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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을 통해 드러난 ‘시설 사회’의 민낯
[2014년 결산③] 교황이 남긴 메시지 다시 봐야
‘문제 시설’을 넘어 ‘시설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
등록일 [ 2014년12월24일 17시03분 ]

지난 8월 한국을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프란치스코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가톨릭계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궜다.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를 강조해온 교황답게 4박5일의 방한 기간 동안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을 여러 차례 만나고 쌍용자동차, 강정, 밀양 등 국가와 자본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초청해 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그만큼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들이 교황에게 거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장애인계는 교황 방한에 대해 마냥 기대와 경외를 표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명확하게 교황 방한 일정에 포함된 ‘음성 꽃동네’ 방문 때문이었다. 교황 방한 예정지로 꽃동네가 언급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장애인 단체들은 줄곧 공식적인 유감을 표했다. 세인의 주목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애인 대규모 수용시설’인 꽃동네에 방문하게 되면 “사유화된 거대 복지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의미만 남길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자본주의나 보수 기독교계에 대해 쓴 소리를 해온 ‘진보’적인 교황이 거대한 장애인 집단 수용 시설에 문제의식 없이 방문하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각계 사회지도자가 장애인생활시설을 방문해 생활인들을 위로하는 장면은 교황이 아니더라도 이미 수없이 펼쳐진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간 장애인들이 목숨 걸고 진행해온 ‘탈시설’ 운동과 역주행 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난 7월 11일 명동 성당 앞 거리에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모습.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같은 단체들은 지난 5월부터 주한교황청대사관과 청와대가 가까이 있는 청운동사무소나 광화문광장, 명동성당 같은 곳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교황 방한을 목전에 둔 8월에는 교황방한추진위원회가 있는 명동성당에 찾아가 기자회견을 하고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으나, 애꿎게도 경찰과 신도들로부터 모욕만 당하고 교회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성당 앞을 지키던 일부 신도는 부복기도를 올리는 장애인들을 향해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지 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일정 변경 없이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음성 꽃동네 방문이 이뤄졌다. 카메라가 비추는 교황의 ‘시설 방문’ 장면은 전형적인 프레임 속에 있었다. 그러나 교황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꽃동네를 향해 뼈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교황이 전한 메시지는 그간 어렵사리 장애인생활시설에서 ‘탈출’해온 장애인들이 바라온 ‘탈시설-자립생활’의 메시지와 닮아있었다. 교황이 주문한 저마다의 품위 있는 삶, 자기 가정을 돌보는 일이 꽃동네와 같은 집단 수용 형태의 사회복지시설에서 실현될 수 있을까.

 

▲꽃동네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도한 뉴스 화면.

 

정작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기고 간 이 메시지가 한국사회에 얼마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교황이 꽃동네를 다녀간 뒤, 충청북도와 음성군은 교황이 다녀간 꽃동네를 성지화 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의 우려대로 수용소 모델의 복지를 성찰하긴커녕, 이러한 추세가 더욱 힘을 받는 결과가 빚어진 듯하다.

 

교황 혹은 교황방한추진위원회의 의도가 무엇이든, 교황의 꽃동네 방문은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사회와 동떨어진 곳에 격리해 집단 수용하는 '인간수용소'가 정당화되는 '시설 사회'임을 잘 보여줬다. 한국사회는 인권침해가 터지는 문제 시설에 분노하지만, 시설 자체를 문제 삼는 이들은 여전히 소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올 한 해도 예년과 같이 장애인생활시설에서는 인권침해와 비리 문제가 터져 나왔고, 그때마다 언론과 대중은 그 심각성에 혀를 찼다. 올 한 해도 전국 곳곳에서 시설 내 인권유린과 비리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서울 도봉구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 산하시설에 대한 인권침해 사실을 밝히면서 한 해 내내 인강재단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현재 기소된 인강원 전 시설장, 생활재활교사 등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29일, 인강원에 서울시와 도봉구 직원 등이 실태조사를 나갔으나 시설 거주 장애인의 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혀 끝내 무산됐다. 인강원 정문에 실태조사에 반발하는 피켓들이 걸려있다. ⓒ 인강재단공대위

 

경북에서도 구미, 경주, 포항 등의 시설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났다. 구미SOL복지재단에서는 거주 장애인들의 양팔을 뒤로 한 채 손발을 묶고 기저귀를 채운 채 나흘 동안 방에 감금시키는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12월에 재단 대표 등 20명이 징역형 또는 벌금을 선고받았다. 경주 사회복지법인 상록수에서는 거주 장애인이 장기간 성폭행을 당하고 강제노역과 공금횡령이 자행된 사실이 밝혀졌으며, 포항 다소미집에서는 장애아동을 장기간 방치해 뱃속에서 건전지 6개가 발견되는 등 인권유린 의혹이 제기됐다.

 

전북 전주에 있는 자림복지재단에서는 시설 원장 등이 생활인들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건이 밝혀졌고, 지난 7월 17일 1심에서 모두 징역 15년형과 위치추적장치 부착 및 신상공개 10년을 선고받았다. 11월 말에는 전남 신안의 사회복지시설에서 장애인을 개집에 감금하는 등 가혹한 인권유린을 저질러 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불길한 예언일지 모르겠으나, 올해 일어난 시설 내 인권침해와 비리 사건은 내년에도 계속 드러날 것이다. ‘문제 시설’은 지금의 ‘시설 사회’가 유지되는 한,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 시설’을 적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지만, 이제 그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모두 깨달아야 한다.

 

장애인의 삶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이념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인이니까, 불편하다고 해서, 가족이 힘들 테니까 이들을 사회의 외딴 공간으로 분리해낼 것이 아니라, 그 불편과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아가야 할 때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이미 시설에서 ‘탈출’해 지역사회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시설 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으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격리와 추방은 답이 아니다. 올해가 가기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잘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희망의 지킴이가 된다는 것은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특히 난민들과 이민들, 사회의 변두리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연대를 시행하여, 한국 교회의 예언자적 증거가 끊임없이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심은 구체적인 자선 활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 그것도 꼭 필요한 것이지만 ― 사회, 직업, 교육 수준의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사업적인 차원으로만 축소시키고, 모든 사람은 반드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신의 인격과 창의력과 문화를 존엄하게 표현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 2014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주교들과 만나서 한 연설 가운데

 

"저는 여러분의 활동과 증언으로 우리 사회의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위로하시는 주님을 모셔다 드리는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활동은 자선 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으로 확대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도록 격려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 2014년 8월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꽃동네 영성원에서 한 연설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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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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