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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형 인간의 밤
삶을 표현하고, 생존하고, 사랑하기 위하여
등록일 [ 2015년07월21일 17시20분 ]

몸이 늘 고통이다. 두 시간 이상 책상 앞에 연속으로 앉아 있기 어렵다. 책에 집중하고 싶지만 몇 분 간격으로 자세를 계속 바꿔서, 허리로 가는 체중을 분산시키려 애쓴다. 허벅지와 허리에 강한 근력을 가지는 ‘평범한 인간’인 경우 이런 고생은 훨씬 덜 하다. 두 어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주면 그만일 것이다. 아닌가? 강력한 허벅지에도 고충이 있나?
 

하체를 쓰기 어려운 장애를 가진 사람은 중력이 두 배 정도 되는 행성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체중 대비 팔의 근육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므로,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며 사는 환경에서라면 경쟁력이 있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도, 샤워가 끝나고 전신거울에 비추어보면 내 몸은 상반신이 발달한 유인원에 가깝다. 쭉 뻗고 탄탄한 허벅지를 가진 아름다운 몸 따위는 없다. 우리는 땅 위에서 중력을 강력하게 지탱하는 몸을 아름답다고 여긴다(우샤인 볼트와 김연아의 신체를 보라). 이것은 미디어 권력이나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표준적인 미적 획일성과는 관련이 없다. 육지에서 생존해야하는 우리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으면 도대체 뭘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을까. 천사의 날개보다 육상 선수의 허벅지가 더 섹시하지 않은가?


내 몸에 부합하지 않는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운용하는 나름의 방식을 고안하고, 몸이 ‘보여지는 방식’에 대하여 항상 의식하고 있음에도, 정신에서 해방되어 내 신체의 움직임과 감각만이 삶을 장악하는 순간은 거의 없다. 삶의 거의 전부는 관념을 다루는 일로 점철되어 있다. 법률, 인권, 정의, 행정, 장애에 관련된 수많은 개념들이 나의 일상을 채운다. 이런 관념들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질 때면 나는 스스로를 극도로 하찮다고 느낀다.


수년전 큰 각오를 가지고 수영장을 찾았다. 내가 자주 가던 낮 시간대에는 장애아동들과, 그 아동들에게 수영을 지도하는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 주로 같은 레인에서 수영을 했다. 두려움을 가득안고 버둥거리고 있자, 여러 번 만나 얼굴이 익숙한 한 여성이 말했다. “그래도 대단하세요. 얼마나 좋아요. 나와서 바람도 쏘이고 운동도 되고. 참 장하십니다.” 나는 물안경을 낀 채 팬티만 입은 유인원의 모습으로 멍하게 있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운전을 하고 돌아오면서, 내가 칸트를 읽었다든가, 민법상 채권자 취소권 같은 개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장애인으로서 운 좋게 여러 교육기회를 얻은 나로서는 체계적으로 정리한 정신적 관념들이 자부심의 근거이자 밥벌이 수단이다. 그러나 나는 늘 신체가 가장 중요해지는 어떤 작업들을 갈망한다. 또한 나의 신체가 끌어당기는 깊은 열등함의 구렁에 발을 걸친다. 작은 경험이나마, 연극 연습과 공연은 나를 부끄럽게 했고 스트레스도 주었지만, 그 순간에는 나의 신체가 정신을 압도한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날들에는 밤에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물론 나중에 공연 모습을 영상으로 바라보자 나는 여전히 중력에 찌그러진 몸통으로 간신히 무대 위에서 버둥대고 있었다. 그래서 영상을 끝까지 보지 않고, 다시 채권자 취소권으로 돌아갔다.


장애인들은 아마도 어떤 사람들보다 자신의 신체를 깊이 관찰하고 자주 의식할 것이다. 우리는 늘 몸을 신경 쓴다. 하지만 몸에 대해 의식하고 생각할 일이 많을 뿐, 정신에서 해방된 채 몸 그 자체만으로 삶을 장악하는 경험은 거의 없다(몸의 고통이 삶을 장악하는 순간이 있을 뿐이다). 땀을 흘리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스포츠, 압도적인 세계로 내 몸을 녹아들어 가게 하는 등산, 짜릿한 놀이기구, 타인의 시선을 잊고 온전히 움직임만이 느껴지게 만드는 춤,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섹스, 온몸을 창조의 일부로 만드는 예술적 퍼포먼스는 대체로 우리 몸이 감당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시선으로부터는 절대로 해방될 수 없다. 장애를 가진 신체는 타인의 시선에 늘 반응하며 살아야 했으므로, 타인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는 그 시선을 내면화하여 늘 자기 신체를 관찰하기 때문이다(섹스를 할 때에도 당신은 상대방의 신체가 아니라 자신의 신체를 관찰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바닥을 기며 생활했다. 바닥에서 친구들과 농구도 하고, 나름대로 룰을 만든 손축구(?)도 했다. 혼자 있을 때면 음악을 틀어놓고 춤도 추었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팔다리를 저으면서 앞으로 내달렸다(달린다고 느낀다). 몸으로만 일상을 장악하는 순간들이 적지 않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신체형’ 인간들일지 모른다. 아무리 책을 읽고 말을 하고 글을 써도 녹초가 되지 않는 밤이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손가락 하나만 까닥하는 몸을 가지고서도 우리의 삶을 표현하고, 삶에서 생존하고, 삶을 사랑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방법이란 것은 또 권리라든가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 어떻다든가, 활동보조인제도를 어떻게 구상해야 한다든가와 같은 ‘정신적 관념들’에 근거할 것이다. 장애를 가진 신체가 삶을 장악할 수 있는 세계를 위해서는 그 백배는 되는 관념적, 이념적 작업이 요구된다. 그러니 나로서는 당장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그저 두 팔로 엉금거리며 집 밖으로 뛰쳐나갈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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