지고 광화문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집에서 가까운 3호선 화정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까지 간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환승 통로로 올라가기 위한 엘리베이터가 없다! 에스컬레이터 뿐. 아기띠를 맨 나는 비교적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지만, 유모차를 가지고 간 엄마는 유모차를 접고 아기를 안고 불안하게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접는 기능이 있는 유모차라 망정이지, 접지 못하는 큰 유모차라면 난감할 뻔했다. 그렇게 힘겹게 광화문역에 도착했는데 여긴 엘리베이터는커녕 에스컬레이터조차도 없다. 할 수 없이 아기띠로 아이를 매고 유모차를 접어 힘겹게 계단을 오르며, 앞으로 우리 모임에서 함께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유모차 이동권 투쟁’을 펼쳐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광화문 농성장을 방문하고 며칠 뒤, ‘광엘모(광화문역 엘리베이터 설치 시민모임)’에서 마련한 이동권 투쟁 현장에서 연대발언 요청이 들어왔다. 그날 느꼈던 당황스러움을 그대로 전하면 될 것 같아서 흔쾌히 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낳기 전에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불편함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것이다. 요즘엔 무심코 지나가다 식당 입구에 턱이 있는지 없는지도 유심히 보게 된다. 그동안 (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느꼈을) 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걸 만회하려고 사람들 앞에서 엄마들의 대변인으로 연대발언을 하겠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발언하기로 한 날, 나는 아기띠로 아이를 매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광역버스를 탔다. 혼자서는 도저히 유모차로 광화문역에 갈 자신이 없었다. 약속시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광화문역 플랫폼을 가득 채운 경찰들을 보고 무척 놀랐다. 이동하기가 불편해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결국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행사가 진행되었고, 나는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냈다. 엄마로서, 아니 한 시민으로서 여러 사람 앞에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지난 9월 23일 열린 광화문역 엘리베이터 설치 촉구 기자회견의 모습.

 

며칠 뒤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으로부터 본인 욕심에 아이를 앞세우지 말라는 꾸중을 듣긴 했지만, 그쯤은 개의치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노동당 육아모임이다. 나는 다른 육아모임보다 이 모임에 나가는 것이 가장 편하고 즐겁다. 우리 모임의 육아관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걱정덩어리로 가득 찬 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보통’이란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손가락질 받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 꼭 필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이다. 그 따뜻한 손길을 받기 위해서는 나부터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강인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 키우기 힘든 세상을 아이 키우기 좋은 세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동당 육아모임은 앞으로도 함께 행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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