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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위한 법은 어디에도 없다
[2014년 결산②]빈곤 사각지대에서 쓸쓸히 죽어간 사람들
‘세 모녀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과제로 남다
등록일 [ 2014년12월19일 20시33분 ]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 2월 말. 세 모녀는 12년 전 아버지를 잃고 큰딸이 당뇨로 투병 중이었던 상황에서, 어머니 박아무개 씨의 식당 노동과 작은딸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다 지난 1월 어머니가 팔을 다쳐 식당 일을 하지 못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했던 착한 모녀는 끝내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봉투를 남기고 자살을 선택했다.

 

▲지난 2월 말 생계 유지에 어려움을 겪던 송파 세 모녀가 자살했다. 자살 전에 그들이 집주인에게 남긴 봉투. ⓒ서울지방경찰청

 

송파 세 모녀의 사례는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이례적인 사건은 아니었다. 올해만 하더라도 가난을 이유로 자살한 이들의 사례가 언론에 수십 건 보도됐다. 또한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올해 6월까지 자살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74명에 이른다. 통계와 언론 보도 등에 드러나지 않은 빈곤층의 자살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2009년 156만 9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올해까지 22만 6000명이 줄어든 134만 3000명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아래 기초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2년 이후 사상 최소치를 기록했다. 이에 더해 학계나 시민사회단체에서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에서 제외된 비수급 빈곤층을 올해 수급자의 3배에 이르는 410만여 명으로 추정하는 등, 올 한 해 빈곤층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빈민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은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올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세 모녀의 죽음을 막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세 모녀 사건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세 모녀가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했거나 관할 구청이 알았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화답하듯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3일 복지 제도에 대한 홍보 부족으로 많은 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전국적인 일제 조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보건복지부는 조사 결과 15만 4065명의 빈곤층을 발굴했으나, 이들 중 실제로 복지 지원을 받게 된 경우는 긴급복지 지원 9652명(6.3%), 기초생활보장 수급 2만 2370명(14.5%)으로, 약 20% 정도에 불과했다. 홍보 부족이라는 정부의 진단과는 달리, 빈곤층을 발굴해도 이들을 전부 지원할 수 없는 복지 제도의 현실이 드러난 셈이다.

 

▲지난 11월 19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기초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민생보위 등 시민사회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안이 세 모녀를 구하지 못하는 법이라고 규탄했다.

 

또한 정부는 세 모녀 사건을 해결하겠다며 지난 4월 ‘맞춤형 개별급여’를 주요 골자로 하는 기초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정부와 여당은 이 개정안을 소위 ‘송파 세 모녀법’, 민생법안이라고 홍보하면서 법안 처리를 강행했으며, 12월 9일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확신과 달리 개정된 기초법이 제2, 제3의 세 모녀를 복지 사각지대에서 벗어나게 할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이 법은 기존 통합급여 체계를 개별급여로 나누어 해당 부처로 이관했으며, 급여 범위와 수준도 중앙생계보장위원회에서 정한 최저생계비가 아닌 상대적 빈곤선에 따라 중위소득 기준을 적용해 결정하도록 했다.

 

정부 등은 이 법으로 급여 수준이 확대될 것으로 단언했으나, 빈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러한 내용을 두고 ‘급여 쪼개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기초생활의 근간이 되는 최저생계비를 해체하면서, 각 부처의 예산 사정에 의해 예산이 자의적으로 축소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추정소득, 부양의무자 기준 등 독소 조항들이 마치 빈곤층에 소득이 있는 것처럼 부풀려 수급권을 박탈하는 기초법의 문제가 이 법에서도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빈곤층 가구가 어려운 사정에 처해 당장 소득이 없더라도, 가구에 ‘근로능력자’가 있으면 소득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수급을 원하는 빈곤층 가구에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부양의무자로부터 부양비를 전혀 받지 못하더라도 부양의무자의 소득에 비례해 수급비가 차감되거나 전혀 받지 못하게 된다.

 

물론 정부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부 완화해 수급 대상자가 12만 명 확대된다고 선전하고 있으나, 이 수치는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117만 명(2010년 기준)을 포괄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도 이번 개정된 기초법을 두고 세 모녀 사건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동 능력이 있는 나이대인 두 딸로부터 추정소득이 발생하므로, 노동 능력 판정에 따라 수급비가 차감되거나 전혀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모녀 사건이 있었고 ‘송파 세 모녀법’이 만들어져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법이 세 모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법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근본적 문제점은 그대로 있어, 올 한 해 해결하지 못한 과제로 남게 됐다.

 

<2014년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생계 비관 자살 사례>


- 1월 20일 아버지의 유산 등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권 신청을 하지 못했던 장애남성 김아무개 씨(36)가 원효대교에서 투신.


- 2월 초순 경 울산 중구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 장애여성 이아무개 씨(50)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지속적인 병원 치료에 부담을 느껴 아들(28)을 살해하고 뒤따라 자살. 3월 6일 지인에 의해 발견.


- 2월 26일 서울 송파구 반지하 방에서 거주하던 박아무개 씨(61)가 팔을 다쳐 식당일을 하지 못해 생계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자, 월세, 전기·가스 요금 등을 남기고 큰딸(33), 작은딸(31)과 자살한 것을 발견.


- 3월 2일 경기 동두천시에서 윤아무개 씨(37)가 생활고와 자녀의 성장이 더딘 것을 비관해 아들(4)을 데리고 투신. 같은 날 서울 강서구에서 안아무개 씨(57)가 건강 악화로 택시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아내 이아무개 씨(55)와 동반 자살.


- 3월 4일 전북 익산시에서 경제적 문제로 남편과 별거하던 ㄱ 씨(35)가 아들(7), 딸(2)을 데리고 자살 시도해 아들 사망.


- 3월 5일 울산 북구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월세 마련도 버거워하던 윤아무개 씨(45)가 기초생활보장 수급권 신청을 했으나 탈락해 자신의 승용차에서 자살.


- 3월 8일 서울 강남구에서 90대 노모와 함께 살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김아무개 씨(61)가 약을 먹고 자살.


- 3월 19일 울산 울주군에서 배아무개 씨(33)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차량 안에서 자살.


- 3월 27일 광주 광산구에서 장애가 있는 부모와 조부모를 부양하던 소년가장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ㄴ 씨(15)가 투신자살.


- 4월 4일 인천 남구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김아무개 씨(70)가 장애인 아들(45)과 동반 자살한 것을 구청 직원이 발견.


- 4월 초순 경기 여주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김아무개 씨(60, 시각장애 1급)가 정신장애 3급 아들(34)과 자살. 4월 15일 김 씨 집에서 악취가 난다는 신고로 경찰에 발견.


- 4월 26일 서울 강서구에서 80세 노모와 함께 살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ㄷ 씨(59, 시각장애 5급)가 집에서 투신.


- 7월 1일 부산 영도구에서 생활고로 가족을 부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강아무개 씨(52)가 어머니(74)와 함께 칼에 찔린 채 발견. 경찰에서는 자살로 추정.


- 10월 29일 서울 동대문구에서 독거노인 전세 지원금을 받아 살고 있었던 최아무개 씨(68)가 집주인이 바뀌어 살던 집이 철거될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시신을 처리할 이들에게 장례비, 국밥 값 남기고 숨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


- 10월 30일 인천 남구에서 남편의 부동산 사업 빚 만기일이 다가오자 이아무개 씨(45)가 딸(12)과 5장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 모녀의 시신을 본 남편 이아무개 씨(51)도 뒤따라 자살.


- 11월 17일 서울 중구에서 당뇨, 고혈압 합병증 등 건강이 좋지 않았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정아무개 씨(72)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 경찰 조사 결과 자살로 추정.


- 11월 20일 서울 중구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이아무개 씨(50)가 숨진 채로 쪽방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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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기자회견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이번에 개정된 기초법이 추정소득, 부양의무자 기준 등 독소조항이 남아있어, 빈곤층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기대하기 어려움을 풍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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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홍식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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