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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장 뜨거웠던 곳, '고속터미널'에 주목하라
[2014년 결산④] 장애인 시외이동권 투쟁, 1년 동안 계속돼
내년도 시범사업 예산 날아갔지만 싸움은 계속돼
등록일 [ 2014년12월27일 00시33분 ]

올해 12월 2일, 서울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200여 명의 장애인이 모였다.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서였지만 탈 수 없었다. 현재 고속버스엔 휠체어 탄 장애인이 승차할 수 있는 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가파른 계단과 좁은 입구에서부터 그들은 막혔다. 버스에 오르지 못한 장애인들은 버스를 에워싼 채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 가고 싶다”라는 종이를, 현수막을 버스에 붙였다. 손에는 예매한 버스표가 쥐어져 있었다. 버스표는 깃발처럼 휘날렸다.

 

타지 못할 거란 건 진작에 알았다. 이는 올해 내내 반복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의 회원은 설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1월 27일, 처음 고속터미널을 찾았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 가고 싶다”는 것.

 

“‘장애인은 버스 왜 못 탑니까’ 하면은 사람들이 다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중교통 이용이 도와주는 문제입니까. 우리는 왜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면서 버스를 타야 합니까. 이에 대해 오늘 대답을 들으려고 왔습니다.”

 

당시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의 말이다.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박 대표는 이날 사람들의 손에 들려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버스 내 공간이 좁아 좌석이 있는 내부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운전자석이 있는 버스 앞쪽 공간에 간신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휠체어 앞바퀴는 벼랑 같은 계단에 아찔하게 걸쳐졌다. 그는 쇠사슬로 자신의 몸과 버스를 묶었다. 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고속버스를 점거하고 쇠사슬로 버스와 자신의 몸을 묶은 박경석 대표.

 

# ‘1년 농사의 수확’과도 같은 예산은 날아갔지만 

 

3월, 전장연 등이 속한 이동권소송공동연대는 교통약자들의 시외이동권 확보를 위한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의 원고로는 계단 있는 버스에 대한 탑승이 어려운 휠체어 이용 장애인, 유모차를 끄는 영유아 동반자, 고령자 등 교통약자들이 참여했다. 이를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닌 교통약자라는 보다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한 것이다.

 

장애인인 원고들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구제청구를, 고령자·영유아 동반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아래 이동편의증진법)상 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하였다. 피고는 국토교통부,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고속버스와 광역버스 사업자 각각 한 곳이었다.

 

소를 제기한 이들은 시외버스 및 광역버스 중 저상버스나 휠체어 승강설비가 있는 버스가 한 대도 없는 상황이 교통약자의 이동권 침해이자 차별행위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2005년 제정된 이동편의증진법 제3조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였다.

 

또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9조 1항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접근·이용함에 있어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2항 “교통사업자 및 교통행정기관은 장애인이 이동 및 교통수단 등을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이용하여 안전하고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도 이들 싸움의 준거가 됐다.

 

▲지난 3월 열린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는 기자회견

 

그러나 현재는 ‘시내버스’에만 계단 없는 저상버스가 도입되어 있다. 하지만 버스가 어디 시내버스뿐이랴. 광역버스와 시외버스, 고속버스, 농어촌버스, 마을버스, 전세버스 등 다양한 버스가 있지만 그 어떤 곳에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탈 수 있는 탑승설비를 갖춘 버스는 없다. 즉, 이들의 요구는 이러한 버스도 탈 수 있도록 탑승설비를 갖추라는 것이었다.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 아버지 납골당이 있어요. 그런데 2005년 아버지 돌아가실 때 가보고 못 가봤죠. 갈려면 승용차를 빌려서 가야 하는데 그건 번거롭고 버스는 엄두도 못 내니 갈 수가 없죠.” (김정훈, 지체장애 1급)
 
휠체어와 분리해서 몸은 버스에 타고 휠체어는 트렁크에 실어 운반하면 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라 휠체어를 자신의 몸에 맞게 개조해 사용하는 이들에겐 이 또한 쉽지 않다. 이들 중엔 휠체어에서 내려 일반 의자에 앉는 것이 너무나 힘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설령 몸과 휠체어를 분리해 탈 수 있다고 해도 타인의 손에 자신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분명 자유롭지 못하다. 휴게소에서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으면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한다.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낸 뒤 저 좀 들어 휠체어에 앉혀주세요.” 이런 부탁을 하기가 쉬울리 없다. 
 
그렇게 1월 설날부터 이어진 고속터미널에서의 싸움은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도, 9월 추석에도, 첫눈 한파가 몰아친 12월 겨울에도 계속됐다. 이들은 점거를 통한 현장 싸움으로 대중에게 이러한 현실을 알려 나갔다. 현장에 있던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왜 여기서 남에게 피해를 주느냐"라는 분노에 찬 반응에서부터 이들 투쟁에 동의하는 이들까지.

 

이러한 장애인계의 요구는 마침내 국회 예산에도 반영되는 듯했다. 국토부는 고속버스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내년도 시범사업 예산 16억 원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는 기획재정부 심의에서 전액 삭감됐다. 후에 국회 상임위에서 16억 원을 재배정했으나 끝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최종예산안엔 반영되지 못했다. 그렇게 1년 농사의 수확과도 같았던 예산은 날아갔다.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장애인들이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라며 고속버스와 시외버스에 대해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 고속터미널, 현장의 목소리가 발화되는 곳

 

그러나 싸움은 계속된다. 장애인 시외이동권 투쟁을 이끌었던 전장연은 현재 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주요 골자는 시외·고속버스 대폐차 차량을 저상버스로 도입할 것, 구역노선 버스 중 전세버스에 장애인 탑승 편의시설을 갖출 것,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에 대해 중앙정부와 광역 단위에 가능조항("할 수 있다")으로 되어 있는 것을 강제조항("해야만 한다")으로 할 것, 시내저상버스 100% 도입 등이다. 사용 연한이 다 된 대폐차 차량을 저상버스로 도입한다면 10년 이내에 모든 시외·고속버스를 저상버스로 교체할 수 있다.

 

이들 개정안엔 사실상 시외·고속버스에 대한 요구만이 아닌 ‘모든 교통수단’에 대한 요구가 들어 있다. 이는 현재 ‘모든 교통수단’이 장애인이 이용하기 적절치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장애인 이동권은 여전히 분절되어 있다. 시외·고속버스에 저상버스가 도입되어 타 지역으로 원활하게 이동한다고 해도 그 지역에 도착해 자신이 이동하려는 장소로 이동하려면 저상버스, 장애인콜택시와 같은 연계 교통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2013년 말 기준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16.4%이다. ‘전국 평균’임을 감안해야 한다. 10%도 미치지 못하는 지역들이 있다. 장애인콜택시 역시 현행법에서 등록장애인구 중 1, 2급 장애인 200명당 1대로 법정대수를 정하고 있어 법정대수 100%를 채워도 신청 후 대기시간만 두세 시간이 걸린다. 서울, 경남 등을 제외하면 대다수 지역이 법정대수도 채우지 못한 상황이다.

 

새해가 밝으면 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된 지 10년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법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동편의증진법 상에 따라 농어촌버스, 시외버스에도 휠체어 승강설비가 설치되어 있어야 하나 이도 갖춰져 있지 않으며 제2차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계획의 저상버스 도입률도 미달했다. 그리하여 현장에선 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속터미널은 그 현장의 목소리가 발화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 그곳에서 또다시 목소리는 터져 나올 것이다. 정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응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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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민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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