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08월22일thu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형제복지원 사건은 명백한 국가범죄"
형제복지원대책위, 국가 책임 입증 자료 공개
부랑인 형제복지원 입소, 사건 축소 등 개입해
등록일 [ 2014년12월04일 23시22분 ]

‘부랑인’을 강제로 수용해 노역, 감금, 구타 등 인권침해를 저지르고 심지어 공식적으로 513명을 죽음으로 내몬 형제복지원 사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가가 형제복지원 사건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해왔으나, 국가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이를 인정한 바는 없다.

 

이에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아래 형제복지원대책위)는 국가가 형제복지원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거나 혹은 방조한 증거 자료 등을 수집해, 그 일부를 4일 자료공개 발표회에서 공개했다.

 

이날 발표회에서 형제복지원대책위가 거론한 국가 책임은 크게 세 가지로, 국가 기관의 형제복지원 입소 개입 및 사건 축소, 사망 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사건 이후 전원 조치된 이들에 대한 정부의 방관 등이다.

 

▲형제복지원대책위가 공개한 국가 책임 입증 자료들 중 일부.

 

형제복지원 부랑인 입소, 사건 축소 등에 국가 기관 개입

 

이날 발표회에서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는 형제복지원대책위 자료를 토대로 형제복지원 사건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있음을 입증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발단은 지난 1975년 내무부(현재 안전행정부)에서 발표한 훈령 제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 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다. 훈령이 폐기된 1987년까지 이 훈령을 근거로 부랑인 단속과 수용이 이뤄졌다.

 

훈령과 더불어 국가적으로 부랑인 단속과 수용을 장려하기도 했다. 일례로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은 총리에게 ‘신체장애자 구걸 행위에 대한 단속을 촉구’하는 지휘서신을 보낸 바 있으며, 1987년 신민당 진상조사 보고서에서는 부랑인을 구류하면 2~3점, 형제복지원으로 입소시키면 5점의 근무 평점을 부여하는 경찰 내부 지침이 명시돼 있다. 이에 경찰이 부랑인 단속과 수용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포착됐다. 신민당 보고서에 의하면 1986년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인원 3975명 중 경찰에서 인계한 이들이 3117명으로 78.4%를 차지했다.

 

특히 경찰은 부랑인을 과잉 단속하면서 피해자를 양산하기도 했다. 물론 내무부 훈령 자체가 부랑인을 지나치게 폭넓게 정의해, 경찰의 자의적 단속을 조장한 바 있다. 그러나 형제복지원대책위가 형제복지원, 경찰 등을 통해 수집한 신병 인수증, 신상기록카드 등에 의하면 경찰은 주소와 연고자가 있는 이들도 자의적으로 체포해 형제복지원으로 넘겼다. 내무부 훈령의 부랑자 정의를 참고하더라도 주소가 명확하면 부랑인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경찰의 월권행위가 드러난 셈이다.

 

▲형제복지원이 경찰이 잡아들인 '부랑인'을 인수한 내용을 적은 신병 인수증. 피해자 주소가 명확하게 기재돼 있다. 박인근 원장 저서, '형제복지원 이렇게 운영되었다'에 수록된 자료.

 

부산시도 형제복지원에 부랑인을 수용하도록 용인하고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 부산시는 1년 단위로 내무부 훈령에 근거해 형제복지원에게 부랑인 수용보호를 위탁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형제복지원 내 지속적인 인권침해, 횡령, 회계부정이 있었지만, 사전에 이를 방지해야 할 부산시는 별다른 관리, 감독 없이 계약을 갱신해온 것이다.

 

1987년 이후 형제복지원 사건이 알려졌을 때도 국가 기관은 사건을 축소하고 박인근 원장을 감싸는 모습을 보였다. 형제복지원 사건 담당 기관이었던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조재석 청장은 형제복지원 울주군 작업장에서 일어난 이충열 씨 사망 사건으로 수사를 축소했다. 당시 조 청장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청와대 법무수석 등과 정보 보고를 통해 ‘울주군 작업장에서 사망한 이충열 씨 외 수사한 바 없다’, ‘부산에 있는 형제복지원에 대한 수사 확대는 어렵다’ 등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형제복지원 피해자 제보나 언론 보도를 통해 형제복지원 구타, 사망, 횡령 등의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검찰 측은 수사를 확대하지 않았다. 당시 형제복지원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청 김용원 검사는 1987년 1월 ‘명에 의해 박인근의 횡령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였음’이라는 정보 보고를 남기기도 했다.

 

또한 1987년 1월에는 보건사회국 국장,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재 국가정보원) 조정관 등이 박인근 원장의 불구속 기소 수사를 탄원하는 내용을 담은 형제복지원 운영문제 대책협의회 결과 공문이 작성되는 등, 박인근 원장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기관 관계자들의 행태도 드러났다.

 

이를 두고 김 변호사는 “이에 미루어 볼 때, 형제복지원은 박인근 개인뿐 아니라 국가가 만든 수용소다”라며 “따라서 국가 책임에 대한 진상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7년 1월 21일 김용원 검사가 작성한 정보 보고. 김 검사는 '명에 의하여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에 대한 업무상 횡령의 점 수사를 중단하였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형제복지원 사망자에 대한 대응 부적절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사망사건에 대한 국가의 대응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형제복지원은 부산시 법의학감정위원회와 계약서를 작성해 1976년부터 1987년까지 사체 처리를 위탁한 바 있다. 계약서에 의하면 법의학감정위원회는 사망감정, 사망자를 처리하고 사체 1구당 7만 7000원의 처리비를 받았다. 법의학감정위원회는 1986년에만 95구(신민당 보고서 기준)의 사체를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복지원은 구타에 인한 사망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형제복지원에서 사인 판정을 맡긴 ㅂ의원 정아무개 씨는 1985년, 1986년 사망자 57명의 진단서를 작성했는데, 대부분 사인을 심부전증, 정신쇠약 등으로 기록한 바 있다. 정 씨는 울주군 작업장에서 구타로 사망한 이충열 씨의 사인도 심부전증, 전신 쇠약 등으로 판정하기도 했다. 김용원 검사는 ‘정 씨가 사체를 눈으로 살펴보는 데 그쳐, 제대로 된 사인을 판단하지 못해 허위 진단서를 작성했다’고 1987년 2월 정보 보고에 기록하고 있다.

 

사망자 관련 자료를 분석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장서연 변호사는 부산시와 검찰, 경찰 등이 법의학감정위원회를 통해 형제복지원에서 다수가 사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이에 맞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다수가 구타로 사망했다는 피해생존자의 증언과 달리, 1986년 형제복지원이 작성한 사망자 명단, 김용원 검사가 작성한 1986년 사망자 목록에는 외상에 의한 사인이 전혀 없었다. 이에 장 변호사는 “1986년에 100여 명이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하고 그중에 22명이 입소 한 달 만에 사망한 기록이 있음에도, 수사 기관이 사인을 규명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사체해부보존법 등 법률에서 사인이 불명확하거나 범죄로 사망한 경우, 수사 기관에서 부검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범죄가 있으면 수사를 해야 하는 검찰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용원 검사가 1987년 2월 19일 작성한 정보 보고. 형제복지원 사망자 사인을 허위 기록한 ㅂ의원 정아무개 씨가 '형식적으로 사체 전면을 살펴본 일이 있어 그 사인을 알지 못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형제복지원에서 사라진 사람들, 파악 의지 없는 국가 기관

 

사건 이후 형제복지원에서는 일부 거주인에 대한 전원 조치가 이뤄졌으나, 이들에 대한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1987년 형제복지원 자체 자료로는 97명, 김용원 검사 수사 자료에 의하면 1988년 289명이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별도로 형제복지원대책위는 부산 소년의 집으로 옮겨진 형제복지원 거주인 220여 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 이후 형제복지원에서 나온 사람들의 규모와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는 알려진 바 없다.

 

형제복지원대책위 여준민 사무국장은 형제복지원 사건 이후 가족들의 문의로 형제복지원 출신 실종자들을 찾았으나, 현재 전원 조치된 이들에 대한 정확한 실태가 파악되지 않아 가족 찾기에 애를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에서도 제대로 된 실태 파악은 하고 있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여 사무국장은 형제복지원대책위에서 2014년 김용익 의원실을 통해 보건복지부, 부산시 등에 형제복지원 전원 조치 명단을 요구했으나 신뢰할 수 있는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부산 기장군에서는 기장군 내 ㄱ 정신요양원에 형제복지원 출신 거주인이 33명이라고 파악했으나, 부산시에서 파악한 명단은 53명이었다. 그마저도 형제복지원대책위가 파악하고 있는 2명의 형제복지원 출신 거주인의 명단이 빠져 있어 신뢰도가 떨어졌다.

 

또한 김용익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부산 장애인 거주시설에 138명, 정신요양원 86명, 노숙인 시설 40명 등이 형제복지원에 수용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마저도 형제복지원대책위가 자체 조사한 결과 형제복지원 출신 거주인이 있는 노숙인 시설이 빠져 있는 등 제대로 된 조사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여 사무국장은 이외에도 해외 입양 등의 명목으로 형제복지원에서 팔려간 이들에 대해선 자료가 전혀 없어, 이에 대한 진상규명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여 사무국장은 “자료가 없으면 제대로 조사하라고 해야 하는데, 공문만 보내고 후속 조치가 없다. 복지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조사 의지가 없다.”라며 “국가가 자료를 조사한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는 정보만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여 사무국장은 “그래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은 꼭 제정되어야 하며, 정부가 먼저 진상을 찾으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국가에 의해 배제, 격리된 사람들이 여전히 사회에서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정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 형제복지원대책위는 국가가 형제복지원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거나 혹은 방조한 증거 자료 등을 수집해, 그 일부를 4일 자료공개 발표회에서 공개했다.

 

올려 0 내려 0
갈홍식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형제복지원 사건, 27년 만에 '국민법정'에 소환
"이게 내가 형제복지원에서 당했던 일"
형제복지원 특별법 국회서 쿨쿨, "조속히 제정하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정신보건시설 장애인 81%, 6.4지방선거 참여 못해 (2014-12-05 12:22:53)
‘로스쿨, 장애인 등 취약 계층 10% 이상 선발’ 법안 발의 (2014-12-04 12:32:58)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발달장애인의 실종, 오직 그의 장애 때문일까?
대책 없는 발달장애인 실종 대책의 현주소 정부의 커...

복지부의 발달장애학생 방과 후 활동서...
"병원 갈 돈이 없어요" 저임금에 시달리...
우리 운동의 지향과 공동체의 일상은 어...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