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12월11일wed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크리스마스 이브에 떠난 영원한 활동가 박홍구, 부디 잘가라”
故박홍구 한뇌협 부회장 추도식, 눈물바다
“오래 살아 투쟁하자던 친구, 너무 일찍 가버렸다”
등록일 [ 2014년12월26일 23시40분 ]

▲故박홍구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부회장의 영정.

 

“제 친구 홍구는 맨날 조끼를 입고 다녔습니다. 제가 패션에 대해 지적하면서 ‘넌 왜 맨날 조끼만 입냐’라고 하면 홍구는 ‘활동가가 언제든지 투쟁에 나갈 준비를 해야지’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홍구는 자기 몸보다 조직과 동료를 챙기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그러던 홍구가 얼마 전 SNS로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 오래 살아서 투쟁하자. 죽어서 투쟁하면 무슨 소용이야. 같이 오래 살자’ 그렇게 약속했던 놈이 그 약속을 버리고 먼저 가버렸습니다.”


추모 발언을 하던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주현 소장은 눈물을 그치질 못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래 살자’라고 살갑게 말하던 그 친구가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부회장 박홍구. 그는 언제나 장애인 인권운동 현장의 맨 앞에 서 있었다. 2001년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연합 활동을 시작으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 투쟁, 시설 민주화 투쟁, 장애인 이동권 투쟁, 그리고 최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투쟁의 현장까지 그가 빠지는 곳은 없었다. 그는 신뢰받는 활동가였고, 든든한 친구였으며, 믿음직한 대표자였다.


그런 그가 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호프집에서 일어난 화재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최근까지 개인적인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으며, 이 때문에 며칠간 지인들과 연락을 두절한 채 이 호프집에서 숙식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오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그의 추도식에는 휠체어를 탄 그의 동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찾아와 복도까지 가득 메웠다.

 

▲26일 오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故박홍구 부회장의 추도식에는 그의 수많은 동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찾아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박홍구 부회장이 집사로 있던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인 류흥주 씨는 “박홍구 부회장에게 다음 회장을 넘기고 마음 편히 물러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안타깝게 떠나버렸다”며 “올해에는 송국현이 부활절에, 박홍구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더 이상 우리 동지들을 화마에 잃지 않도록 더 힘차게 싸워야 겠다”라고 말했다.


故박홍구 부회장의 발인은 27일 오전 8시 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되고, 9시 30분 광화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 머문 후 벽제중앙추모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故박홍구 부회장이 장애인운동의 현장에서 투쟁했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5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날 현장에서. 이날은 장애인 권리를 외치며 마포대교를 점거하기도 했다. 사진의 오른쪽.

▲2005년 8월, 청계천 복원공사 과정에서 장애인 이동권이 침해되는 것에 항의하고 있는 故박홍구 활동가. 사진의 맨 오른쪽.

▲2006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의 날에 故박홍구 활동가는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삭발투쟁을 했다.

▲2006년 4월, 그는 활동보조서비스 제도화를 위한 역사적인 한강대교 점거 투쟁에 함께했다. 사진의 가운데.

▲2008년 석암재단 비리척결을 위한 투쟁의 현장에서. 사진의 가운데.

▲2011년 3월, 뇌병변장애인인권센터 서울사무소 개소식에서. 사진의 맨 오른쪽에서 두번째.

▲2011년 3월, 복지부의 활동보조서비스 판정기준 항의 기자회견 현장에서.

▲2011년 6월, 故박홍구 활동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부양의무제 폐지 요구 서한을 전달하고자 하고 있다.

▲2011년 7월,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고시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중이다.

▲2011년 7월 26일,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개소식에서. 사진의 오른쪽.

▲2011년 7월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주최한 전국 장애인 활동가대회에서.

▲2011년 8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전국 최초로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추가 자부담을 신설하려는데 반대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2012년 1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투쟁 과정에서 폐렴으로 목숨을 잃은 故우동민 열사의 1주기 추모제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12년 4월 19일, KTX민영화 반대 기자회견에서.

▲2012년 5월 1일, 노동절 집회에서.

▲2012년 9월, 강원도 양양군에서 장애인을 위한 해수욕장 건립을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이유로 거부하고 있는데 항의해 그가 광화문 광장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2012년 12월, 경기도 파주의 발달장애를 가진 지우, 지훈 남매의 화재 사망사건 이후 규탄 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2013년 4월, 장애인활동보조 24시간 보장 촉구 집회 현장에서.

▲2013년 12월 3일, 세계장애인의 날 투쟁의 현장에서.

▲2013년 3월 26일, 최옥란 열사 추모 전국장애인대회 투쟁 현장에서.

▲2013년 12월 故박홍구 활동가가 광화문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서 시민에게 선전물을 나눠주고 있다.

▲2014년 4월 반포동 문형표 복지부 장관 집 근처. 故송국현 씨의 죽음에 대해 문형표 장관의 책임을 묻기 위해 면담요청서를 들고 있는 故박홍구 활동가.

▲2014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열린 '장애인도 시외버스 타고 고향가자' 투쟁에서 장애인 시외 이동권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故박홍구 활동가.

▲2014년 11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장애포럼(APDF) 총회에 참석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장애인운동 활동가들과 교류하고 거리행진에 함께하고 있는 모습. 사진 속 휠제어 왼쪽에서 세번째.

올려 0 내려 0
하금철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부고] 한뇌협 박홍구 부회장, 불의의 화재로 숨져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2014년 가장 뜨거웠던 곳, '고속터미널'에 주목하라 (2014-12-27 00:33:57)
'간성(intersex) 영아 살해 사건' 가십거리 만드는 언론 (2014-12-26 18:42:13)
(사)장애인지역공동체 활동지원사모집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비마이너의 아름다운 유혹, 독자 인터뷰 더보기
신간소개기사보기 도서 구매하기
기고 칼럼 기자칼럼

기고 작은이미지
휠체어 탄 장애인이 왜 노숙하냐고요?
문재인 정부는 2026년까지 지역사회 통합돌봄(커뮤...

탈시설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9명, 어떻게...
우생학, 우리 시대에는 사라졌을까
무엇이 독일 나치의 장애인 학살을 허락...
Beminor SNS 비마이너 페이스북비마이너 트위터비마이너 텔레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