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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졸속 제정, "죽음의 계급화 불러온다!"
한국장애학회,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논의 비판
생명윤리정책 결정에 장애인계 참여 보장 요구
등록일 [ 2015년07월14일 16시23분 ]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존엄사' 또는 '소극적 안락사' 법제화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월 22일 국회에서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입법공청회가 열린 데 이어, 이달 7일에는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이용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아래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출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장애인계에서는 연명의료 결정이 입법화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장애인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입법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임종기 환자의 안락사 또는 존엄사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대법원은 지난 2009년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판결을 통해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진입하고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의료 지시가 있을 경우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허용기준을 제시하였다.


이 사건 이후로 연명의료 결정에 대한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지난 2013년 상반기에 ‘연명치료중단제도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 해 7월 연명의료 결정 대상 환자, 연명의료의 범위, 환자의 의사확인방법 등 환자들이 연명의료에 대하여 올바르게 결정할 수 있도록 특별법 형태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기에 이른다.


김재원 의원이 7일 발의한 연명의료결정법안 또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권고에 바탕을 둔 것으로, 비록 의원발의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다. 법안의 주요 내용으로는 연명의료 제도화를 위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및 병원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19세 이상 성인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등록기관에 등록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연명의료결정 및 이행 관련 대상과 절차를 규정했으며, 호스피스 및 완화의료 제도화를 위해 이를 위한 전문기관 지정 및 평가 조항 등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한국장애학회(아래 장애학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추진 과정이 졸속이라며 장애인계와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법안이 마련되고 공론화되는 과정에서 이 법의 매우 중요한 관련 당사자인 장애인계가 참여할 수 있는 어떠한 구조도, 논의의 장도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2013년에 연명치료중단제도화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의견수렴되었던 과정은 물론이고, 5월 22일 열렸던 입법 공청회에서도 장애인계는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안락사, 산전검사, 선별적 낙태, 배아연구 등 생명윤리의 주요한 의제들 다수가 장애 문제와 연관되어 있지만, 이를 논의하는 국가생명윤리심의원회의 위원 55명 중 장애인 당사자는 물론이고 장애인계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장애학회는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번 법안이 장애인지적 관점을 철저히 결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장애인으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식의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 상황에서, 성년후견인이나 병원윤리위원회는 물론 때로는 가족조차도 장애인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며 “더구나 가족이 없는 상태로 시설에 거주하여 법정대리인이 시설의 장으로 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그러한 장애인의 생명권 보장은 더욱 취약한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법률에서는 의사능력 문제와 관련하여 미성년자의 경우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 미성년자가 아닌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어떠한 명시적 조항도 두고 있지 않다”라며, 연명의료 결정에 있어서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이 침해될 수 있는 상황을 법안이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장애학회는 또한, 임종과정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방안 등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되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죽음의 계급화’를 조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연명치료중단제도화특별위원회조차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 확립과 시설 확충’, ‘임종과정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권고했다”며 “연명의료 결정의 제도화는 그러한 사회적 기반 위에서만 그 오용과 생명권 침해의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연명의료결정법안에는 임종과정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조항은 전혀 존재하지 않고, 법안과 함께 제출된 비용추계서에도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 지정 등과 관련해서는 단 한 푼의 예산도 책정하지 않았다는 것. 이들은 “호스피스·완화의료가 공공의료의 토대 위에서 구축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임종과정 환자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충분한 경제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장애인, 홈리스, 빈민 등 사회적 취약 계층이 그 일차적인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애학회는 끝으로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졸속적인 연명의료결정법의 제정을 중단하라”며 “장애인계와 성실하고 진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한편, 이번 문제를 계기로 생명윤리 정책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 장애인계의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세계적으로 안락사를 제도적으로 허용한 국가는 2014년 현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정도이며, 미국에서는 5개 주(오리건, 워싱턴, 버몬트, 몬타나, 뉴멕시코)에서만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조력자살(Assisted suicide)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누군가의 삶을 마감케 하는 데 있어 의사에게 사실상 ‘면책특권’을 주게 될 것”이라는 장애인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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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금철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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