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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력 개념을 통해 본 우생학 ①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16]
살게 만드는 권력이 어째서 사람을 죽게 만드는가
등록일 [ 2015년08월10일 17시12분 ]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생명권력(biopower)에 대한 통찰은 기본적으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논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1976년에 출간된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Histoire de la sexualité: La volonté de savoir)』의 마지막 장과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서 행해진 1975~76년의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의 마지막 11번째 강의에서 생명권력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개요를 제시한 바 있지요.


푸코는 근대 이전의 군주가 지닌 고전적 주권에도 자신의 인민에 대한 어떤 종류의 생사여탈권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죽음의 편에서 불균형하게 행사되는 칼의 권리였으며 “죽게 만들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력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근대사회로의 전환 이후 국가가 인민에 대해 행사하는 생사여탈권은 오히려 삶의 편에서 불균형하게 행사되는 권리로, 즉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력으로 성격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되는데, 푸코는 이를 바로 생명권력이라고 지칭합니다.1) 따라서 생명권력이란 기본적으로는 생명[生]을 지키는[衛] 권력, 즉 ‘위생권력’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미셸 푸코, 그리고 그가 ‘생명권력’이라는 개념의 개요를 제시한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오른쪽 아래)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오른쪽 위).

 

푸코가 명시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와 같은 국가권력의 성격 변화는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에 따라 생산하는 자와 생산수단이 분리되는 것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前)자본주의 시대는 기본적으로 생산자인 농민들이 생산수단인 토지에 직접 결합되어 식량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알아서 먹고사는 자급자족 성격의 사회였습니다. 그러니 군주의 입장에서는 그냥 살게 내버려 두는 것이었고, 죽게 만드는 칼의 권리를 통하여 능동적 권력이 행사되지요.


한편 자본주의로의 전환기를 기점으로 생산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무산자가 되었지만, 이들 중에서 고용이라는 매개과정을 거쳐 자본가가 지닌 생산수단에 간접적으로 결합되지 않는 대중, 즉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이 광범위하게 발생합니다. 따라서 근대적 권력은 이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있고, 살게 만들 때 능동적 권력의 행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지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사회복지의 탄생이란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출현하여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국가권력은 인민들이 자본주의적 노동 규율을 내재화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개별적인 신체’에 대한 규율과 훈육에 관심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부터 근대적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감옥․병원․구빈원․학교․군대․공장 등의 장치를 통해 이러한 과정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그 메커니즘이 확립되자, 18세기 후반기부터는 이와 더불어 ‘인구(즉 전체 노동력)’의 육성과 관리에 주된 관심을 두는 생명권력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개체의 수준에서 행사되는 규율권력과 인구의 수준에서 행사되는 생명권력이 교차적․상호의존적으로 작동하며 인간의 생명이 생산에 활용되고 그러한 활용에 순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생명권력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어떤 개개인이나 죽음의 위기에 처해 보호가 필요한 구체적인 사람들의 생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의 “종(種)으로서의 인간(human species)” 내지는 인구 전체의 생명이 그 대상이 됩니다. 이에 따라 생명권력은 인구의 출산율․사망률․평균수명․발병률 등의 ‘정상적(normal)’ 분포를 유지하는데 지대한 관심을 둡니다. 의학을 비롯한 생명과학이 근대 권력의 핵심부와 접속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그리고 인구의 건강과 생명활동을 유지하고 증진시키기 위해서, 바로 그러한 명분과 목적 아래, 때때로 전체 인구 중 열등하거나 해악적이라고 간주되는 특정 집단을 정리해버리는 잔혹함을 발휘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생명권력은 그 자체로 ‘생물학적 전체주의’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으며, “마치 유기체적 신체에 내포된 부분이지만 그 신체의 생명을 위협하는 암세포를 제거하듯이”2) 전체를 위해 살게 할 자와 그럴 가치가 없는 자를 규정해 버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처럼 전체 인구의 생명활동을 약화시키는 이들이란 어떤 종류의 인간들일까요? 푸코의 설명을 따르자면 그들은 큰 틀에서 볼 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자본주의적 규율에 순응하지 못한다고 판단된 인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각종 유전병을 비롯한 질병이나 정신․정서․신체상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일차적인 대상이 됩니다. 더불어 사회의 규범으로부터 일탈하는 다양한 비행자들과 자활(自活)하지 못하는 인간들 또한 언제든지 그러한 집단으로 규정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체를 살리기 위해 소극적인 방식으로 죽도록 방치되거나 적극적인 방식으로 제거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맬서스가 1798년에 쓴 『인구론』에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므로 잉여 인간들은 죽어야 한다고, 그렇게 남아도는 인간은 “죽게 내버려두는 게 사회 전체의 증대를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근대적 생명권력의 한 측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20세기 전반기의 우생학 운동이나 나치하에서 인종위생학에 기반을 두고 장애인에 대한 학살이 자행된 것 역시, 바로 이러한 근대적 생명권력이 가장 능동적으로 작동한 것이라고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각주 1)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박정자 옮김, 동문선, 1998, 278~279쪽.

 

각주 2) 정정훈, 『인권과 인권들』, 그린비, 2014,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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