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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그리다 - 무릎
굳은살이 꽉 박인 나의 양쪽 무릎
등록일 [ 2015년06월15일 22시52분 ]

우리의 몸은 참 신기하다. 정말 약하디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지구 상의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고 산다. 설령 몸에 장애가 있어도 이내 환경에 적응하는 우리의 몸을 볼 수 있다.

 

초등학교 시절, 통학이 어려운 나는 큰 결심을 한다. 집이 아닌 시설 비슷한 기숙사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학교와 그곳은 건물이 거의 붙어있었기 때문에 통학에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다. 뇌성마비만 있었지만 정말 장애가 천차만별이었다. 걸어 다니는 선배, 뛰어다니는 친구, 기어 다니는 아이, 굴러다니던 아기(한 2, 3살?)... 그렇게 이동하는 모습이 모두 달랐다. 물론 실외에서는 휠체어를 이용했지만 실내에서는 기어 다니는 사람이 참 많았다.

 

기어 다니는 모습은 다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기어 다닐 때 쓰이는 신체 부위에 훈장처럼 모두 거뭇한 굳은살을 가지고 있었다. 엉덩이를 끌며 기는 사람은 엉덩이에, 엎드려 팔꿈치로 기는 사람은 팔꿈치에, 네 발(?)로 기는 사람은 손바닥에… 딱딱하고 까칠하기 그지없는 그 굳은살을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었다.

 

굳은살은 꽤 유용하다. 일단 단단하다. 그래서 웬만한 충격에도 아프지 않다. 맨땅바닥을 기어도 고통이 없을뿐더러, 다치지도 않는다. 그리고 싸울 때 위협적인 무기(?)가 된다. 평소에 자연스럽게 단련이 된 그 부위는 살짝만 스치게 해도 꽤 치명적인 효과를 낸다.

 

그런 굳은살이 나에게도 있다. 양쪽 무릎에....

 

긴 서론으로 눈치챘겠지만, 난 걷지 못한다. 지금까지 걸어본 기억이 없고 꿈에서조차 선 적이 없다. 오직 무릎으로만 기어 다닌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고, 무릎 꿇은 상태에서 엉덩이를 좌우로 꿈틀대며 천천히 움직이다가 5살 정도에 허벅지에 어느 정도 힘이 생긴 후부터 무릎으로 기어 다녔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연습했다면 걸을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그때부터 아직까지도 지겹게 듣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내가 게을렀거나 부모님이 덜 신경 썼다는 얘기로 결론짓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난 게으르지 않았으며 부모님은 그 어떤 부모보다도 열정과 돈을 들이셨다. 그냥 장애가 그런 증상(?)인 거고 무슨 짓을 어떻게 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성향이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던 일이 있었다. 같은 장애인인 여자사람 친구와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그 친구가 실수로 지갑을 떨어뜨렸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휠체어에서 내려 무릎으로 기어가 주워주었다. 그 여자사람 친구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나를 나무랐다.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다시는 내 앞에서는 그러지 말라고, 한 번만 더 그러면 다신 안 보겠노라고…

 

의아하고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억울했지만, 알겠다고 했다. 그 친구의 행동과 내 복잡미묘한 감정은 아직도 미스터리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장애는 적어도 내 장애는 충분히 '다름'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과 다른 그 무릎이 가끔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런 상황인데 2, 3년마다 한 번씩 크게 곪는 것이다. 그럴 때면 혹처럼 붓고 딱딱해지며. 무엇보다 기어 다닐 때마다 아프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매번 겪지만 매번 아프다. 아스팔트 바닥은 기어 다니지 말아야지... 굳은살 관리해야지... 유리 조심해야지... 항상 하는 다짐이지만 무릎이 다 나으면 또 그 다짐들도 잊히기 일쑤다.

 

약 15년 전에 크게 곪아 퉁퉁 부은 내 무릎을 메스로 사정없이 째며 한마디 하던 소피 마르소를 닮았던 의사 선생님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세상에… 무릎은 디디라고 만들어진 곳이 아닌데... 왜 이러고 다녔어요...? 그러니까 이런 꼴이 나지.... 무릎 쓰지 말이요... 안 그러면 삼십대 중반에 무릎 다 나가요... 평생 앉지도 못할 수도 있어요... 알았죠?' ... ... 예쁘셔서 봐...줬던 건 아니었다. 실제로 덜컥 겁이 나서 아무 말도 못했었다.

 

그 이후로 난 또 잊어버리고 무릎으로 기어 다니다가 곪고 또 낫고 또 곪고... 마흔살이다. 그 의사가 예언(?)했던 삼십대 중반은 어찌저찌 넘겼지만 또 난 무릎을 쨌다. 아프고 화장실도 못 간다.

 

어찌 되었던 또 나을 것이고 난 또 무릎으로 빨빨거리고 기어 다닐 거다. 그게 우리네 인생이라면... 허무한 결론일까?


 

서기현의 주둥아리

뇌성마비로 인한 사지마비. 잘 기어다님. 의외로(?) 할 수 있는 것 많음. (활동보조 시간 깎일만큼은 아님. 봐주십쇼. *굽신굽신*) 할 수 있는 것의 대부분은 주둥아리 덕에 가능. 지루하게 말하기. 젓가락 물고 글 쓰기. 개걸스럽게 먹기. 섹시하게 ... (응?) 7년 동안 집안에서 거지꼴로 살다 IMF때 반강제 자립(자립생활 아님 ㅋ). IT업계의 비장애인들 틈바구니에서 개고생하다 장판에 들어와 굴러먹은 지 10여 년. 현재 어느 자립생활센터에서 소장으로 놀고 먹으며... 오로지 주둥아리 하나로 버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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