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10월02일fri
기사최종편집일  최종뉴스편집일
비마이너로고
news
뉴스상세검색 버튼
기사등록 기사제보
전체메뉴 펼침
HOME 뉴스홈 > 뉴스 > 사회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삶과 돈이 저울질당하는 곳, 동자동 9-20
쪽방 45가구 중 11가구 남아…대부분이 수급자, 이주 대책 없어 서울시 “사유재산이라 개입 어려워” VS 대책위 "서울시 개입 없인 해결 못 해“
등록일 [ 2015년06월12일 01시14분 ]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쪽방에 온다. 가난과 질병은 숙주 관계다. 가난과 함께 몸에 붙여 들어온 병은 쪽방에서 쭉쭉 자란다. 아프니 일하지 못해 더 가난해지고, 가난으로 병을 돌보지 못해 더 쇠약해지고, 그럼 더 가난해지고.

 

쪽방에 사는 이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다. '대부분'에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폐지를 줍거나 일용직 노동으로 삶을 이어간다. 그들 꿈은 수급자가 되는 거다. 그러나 이미 수급자인 사람에게 현실은 절망이다. 일하면 소득이 잡혀 수급권에서 탈락하기에 감히 일할 수 없다. 그렇게 삶은 한 달 50만 원 남짓한 수급비에 갇힌다. 수급비의 1/3~1/2을 쪽방 월세로 낸 뒤 그 나머지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데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 이러한 현실에서 돈을 모으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지금 사는 이곳에서 깨끗하게 죽어 나가는 게 생의 바람이 된다. 그러나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9-20 쪽방에 사는 이들은 지금 그 바람마저 철거당하고 있다. 
 
# 떼어진 화장실 문짝과 수도꼭지,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지난 2월 4일, 동자동 9-20 각 방문엔 노란 딱지가 붙었다. 강제퇴거를 알리는 공고였다. “당해 건물은 금번 실시한 구조 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철거 및 구조 보강공사가 필요한 구조체로 판정되었기에 입주민들께서는 공사가 시작되는 3월 15일까지 모두 퇴거(퇴실)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6월 11일, 지하 1층과 지상 4층 총 45가구가 살던 9-20 건물엔 이제 11가구만이 남았다.

 

▲지난 2월 퇴거 명령이 내려졌을 당시의 9-20의 모습. 각 방문엔 강제퇴거를 알리는 노란 딱지가 붙어있다.

 

철거 공사는 5월 26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층과 층 사이에 있던 화장실 문짝이, 사람이 나간 빈방의 문짝이 떼어져 나갔다. 층마다 한 개씩 있는 세면장의 수도꼭지도 떼어가서 수도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쪽방 사람들에게 세면장은 빨래도 하고 쌀도 씻으며 세수도 하는 공간이었다.

 

보다 적극적인 공사는 4층부터 진행됐다. 비어있는 방과 방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천장이 뜯겨 나갔다. 가운데 복도를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던 공간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러나 복도의 왼쪽, 허물어진 맞은편 402호엔 여전히 사람이 산다. 나무판자와 콘크리트더미 속에서 402호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삶의 여부와 상관없이 철거는 강행됐다.

 

한 사람 돌아누울 틈새도 없는 좁디좁은 쪽방. 그러나 그 안에서 사람들은 TV도 보고 밥도 지어 먹고 소주도 마신다. 그들에게 이러한 공간이라도 있는 건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곰팡이가 썩어 내리는 벽에 기댄 이 삶이 지금 이곳에 사는 이들에겐 ‘최선’이기 때문이다. 이곳 아닌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갈 수가 없다.

 

김상섭 씨(79세)는 이 건물 지하 9호에 산다. 9-20은 동자동에서도 가장 월세가 싼 곳이지만 그중에서도 지하가 가장 싸다. 월세는 14만 원이다. 과거 동자동의 다른 쪽방에 살던 김 씨는 가장 싼 곳을 찾다가 15년 전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다. 한 달 수급비 50만 원에서 월세 내고 남은 돈으로 하루 세끼 밥을 챙겨 먹다 보면 수급비는 금방 동난다.

 

“이젠 나이 먹었다고 일도 안 시켜줘요. 전립선암으로 수술하고, 나이 드니 몸도 아프고. 돈이 없어요. 그러니 이사 갈 길이 없지.” 건물 철거 공사가 진행되면서는 한낮에 집에 있기도 힘들어졌다. “시끄럽고 먼지 나요. 속이 상하지. (요즘엔) 살고 싶지도 않구요, 더 살아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겄어요.”

 

▲동자동 9-20에 강제퇴거 명령이 내려진 지 4개월이 지났다. 처음 퇴거가 떨어졌던 지난 2월엔 45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현재는 11가구만이 남았다. 지난 5월 26일,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됐다. 4층은 비어있는 방과 방 사이의 벽이 허물어지고 천장이 뜯겨 나가면서 가운데 복도를 기준으로 오른쪽 공간은 완전히 허물어졌다. 그러나 허물어진 맞은편 402호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유상진 씨(64세)도 지하 7호에 산다. 그는 사업을 하다가 친구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쫄딱 망했다고 했다. 그 일로 뇌경색이 와서 병원에서 3년 살다가 거리 노숙 1년을 한 뒤 10년 전 이곳으로 왔다. ‘주거’가 확보되면서 기초생활수급자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월세 14만 원 내고 남은 수급비로는 한 달 생활이 쪼들린다. 가장 싼 곳에서의 생활이 이럴진대 이곳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난다.

 

203호에 사는 박승대 씨(53세)는 수급자가 아니다. 209호 월세는 지하보다 1만 원 비싼 15만 원. 그는 KBS에서 엑스트라로 일한다. 그렇게 버는 돈 월 3~40만 원이 그의 현재 유일한 수입. “돈도 없고… 무허가 판자촌이나 비닐하우스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했어요.” 그는 9-20에 들어오기 전엔 동자동의 다른 쪽방에 살았다. 그러나 그곳이 철거되면서 자연스레 6년 전 이곳으로 왔다. 그가 살던 옛 건물터엔 현재 빌딩이 들어섰다.

 

동자동 9-20엔 아직 사람이 산다. 지하에 2명, 1층 2명, 2층 1명, 3층 5명, 4층 1명. 그들은 어쩌면 삶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삶터를 움켜쥐며 버티고 있다.

 

# 동자동 9-20 “아직 사람 사는데 철거라니…”

 

10일 낮 12시 40분, 인부 셋이 동자동 9-20의 4층 천장을 뜯어내고 있었다. 건물 바깥에선 주민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주민의 신고로 곧 경찰이 도착했다. 우건일 동자동 사랑방 마을공제협동조합 이사장은 “사람이 살고 있는데 벽을 깨며 공사 중이다. 공사 하려면 사람들 다 내보내고 해야 하지 않느냐.”며 따졌다. 그러나 상황을 둘러보던 경찰은 난감한 표정이다. 경찰은 “형사가 아닌 민사상의 문제라서 뭐라고 하기에도 조심스럽다. 구청에도 연락했지만 구청도 딱히 뭐라고 못하고 있다. 인부들에게 주의 조치하는 방법밖엔 없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던 주민이 옆에서 대꾸한다. “그래서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맨 위 오른쪽부터) ①사람이 나간 빈방의 문짝이 떼어졌다. ②철거된 빈방 ③층과 층 사이에 있던 화장실 문짝이 떼어졌다. ④층마다 한 개씩 있는 세면장의 수도꼭지가 떼어져 현재 수도를 사용할 수 없다.

 

난감한 건 철거 작업을 하던 인부들도 마찬가지다. “5월에 이사 다 갔다고 작업 들어오라고 했어요. 회사에서는 작업 들어오라고 하고, 여기 사람들은 나가라고 하고… 공사한 흔적이 있어야 돈을 받는데…” 그는 말끝을 흐렸다.

 

갈 곳 없는 이들이 철거를 대하는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건물 3층에서 창문 밖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또 다른 이는 지나가던 인부를 붙들고 애원한다. 방 안에서 외출 준비를 하던 301호 남자는 계단을 내려가던 인부를 불쑥 붙잡고는 그에게 돈 1만 원을 쑤시며 말한다. “이거 줄 테니깐 제발 나가주어. 응?” 깜짝 놀란 인부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자 그는 1만 원을 더 꺼낸다. 화들짝 놀란 인부는 황급히 그 자리를 떴다.

 

지난 2월, 강제퇴거를 알리는 ‘노란 딱지’가 붙은 뒤 9-20 주민들과 동자동 사랑방 활동가들은 부단히 움직였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주민들의 서명을 받으며 목소리를 모았다. 서울역 쪽방상담소, 서울시 자활지원과와 함께 건물주를 만나며 강제퇴거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퇴거 시한만 미뤄질 뿐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서울시장 면담도 했지만 서울시 또한 사유재산이라 적극적인 개입은 어렵다고 했다. 
 
그 사이 주민들은 하나둘 쪽방을 떠났다. 연희동 매입임대주택으로 7명이 이주했고 나머지 사람들도 인근 쪽방으로 떠났다. 이주한 쪽방은 그전보다 주거 환경이 나아지지도 않았건만 9-20보다 방값이 비쌌다. 매입임대주택 또한 보증금 50만 원을 마련한 이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엔 ‘친구’가 없었다. 연희동으로 떠난 이들은 외로움에 자꾸 동자동을 찾아온다.

 

# “쪽방은 노숙 문제 해결을 위한 발판, 서울시 적극 개입하라”

 

동자동 9-20 쪽방 세입자모임과 9-20 공동대책위원회는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안전을 위협하는 철거를 당장 중단하고 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동자동 9-20 쪽방 세입자모임과 9-20 공동대책위원회는 11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안전을 위협하는 철거를 당장 중단하고 시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우건일 동자동 사랑방 마을공제협동조합 이사장은 “그동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서울시, 용산구청, 국민권익위, 대한법률구조공단 등에 갔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곳이 없었다.”면서 “건물주는 법대로 하자는데 법은 우릴 외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쪽방이 외국 관광객을 맞는 게스트하우스로 바뀌는 등 영등포, 남대문, 동자동 등 쪽방이 밀집해있던 거리의 풍경이 최근 바뀌고 있다.”라면서 “쪽방 주민들은 이주를 하면서 점차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렸다.

 

쪽방은 ‘최저의 삶’을 가능케 하는 곳이나 이마저도 “임시거처를 확보하지 못해 거리생활을 지속하는 노숙인들에겐 노숙 문제를 해결하는 발판”이 되는 곳이다. 쪽방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이 활동가는 “서울시는 사인 간의 문제이기에 개입이 어렵다고 해선 안 된다. 서울시가 사건 당사자로서 개입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하며 서울시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계속 거주를 희망하는 이들에겐 현재와 유사한 조건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전제로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시와 자치구, 쪽방상담소, 주민 당사자 등이 참여한 TF팀을 꾸리고 나아가 쪽방 주민을 위한 공유주택형 공공임대주택 모델 개발 및 시범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TF팀 구성을 요구한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러한 목소리를 담은 요구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다.

 

▲철거 중인 동자동 9-20 건물. 철거에도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볕 들지 않고 물도 나오지 않는 곳이 마지막 거주지라며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건물주는 퇴거 시한을 세 차례나 미뤘음에도 나가지 않는다며 철거를 강행했다. 시는 사유재산이라 개입하기 어렵다며 등을 돌렸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이렇게 철거당해도 괜찮은가. 물론 이제까지 가난한 이들의 삶은 그렇게 철거당해왔다. 그건 일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당연한가? 삶과 돈이 저울질당하는 순간이다. 저울을 가만히 두었을 때 그것은 늘 돈의 쪽에 기울었다.

 

한없이 가벼운 빈곤의 삶을 사는 이들은 저울의 끝에 서 있다. 아득한 벼랑에서 휘청이며 도움을 요청한다. 그들에겐 두 가지의 삶이 기다린다. 벼랑의 삶을 유지하거나 이 밑으로 떨어지거나. 최악과 차악의 삶. 서울시는 이 무게의 추를 잡아줄 수 있을까.

올려 0 내려 0
강혜민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텔레그램 비마이너 구독하기 비마이너 paypal로 일시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비마이너 정기후원하기 새창으로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쪽방촌 주민은 어디로 가야하나
동자동 쪽방촌 내 42가구, 다음달 쫓겨날 위기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프린트하기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댓글, 욕설과 혐오를 담은 댓글, 광고 등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삭제될 수 있으니 댓글 작성 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탄저균 사건, 안보보다 인권을 먼저 이야기해야 할 때 (2015-06-12 20:31:53)
장애여성 담요에 말아 연행하며, "성추행 아니지?" (2015-06-11 17:1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